최근 몇 년간 칼 마르크스의 걸작 《자본》에 대한 관심이 실제로 되살아났다.

마르크스주의 저술가 데이비드 하비의 《자본》강독이 큰 성공을 거둔 것이 가장 눈에 띄는 징후 중 하나다.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새 책은 이 추세에 큰 힘을 더할 것이다.

자본가들 자신의 이론은 최근의 경제 위기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자본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의 혁명적 연구가 인기를 얻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심지어 경제 위기가 시작된 2007년 이전에도 자본주의가 사회를 조직하는 최상의 방식인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마르크스는 학술 활동으로서 《자본》을 집필하지 않았다. 그는 자본주의를 전복하는 활동의 일환으로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분석하는 방법을 발전시켰다.

캘리니코스는 노동계급의 구조 변화를 둘러싸고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논쟁을 다뤘다. “그 논쟁들에서 《자본》을 어떻게 이해할 것이냐 하는 문제가 묻어나는 것을 보면, 《자본》이 지금도 생명력 있는 저작임을 알 수 있다.”

《『자본』 해독》은 어떤 면에서는 캘리니코스가 “성인이 된 뒤의 삶을 모두” 바쳐 연구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자본주의에 맞서 싸우는 혁명가들을 무장시키기 위해 마르크스가 자본주의를 이해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보여 준다. 

캘리니코스는 이렇게 주장한다. “《자본》을 읽는 요령은 마르크스가 공들여 요약한 진술을 만들었다가 고치고, 범주를 이렇게 나열했다고 저렇게 바꾸는 과정을 따라가는 동시에, 하비가 멋드러지게 강조했듯이 큰 그림을 놓치지 않은 것이다.”

그러면서 캘리니코스는 《자본》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최근 논쟁에서 유용한 통찰들을 이끌어 냈다. 또한 일부 주장들의 한계와 혼란에 이의를 제기하기도 한다.

마르크스가 쓴 방대한 원고들이 최근에 더 많이 출판된 덕분에, 《자본》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크게 신장될 수 있었다. 캘리니코스가 말했듯이, 마르크스는 “글을 쓰며 생각하기”를 좋아했다. 그리고 마르크스의 “실험실”[자본주의 경제 현실]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 늘어난 덕분에, 우리는 마르크스의 방법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얻을 수 있었다.

1857년 마르크스는 십중팔구 최초였을 세계 경제 위기의 발생을 목격했다. 세계 경제 위기를 보며 그는 훗날 《자본》으로 이어질 경제학 연구를 시작했다.

마르크스가 영국 국립도서관에서 《자본》을 쓸 수 있었던 것은 특별히 좋은 조건이었다. 그 도서관이 있는 런던은 영국 제국의 중심지였다. 런던은 최초로 산업화된 나라의 상업적?금융적 중추였다.

그런 런던에서 마르크스는 이 격동적인 새 형태의 생산과 사회에 내재한 모순들을 모두 이해하려 애썼다.

캘리니코스의 책은 마르크스의 책을 소개하는 입문서는 아니다. 캘리니코스의 책은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의 본질을 온전히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 개념들을 발전시키고 수정하면서 마련한 방법에 집중한다. 

외관

마르크스의 방법은 중요하다. 자본주의 이전의 착취 체제들과 달리 자본주의에서는 겉으로 드러나는 겉모습(이하 현상)과 본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핵심은 노동자다. 노동자는 겉보기로는 자유롭고 자발적으로 자본가와 거래를 한다. 노예제 사회와 달리 자본주의에서 착취는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금융시장에서 돈은 노동자의 노동과 상관없이 더 많은 돈을 만들어 내는 힘을 가진 듯이 보인다.

신용 파생상품 같은 복잡한 금융적 수단들이 노동자 착취에 토대를 두고 있다는 사실은 잘 숨겨져 있다.(경제 위기가 터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생산관계의 숨겨진 본질을 이해하고 왜 그 본질이 현상과 매우 다른지를 설명하고자 했다.

캘리니코스가 중요하게 강조하는 것은 마르크스가 자본을 사회관계망으로 이해했다는 점이다. 자본주의 체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관계들의 상호작용을 연구해야 한다.

마르크스가 말했듯이, “면직물 공장의 노동자가 그저 면직물만 만들어 내는가? 아니다. 그는 자본을 생산한다.”

두 가지 주요 관계가 자본의 중심에 있다. 첫째,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다. 생산수단을 지배하는 자본가들은 임금노동자를 착취할 수 있다. 임금노동자들은 자본가를 위해 일할 능력 말고는 생존 수단이 없다.

둘째, 자본가들 사이의 관계다. 이 관계의 토대는 경쟁이다. 자본가들은 경쟁에서 패배하면 경쟁사에 합병되거나 파산하게 된다.

그래서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을 가차없이 착취하지 않을 수 없다.

뛰어난 고전파 정치경제학자 애덤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는 이 새로운 체제의 근본 원리들을 포착했다. 마르크스는 그들의 통찰을 계승했을 뿐 아니라, 그들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노력했다. 

리카도는 스미스보다 더 분명하게 노동가치론을 전개했다. 노동가치론은 상품의 가치가 그것을 생산하는 데 들어간 노동의 양에 따라 결정된다는 사상이다.

노동가치론은 자본의 착취적 본질을 콕 짚어 낸 중요한 통찰이었다. 그러나 리카도는 이 이론이 자본주의의 여러 양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설명하지 못했다. 그런 양상들이 그 이론과 충돌하는 듯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자본주의에는 착취가 없다고 말하고 싶었던 다른 경제학자들은 리카도의 이론이 일관되지 못하다면서 그것을 폐기해 버렸다.

캘리니코스는 마르크스가 《자본》을 위한 여러 원고를 쓰는 과정에서 어떻게 리카도 사상의 결함을 극복했는지를 보여 준다.

그 과정에서 마르크스는 뛰어난 독일 이상주의 철학자 게오르크 헤겔의 업적에 의지했다. 물론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유물론적 방법을 발전시키기 위해 헤겔의 개념을 수정해야 했다.

캘리니코스는 독자들이 이 사상가들의 사상을 알고 있다고 가정한다. 그래서 이 사상가들을 잘 알지 못하는 독자들은 이 장(章)의 논의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이것은 자본주의 역사 내내 주류 경제학자들을 혼란에 빠뜨린 복잡한 문제이다.

현대 자본주의의 주요 특징들을 이른바 ‘전문가’들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은 가치 있고 보람 있는 일이다. 캘리니코스가 이 책의 후반부에 다루는 두 가지 영역에서 특히 더 그렇다.

캘리니코스는 데이비드 하비를 포함한 많은 최근 사상가들이 자본주의 체제에서 임금노동이 하는 구실의 결정적 중요성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한다.

착취

그러나 마르크스가 중요하게 지적한 것 하나는 임금노동자 착취가 자본주의의 핵심이라는 점이었다고 캘리니코스는 주장한다. 

캘리니코스는 이렇게 쓴다. “마르크스의 주변에는 급진적 사상가가 많았다. 그들은 착취를 자본가들이 시장의 법칙을 부당하게 조작한 결과로 봤다. 

“마르크스는 자본들 사이의 관계를 설명함으로써 착취가 노동력이 상품이 된 일반적인 상품 생산 체제의 ‘정상적’ 특징임을 보여 주고자 했다.”

자본이 노동자를 기계로 대체하고, 그래서 불완전 고용이나 실업 상태의 산업 예비군을 창출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자본은 또한 계속해서 새로운 산업을 창출해, 낡은 산업 부문에서 쫓겨난 노동자들을 때때로 그 새로운 산업으로 끌어모은다.

자본주의는 새로운 노동자 집단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노동시장에 들어오지 못했던 여성이나 토지를 빼앗긴 농민들을 노동자로 만든다.

실제로 지난 30년 동안 나타난 주요 특징은 동아시아에서 산업 자본주의가 성장하며 임금노동자가 엄청나게 확대됐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여전히 임금노동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과거 어느 때보다 많이 그렇다.

그 덕분에 노동자들은 캘리니코스가 말했듯이, “생산 과정을 방해하고, 마비시키고, 장악할 수 있는 집단적 능력”을 계속 얻게 된다.

캘리니코스는 마르크스의 경제 위기 이론을 다시 살펴본다. 캘리니코스는 마르크스가 어떻게 그리고 왜 자본주의가 때때로 위기에 빠지는지를 설명하는 세련되고 다중적인 이론을 발전시켰다고 주장한다.

위기를 다룬 긴 장에서 캘리니코스는 이렇게 주장한다. “위기가 중요한 이유의 하나는 그것이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모순들을 집중시키고 요약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위기가 ‘부르주아 세계의 생존’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공공연하게 알려 주기 때문이다.”

그 장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이윤율 저하 경향과 금융시장의 구실 사이의 상호작용을 이해시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이 확대되고 파괴되는 데서 금융시장의 호황, 거품, 폭락의 순환이 가장 중요한 구실을 한다고 봤다.

이 점이 캘리니코스가 마르크스의 《자본》에 관해 논의한 가장 중요한 요점이다. 마르크스의 《자본》은 낡았기는커녕,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데서 놀랄 만큼 신선한 의미를 여전히 지니고 있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계는 여러 면에서 한두 세대 전의 세계보다 마르크스가 《자본》에서 그렸던 세계와 훨씬 더 닮았다.

1970년대 말 이후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핵심 특징 하나는 금융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강력한 규제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국제 무역, 세계적 생산망, 금융의 엄청난 성장, 경제 위기의 빈번한 발생 등은 마르크스에게도 익숙한 일이었을 것이다.

마르크스의 방법은 오늘날 자본주의에 맞서 계속 투쟁을 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여전히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출처: 영국의 혁명적 좌파 신문 <소셜리스트 워커> 241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