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5일부터 30일까지 가족들과 함께 학과 총동문회가 주관한 "열하일기"를 주제로 한 답사기행을 갔다. 중국 동북지역 선양에서 청나라 황제의 여름휴가처이자 몽골 등 북방유목민족들을 통치하기 위해 만든 피서산장과 티베트 사원이 있는 청더, 만리장성, 국자감, 공자묘, 천주교 성당이 있는 북경을 여행했다.

이번 여행은 중국의 다수민족인 한족이 아닌 소수민족인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 유적지 기행이었지만, 나로서는 중국 소수민족 문제에 관심이 있었고, 이전에 어학연수와 여행을 가면서 중국사회를 경험한 것과 비교해서 중국 사회의 변화를 조금이나마 느꼈다는 점에서 이번 여행이 단순한 역사기행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한족에 비해 인구 비중이 매우 적은 소수민족들이 교통의 요충지이자 풍부한 자원이 많은 티베트·신장에 많이 살고 있는 현실로 인해 중국 정부는 청나라가 몽골족과 티베트족을 통치하기 위해 라마교 사원을 지으면서 동시에 청나라에 저항했던 준가르족에 대한 대학살을 자행한 것처럼 위구르족과 티베트족의 독립운동을 탄압하면서 동시에 소수민족들을 자국에 편입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나는 이 점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한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중국에서 과거에는 청나라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중에 만주족에 반대하는 한족들의 복명운동을 미화하는 내용이 많았지만, 지금은 한때 유행했던 드라마 〈황제의 딸〉이나 〈회옥공주〉 영화에서 보듯이 한족 주인공들이 만주족인 강희제, 건륭제 등 청나라 황제를 찬양하고, 황실에서 한 가족으로 지내는 등 한족과 만주족이 화합하는 내용이 많아졌다고 한다. 당시에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이런 점 또한 한족과 소수민족이 하나가 된 “중화민족”을 창출하려는 중국정부의 의도가 반영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최근에 청나라 멸망 후 버려졌던 라마교 사원인 보령사와 보타종승지묘(티베트 수도 라싸의 포탈라 궁전을 모방해서 만든 사원) 등의 일부 건축물 복원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청나라 유적지가 많은 청더를 가리켜 “민족화합의 상징”이라고 규정하고, 라마교를 믿는 토르구트족이 러시아정교를 강요하는 러시아에서 탈출해 라마교를 믿는 청나라로 돌아온 것일 뿐인 역사적 사실을 "토르구트족이 조국에 돌아왔다"며 "중화민족의 위대함"으로 선전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또한 중국 정부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한 고구려 장군총의 고구려사 소개는 동북공정의 관점에서 "중국 소수민족 정권"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중국 정부는 자신들에 반대하는 소수민족 특히, 티베트족, 위구르족을 “국가분열세력”으로 비난하고 있다. 이 때문인지 한 조선족 여행 가이드는 “중국에는 민족차별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티베트족과 위구르족을 만날 때마다 두려움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말은 2006년 신장위구르자치구를 여행할 때 만났던 다른 조선족 여행가이드가 “위구르족들의 독립 움직임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말한 것과 상반되는 것이다. 아마도 최근 위구르족의 저항이 강해진 점을 반영한 것 같다.

중국 정부는 붙잡은 위구르족 저항세력들을 운동장에 모인 수많은 군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개처형”하고, 위구르족 저항세력을 소탕할 때 위구르족 주민들을 동원하는 등 저항을 약화시키려고 하지만, 쉽지 않은 것 같다. 북경에서 마지막 여행을 출발하기 전에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위구르족 무장세력에 의한 지방정부청사 습격 사건이 일어났다.

세계경제위기와 미국의 약화로 인해 영향력이 강해진 중국 정부는 보시라이 실각과 같은 정치문제와 서서히 증가하고 있는 중국 노동자들의 투쟁에서 보여지듯이 정부에 대한 불만이 소수민족들의 저항이 만나지 못하게 하려고 애국주의 사상교육을 강화할 필요성을 많이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중국 동북지역에서 북경을 여행하는 내내 자유·평등·부강·애국 등의 표어와 “군인이 되는 것은 자기 자신과 가족 나라를 위해서 자랑스러운 일이다.”, “홍선(공산주의)의식을 강화해 안전한 발전을 촉진하자.”, "노동은 영광스러운 것이다.(??光?)" 등의 표어를 자주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