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석학으로서 런던대학교 킹스칼리지 유럽학 교수이고,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중앙위원장인 알렉스 캘리니코스(사진)가 8월 7~10일 노동자연대가 주최한 ‘맑시즘2014’ 참가를 위해 방한했다. 이 글은 캘리니코스가 8월 9일 강연한 ‘오늘날의 제국주의 이해하기’를 녹취한 것이다. 본문 속의 [  ]은 〈노동자 연대〉 편집팀이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첨가한 것이다.


오늘날 제국주의를 명확하게 이해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도 없습니다. 단순히 상식적으로 생각하더라도 오늘날 세계에서 제국주의는 눈에 띄는 현상입니다. 이라크에서 발을 완전히 빼겠다고 맹세하다시피 했던 오바마 정부 하에서 미국은 어제[8월 8일] 다시 이라크를 폭격하고 나섰습니다. 이렇듯 상식적인 면에서조차 제국주의는 오늘날의 중요한 현실입니다.

상식적 의미로 제국주의는 어떤 강대국이 깡패 짓을 하고 다니는 것을 뜻합니다. 이런 의미의 제국주의는 아주 오래 전부터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계급이 등장한 뒤의 인류 역사에는 제국이라고 부를 만한 국가들이 계속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는 미국이 그에 해당합니다. 그래서인지 많은 좌파들이 제국주의를 곧 미국으로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마르크스주의적 의미의 제국주의 개념이 아닙니다. 제국주의를 미국의 지배로만 보면 정치적으로 심각한 오류를 범할 수 있습니다.

제국주의는 경제적 경쟁과 지정학적 경쟁이 결합된 체제를 뜻한다

그렇다면,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에서 제국주의란 과연 무엇일까요? 레닌의 유명한 소책자를 통해 그 개념이 잘 알려져 있어서 알고 계신 분도 많을 것입니다. 그 소책자는 《제국주의 ─ 자본주의의 최신 단계》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자본주의의 최신 단계’입니다. 레닌 사후에 사람들이 레닌의 논지를 잘못 읽어 그 소책자의 제목을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라고 번역했습니다. 다시 말해,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에서 제국주의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 발전의 특정한 단계를 가리킵니다.

이 개념을 좀 더 정교하게 이해해 보죠. 이와 관련해 제가 얘기한 것이 있고, 데이비드 하비도 제 주장과 매우 비슷한 주장을 합니다. 즉, 자본주의 하에서 제국주의는 경제적 경쟁과 지정학적 경쟁이 서로 만나는, 결합되는 지점이라는 것입니다.

이 성격 규정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보겠습니다. 경제적 경쟁은 자본주의의 주된 동력의 하나입니다. 마르크스가 말했듯이, 자본은 오로지 많은 자본들(‘다수 자본’)로서만 존재할 수 있습니다. 자본가 계급은 안을 들여다보면 경제적으로 서로 분열돼 있고, 그런 분열 때문에 서로 경쟁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경제적 경쟁이 다음과 같은 의미에서 자본주의 체제의 동력이 됩니다. 먼저, 경쟁 때문에 자본가들은 서로 앞다투어 축적을 해야 합니다. 달리 말해, 생산을 더 효율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이윤의 일부를 투자해야 합니다. 이처럼 경제적 경쟁은 자본주의의 근간이 되는 요소입니다.

지정학적 경쟁은 국가들 사이의 경쟁을 뜻합니다. 국가들은 자원과 영향력과 영토를 서로 더 많이 차지하려 하며, 외교적으로도 서로 대결을 벌이고 더 극단적으로는 군사적 대결을 벌입니다. 지정학적 경쟁은 자본주의보다 훨씬 더 오래됐습니다. 예를 들어, 2천 년 전 지중해에서는 로마제국이 동쪽의 페르시아제국 등과 경쟁을 벌였습니다. 중화제국은 동쪽의 속국들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책략을 부렸고 서쪽으로는 유목민들과 대결했습니다. 이처럼 지정학적 경쟁은 계급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됐습니다.

자본주의 하에서 제국주의는 국가들 사이의 지정학적 경쟁이 자본주의의 경쟁 논리에 통합되고 종속되는 현상을 뜻합니다. 이런 현상은 19세기 말부터 본격화됐습니다. 마르크스는 축적이 계속되면 자본이 집적·집중된다고 했습니다. 기업들이 계속해서 이윤을 재투자하면서 덩치가 계속 커집니다[집적]. 그뿐 아니라, 경제 위기를 거치며 더 크고 더 효율적인 기업들이 살아남아 더 작고 취약한 기업들을 흡수·통합합니다[집중]. 그러면, 갈수록 더 소수의 거대 기업들이 경제를 쥐락펴락하게 됩니다. 이 과정이 제국주의 등장의 배경이 됩니다.

먼저, 자본들이 점점 더 세계적 수준으로 활동하게 됩니다. 이미 19세기 말에 유럽의 자본이 엄청난 규모로 나머지 세계에 투자됐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본가들 사이의 경제적 경쟁이 점점 더 국제화됩니다. 자본들은 이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려고 자국에 기대게 됩니다. 그와 동시에, 개별 국가들은 다른 국가와의 지정학적 경쟁에서 이기려 하며 자국 자본에게 점점 더 기대게 됩니다. 19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국가가 전쟁에서 승리하는 데 필요한 철도·대포·자동화기 등을 생산하려면 중화학공업 기반이 필요하게 됐습니다. 즉, 자본은 갈수록 국가가 더 필요해지고, 국가도 마찬가지로 자본이 더 필요해지는 것입니다. 그 결과, 19세기 말에 이르면 경제적 경쟁과 지정학적 경쟁이 융합됩니다.

당시 최강의 제국주의 국가였던 영국은 경제적 측면에서나 지정학적 측면에서나 다른 경쟁자들의 도전에 직면하게 됐습니다. 특히 독일과 미국이라는 신흥 산업국의 부상에 직면했습니다. 20세기 초에 이르러 미국과 독일은 산업 생산 면에서 영국을 앞질렀습니다. 또한 세계 최강 수준의 해군력을 갖추게 됐죠. 미국과 독일이 세계 최강 수준의 해군력을 보유하게 된 것은 영국에 특히 위협적인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영국이 전 세계의 식민지를 계속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영국의 해군력 덕분이었기 때문입니다. 20세기 전반부에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일어난 원인은 무엇보다 영국 제국에 대한 지정학적·경제적으로 융합된 도전이 제기됐기 때문입니다.

현재 영국에서는 1914년 8월 개전한 제1차세계대전의 1백 주년을 기념하는 광풍이 불고 있습니다. 영국 지배자들은 ‘제1차세계대전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정의로운 전쟁이었다’는 둥 헛소리를 합니다. 그러나 제1차세계대전의 본질은 제국주의 열강이 세계적 주도권을 놓고 다투면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학살한 전쟁입니다.

제국주의는 미국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제가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을 통해서 분명한 결론이 하나 도출됩니다.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에서 제국주의는 어떤 강대국이 나머지 세계를 지배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제국주의는 경쟁과 대결을 특징으로 하는 체제입니다. 제국주의는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이 세계를 지배하려고 서로 경쟁하는 체제입니다. 레닌도 이 점을 그의 소책자에서 매우 힘주어 강조했습니다.

레닌이 강조한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레닌이 제국주의에 대해서 말한 것이 당시 현실에 모두 들어맞았던 것도 아니고, 일부는 오늘날에는 낡은 것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레닌은 오늘날에도 들어맞는 매우 중요한 통찰을 보여 줬습니다. 그것은 바로 ‘불균등 발전’이라는 개념입니다. 달리 말해, 자본주의가 모든 곳에서 똑같은 속도로 균등하게 또는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오히려 자본주의 발전은 특정 지역에 편중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본주의 발전이 지리적으로 쏠려 있어서 그 수혜자인 강대국들이 나머지 세계에 비교적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어느 지역의 경제 발전이 가장 앞서 가느냐는 때때로 달라집니다. 자본주의가 워낙 역동적인 체제이다 보니 경제 발전의 순위도 수시로 바뀌는 것이죠.

레닌은 ‘초제국주의론’을 반박하면서 불균등 발전 개념을 날카롭게 제기했습니다. ‘초[지나치다는 뜻]제국주의론’은 독일 사회민주당의 지도자 칼 카우츠키가 주창한 이론입니다. 카우츠키 초제국주의론의 골자는 이렇습니다. ‘자본의 집적과 집중 과정이 계속되면 어느 시점에서는 마침내 국경을 초월해 통합된 거대 다국적기업들이 세계를 지배하게 된다. 국경을 초월한 이런 경제 통합 과정이 정치에도 반영된 결과, 국가들 사이의 지정학적 갈등은 사라진다.’ 그래서 카우츠키에게 제1차세계대전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오늘날에는 토니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가 그들의 공저 《제국》에서 비슷한 사상을 개진합니다.

그러나 레닌은 불균등 발전 때문에 초제국주의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불균등 발전으로 말미암아 경제 발전 수준이 가장 높은 지역이 계속 바뀌므로 경제적으로 가장 강력한 국가의 순위가 바뀌고, 정치적으로 강력한 국가의 순위도 바뀌기 때문입니다. 레닌은 당시로부터 50~60년 전만 해도 독일은 후진국이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랬던 독일이 어느 순간 영국을 상대로 세계의 맹주 자리를 놓고 다투기 시작한 것이죠: 이런 불균등 발전의 결과 앞으로 50~60년 뒤에는 어떤 나라가 세계적 패권 국가가 될지 누가 예상할 수 있겠는가? 이런 과정 때문에 국가들 사이에는 안정적이고 영원한 의견 일치가 유지될 수 없다. 레닌은 이런 분석을 독일과 영국의 관계에 적용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미국과 중국의 관계에 이런 분석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다시 강조하건대, 제국주의를 미국의 지배로 환원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왜 많은 좌파들이 이 명백한 것을 보지 못할까 하는 의문이 떠오릅니다. 제가 볼 때, 이는 두 가지 착시 효과 때문입니다. 하나는 옛 소련이 사회주의였다는 오해입니다. 옛 소련을 사회주의라고 보니까 냉전 시기에 일어난 옛 소련과 미국의 지정학적 경쟁을 제국주의 간 경쟁으로 보지 못한 것이죠. 그 영향이 오늘날에도 남아서 사람들이 러시아를 그래도 반제국주의적인 국가로 보는 착각이 있습니다.

둘째, 냉전 종식 후 한동안 세계가 단극 체제처럼 보였던 시기의 잔상입니다. 당시에는 미국이 세계의 유일한 초강대국인 듯했고, 그 누구도 미국에 도전할 수 없을 듯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상황은 일시적이었고 또 모순됐습니다. 냉전 종식 후 한동안 미국은 군사적으로는 나머지 국가들을 압도했습니다. 미국은 나머지 국가들의 군사력을 다 합한 것보다 더 큰 군사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미국의 상대적인 경제적 지위는 냉전기부터 계속 하락했습니다. 처음에는 서유럽 국가들에 견줘서 그랬고, 나중에는 일본, 마침내는 중국에 견줘서 그랬습니다. 오늘날 미국의 상대적인 경제적 지위가 하락하는 것은 매우 분명하게 보입니다. 특히 경기 침체에서 회복되는 속도가 중국보다 확연히 느려서 더욱 그렇습니다.

그 결과 미국의 세계적 주도력은 갈수록 더 많이 도전받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보다 중동에서 두드러집니다. 2003년 미국은 세계 패권을 더 굳히려고 이라크를 침공했습니다. 그러나 이라크인들의 저항에 호되게 당하고 패배해 2011년 철군했습니다.

게다가 2011년 아랍 혁명이 일어나면서 중동 지역 국가들은 모두 불안정해졌습니다. 이는 현재 미국이 이라크를 폭격하고 있는 데서도 드러납니다. 지금 미국은 ‘이라크·시리아 이슬람 국가’ ISIS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ISIS는 강경 이슬람주의 수니파 무장 단체입니다. ISIS는 시리아 혁명과 내전의 결과로 시리아에서도 많은 지역을 장악했습니다. 이라크에서는 미국이 세운 [말리키] 정권이 매우 부패해 사람들이 그 정권을 혐오하는데, ISIS는 그 틈을 이용해 많은 지역을 장악할 수 있었습니다. ISIS는 매우 종파적이고 반동적인 운동입니다. 그런 ISIS가 이렇게 성장한 것은 미국이 약화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미국의 장기적 약화는 여러분이 살고 있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훨씬 더 극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점이 더 중요합니다. 오늘날 세계에서 중국은 최대 규모의 산업국이면서 수출국입니다. 그 결과 국가들 사이의 정치적·경제적 이합집산 구도가 바뀌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미국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던 아프리카와 중남미의 많은 나라들이 중국과의 무역을 늘리고 중국에게서 투자를 받으며 이제 갈수록 중국으로 기울고 있습니다. 지난달 브릭스 국가들[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의 신흥경제 4국]이 미국 주도 금융 질서에 대항해 자신들만의 개발은행을 설립한 것이 그런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 줍니다.

중국은 군비 지출도 급격히 늘리고 있습니다. 특히 해군력을 증강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해군력 증강에는 매우 구체적인 맥락이 있습니다. 미국 해군을 인근 해역에서 밀어내기 위한 것이죠. 미국 해군은 제2차세계대전 이후로 쭉 아시아·태평양 해역을 장악해 왔습니다. 이것은 갈수록 중국 지배계급에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중국이 물자를 수출하고 수입하는 해상 운송로는 말라카 해협을 거쳐 인도양으로 이어집니다. 중국 지배계급은 이렇게 중요한 보급로를 미국의 통제에 내맡겨 두는 것을 더는 원치 않는 것입니다.

물론 중국의 군사력 증강을 과장해서는 안 됩니다. 중국이 보유한 항공모함은 한 척인데, 우크라이나에서 중고로 구입한 비교적 작은 항모입니다. 반면 미국은 핵항모가 열한 척이나 되죠.

그러나 중국은 미국의 항모를 격침시킬 수 있는 군사적 능력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미국 해군을 아시아 연안 지역으로부터 더 멀리 밀어내기 위해서입니다.

미국의 약화와 동아시아 불안정

또한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 영유권 분쟁이 많아지고 있는데, 여기에는 베트남·필리핀·일본 등이 연관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중국뿐 아니라 동아시아의 거의 모든 국가가 군사력을 증강하고 있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런 현상이 전통적 영토 분쟁의 모습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세계화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경제적 세계화 때문에 이제 더는 국가들이 영토 분쟁을 벌이지 않는다고 주장하는데 말이죠. 세계화론의 주장은 사실 일본과 중국이 지명조차 서로 의견 일치를 볼 수 없고 사람이 살 수 없는 섬[댜오위다오 또는 센카쿠열도]을 두고 서로 다투고 있는 현실과 완전히 어긋납니다. 세계 자본주의에서 가장 역동적인 지역[동아시아]에서 영토 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역에서 세계화가 가장 큰 경제적 성공을 거뒀습니다. 실제로, 오늘날 이런 무인도들을 둘러싸고 전 세계에서 경제 규모가 가장 큰 3개 국가가 맞붙을 수도 있습니다. 세계 3위 경제 대국인 일본, 2위인 중국, 1위인 미국입니다. 여기에 미국이 낀 이유는 미국이 일본과 안보조약을 맺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중국과 일본 지배계급들이 무인도를 놓고 전쟁까지 벌일 정도로 분별 없지는 않기를 바랍니다.

동아시아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은 제국주의 간 갈등입니다. 세계 3대 경제 대국들이 서로 경쟁을 벌이고 있고, 거기에 한국을 포함한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도 군비 증강을 통해 가세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그리고 오래된 동맹 관계가 바뀌고 있습니다. 예컨대 베트남은 베트남 전쟁 때 미국이 베트남을 폭격하려고 사용했던 기지를 이제는 미국이 중국에 맞서 사용할 수 있도록 미국에 내줄 것으로 보입니다.

동아시아에서 일어나는 제국주의 간 경쟁은 또한 세계의 나머지 지역에 영향을 미칩니다. 푸틴이 우크라이나에서 하고 있는 일이 이를 보여 줍니다. 미국과 유럽연합이 다소 어리석게도 우크라이나를 서방의 영향권으로 편입시키려 했습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안보에 아주 중요한 축이라고 보고 우크라이나를 다시 러시아의 영향권으로 흡수하려고 합니다. 우크라이나 국민에게는 매우 비극적인 일이죠. 우크라이나 국민은 제국주의 간 경쟁으로 희생을 치르고 있는 것입니다. 러시아는 자기보다 훨씬 강한 제국주의 국가인 미국을 상대로 자기 목소리를 내려고 하는 비교적 약한 제국주의 국가입니다. 그런 러시아의 푸틴이 미국과 유럽연합에 도전장을 내밀 수 있도록 기를 살려준 요인은 바로 미국의 약화입니다. 푸틴은 오바마가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는 갈등에 휘말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오바마는 무엇보다 중국을 견제하려고 아시아에 집중하고 싶어 했고, 그래서 중동에서 군사 활동을 줄였습니다. 이처럼, 동아시아에서 일어나는 제국주의 간 경쟁이 우크라이나에서의 제국주의 간 경쟁도 부추긴 것입니다.

제국주의를 체제로서 이해하지 못할 때 범하는 오류 ─ 진영 논리

이렇듯, 제국주의가 체제로서 갖는 성격을 잘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매우 심각한 정치적 오류를 범할 수 있습니다. 냉전 때 많은 좌파가 ‘진영 논리’를 따랐습니다. 진영 논리는 이렇습니다. ‘일단의 진보적인 국가들이 있고 제국주의에 대한 평형추로서 그 국가들을 지지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제국주의는 미국을 뜻합니다. 냉전 시대에 이 진영 논리는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옛 소련과 그 동맹국들을 지지하는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옛 소련 자신이 동유럽을 점령하고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는 등 제국주의적 행태를 보였는데도 진영론자들은 그것을 애써 무시했습니다.

오늘날 진영 논리는 두 가지 서로 연관된 형태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러시아를 편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미국과 유럽연합이 우크라이나를 자신들의 영향권 내로 흡수하려 한 것만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몇 달 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을 지지했습니다. 물론 크림 반도가 애당초 러시아의 사실상 식민지였던 것은 사실입니다. 스탈린이 제2차세계대전 종전 뒤 원주민이었던 투르크계 무슬림들을 크림반도에서 쫓아냈었죠. 그러나 제국주의 국가가 자신의 옛 식민지를 되찾을 권리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원칙 있는 반제국주의자가 할 말이 결코 아닙니다.

진영 논리가 표현되는 또 다른 방식은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을 옹호하는 것입니다. 많은 좌파가 아사드 정권을 이스라엘과 투쟁을 벌인 역사가 있는 진보적 반제국주의 정권으로 봅니다. 이것은 헛소리입니다. 아사드 정권은 팔레스타인인들을 매우 악독하게 다룬 역사가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모두 제쳐 놓더라도, 이 경우에 진영 논리는 자국민을 상대로 종파적 내전을 벌이는 정권을 지지하자는 논리입니다. 시리아 내전에서 아사드는 사실상 ISIS가 성장하도록 부추겼습니다. 더 민주적인 혁명적 세력들이 약화되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ISIS는 시리아 동부의 유전지대를 장악하고 있는데, 아사드에게 석유를 주고 그 대가로 전력을 공급받았다는 보도가 있습니다. 그런데 ISIS가 통제를 벗어나 버리니까, 이제 와서 아사드 정권은 미국과 함께 ISIS를 공격합니다. 이른바 진보적 반제국주의 국가가 온갖 냉혹한 책략을 부리다가 결국은 ‘대악마’ 미국과 손잡는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그래서 혁명가들은 제국주의를 체제로 보며 원칙 있게 반대해야 합니다. 특정 제국주의에 맞서 다른 제국주의를 지지하는 함정에 빠지면 안 됩니다.

물론 혁명가들은 특정 제국주의 국가가 벌이는 일에 반대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때때로 제국주의는 일방으로 행동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오늘날 이라크에서 미국은 일방으로 제국주의 세력으로서 행동하고 있습니다. 비록 ISIS가 반동적이지만 이 경우에 주된 악은 미국입니다.

그러나 여러 제국주의들에 반대해야 하는 때도 있습니다. 현재 우크라이나 사태가 그런 경우입니다. 우크라이나 사태에서는 서방의 개입에도 반대해야 하지만 러시아의 개입에도 반대해야 합니다. 여러 제국주의 국가들이 서로 책략을 벌이고 있는 동아시아의 맥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제국주의의 억압을 받고 있는 약소 민족들의 투쟁에도 연대해야 합니다. 현재 제국주의의 억압을 가장 심하게 받고 있는 민족은 바로 팔레스타인입니다. 오늘 영국 런던에서는 팔레스타인인들에 연대하는 시위가 열릴 예정인데, 최대한 큰 규모로 치러지기를 바랍니다.[런던의 팔레스타인 연대 시위는 15만 명 규모로 크게 벌어졌음이 나중에 보도됐다.]

그러나 이런 갖가지 갈등들을 따로따로 떼어놓고 보면 안 됩니다. 우리는 그런 갈등들을 레닌이 1916년 아일랜드의 민족해방 운동을 대했던 방식으로 대해야 합니다. 천대받는 민족들의 반제국주의 투쟁을 그 자체로서 목적인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 체제 전체를 끝장낼 수 있는 더 큰 투쟁에 기여하는 것으로 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제국주의 체제 자체가 우리의 적이기 때문입니다.

연사의 정리 발언

‘미국이 조금 더 민주적이면 오바마가 중동에서 좀 더 민주적으로 행동하지 않을까’ 하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질문이 제기됩니다. ‘미국은 도대체 왜 중동에 간섭하는가?’입니다.

미국은 중국이 해군력을 증강하는 것을 굉장히 모욕적으로 여기는데, 저는 언제나 이것을 희한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물음은 애당초 미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제국주의는 본질적으로 대단히 비민주적입니다. 제국주의는 지배를 본질로 하므로 결코 민주적일 수가 없습니다.

배타성이 제국주의를 낳는가?

어떤 분은 배타성이 제국주의를 낳는다고 말씀했는데요. 저는 배타성이 왜 필연적으로 나쁜 것인가 하고 묻고 싶습니다. 저는 지금 연단 자리를 혼자서 배타적으로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건 제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물리적 현실입니다.

물론 통역자가 목이 말라서 죽어가고 있는데, 제가 이 물에 대한 배타적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마시지 못하게 한다면 그것은 나쁜 행동이겠죠. 그런데 그렇게 이기적인 짓을 제가 왜 해야 할까요?

걸출한 마르크스주의자 프레데릭 제임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것을 역사적 맥락 속에서 보라.” 즉, 어떤 사건이나 갈등이 어떻게 일어나게 됐는지 역사적 배경을 보라는 것입니다. ‘배타성’처럼 지나치게 폭넓고 추상적인 개념만으로 무엇을 설명하려 한다면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게 됩니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

다음으로, 중국과 미국 간의 경제적 경쟁이 왜 제국주의적 갈등으로 발전했을까 하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독일과 일본은 둘 다 제2차세계대전 종전 뒤 경제적으로는 미국과 경쟁을 하더라도 정치적으로는 미국 밑에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중국은 이런 합의의 틀 바깥에서 떠올랐습니다.

중국 지배자들이 미국의 지정학적 우세를 받아들일 용의가 없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중국이 새로운 슈퍼파워니 어쩌느니 하는 얘기를 하는 책도 많죠. 그러나 그런 책들의 주장과 달리 중국이 처음부터 세계 패권을 노려서 갈등이 빚어진 것은 아닙니다.

중국 지배계급은 세계 패권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는 미국을 밀어내고 싶어 하는 듯합니다. 그러나 미국 지배계급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죠.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그들에게 너무나 중요합니다.

미국과 중국의 경제적 경쟁이 불안정한 사태를 불러올 필연적 이유는 없습니다. 예컨대 애플의 제품들은 대만 기업이 고용한 중국 노동자들에 의해 중국에서 조립됩니다. 그런데 미국 입장에서는, 중국이 세계 다른 나라들의 원자재를 흡수하는 시장이 되고, 전통적으로 미국 영향권 아래 있던 다른 나라들의 대안적 투자원이 될 수 있는 상황이 매우 위협적입니다. 다른 나라들이 미국보다는 중국 쪽으로 더 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국가는 모두 제국주의적인가?

어떤 분이 ‘국가들이 모두 어느 정도는 제국주의적 성격을 갖느냐’는 질문을 하셨는데, 저는 이 질문이 어느 정도 오해에서 비롯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우크라이나가 미국보다 더 약한 제국주의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영향력을 둘러싸고 미국과 경쟁을 벌이고 있는 비교적 약한 제국주의는 러시아입니다. 진정으로 제국주의라고 할 만한 국가는 소수입니다.

경제적·지정학적 경쟁의 논리가 모든 지역에서 작용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어느 지역에든 몇몇 국가들이 자기 주변 지역의 아류 제국주의가 되려고 애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달리 말해, 주요 제국주의 강대국들에게 그 지역의 강국으로서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것이죠.

저는 아랍 국가들이 모두 나름으로 작은 제국주의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중동의 일부 국가들이 아류 제국주의가 되고자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예컨대 터키·이스라엘·사우디아라비아가 그렇습니다.

한국이 미국의 식민지인가?

저는 남한이 미국의 식민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남한에는 남한 자본주의를 운영하는 꽤나 강력한 자본가 계급이 있고 그들은 세계적 수준에서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남한이 북한과의 갈등 때문에 지정학적으로는 미국에 묶여 있기는 합니다. 북한 지배계급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죠.

북한 지배자들이 핵무기를 실제로 사용하려고 보유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경제가 무너지고 있는 약소국의 지배계급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약소국 입장에서, 핵무기를 개발하고 실제 사용할 것처럼 굴면 다른 강대국들을 상대로 효과적인 협상 카드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약소국이 제국주의를 꺾을 수 있나?

약소국이 제국주의를 꺾을 수 있겠는가 하는 질문도 있었는데요. 베트남은 미국을 패퇴시켰습니다. 중요한 단서를 하나 달아야 하는데, 그에 대해서는 뒤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베트남이 미국에 맞서 승리할 수 있었던 데는, 베트남이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시절부터 45년 동안 벌인 끈질기고 영웅적인 투쟁이 한몫했습니다.

그러나 베트남 민중이 그들만의 힘으로 미국을 꺾은 것은 아닙니다. 국제 연대가 사활적으로 중요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국제 연대는 미국에서 일어났습니다.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거대한 대중 운동이었습니다. 그 반전운동은 미국 노동계급이 경제적으로 반란을 일으키던 시기에 등장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미국 흑인들이 인종차별에 맞서 반란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미국 내에서 일어난 이런 저항들이 베트남 민중의 항쟁과 결합되면서 미국을 패퇴시켰습니다.

그러나 미국 제국주의는 패퇴시켰지만 체제[자본주의 체제]를 패퇴시키지는 못했습니다. 오늘날 베트남은 여전히 공산당이 통치하는데, 저렴한 노동력으로 저렴한 공산품을 수출하는 나라가 됐습니다.

팔레스타인 해방은 어떻게 가능한가?

팔레스타인 해방을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하는 질문도 있었습니다. 군사적·경제적 힘으로 볼 때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의 상대가 안 됩니다. 물론 지금 가자 지구에서 일어나는 투쟁을 보면, 비록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더디겠지만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을 지치게 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이스라엘을 패퇴시키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고 엄청난 희생이 따를 것입니다. 팔레스타인 해방에 관한 국제사회주의경향의 입장은 항상 다음과 같은 구호로 요약됩니다.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길은 카이로를 통한다.” 달리 말해, 팔레스타인의 해방은 아랍 지배계급들에 맞선 사회 혁명을 통해 달성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집트 혁명은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지를 힐끗 보여 줬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오늘날 이집트 혁명이 일시적 패배 국면에 있는 것은 그것이 역으로는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보여 줍니다.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를 공격할 자신감을 얻은 요인 하나는 이집트의 군부독재자 엘 시시가 가자 지구를 봉쇄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해서는 아랍 세계의 혁명이 필요하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오로지 아랍 노동계급의 힘만이 이스라엘을 꺾을 수 있습니다.

신자유주의와 연대의 가능성

마지막으로, 어떤 분이 신자유주의 하에서 개인주의가 팽배해 연대가 힘들어진다고 말씀했습니다. 신자유주의가 연대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시대에도 새로운 연대 운동들이 일어났습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을 지지하는 국제 연대는 몇십 년 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커졌습니다. 영국에서도 팔레스타인인들에 연대하는 수많은 집회들이 잇따라 일어났습니다.

이런 현상을 설명한다면서 이스라엘 지지자들은 모종의 유대인 배척이 뒤에서 작용하고 있는 것 아니냐며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연대 시위에는 유대인 배척을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지배계급이 왜 온 세계가 이스라엘에 적대적이고 팔레스타인에 우호적이냐는 물음에 답을 찾고 싶으면 거울을 들여다 보면 됩니다.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연대는 새로운 형태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BDS[보이콧, 투자 회수, 제재를 뜻하는 영어 낱말의 머리글자를 딴 운동] 운동의 성장에 관해 누군가 말씀하셨는데요. 세계 곳곳에서 이스라엘과의 무기 거래를 중단하고 이스라엘을 제재하라고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이런 사실은 매우 중요합니다. 오늘날에도 연대가 살아 있음을 보여 줍니다.

이런 연대는 과거 운동들의 영향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지난해 영국 정부는 의회에서 시리아에 대한 군사 개입안을 통과시키려다가 반대표가 많아 실패한 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2003년에 일어난 거대한 반전 운동의 유산이기도 하죠.

이런 연대는 사활적으로 중요합니다. 연대가 커질수록 팔레스타인인들이 스스로 해방을 이룰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고, 인류 모두가 제국주의로부터 해방될 힘이 강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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