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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교육감 시대, 교육 혁신 어떻게 할 것인가?

지독한 교육 현실에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다. 그들은 진보 교육감이 박근혜의 신자유주의 교육 드라이브에 제동을 걸고 교육을 실질적으로 바꿔 주기를 바란다. 새로운 교육에 대한 대중의 염원이 진보 교육감 대거 당선으로 표출된 것이다.

실제로 진보 교육감들이 약속한 정책들은 제대로 실행된다면 교육에 변화를 가져올 것들이 많다. 무엇보다 경쟁 교육과 입시 고통을 완화하고, 교육 불평등도 줄이고, 교육 복지를 확대하는 것에 기대가 높다.

혁신학교를 확대하고 학교를 혁신하는 것, 친일독재 교과서를 반대하고 민주시민교육을 강화하는 것도 핵심 공약들이다. 이 외에도 인사제도와 교육청 관료 시스템을 개선하고 학교비정규직 차별을 완화하는 등 더 나은 교육을 위한 공약들이 실현되길 바라는 사람들이 많다.

반면, 지배자들은 진보 교육감 대거 당선으로 신자유주의 교육 프로젝트에 차질이 생길까 봐 불안해 한다. 그래서 박근혜 정권과 우익은 교육 개혁에 대한 대중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고, 또 전교조를 탄압하고 진보 교육감 흔들기에 나섰다.

박근혜 정권이 교육을 통제하려 애쓰는 이유

정권이 교육을 통제하려고 애쓰는 이유는 자본주의에서 교육이 하는 구실 때문이다. 교육제도는 자본주의 산업에 필요한 노동계급을 양성하는 핵심 장치 중 하나다.

그래서 교사들의 노동이 지배자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지배자들은 학교 교육을 통해 숙련 노동력 인구를 양성할 뿐 아니라 체제를 정당화하는 지배 이데올로기를 심어서 체제에 순응하는 노동자를 만들기를 원한다. 그래서 지배자들에게 교사 통제는 사활적인 문제다. 1989년 전교조가 결성될 때부터 지금 전교조가 법외노조가 될 때까지 정권의 탄압이 끊이지 않은 이유다.

△ 7월 12일 전국교사대회. ⓒ 이미진

세계경제 위기 속에서 자본 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그래서 경쟁력 있는 노동력 공급을 위해 교육에 투자도 하지만, 동시에 교육 통제도 강화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박근혜 정부는 시간제 교사, 교원평가-성과급-근무평정 일원화, 특권학교 확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교육 민영화, 공무원연금 개악 등 신자유주의 교육 공격을 마구 퍼붓고 있다.

그러나 전교조와 진보 교육운동 진영의 저항도 만만치 않다. 진보 교육감이 대거 당선된 지금, 진보 교육감의 정책을 둘러싼 갈등과 투쟁도 첨예해질 공산이 크다.

따라서 진보 교육감 시대에 보수교육 지지자들과 진보교육 지지자들은 일대 결전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교육을 둘러싼 계급 간 전투의 일부다.

진보 교육감들의 첫 시험대가 된 자사고

1기 교육감들은 무상급식을 도입하고, 혁신학교를 만들고, 학생인권을 신장하고, 학교비정규직의 처우를 부분적으로 개선하는 등 의미 있는 성과를 보여 줬다.

그와 동시에, 진보 교육감들 사이에서도 개혁성과 진보성에 편차가 있었다. 일제고사는 그 점을 확인해 주는 첫 시험대였다. 김승환 전북교육감과 민병희 강원교육감은 학생 선택권을 보장하고 일선 학교에 대체 프로그램 마련을 지시했다.

반면, 또 다른 진보 교육감들은 때때로 흔들리고 후퇴하면서 실망을 자아내기도 했다. 가령, 김상곤 경기교육감과 곽노현 서울교육감은 우파적 압력에 오락가락하거나 후퇴하는 모습을 보였고 장만채 전남교육감은 심지어 일제고사 필요성 자체를 인정한다고 고백했다.

1기는 진보 교육감 당선만으로 교육 개혁이 저절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는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진보 교육감 1기가 초기에 일제고사와 교원평가로 시험대에 올랐다면, 진보 교육감 2기에서는 자사고 폐지와 전교조 법외노조가 첫 시험대가 되고 있다.

요즘 첨예한 사회적 쟁점으로 부상한 자사고 존폐 문제는 ‘특권교육 대 평등교육’이라는 교육의 철학적 가치와 방향이 충돌하는 문제로, 사실상 진보교육 진영과 보수교육 진영이 겨루는 1라운드라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진보 교육감이 교육 생태계에서 ‘큰빗이끼벌레’와도 같은 자사고를 제거해 주기를 바란다. ‘고교서열화’와 ‘일반고 슬럼화’의 주범 중 하나가 자사고이기 때문이다.

뒷걸음질

그러나 안타깝게도 진보 교육감 지역인 강원, 부산, 전남, 충남에서 자사고가 재지정됐다. 광주에서는 학생선발권을 사실상 없애는 조건으로 자사고가 재지정됐다. 이청연 인천교육감은 모호한 입장을 취했다. 추가 지정은 반대하지만 이미 운영 중인 자사고와 설립이 허가된 포스코 자사고는 취소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재정 경기교육감은 안산 동산고에 대해 재지정 불가 입장을 밝혔다가, 나중에 “재지정 여부는 교육부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후퇴했다. 조희연 서울교육감은 자사고를 비판하지만, “학생과 학부모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신중하고 단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며 3차 종합평가를 10월까지 진행하고 지정 취소 적용을 1년 유예하는 쪽으로 한발 물러섰다. 1, 2차 평가만으로 14개교 모두 지정 취소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불필요한 후퇴다.

그러자 자사고 교장들은 ‘조희연 식 자사고 평가는 인정할 수 없다’며 들고일어났고 자사고 학부모들은 시위와 농성을 벌였다. 서울 25개 자사고 동문회들까지 나섰다. 교육부는 자사고 재지정 취소는 교육부와의 협의 사항이라며 진보 교육감 마음대로 하지 못할 것이라고 협박하고 있다.

진보 교육감에 대한 올바른 태도는 무엇인가?

이런 식의 충돌과 갈등이 벌어지고, 진보 교육감들이 교육 개혁 목표와 현실 사이에서 동요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교육 혁신을 이룰 수 있는가?

먼저 정부와 우파의 공격에서는 일단 진보 교육감들을 방어해야 한다. 진보 교육감 공격은 단지 교육감 개인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교육감을 배출한 진보 교육운동 진영과 진보 교육감에게 투표한 지지자 모두에 대한 공격이기 때문이다.

지난 1기를 사례로 든다면, 2010년 김승환 교육감이 법정 재단 전입금을 제대로 내지 않은 두 학교의 자사고 지정을 취소했다. 그러자 교과부는 ‘자사고지정 취소처분 시정명령’을 내렸고, 해당 재단들은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지역 우파들은 사생활 문제까지 거론하며 온갖 악선동을 일삼고 김승환 교육감 사퇴를 요구했다.

우파들의 진보 교육감 흔들기는 갈수록 거세져 보수언론의 비난뿐 아니라 교육감 직선제를 폐지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보수 정당이 주도하는 도의회와 지방정부는 진보 교육감을 넘어뜨리려 했다.

급기야 곽노현 교육감은 사후매수죄라는 죄를 뒤집어쓰고 국가 탄압의 제물이 됐다. 김상곤 교육감도 지방선거를 앞두고 장학재단에 거액의 장학기금을 출연했다는 등의 이유로 사무실 압수수색과 기소를 당했다.

진보 교육감 2기인 지금도 비슷한 양상이 펼쳐지고 있다. 새누리당과 교총은 교육감 직선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난리법석을 떨고 있다. 충북의 예만 들자면, 도의회에서 진보 교육감이 추진하고자 하는 혁신학교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심지어 검찰이 충북교육감을 사전 선거운동 혐의로 조사하고 있다.

이런 정부와 우파의 공격에 맞서 진보 교육감들을 절대적으로 지키는 것이 진보진영의 첫째 과제다.

그러나 방어가 반드시 무비판적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와 우파는 진보 교육감을 위협하는 동시에, 그들을 길들이려 한다. 2기 진보 교육감들은 보수적 압력과 진보적 압력 사이에서 끊임없이 동요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다수의 진보 교육감들이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개혁’을 말했다. 그러나 좌우를 아우르는 개혁은 비현실적일 뿐 아니라 종종 개혁의 후퇴를 의미한다.

우리는 진보 교육감이 신자유주의 특권·경쟁 교육과 단호하게 결별하고 정부와 우파에 맞서 싸우라고 촉구해야 한다. 진보 교육감들 자신도 선거 때 공동 기자회견문을 통해 “잘못된 정부에 복종하는 교육감이 아니라 잘못된 일을 바로잡는 교육감이 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그러므로 그들이 자신을 뽑아 준 사람들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고 타협적이거나 실용주의적 행보를 보인다면, 진보교육 지지자들은 공개적 비판을 삼가서는 안 된다.

전교조 조합원 중에는 진보 교육감의 성공을 곧 전교조의 성공과 동일시하면서 ‘진보 교육감을 비판하면 우파가 득을 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전교조가 진보 교육감들의 잘못에 침묵한다면 오히려 진보 염원 대중은 진보 교육감뿐 아니라 진보 교육운동 진영 자체를 불신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결국 우파가 득세하는 길을 열어 주게 될 것이다.

진보 교육감 당선이 낳은 기회를 활용해 대중 투쟁 건설하기

전교조가 진보 교육감과 충돌을 피하고 단순한 협력 관계를 맺어야 ‘전교조도 살고 교육감도 산다’는 주장은 근시안적 단견이다.

경기지부는 이런 오류와 편향을 경험한 사례 중 하나다. 진보 교육감의 성공을 위해 진보 교육감에게 무비판적으로 협력하려는 태도는 투쟁을 자제하도록 하는 경향을 낳았다. 그래서 종종 진보 교육감의 후퇴와 동요에 무기력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전교조가 교육청의 하위 파트너로 전락한 게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다. 노동조합의 손발을 교육청에 묶어 두면서 노동조합의 진정한 힘인 조직력과 투쟁력이 약해졌다.

한편 전북에서는 교원평가를 폐지하거나 개선하라는 전교조 지부의 강력한 항의와 농성이 있었고 그 결과 최초로 서술형이 도입됐다. 이에 고무받은 경기지부도 간만에 단식 농성을 했고 교원평가를 개선할 수 있게 됐다. 강원에서는 초등학교 일제식 평가를 폐지한 성과를 거뒀다. 진보 교육감이 타협적이 될 때 지부가 단호한 점거 농성으로 맞선 덕분이었다. 이런 사례는 진보 교육감 2기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진보 교육감을 지지하면서 동시에 독립적으로 투쟁해 개혁을 성취한 전교조 전북지부 2011년 교원평가 반대 농성. 〈교육희망〉

진보 교육감은 교육 개혁의 기회를 열어 주는 한편, 전교조의 투쟁을 제한하거나 온건화 압력을 가하는 모순된 구실도 할 수 있다. 따라서 진보 교육감의 구실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전교조의 구실이다.

진보 교육감의 교육 정책은 교육부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 많다. 앞으로도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시간제 교사 도입, 교원평가와 성과급 문제 등 첨예한 쟁점이 불거질 때마다 진보 교육감은 시험대에 오를 것이다. 진보 교육감 시대에 교육 개혁을 성공적으로 실현시킬 수 있느냐 여부는 전교조가 아래로부터의 독립적인 운동을 건설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전교조의 구실

위대한 마르크스주의 이론가이자 활동가였던 크리스 하먼은 이렇게 말했다. “좌파 정부의 출현이 노동자 운동을 강화시키는 경우는 오직 노동계급이나 적어도 계급의 가장 선진적인 부문이 이 정부에 대해 착각하지 않는 경우뿐이다. 노동자 운동이 독립적이고 강력할수록 좌파 정부에게서 더 많은 개혁을 얻어낼 수 있다.”

이 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가 진보 교육감에 대한 환상을 갖고 의존하기보다는 진보 교육감의 모순과 한계를 간파하고 독립적인 운동을 벌여나갈 때 교육 개혁이 실현될 것이다. 그래서 진보 교육감 시대 전교조의 운동은 독립적이고 강해져야 한다. 노동조합 자신의 행동, 즉 독립적인 운동이 아니라 교육감과 교육청에 의존하면서 자신의 고유한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개혁은 초라해 질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진보 교육감의 행보야 어떻든 우리는 우리 할 일만 하면 된다’는 식의 비정치적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된다. 진보 교육감들과 그들의 정책은 대중 의식과 운동에 끼치는 영향력이 상당하다. 따라서 선거 공약을 지키도록 촉구하는 운동을 벌이고, 무엇보다 진보 교육감 당선이 열어 놓은 기회를 활용해 대중 투쟁을 건설해야 한다.

교육 개혁과 투쟁의 변증법

‘전교조가 투쟁하면 교육 개혁이 실패할 것’이라는 주장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김의겸 〈한겨레〉 논설위원은 전교조가 “투쟁을 하면 소중한 교육 개혁의 기회를 망칠 수 있으니, 탄압을 하든 구박을 하든 교실의 학생만 보고 묵묵히 교육 개혁”에 힘쓰라고 주문했다. 또, 교육평론가 이범 씨는 “전교조가 투쟁으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면서 “투쟁이 아니라 ‘수업 혁신’과 같은 ‘교사의 윤리적 실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투쟁과 교육 개혁, 투쟁과 참교육 실천을 대립시키는 것은 실용주의적 단견이다. 참교육을 현실화하는 힘은 투쟁에서 나오고 교육 개혁의 성과는 투쟁이 성장하는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갈망하는 참교육은 권위주의적이고 비민주적인 교육과 경쟁 교육이 아닌, 민주적이고 참여적인 교육을 가리킨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의 교육 제도와 정책에 도전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전교조는 “교육 개혁”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

개혁의 원동력

지난 역사와 경험이 보여 주듯이, 투쟁 없이는 작은 개혁조차도 이루기 어렵다. 전교조가 투쟁을 자제한다면 박근혜 정권은 그동안 전교조와 진보 세력이 피땀으로 이룬 교육 개혁의 성과들을 허물어뜨릴 것이다.

게다가 진보 교육감 시대를 맞았지만 아직 ‘교육자치’로 가는 길은 멀고 험하다. 교과부의 ‘권한 이양’으로 시·도교육감의 권한이 예전보다 커지긴 했지만 여전히 핵심 권한은 교과부가 틀어쥐고 있고, 국가는 시·도교육감을 압박할 다양한 수단을 지니고 있다. 진보 교육감이 교육부에 반기를 들 때마다 직무이행명령, 직무유기로 고발, 감사, 교육청 평가, 예산 차등 지급 등 압력이 거셌다.

전북교육청이 교과부의 교원평가제를 거부하고 서술형을 도입하자 교육부는 교육감을 상대로 직무이행명령을 내렸다. 이어 전북교육감은 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직무이행명령 취소 청구소송을 제기했지만 대법원에서 패소했다. 이는 진보 교육감의 교육 개혁 노력을 국가가 허물어 버릴 수도 있음을 보여 준 사건이다.

진보 교육감의 대거 당선은 현행 지배 엘리트들의 교육 정책에 대한 중요한 도전이 시작됐다는 뜻이다. 그러나 진보 교육감에 의존하느라 국가 교육 시스템을 바꾸는 더 큰 투쟁을 놓쳐서는 안 된다.

혁신학교의 성과와 한계

진보 교육감 시대, 교육 혁신을 이야기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쟁점 하나는 ‘혁신학교’다. 혁신학교가 진보교육의 아이콘으로 떠오르면서 많은 교사들과 학부모들의 기대와 열망이 크다.

혁신학교 1기는 신자유주의 교육에 작지만 의미 있는 파열구를 내고 진보교육의 한 가지 상을 보여 줬다. 성공적인 혁신학교는 민주적 학교운영과 학교자치, 학생인권과 학생자치, 교원업무 경감, 학교를 업무 조직에서 교육조직으로 재구조화, 전문적 학습공동체, 교육과정과 수업 혁신 등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냈고 이는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을 비판하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

혁신학교 운동에 관해 두 가지 편향된 시각을 볼 수가 있는데, 하나는 혁신학교를 다른 교육 운동과 투쟁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보는 것이고, 또 하나는 혁신학교는 그 한계가 분명하므로 교육운동으로서는 효과가 별로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혁신학교는 성과와 한계가 동시에 있다. 따라서 혁신학교의 성과를 확대하고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혁신학교 실험을 지지하면서 학교 혁신과 교육 구조 개혁을 위한 투쟁을 건설해야 한다. 사실 학교 혁신 운동이 없다면 혁신학교는 제한된 실험에 그칠 것이고, 또 교육 구조 개혁 투쟁이 없이는 학교 혁신도 한계에 부딪힐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10년 동안 ‘배움의 공동체’ 학교가 1천여 개로 성장했지만, 그 기간에 일본 교육 전반은 신자유주의 개혁으로 더 나빠졌다. 마찬가지로, 혁신학교 확대가 경쟁 교육 체제를 자동으로 없애지는 못한다. 때문에 혁신학교가 투쟁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지만 투쟁을 대신할 수는 없다.

일부 학교에 제한된 실험들로 노동자와 서민에게 진정한 희망을 제공하기는 힘들다. 현재의 학교 교육을 현저하게 개선하려면 정규 교원을 대폭 확충하고, 모든 교사들이 자신의 열정과 전문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근무 여건을 개선하고, 혁신학교뿐 아니라 모든 학교에서 학급당 학생 수를 대폭 감축하고, 학교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고 행정 지원 인력을 늘려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교육 예산을 확충하도록 운동을 건설하고 교육 내용과 방식을 통제하는 국가의 교육 정책과 교육당국의 교사 통제에 맞서야 한다.

혁신학교가 바라는 ‘모든 학생들에게 질 높은 교육’ 제공이라는 이상을 실현하려면, 고교평준화와 대학평준화를 통해 평등교육이 실질적으로 가능하고, 유아부터 대학까지 무상교육이 실시돼야 한다. 따라서 혁신학교와 학교 혁신 운동과 같은 학교 단위 개혁 운동은 정책과 제도를 바꾸는 근본적인 교육 개혁 전망과 연결돼야 한다.

교육을 바꾸는 투쟁과 사회를 바꾸는 투쟁은 연결돼야

교육의 모순은 근본적으로 자본주의 체제에서 비롯한다. 경쟁 교육은 경쟁적 축적에 바탕을 둔 자본주의 체제의 논리에 따른 필연적 결과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자들이 소외를 경험하듯이, 학생도 자본주의 교육 속에서 소외를 경험한다. 자본주의 교육이 ‘다양성’과 ‘창조성’을 표방하지만, 현실의 교육은 공장과 사무실의 노동처럼 획일적이고 지루하고 고되다. 그 이유는 교육의 목적이 ‘전인적 발달’이 아니라 ‘이윤 창출의 수단인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입시 경쟁에 내몰린 청소년들 ⓒ이윤선

또, 교육 불평등은 학교 밖 현실의 불평등이 반영된 결과인데, 교육이 사회의 불평등을 완화하거나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정당화하는 구실을 하기도 한다.

따라서 더 나은 학교, 더 나은 교육을 위한 투쟁은 더 나은 사회를 위한 투쟁의 발전과 한 운명이다. 교육을 바꾸는 투쟁과 사회를 바꾸는 투쟁은 연결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