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8월 9일 맑시즘2014에서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이호중 교수(사진)가 강연한 “내란음모, 통합진보당 정당 해산, 국가보안법 그리고 정치 사법”을 녹취한 것이다. 지면 제약으로 불가피하게 축약했다.


‘종북’ 매카시즘의 한 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작년에 거의 1년 동안 종북몰이가 극심했다. 8월에 내란음모 사건을 국정원에서 터뜨렸고 10월에는 통합진보당에 대한 해산 청구가 있었다. 이 사건들은 지금 진행 중이다.

이런 종북 매카시즘이 어떤 맥락에서 어떻게 전개됐고, 또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오늘 여러분과 나누려고 한다.

왜 “종북”인가

“종북” 개념부터 얘기하겠다. “종북”이란 말이 언제부터 등장했는지에 관해 논란이 있지만, 대체로 2006년 일심회 사건을 계기로 “종북”이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는 처음에 진보진영 안에서 시작됐지만, 2012년쯤에는 보수가 하나의 담론, 개념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2012년 대선쯤에 보수가 본격적으로 “종북”을 들고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보수 논객들은 “종북” 개념을 굉장히 확장해서 쓴다. “종북 게이”라는 말 들어 봤는가? 이것은 ‘북한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게이’라는 뜻이 아니고, 성소수자·동성애자들을 비하하는 표현이다. 즉, “종북”이란 말이 본래의 의미를 넘어 사회 안전에 위험을 줄 수 있는 세력이나 사상, 담론 들을 의미하는 말로 확장된 것이다.

종북 담론에 기반한 사법권력적 통제 부분을 보자. 경찰은 종북 담론에 기초해 안보 사찰을 굉장히 강화했다. 이런 의미에서 경찰은 “종북”을 “안보 위해 세력”이라고 정의했다. [그래서]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시민에 대한 감시, 국가보안법을 무기로 한 사찰을 전개하고 있는 상황이다.

경찰은 사이버 상에서 친북 웹사이트를 발견하고 차단하며, 국가보안법을 위배한 불법 문건을 삭제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활동이 엄청나게 증가했다. 불법 문건 삭제 건수를 보면, 2005년 1천2백 건에서 2009년 1만 4천 건, 2010년 8만 건으로 늘었다. 이 정도 추세이면, [지금은 해마다] 10만 건 정도 갈 것이다.

경찰이 [연평균] 10만 건 가까운 삭제 요구를 하고 있는데, [웹사이트 운영자가] 요구를 수용하는 비율이 99퍼센트나 된다. 이것이 오늘날 국가보안법이 가지고 있는 대단한 위력인 것이다.

사상의 다원성을 전제로 공론장을 마련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서는 기초라면, 이것은 공론장 자체를 완전히 한쪽으로 편향되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국정원 댓글 사건 때 오피스텔에서 대치했던 국정원 직원 김모 씨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내 업무는 국정원이 예의주시하고 있는 종북 성향의 웹사이트를 감시하는 일이다.”

이건 남한 안에서 소위 좌파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활동을 계속 감시하면서 그것을 억누르기 위한 활동이다. 이건 법적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이다. 2010년경부터 소위 “원장님 지시 말씀”에 따라 [국정원이] 대북심리전단을 구축하고 직원들을 활용해 조직적으로 이런 활동을 했다는 것은 다 알고 있다. 국정원이 ‘댓글 달기’를 통해서 사상 통제에 나서고 있었다. 경찰·국정원이 우리 사회에 종북 매카시즘의 저변을 만들어 나가는 여론 작업을 했던 것이다. 내란음모 사건은 바로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나오게 됐다.

내란음모 혐의는 정당한가

과거, 내란음모죄로 기소돼 재판을 받은 일이 몇 건 있었다. 그중 대표적인 게 인혁당 재건위와 민청학련 사건이었다. 그 외에는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밖에 없다. 사실 유죄 판결 받은 건 이 두 사건밖에 없다.

그리고 34년이 흐른 상황에서 내란음모죄가 다시 등장하게 됐다. 2014년 2월 [1심에서] 유죄 판결을 선고했다. 그 판결문을 보면 이런 논리다. ‘이석기 의원을 총책으로 한 RO라는 지하혁명조직이 존재하더라. 그리고 2013년 5월 12일 모임은 조직원들의 모임이었다. 여기서 혁명의 결정적 시기가 임박했다는 판단 하에, 국가 기반시설을 파괴하는 폭동 행위를 모의했다. RO의 성격상 향후 총책의 지시에 따라 동시다발적인 파괴 행동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내란음모의 실질적 위험성이 인정된다.’

그렇다면, RO의 실체가 실제로 입증됐는가?

증거법에는 “합리적 의심을 넘어선 증명”이 있어야 한다고 얘기한다. 그러니까, 유죄 판결을 하려면 무죄에 대한 합리적인 의혹을 배척할 수 있을 정도의 증명이 필요하다.

그런데 본문만 3백 페이지쯤 되는 1심 판결문의 어디를 봐도, RO가 있다고는 말하지만 그 조직의 실체가 뭔지에 대해서는 나와 있지 않다. 이것은 사실, 증거법 원칙을 완전히 무시한 것이다.

그렇다면, 내란음모의 요건은 될까? “국헌 문란”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키는 것 또는 그것을 음모하는 것이 내란음모다. 내란음모에서 “실질적 위험성”이 있다고 말하려면 일단 범행 계획이 구체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실현 가능성도 생각해야 한다. 하겠다고 해서 내란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당시 5월 12일 모임에서도 유류 시설, 또 혜화동의 전기·통신 시설을 파괴하겠다는 말들이 오가고 했는데, 그게 하겠다고 할 수 있는 수준의 범죄일까? 실제로는 그런 요건도 갖추지 못한 내용이었다.

구체성의 요건도 결여돼 있다. 실제, 5월 12일 모임 녹취록이 있다. 물론 녹취록이 증거가 되느냐 하는 것도 다툼거리의 하나이지만, 그 녹취록을 다 인정하고 그 녹취록에 의하더라도 [행동에 관한] 구체적인 합의는 없었다. 즉, 언제 어디서 어떤 식으로 공격하자는 합의는 전혀 없었다.

그다음에, 실현 가능성이나 직접성 요건도 갖춰야 하고, 실제로 실현에 옮길 수 있는 물질적 기반과 기술적 기반이 존재해야 한다.

[요컨대] “실질적 위험성”의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왜 유죄 판결을 내렸을까? 판결문의 문구 하나를 인용하겠다. “당시 남북관계에 조성된 군사적 대립 국면의 정도와 상부의 지침을 철저히 관철하는 조직의 성격에 비추어 보면 위 회합에서 폭동의 세부적인 계획에까지 이르지 않았다 하더라도 논의된 폭동의 실현 가능성과 실질적 위험성을 인정하기에 충분하다.”

다시 말해, 총책의 지시만 있으면 언제든지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것이다. 아무런 구체적 계획이 없는데도 말이다. 이처럼 “종북” 담론은 내란음모죄의 “실질적 위험성”이라는 성립 요건을 굉장히 완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결국 ‘종북세력이어서 위험하다’ 하고 판단하는 것이다.

1975년도 인혁당 재건위 사건, 민청학련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있었다. 그런데, 당시 대법원은 일부 피고인의 내란음모죄는 인정하지 않았다. 그 기준이 바로 “용공성이 있느냐 없느냐” 였다. 결국 그 사람이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판단했던 것이고, 1970년대 활용된 논리가 40년이 지난 후에도 똑같이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독일 공산당 해산의 경험

독일 공산당 사례에 비춰,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를 어떻게 봐야 할지 보자. 유럽 평의회 산하에 ‘법을 통한 민주주의를 위한 유럽 위원회’(베니스위원회)가 있다. 베니스위원회가 정당 해산 가이드라인을 내놓은 바 있다. 가이드라인을 보면, “정당의 금지, 강제 해산은 민주적 헌법질서를 전복하기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 폭력 사용을 주장하거나 폭력을 사용하고 이를 통해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와 자유를 손상시키는 정당에 한해서만 [적용]될 수 있다”, “정당이 헌법의 평화적 변경을 주창한다는 사실만으로 정당을 금지하거나 해산시킬 수 없다”는 대목이 나온다.

베니스위원회가 이렇게 명시한 것은 바로 독일 공산당 사건에서 해산 결정 문제가 굉장히 심각했기 때문이다.

1950년대 독일[당시 서독]에서 정당 해산이 두 건 있었다. 하나는 사회주의 제국당이라는 나치 계승 정당이었다. 그러나 당시 사회주의 제국당은 법원에서 해산 결정이 나오기 전에 자기들이 해산했으므로, 독일에서 실제 정당 해산 결정 사건은 1956년 공산당밖에 없다.

1951년, 당시 아데나워 정부가 공산당에 대한 위헌정당 심판청구를 한다. 당시에 독일에서 가장 뜨거운 정치 쟁점은 독일의 재무장이었고, 그다음이 통일 문제였다. 미국은 독일에 미군을 배치해 동구권과의 대치에서 전략적 요충지로 활용하려고 계속 독일의 재무장 정책을 추진했다. 그리고 아데나워 정부는 이 일을 추진하기로 미국 정부와 협약을 하고 국내에서 여론몰이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독일 공산당이 재무장 반대 운동을 전개했다. 당시 재무장 반대에 서명한 독일 사람은 1천만 명 정도 됐다. 당시 독일 공산당은 재무장 정책을 반대하는 여론을 주도하고 있었다. 아데나워 정부 입장에서 독일 공산당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그런 상황에서 공산당에 대한 위헌 심판을 청구했다.

눈엣가시

당시 독일 공산당 정강의 주된 내용은 주독 미군 철수, 독일 재무장 반대 그리고 동독과의 평화통일이었다. 지금 통합진보당이 내걸고 있는 거랑 비슷했다. 그래서 처음에 독일 연방헌법재판소 소장이 “나는 위헌정당이 아니라고 본다. [심판 청구를] 철회하라” 하고 공개적으로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다 결국 1956년 위헌정당 해산 결정을 내렸다. 그 논리는 이랬다. ‘너희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추구한다고 하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사회주의 혁명을 얘기한다. 사회주의 혁명은 결국 폭력 혁명을 예정하고 있는 것 아니냐. 너희도 프롤레타리아 독재, 폭력 혁명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위험하다. 지금 내건 정책이 폭력 혁명을 직접 추구하는 건 아니라 하더라도 그건 중요하지 않다. 장기적으로 추구하는 노선이 그것이고 세력을 결집시키기 위해 다른 얘기를 하는 것뿐이야.’ 우리 나라 법무부도 독일 공산당 위헌 결정을 애지중지하면서 같은 논리로 통합진보당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다.

그런데, 이게 정당 하나 해산시키는 문제가 아니었다. 정당 해산 결정 후, 광풍과 같은 탄압이 곧 일어났다. 결정이 난 날, 경찰은 공산당의 지역사무소들을 전부 급습했다. 그리고 독일 공산당이 운영하던 인쇄소, 신문사, 라디오 방송국이 당일 바로 폐쇄됐다.

그리고 독일 공산당원들의 활동에 대해서도 내란음모 같은 것을 적용해서 처벌했다. 당시에 수사 대상자가 20만 명 정도였다고 한다. 심지어 독일 공산당 상징 색이 빨간색이었는데, 과거에 공산당원이었던 사람이 누군가에게 빨간 장미를 선물했는데 그것조차 처벌했다. 국가모독죄로 말이다.

그러니까, 위헌정당 해산은 하나의 정당이 그냥 없어진다는 의미만이 아니라, 사회주의 사상을 독일 안에 뿌리내리지 못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종북 매카시즘과 “법 질서” 확립

서양 사회의 매카시즘은 1950년대의 얘기였다. 그런데 우리는 국가보안법과 사상 통제가 여전하다. 앞에서 말한 대로 경찰은 사이버 상의 표현물에 대한 엄청난 통제를 하고 있고, 그것이 하나의 배경이 되고 있다.

종북 매카시즘이 갖는 부정적인 상징에도 주목해야 한다. ‘종북’은 진보 운동이 갖고 있는 역사성과 시민적 주체성을 부정하는 용어이다.

‘얘네들은 언제든지 지령만 있으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안보에 위해가 되는 세력’이라는 식의 논리로 연결해서 현재 매카시즘이 일어나는 한편, 정치적으로 주체사상을 추종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 비판적 문제의식과 운동을 제기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종북”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제거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현재의 종북 담론은 결국 이런 의미이다.

이게 왜 이럴까? 신자유주의 시대에 고용 불안이나 양극화 때문에 결국은 시민적 저항이 커질 수밖에 없다. 정치적으로는, 지배 권력의 처지에서 늘 위기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세계화 시대에 국가가 할 수 있는 일은 자본의 유통을 철저하게 보장하는 것이다.

결국 이런 사회에서 지배 권력은 정치적 정당성을 끊임없이 의심받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 상황에서 국가가 할 수 있는 일은 시민사회 안에 공동의 적을 만드는 것이다. ‘누군가는 우리 사회의 안전을 위협하는 세력이다’, ‘그 사람들을 제거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형벌 권력을 강화하면서 정치적 통제를 해 나가는 방법 말고는 없다.

그래서 신자유주의 국가에서 정치나 법률 영역에서 나타나는 경향은 통제국가이다. 통제국가는 단순히 형벌권만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IT기술의 발전에 기반해 엄청난 감시 기술을 확장시키는 효과를 동반한다. 이런 통제국가화 경향을 이데올로기로 뒷받침하는 것이 박근혜가 떠들었던 소위 “사회안전”, “무관용주의”, “법질서 확립” 같은 것이다.

이런 것을 내걸면서 [박근혜 정부가] 결국 한 짓은 무엇이었는가? 정부에 비판적인 정치세력을 종북이라는 말로 시민사회의 적으로 상정하고, 그 사람들을 치기 위한 여론 작업들을 하면서 형벌 권력을 계속 강화하는 작업을 했던 것이다.

무엇이 필요할까?

통합진보당 사건이나 내란음모 사건뿐 아니라 여러 영역에서 시민사회의 저항적인 표현들을 탄압하려는 국가권력은 강화되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대한문 앞, 밀양, 제주 강정 등지에서 계속 목격해 왔다.

무관용주의는 단순히 형사처벌을 하는 게 아니라, 어떤 사건을 계기로 해서 조직 자체를 완전히 와해시키고 거기에 시민들이 연대하는 것을 완전히 차단하는 것이다. 촛불 때 유모차를 끌고 나온 엄마들한테도 다 영장이 발부됐다. 이런 식으로 연대를 끊임없이 깨버리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필요할까? 무엇보다도 우리가 시민적 연대와 저항을 만들어 나아갈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요즘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에 관해서 논의할 때, 법학에서는 주로 미국의 이론이나 판례를 많이 얘기한다. 이때 미국의 판례는 주로 1960년대에 한참 진보 세력과 복지국가 이념이 부각됐을 때 나온 판결들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사회적 저항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 자체가 궤멸돼 버리면, 이론으로 아무리 좋은 얘기를 해도 소용이 없다. 그 전에 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끊임없이 이 저항의 공간을 만들어가는 작업, 연대의 작업을 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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