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0일 2만 명의 시위대가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 모였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취임을 반대하기 위해서였다. 미 대통령의 취임식 사상 가장 엄격한 보안 조치가 취해져 ‘국가 특별 안보 행사’라고 불렸을 정도로 부시는 취임 첫날부터 곤욕을 치러야 했다.

다양한 쟁점을 가지고 모인 2만 명의 시위대 가운데는 사형 폐지론자들도 있었다. 이들은 “살인이 나쁘다는 점을 가르치기 위해 살인을 하는가”라는 구호가 적힌 셔츠를 입고 “죽음의 대통령 반대’를 외쳤다.

부시는 사형 제도를 옹호해 왔다. 그가 주지사로 있던 지난 6년간 텍사스 주에서 152명에 대한 사형이 집행돼 텍사스 주는 ‘사형 집행의 수도’라는 별명을 얻었다. 심지어 작년 초에 부시는 지능 지수가 63인 저능아 크루즈의 사형을 집행하는 데 서명했다.

국제사면위원회의 1999년 발표에 따르면, 미국이 얼마나 반인권적인 나라인지 알 수 있다.

미국은 사형 제도를 고수하고 있는 나라이다. 1999년 한 해만도 31개국에서 최소 1천8백13명의 사형수가 처형됐는데, 미국은 98명으로 5위를 차지했다.(1위는 중국으로 1천77명.) 게다가 국제인권협약은 범죄 당시 18세 미만인 사람을 사형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데, 미국은 미성년 범법자에 대한 사형 집행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다. 1990년대에 들어서만도 총 13건에 이른다.

현재 미국에는 3천5백 명 이상의 사형수들이 있다. 이들 중 다수는 너무 가난해 변호사도 제대로 선임할 수 없었다. 일부는 그 사람이 저지른 범죄의 심각성 때문이 아니라 담당 검사나 판사가 범죄에 대한 단호함을 보여줘 재선되려는 의도 때문에 사형을 선고받았다. 또 일부는 판사의 노골적인 인종차별주의 때문에 사형을 선고받았다.

사형 폐지론자들이 부시 대통령 취임식에 맞춰 거리에 나선 이유는 바로 이러한 끔찍한 인권 현실에 대한 분노 때문이다. 이번 시위는 미국이 인권의 사각지대라는 사실을 폭로하고 있다. 

복수극

다른 사람들의 생명이나 공공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악’으로 간주되는 사형이 과연 온당한 것인가?

사형 집행을 참관했던 다니엘 마샬 검사는 사형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국가의 살인〉(인권영화제 상영 다큐멘터리)에서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백인 도둑을 쏴 죽인 혐의로 사형에 처해진 데이빗 로손의 담당 검사였던 그는 그 후 4∼5개월 동안 로손에 대한 기억 때문에 살아가기가 힘들었다고 진술했다.

“30초가 지나면 정신을 잃고 3분이 지나면 죽는다고 들었다. 로손이 들어오고 2∼3분 뒤에 교도관이 들어와서 가리개를 씌웠다. 머리를 묶고 팔과 다리를 묶은 뒤 교도관들이 나갔다. 사형이 집행되기 직전 로손은 갑자기 ‘나는 인간이다! 나는 인간이다!‘고 외쳐댔다. 바닥에 온통 연기가 가득차자 로손은 힘이 빠지면서도 안간힘을 다해 ‘나는 인간이다!‘라고 소리질렀다. 다시 2∼3분이 흐르자 ‘인간, 인간 ...’이라는 말만 되풀이해 중얼거렸다. 로손이 인간임을 외치고 죽을 때까지 걸린 시간은 총 18분이었다.”

사형은 살인범이 저지르는 범죄보다 결코 덜 잔인하지 않다. 가스로 질식시키는 방법말고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는 총살과 전기 의자와 살인 주사 모두 끔찍하기는 매한가지다.

최근에는 약물 투입이 덜 잔인하고 위생적인 사형 방법이라며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약물은 내장이 타들어가는 독극물로, 격렬한 경련과 함께 끔찍한 고통을 수반한다. 약물 투입으로 한 번에 숨을 끊지 못한 경우도 부지기수다. 더욱 끔찍한 것은 사형수는 언제 죽을지도 모른 채 죽음을 기다리는 공포에 휩싸여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형에 ‘더 인간적인 방법’이라는 말 자체가 어울리지 않는다.

미시시피 주의 사형 집행관이었던 돈 카바나는 이렇게 말한다.

“사형을 집행한 후에는 새벽 2∼3시경에 혼자 산책을 하곤 한다. 그럴 때면 ‘미시시피가 더 안전해졌을까?‘라고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사람을 한 명 더 사형시킨다고 그만큼 더 안전해지지는 않는다. 사형은 단지 복수일 뿐이다.”

사형의 계급성

사형 문제를 냉철하게 다루었던 영화 〈데드 맨 워킹〉의 주인공인 사형수는(숀 팬 분) 극 중에서 “사형수 감옥에 돈 있는 사람은 없다.”고 말한다. 사실,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 가운데 다수는 사악하거나 전문적인 직업 범죄자들이 아니다.

사형수의 대부분은 어리석은 짓을 하다가 잡힌, 동정심을 일으킬 정도로 가난하고 술과 마약에 찌든 사람들이다. 보란 듯이 으스대는 부자들의 사치스런 생활에 그들이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범죄밖에 없어 보인다. 한때 화제가 됐던 지존파나 막가파처럼 소외된 현실이 그들을 살인으로 내몬다.

부자들은 범죄 혐의가 분명할지라도 좋은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어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는 기회가 훨씬 더 많다. 유능한 사선 변호사를 고용한 사람이 국선 변호사에게 변호를 받은 피고보다 사형 선고를 받은 비율이 더욱 낮다는 것은 이를 잘 보여 준다.

미국의 경우는 특히 인종차별적 요소가 강하다. 흑인에 대한 사형 집행 건수는 백인의 약 10배에 이른다. 1930∼65년에 살인죄로 처형된 사람들의 49퍼센트가 흑인이었다. 미국 인구 중 흑인은 12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데도 말이다.

미시시피 주의 경우, 흑인을 죽인 죄로 사형에 처해진 백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또, 펜실베니아 주에서는 1914∼68년에 살인범 백인이 감형을 받은 수가 같은 죄의 흑인이 감형된 수의 3배에 이르렀다.

1990년대 초 필리핀에서 사형 제도가 부활되자 마약담당 반장 루치아노 마갈로는 자조 섞인 어조로 이렇게 말한다.

“경찰로 24년간 근무했지만 사형 제도에는 반대한다. 사형 제도가 가난한 이들의 범죄를 막을 수 있다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 정의에는 두 가지 기준이 있다. 가난한 사람에 대한 정의와 부자에 대한 정의가 있다. 가난한 사람에게 사형 제도는 ‘법은 멀리 있다’는 사실만 실감시킬 뿐이다.”

국가의 살인

사형 제도는 계급 사회 이후 지배자들에게 유용한 정치적 도구였다.

국가는 사형이라는 수단을 통해 반역자들을 끔찍하게 죽임으로써 자신의 힘을 과시하곤 했다. 사형을 집행할 때 중요한 요소 중 그가 왜 죽임을 당해야 하는지 대중에게 설명하는 것인데, 이는 국가의 권위에 도전했을 때 맞게 될 처참한 결과를 똑똑히 보여 줌으로써 대중을 위협하기 위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