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표범당은 1960년대 미국 국가에 맞서 국내에서 일어난 가장 중요한 혁명적 도전이었다. 흑표범당은 1966년 오클랜드와 캘리포니아에서 처음 등장했다. 휴이 P 뉴턴과 바비 실은 흑인 해방을 위한 열 가지 강령을 바탕으로 흑표범당을 창립했다.

흑표범당은 “경찰 감시” 활동으로 유명해졌다. 무장한 당원들이 법전을 들고 흑인 거주 구역을 순찰하는 경찰차를 따라다니며 흑인들이 검문을 받을 때마다 그것이 적법한 것인지를 감시했다.

경찰 감시 활동은 경찰의 체포 시도에 저항했다는 이유로 흑인 여러 명이 살해당한 사건에 대한 대응이었다. 이런 활동으로 흑표범당은 국가에 만만찮게 대항했다. 1968년이 되면 흑표범당은 전국 조직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FBI의 최우선 감시 대상이 됐다.

미국 국가는 흑표범당 당원들을 체포하고 괴롭히고 살해하기 시작했다. 흑표범당은 마지막 순간까지 이런 공격을 받았다.

흑표범당은 시민 평등권 운동의 급진적 경향을 나타냈다. 흑표범당은 학생비폭력조정위원회 SNCC와 가까웠고 잠깐 동안 조직을 합치기도 했다.

흑표범당은 가난한 흑인들에게 복지를 제공하며 활동의 폭을 넓혔는데, 이런 활동은 때로 그들의 혁명적 무장 활동과 충돌을 빚었다. 흑표범당은 1970년대 초 세가 급격히 줄었다.

흑표범당은 처음에는 알제리 혁명가 프란츠 파농의 영향을 받아 혁명적 폭력을 주장했다. 흑표범당은 정치 이론을 경계했고, 말만 많고 실천은 거의 안 하는 것으로 보이는 기존 좌파들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흑표범당은 당시 성장하고 있던 흑인 운동이 체제에 도전하기보다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초점을 맞추는 것에 비판적이었다. 흑표범당원 린다 해리슨은 이렇게 말했다. “문화적 민족주의는 정치적이고 구체적인 것을 무시하고 신화와 환상에 집중한다.”

출처: 영국의 혁명적 좌파 신문 <소셜리스트 워커> 23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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