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 신문 기사 논쟁
농민에 대한 무비판적 지지가 “민중성”인가?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가 발간하는 신문 〈Stupower〉 창간준비호 1면에 ‘서울대 농활 철수―민중성 약화의 결과’ 라는 기사가 실렸다. 민주노동당 학생부문 중앙위원인 정병호가 이 기사에 반론을 제기한다.

‘서울대 농활 철수 - 민중성 약화의 결과’라는 기사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첫째, 이 기사는 서울대 농활 중 벌어진 성추행 사건의 책임 문제를 왜곡하고 있다. 이 기사에는 성추행 사건의 가해자와 그 책임이 있는 농민회에 대한 비판이 빠져 있다. 오히려 “농활을 진행중”인 상황에서 학생들이 철수한 것이 사건의 본질인 양, 학생들만 일방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학생들은 “일방적”이고 “오만”하며 “연대단위간의 기본적 존중과 신뢰조차 느끼기 힘들다”는 것이다.
물론 여러 농활대가 철수했으므로, 사안에 따라 학생들의 ‘농활 철수’라는 대응 방식이 적절했는지는 의문을 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핵심적으로 문제가 됐던 사회대 농활의 경우 분명히 성추행이 있었다.
이 경우 “연대단위간의 기본적 존중과 신뢰”를 깨뜨린 것은 학생들의 철수 이전에 성추행 사건이 일차적 원인이었다. 자신들을 성적 대상으로 취급하는 곳에서 “존중과 신뢰”를 느끼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므로 학생들의 대응이 적절했는가 여부는 사실 부차적인 문제다. 그러나 이 기사는 사건의 본말을 뒤집어 학생들만 비판함으로써, 보수 언론들이 학생들(또는 학생운동)의 ‘무례함’을 위선적으로 비난하는 것에 의도치 않게 동조한 결과를 낳고 말았다.

급진화

학생들에 대한 불공정한 비판은 이 기사가 “민중성”이라는 잘못된 개념을 사용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민중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학생과 민중을 구분짓고 학생을 모종의 억압받지 않는 지식인으로 여기는 것에서 출발하는 엘리트주의적 개념이다. 그러나 학생들 또한 자본주의 교육 체계에서 억압받는 피억압 대중(민중)의 일부다.
물론 이 기사는 학생들이 민중에게 가르치려고만 하는 엘리트주의적 “민중성” 개념을 경계한다. 그러나 오히려 정반대의 편향, 즉 “민중의 현실을 ‘몸으로 배우고자 하는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농민의 보수적 행동에 대한 무비판적 태도는 바로 이러한 정치적 오류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연대는 봉사 활동이나 역으로 민중 현실 체험 같은 것이 아니다. 연대는 무엇보다 투쟁에 대한 정치적 지지와 비판에 기반한 ‘정치적 연대’여야 한다.
둘째, 이 기사는 학생들의 의식을 폄하하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대학사회의 보수화” 또는 “민중성 약화”를 매우 안타까운 어조로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학생들이 일반적으로 보수화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경제 위기와 정치 위기가 심화하면서, 중도파의 입지가 축소되고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한 그림이다. 그런데 이 그림에서 오른쪽보다 왼쪽으로 옮아가는 학생들이 훨씬 더 많다.
가령 지난 수년간 미국에 대한 반감이 유례없이 증대하고, 선거에서 진보 성향의 후보 지지율이 꾸준히 증가하는가 하면, 자본주의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51퍼센트나 되는 통계는 의식의 급진화를 보여 주는 대표적 사례다.
물론 의식과 행동 사이에 간극이 존재할 수 있다. 특히 경제 위기 시기에 학생들 사이에서 원자화(개인주의화)가 더욱 심화하기 때문에, 의식만큼 행동이 따라주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경제 위기가 가져온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학생들에게 불만을 누적시키고 있다. 누적된 불만은 특정 계기를 통해 폭발적 투쟁으로 분출할 수 있다. 가령 여중생 촛불 시위나 탄핵 반대 시위에 상당수의 학생과 청년 들이 참가한 것은 이 점을 두드러지게 보여 준다.
이럴 때 학생운동가들은 긴 안목을 가져야 한다. 성급하게 학생들의 의식을 폄하하면 학생운동가들이 도덕적 우월의식을 갖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줄 수 있다.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가 이러한 모습을 보인다면, 주변의 학생들이 매력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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