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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의 자유로운 이주 권리를 옹호해야 한다

탈북자의 자유로운 이주 권리를 옹호해야 한다

정병호

민주노동당 안팎에서 벌어진 탈북자 논쟁에서 주체주의자들은 탈북자 수용에 반대하고 있다. 민주노동당 이정미 최고위원은 박용진 대변인의 탈북자 입국 환영 논평에 “우려”를 표명했고, 당의 8·15 성명 또한 “최근 대규모 탈북자 입국에서 보여지듯 북에 대한 체제 전복에 동조하고 있다”며 정부를 강력히 비판했다.
지난 7월 22일 미국 하원에서 ‘북한인권법’이 통과된 점이 이런 시각에 큰 영향을 미친 듯하다.
미국이 북한 인권 운운하는 것은 순전한 위선이다. 미국이야말로 최악의 인권 침해 국가 중 하나다. 미국에는 2백만 명 가량의 재소자가 존재하는데 세계 어느 나라보다 높은 비율이다. 또한 야만적인 사형 제도를 여전히 존속시키고 있다.
9·11 이후에는 무슬림과 아랍인 이민자 수백 명을 이유 없이 무기한 구금하는가 하면, 아프가니스탄 전쟁 포로를 구금한 관타나모 기지와 이라크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 등에서 폭행, 전기충격, 잠 안 재우기, 두건 씌우기, 성적 학대 등 끔찍한 인권 유린을 자행했다.

위선

북한인권법의 주된 내용이 탈북 지원을 강화하고 미국 국내로도 탈북자를 수용한다는 것이지만, 미국이 진정으로 탈북자 인권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미국은 지금까지 탈북자들의 자국 망명을 허용하지 않았다. 가령 재작년 김한미 양 가족이 미국 망명 신청을 했을 때, 미 국무부는 “미국 법에 따라 미국 영토나 국경에 와서 망명 신청을 하는 경우에만 허용을 검토할 수 있다”며 딱 잘라 거절했다.
북한인권법은 북핵 문제와 함께 순전히 북한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러나 미국이 북한인권법에서 보여지듯 탈북자 문제를 북한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압박 수단으로 이용하려 한다고 해서 우리가 탈북자 수용에 반대해서는 안 된다. 대다수 탈북자들은 굶주림이나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국경을 넘는 피억압 대중이기 때문이다.
주체주의자들은 남한에 들어오는 탈북자들이 모두 미국 CIA의 후원을 받는 우익 단체들에 의한 “기획 탈북의 산물”이라고 주장하며 탈북자 수용에 반대한다.
그러나 탈북 ‘욕구’가 있어야 ‘기획’도 가능한 법이다. 북한의 식량난이 초래한 기근과 질병에서 벗어나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욕구가 탈북의 근원적 배경이다.
만약 탈북자들이 자신이 거주하고 싶은 곳으로 자유롭게 이주해 정착할 수 있다면, 굳이 기획 탈북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 당국과 중국 공안의 억압 때문에 사실상 ‘기획’ 없이는 탈북과 망명이 가능하지 않게 됐다.
그러므로 탈북 브로커와 우익 탈북 지원 단체들이 탈북자 문제를 이용하려는 의도와 이들의 도움을 얻어서라도 안정된 삶을 찾고 싶어하는 탈북자들의 정당한 욕구를 싸잡아서 비난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게다가 탈북자 지원 단체들에 우익 단체들만 있는 것도 아니다. 불교계 탈북자 지원 단체인 ‘좋은벗들’ 같은 단체들은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탈북자를 지원하고 그들의 고통을 알리는 활동을 해 왔다.
‘기획’을 포함한 탈북자 지원을 반대하는 것은 탈북자들이 처한 가혹한 현실을 무시하는 것이다.

권리

주체주의자들은 또한 탈북자들의 남한 행이 그들의 인권을 파괴하므로 반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국내에 들어온 탈북자들은 단 한번의 정치적 이용물로 활용된 뒤 자본주의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한국 땅에 내팽개쳐져 버린다.”(한국진보운동연구소 박경순 소장)는 것이다.
물론 남한에서 탈북자들이 우익에 의해 “정치적 이용물로 활용”돼 매우 비참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때문에 탈북자 수용을 반대하는 것은 우익이 위선적으로 탈북자 문제를 이용하는 것을 묵인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이들이 계속해서 탈북자 문제에 주도권을 쥐고 위선적인 생색내기를 할 수 있도록 도와 줄 것이다.
오히려 우익의 위선에 가장 효과적으로 맞설 수 있는 방식은 그들보다 더 일관되게 탈북자 인권을 옹호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을 실제 현실에서 보여 주는 것이다.
특히 탈북자들 자신의 자유로운 이주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이다. 즉, 탈북자들 자신이 어떤 이유에서든 남한 행을 선택하면, 진보 진영은 그들의 입국을 환영해야 한다.
나아가 한국 정부가 실질적으로 탈북자 수용과 지원을 강화하고, 중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이 탈북자들에게 난민 지위를 부여해 탈북자들이 어디서든 자유롭게 정착할 수 있도록 촉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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