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자프 저항 - 미군의 또 다른 패배

김용욱

8월 26일 수많은 시위대[몇 명이나 되는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아랍언론은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라고 했고, 미국 언론들은 보통 수천에서 수만 명이라고 말했다]들이 사드르와 시스타니의 호소에 응해 나자프로 행진을 시작했다.
8월 내내 계속된 나자프 저항과 대규모 대중 시위는 전에 이라크에 있던 다른 많은 역사적 사건들 ― 1920년 봉기, 1948년 도약, 1952년 인티파다 등 ― 처럼 사람들의 기억에 영원히 남을 사건이 됐다.
하지만 모든 언론들이 이렇게 평가한 것은 아니다. 특히 미국 언론들은 나자프 저항의 의미를 평가 절하하기 위해서 애를 썼다. 그들은 원래 이 전투가 벌어진 근본 원인인 미군 점령과 이에 대한 반감은 완전히 무시했다.
일부는 나자프 저항이 임시정부(와 미국)의 승리로 끝났다고 우겼고, 더 많은 경우에는 시스타니와 사드르를 중심으로 한 시아파 사이의 경쟁 관계에 집중했다.
물론 시아파 조직들 간에는 차이가 있다. 이들간의 차이는 30년 이상 진행된 이라크 시아파 운동의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지금 이라크인들의 입장에서 이들을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차이는 미군 점령과 꼭두각시 정부에 대한 입장이다. 다수의 시아파 정당들은 임시정부에 참여하고 있는 반면, 시스타니와 사드르는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둘의 입장도 같지 않다.
사드르의 주요 기반은 바그다드의 빈민들인 반면, 시스타니는 시아파 성직자나 나자프의 상인들이다.
시스타니와 사드르는 미군 점령에 반대한다. 그들은 점령으로부터 고통받고 있는 다수의 이라크인들의 정서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대변하고 있다.
나자프에 마흐디 군이 고립됐을 때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인간 보호막을 만들고, 시스타니의 호소에 많은 사람들이 나자프로 몰려든 것은 이들이 시아파 교리를 대변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시위에는 많은 수니파들도 참여했다. 종파를 떠나서 이라크인들이 일상적으로 느끼는 굴욕과 고통의 근원에 반대하고 있다는 도덕적 권위에 호응했기 때문이었다.
꼭두각시 임시정부에 참여했던 다른 시아파 정당들이 알라위와 거리두기에 바빴던 것도, 미국과 임시정부가 갑자기 정전 협정에 나섰던 것도 전적으로 이러한 대중적 호응 때문이었다.

인간 보호막

미군과 임정은 원래 사드르 운동을  파괴할 생각이었던 듯하다. 미군은 전폭기와 헬기를 포함해서 거의 모든 종류의 무기를 동원했고, 모든 잔인한 방법을 사용했다.
〈가디언〉 기자는 미군 저격수가 당나귀를 타고 가던 한 노인을 냉혹하게 살해하는 장면을 보도했다. 혹시라도 당나귀에 마흐디군에게 갈 식량이 실려있지 않을까 의심했기 때문이었다.
미군은 총격이 발생했을 때 주변에 있는 모든 건물을 파괴했다. 한 해병대 병사는 한숨을 내쉬면서 “우리는 이 역사적 도시를 산산조각내고 있다”고 말했다.    
얼마나 많은 마흐디군 병사들이, 그리고 얼마나 많은 무고한 민간인들이 살해됐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수백 명은 족히 넘을 것이다. 미군은 지난 4월의 팔루자처럼 두고두고 남을 고통과 분노를 남겼다.
이런 만행에 많은 이라크인들이 마흐디군과 나자프 성지를 보호하기 위해 나선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워싱턴 포스트〉의 보도에 따르면, 이번 나자프 위기로 인해서 미군 점령에 반대하지만 아직 직접 행동에는 나서지 않았던 많은 사람들이 급진화했다.
결혼을 앞둔 스물일곱 살 젊은이는 결혼 자금을 털어 무기를 사서 나자프로 향했다. 더 놀라운 점은 미래의 장모도 동참했다는 것이다! 나자프 행진에서 돌아온 후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미군을 이라크 밖으로 몰아낼 때까지 계속 싸울 것입니다. 이라크는 우리의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면 이번 나자프 위기가 결국에는 시아파 권력 투쟁의 성격이 있다든가 혹은 임시정부와 알라위의 승리라는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금방 드러난다.
이번 나자프 저항의 진정한 의의는 미군의 폭력에 굴복하지 않고 투쟁하는 세력을 이라크인들이 지지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이었다.
나자프 전투는 일단락됐지만 미군과 꼭두각시 정부의 앞날은 결코 밝지 않다. 놀랍게도 8월에 미군 사망자 대다수가 나자프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죽었다. 미군 사망자 총 52명 중에 나자프에서 사망한 병사는 11명뿐이다. 8월 내내 이라크 전역에서 미군에 대한 공격과 미군의 보복이 계속됐다.
27일 정전 협정 체결 다음 날부터 송유관 폭파와 미군과 이라크 경찰에 대한 기습이 잇따랐다. 사드르 시로 돌아온 마흐디 청년들 중 일부는 미군과 다시 싸우고 있다. 사드르는 사드르 시에서도 정전협정을 맺으려 하고 있지만 일부 부관들은 반대하고 있다.
이번 나자프 위기로 미군은 자신들이 이라크내 어떤 저항세력보다 군사적으로 우월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마흐디군은 상당한 사상자를 냈고, 조직이 약화됐을지도 모른다. 사드르가 휴전을 전국으로 확대하려는 이면에는 부분적으로 이런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미군은 이라크에서 군사적 성공이 정치적 패배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베트남전과 정말 비슷하다. 베트남전에서 미군은 대부분의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결국 전쟁에서 패배했다. 지금 이라크에서 똑같은 교훈이 반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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