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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식 사회주의’의 진실

많은 경제학자들은 마오쩌둥 시대보다 현재 중국이 훨씬 낫기 때문에 모든 중국인들이 개혁·개방 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중국의 개혁·개방은 대단히 모순적인 결과를 낳았다. 25년 간의 고도 성장 후에도 6억 명이 깨끗한 식수를 공급받지 못하고 1억 2천만 명이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

반면, 선전의 한 호화 주택가에는 4백 명의 전직 장교들과 60마리의 경비견이 경비를 서며, 상하이의 부유층 12.5퍼센트의 주거 면적은 빈민층 56.4퍼센트의 주거 면적과 동일하다.

마오쩌둥 시절 GDP에서 자본 축적이 차지하는 비율은 1952년 21.4퍼센트에서 1978년에는 무려 36.5퍼센트로 높아졌다. 40퍼센트가 넘는 경우도 심심찮았다.

덕분에 노동자와 농민의 생활은 철저하게 희생당했다. 1952∼76년에 도시 노동자의 임금은 매년 0.38퍼센트씩 증가했다. 투자 부족으로 농업 성장률은 인구 성장률보다 낮았다. 여기에 기근까지 겹쳐 재앙이 일어났다. 대약진운동 동안 농촌에서 3천만 명이 아사(餓死)했다.

흔히 개혁·개방 이후 시장 경제가 도입되면서 중국 경제 구조가 철저하게 변했다고 하지만 똑같은 원리가 더 극단적 형태로 작동하고 있다.

실제로 1988년 GDP의 37.5퍼센트, 1995년에 GDP의 42퍼센트가 자본 축적에 투자됐고 최근까지 이 수준이 유지됐다. 다만 이제 자본 축적의 많은 부분이 사기업으로 이전돼 벼락부자가 된 사적 자본가들이 많이 나타났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물론 개혁·개방 이후 많은 사람의 생활수준이 마오 시절보다 나아졌다. 그러나 생활수준 향상은 대부분 1978년 직후에 집중됐다. 그 때 가구 소득이 급속히 증가할 수 있었던 것은 축적률을 낮추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노동자 임금과 곡물 수매 가격을 대폭 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중국이 세계 자본주의로 빠른 속도로 편입되고 자본간 경쟁이 더 치열해지자 이런 여유는 곧 사치가 됐다.

이후의 소득 향상은 지리적·계급적으로 매우 불균등했다. 수출 경제의 핵심인 동부 도시들에서는 1988∼95년에 빈곤층이 절반으로 줄었지만 서부에서는 같은 기간에 빈곤층이 오히려 늘었다.

소득이 평균적으로 상승한 도시 노동자들도 1990년대에 각종 국가지원(주택 보조금·식량배급·연금·의료보험)이 사라지고 불안정한 시장에 생계의 모든 부분을 의존하게 되면서 상당수는 자신들의 삶이 별로 나아지고 있다고 느끼지 못했다.

중국사회과학원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2002년에 도시 가구 중 29퍼센트가 경제 사정이 나쁘거나 아주 나쁘다고 답했고, 20.9퍼센트가 1997년보다 가구 경제 사정이 악화됐다고 답했다.

반면에, 같은 조사는 WTO 가입 이후 최고소득층의 수입은 국제 기업가들과 일치하게 될 것이라 전망했는데, 이 전망은 이미 이루어졌다. 현재 중국에는 자산이 10억 달러(약 1조 1천5백억 원) 이상인 사람이 3천 명이나 된다.

중국 지배자들은 여전히 ‘중국식 사회주의’ 운운하지만, 우리가 보고 있는 중국은 한국과 별로 다르지 않은 모순으로 가득찬 자본주의 사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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