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역사책들이 너무 딱딱하거나, 또는 쉽더라도 통속적인 설명들로 가득 차 있다는 단점을 갖고 있는 것에 반해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는 아주 쉽고도 명쾌하고 재미있는 책이다.

미국의 노동운동가였던 이 책의 저자 리오 휴버먼은 봉건제 시대부터 프랑스 혁명과 1870년대 독점의 등장, 제국주의와 파시즘에 이르는 자본주의의 역사를 아주 흥미롭고 쉽게 설명하고 있다.

그는 전혀 어려운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책은 어떤 어려운 역사책보다도 풍부하고 구체적인 사실들로 가득차 있다.

이 책의 명쾌하고 재치있는 구절들을 접하면 어렴풋하고 뿌옇고 막연한 생각들이 깨끗하게 정돈되는 느낌마저 든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너무 당연하게 생각되는 믿음, 관념들,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되는 바들도 자본주의가 생겨났을 무렵에는 상당히 낯선 관념들이었다는 사실을 아주 뚜렷하게 깨닫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을 빌려 주고 이자를 받는 것이란 아주 친한 친구 사이가 아닌 다음에야 너무도 자연스런 일이다. 그러나 돈을 빌려 쓰는 대가로 이자를 요구하는 것을 중대한 범죄로 여기던 때가 있었다. 봉건 사회 당시 영국에는 한 때 “고리대금 금지법”이 있었다. 그 법의 문구는 다음과 같았다. “경건한 가르침과 신앙 때문에 … 원금 이상의 이득·이익·이자를 가지거나 받거나 바라는 어떤 종류의 고리대금을 위해서도 돈을 빌려주거나 내주거나 양도하거나 선대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 법의 문구들은 상업이 지역의 경계를 넘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자 이렇게 바뀌었다. “적당하고 참을 만한 고리대금업”, “일상의 상업 관행”.

교회 자신이 맨 먼저 자신이 정한 법을 어겼다. 교황 자신이 채무자들을 정신적 형벌로 위협해서 이자를 징수했다. 다른 고리대금업자를 탄압하고 있던 바로 그 순간에 말이다.

봉건 사회에서는 거의 알지 못했던 저축과 투자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서서히 당연한 것이 됐다. 휴버먼은 “저축과 투자는 한 계급의 의무이자 낙이 됐다. 당대의 도덕, 정치, 문학, 종교가 저축 장려를 위한 웅대한 모의에 가담했다”고 적고 있다.

리오 휴버먼은 독자들에게 이렇게 묻는다. 사실이 그렇다면 이윤에 대한 열망이 과연 인간의 본성이라고 여기는 생각은 옳을까?

경제와 정치와의 연관

그는 먹고 사는 문제와 관련지어 역사를 살펴보면 수많은 문제들이 풀린다고 말한다.

저자는 역사적 사건 뒤에서 항상 그 사건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들과 피해를 보는 사람들 간의 이해관계의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됐는지를 구체적 예를 들어 말하고 있다.

그는 말한다. “역사책을 읽어보면 이런저런 왕들의 야망·정복·전쟁에 관한 이야기가 장황하게 이어진다. 그런 책들의 강조점은 완전히 틀렸다. 국왕들의 이야기에 지면을 할애하기보다 왕권의 배후에 있는 진정한 힘, 즉 그 시대의 상인과 금융업자의 이야기에 지면을 할애하는 편이 훨씬 나았을 것이다.”

중세 교회에서는 왜 성직자들의 결혼을 금지했을까? 봉건 사회에서는 농노들이 길가에서 풀을 깎아도 통행세를 내야 했고, 수확한 곡물에서 경작 비용을 공제한 후에 십일조를 바친 농민은 지옥에 떨어지라는 저주를 받았다. 십일조는 어떤 세금보다도 무거웠다. 교회는 막강한 부자였다. 만약 성직자들이 결혼을 한다면 이 재산은 상속돼야만 할 것이다. 자식들에게 분배된다면 교회의 재산을 그만큼 줄게 될 것이다.

중앙 정부는 10세기에서 15세기에 이르는 시기에 차츰 성장한 중간계급과 어떤 이해관계에 있을까? 프랑스 혁명 전후의 특권 계급이었던 성직자·귀족과 비특권 계급간의 이해관계의 차이는 무엇이었나? 비특권 계급 내에서는 이해의 차이가 없었을까?

리오 휴버먼은 “신념·법·공통의 생활 양식·인간 관계, 이 모든 것이 사회가 새로운 발전 단계에 접어들면서 수정됐다”고 적고 있다.

리오 휴버먼은 친절하게도 중세 대학에서는 모든 학생들과 선생이 라틴어로 공부했다는 사례를 들어 국민국가 등장이 결코 인간 역사에서 ‘자연적’이지 않았음을 차근차근 설명해 주고 있다.

그는 묻는다. 중세 말인 15세기 무렵에서야 비로소 국민이 탄생하고 국민 문학이 생겨나고 공업에 대한 국가 규제가 지역적 규제를 대신하는 일들이 시작됐다면 애국심은 인간에게 본능으로 주어지는 거라고 볼 수 없지 않은가?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전에도 종교개혁가들이 있었다. 리오 휴버먼은 다시 묻는다. 그렇다면 서방 가톨릭 교회가 분열하고 하나의 세계 교회 대신에 국교가 수립되는 일이 왜 그 전에는 일어나지 않고 하필이면 1517년에 일어났을까?

리오 휴버먼은 봉건 사회의 위기가 깊어지자 토지에 투여한 노동량 때문에 땅을 중요하게 여기는 낡은 관념이 점차 사라지고 사람들이 일반 재산을 다루듯이 토지를 다루는 법을 알게 됐다고 말한다. 자본주의가 싹트고 나서야 토지는 돈을 노리고 매매하는 투기꾼들의 투기 대상이 된 것이다.

그는 같은 종교개혁가들을 모조리 똑같이 취급하지 않았다. 영국의 위클리프는 농민반란의 정신적 지도자였고 보헤미아의 후스는 로마에 항거했을 뿐 아니라 귀족의 권력과 특권을 위협하는 공산주의적 농민운동을 고무했다. 루터는 달랐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상거래의 자유를 원했던 신흥 중간계급이 봉건제에 맞서 벌인 최초의 결정적인 전투였다. “루터는 특권층을 내쫓으려고 시도하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 “국민국가의 이익과 일치했다.”

균형잡힌 관점 

역사에 대한 설명과 묘사가 결코 기계적이지 않다는 점 또한 이 책의 장점이다. 

그는 관념·생각 등이 바뀌는 것은 물질적 토대의 변화 속에서 가능하지만 물질적 조건이 바뀐다고 그 모든 것이 곧바로 바뀌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역사상 어느 시대에나, 기존의 것이 이제부터는 더 이상 계속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 있게 마련이다. 어떤 사람들은 피할 수 없는 변화에 직면해 기존의 것을 전보다 더 굳게 붙들고 늘어진다.”

리오 휴버먼은 자유로운 노동이 그렇지 못한 노동보다 더 생산적이라는 것을 영주들이 오래 전부터 잘 알고 있었지만 모든 영주가 그렇게 했다는 것은 아니라는 예를 들고 있다. 

고발장

이 책은 자본주의의 역사에 관한 준엄한 고발장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으면 “자본주의가 처음 시작됐을 때 얼마나 피와 오물을 뒤집어 쓰고 태어났는지”를 알 수 있다.

리오 휴버먼은 묻는다. 소수에게는 위대한 번영의 시대였던 때에 대중에게는 빈곤이 널리 퍼져 있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16∼17세기 거지의 숫자는 놀랄 만하다. 1630년대에 파리 인구의 4분의 1이 거지였다.

엔클로우저 운동, 엄청난 물가상승, 일부에서 남아 있던 여전한 가혹한 지대 징수, 끔찍한 아동노동, 노예 노동, 약탈, … (《만화 세계사》는 당시 런던 노동자들의 평균 나이가 24.5세라고 적고 있다.)

휴버먼은 당시 수직기 직공의 토머스 히스라는 사람의 증언을 인용하고 있다.

질문 : 자녀가 있나요?

: 아니오. 둘이 있었지만 모두 죽었어요. 하느님께 감사하게도요.

질문 : 당신은 자녀의 죽음에 만족을 나타내는 것입니까?

: 그렇습니다.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나는 애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짐에서 벗어났고, 그 불쌍하고 귀여운 아이들은 이 죽음 같은 삶의 고통에서 벗어났으니깐요.

그는 세공금속업의 가내 조사에서는 두세 살짜리도 일했다는 당시 조사 문헌을 인용한다. 그런데 이것은 19세기가 아니라 20세기, 그것도 1934년 8월 미국 코네티컷 주에서 실제 있었던 고용 노동에 관한 실태 보고서에 적혀 있었다!

그는 말한다. 자본주의에서도 계획은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는 풍요를 폐지하는 계획이다.”리오 휴버먼은 아침 일간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사례로 그 계획의 예를 들었다. “면화를 그냥 파묻다”, “새끼 돼지 수천 마리 도살”, “밀 재배 면적 감소”, “설탕 농장 생산 삭감”.

저항의 역사

자본주의의 역사는 저항의 역사이기도 했다. 경제적·정치적 이해관계를 둘러싼 사람들 사이의 관계들을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는 그의 장점 때문에 익히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사건들조차 새롭고 더욱 또렷하게 부각된다.

엔클로우저에 저항한 농민들이 “공유지의 권리를 회복하기 위해” 하원에 많은 사람들의 서명이 담긴 청원서를 냈다.

이 책에는 수많은 농민 반란의 예들이 적혀 있다.

영국의 지배층은 자그마치 14세기에 이미 노동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결사 행동을 불법으로 선포했다. 당시 프랑스의 판사는 이렇게 판결했다. “그대들은 다음을 교훈으로 삼으라 … [노동자들의] 동맹은 감옥과 빈곤만을 가져다 줄 뿐이라는 점을.” 그러나 노동자들은 그 교훈을 배우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조직을 세우기 위해 몇 백 년 동안 계속 싸우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각 이론에 대한 상쾌한 설명

이 책을 읽으면 리오 휴버먼이 복잡한 이론들을 아주 명쾌하게 요약해 주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맬서스의 인구법칙의 문제점, 애덤 스미스와 리카아도의 경제 이론, 한계효용 이론 등이 궁금하신 분들은 이 책을 꼼꼼히 보시라. 그의 책에는 현존 인물인 F A 폰 하이예크의 이론에 관한 논평도 실려 있다. 

리오 휴버먼은 그 이론들이 결국 누구의 이해를 위해 동원되고 있는가에 대해서도 침묵하지 않는다.

그는 19세기 말 미국에서 자본가들 사이에서 유행한 ‘임금기금’설 (임금은 따로 떼어 두는 일정한 기금에서 지급되기 때문에 노조는 뛰어봤자 벼룩이라는 주장)과 ‘마지막 노동시간’설 (고용주의 이윤이 마지막 노동시간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노동 시간을 더 이상 줄일 수 없다는 주장)을 예로 들고 있다. 당시 임금기금설은 노조 무력화를 위해, 마지막 노동시간설은 노동시간 단축 투쟁을 막기 위해 각각 자본가들이 즐겨 주장한 이론이었다.

‘임금이 인플레이션의 주범이다’, ‘고임금이 저성장의 원인이다’, ‘노동시간 단축이 경제의 효율을 깎아내린다’는 등의 친자본주의 경제학자들의 주장들을 통쾌하게 논파하고 싶다면 리오 휴버먼의 책은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적 이론에 노동자의 경험을 녹여 명쾌하게 논증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다면.

그의 책은 단순한 역사책이 아니다. 여기에는 악독한 체제와 싸운 자들의 일기와 재판정에서의 증언도 있고 혁명적 시인 셸리의 시도 있다. 이것은 그의 책이 팔딱거리는 듯한 생동감을 주는 이유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 책의 장점은 독자에게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낙관과 자신감을 준다는 점이다. 그런 영감은 세상이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를 그가 생생하고 명쾌하게 설명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책이 브라질에서 30만 부나 팔린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