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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아빠 소리 하지마! 사람들이 듣잖아》, 노기연:
노동자 삶의 진솔한 이야기

봄은 완연한데

꽃은 피었는데

이불 속에서도

양지녘에서도

몸은 으스스 춥기만 하다

‘김 소’의 「실업자」중에서

버섯은 그늘 속에서 산다. 더군다나 버섯은 자신의 몸통보다 더 큰 모자를 쓰고 또 그늘을 만든다. 세상에는 참 많은 버섯들이 살고 있다.

쏟아지는 햇볕을 마음대로 누리지 못하고 차단된 건물 속에서 고되게 일을 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일이라도 하고 싶지만 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스스로 고개를 내려 그늘을 만드는 사람들.

누군가 햇빛은 공평하게 쏟아진다고 했다. 그러나 그 빛을 받을 만큼 사람들은 여유롭지 못하다.

IMF는 버섯처럼 사는 사람들에게 그들을 자라게 해주는 기본적인 토양조차 빼앗아갔다. 국가 경제를 살리겠다는 명목 아래 시행된 대대적인 구조조정은 노동자들에게 정리해고라는 칼날을 들이밀었고, 그 결과 수많은 사람들이 길거리로 나앉게 되었다.

언제나 이 체제에서 고통을 받는 건 다수의 노동자·민중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을 짓누르고 있는 환경 속에서도 희망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여기 IMF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글과 삶이 우리에게 살며시 펼쳐져 있다.

심청이를 ‘정리해고’ 시킨 심봉사

“심청전에 나오는 심봉사(정부)가 자신의 눈을 뜨기 위해서(IMF를 극복하기 위해서) 공양미 삼백석(서양 자본)이 필요하다고 심청이(노동자)를 중국사람(외국 자본)에게 팔아 인당수(정리해고)에 희생 제물로 바치는 것…”

심청이는 심봉사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죽음을 택한다. 이것에 대해 조금만 주의 깊게 생각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의구심이 들 것이다. ‘그렇게 해서 심봉사의 눈이 뜨여진다고 한들 딸을 죽인 아비가 또 얼마나 잘 살 수 있겠는가?’

문제는 ‘왜 하필 희생을 해야만 하는 것인가?’이다. 모두 함께 하는 참세상이 된다면, 그래서 ‘장애’에 대한 편견과 불편이 없는 사회복지가 실현이 된다면 구태여 심청이를 공양미 삼백석에 팔지 않더라도, 그리고 심봉사는 눈을 뜨지 않더라도 눈을 뜬 것처럼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누구 하나의 희생이 아니라 심봉사와 심청이가 함께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했던 것이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보면,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가 창출되면 정리해고를 어느 정도 막아낼 수 있건만 도대체 이 사회 지배자들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착취를 더 강화하는 쪽을 택했던 것이다.

이 글을 쓴 이의 생각처럼 둘이 함께 잘 살 수 있는 방법은 사실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는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좀 씁쓸한 기분이 든다.

“저희를 그냥 사람으로 대접했으면”

(글쓴이)는 노숙자이다. 두 달 전까지만 해도 토목일을 했던 건축 노동자였지만 1998년 들어 일거리가 없어지자 노숙 생활에 들어갔던 것이다.

그는 주민세나 의료 보험비도 못 내어 주민등록 등본까지 말소되었고, 그로 인해 취직도 할 수 없었다.

마침 서류가 필요하지 않은 곳을 소개받게 되어 가보았으나 그 곳은 벌써 기계가 몽땅 은행 차압을 당한 상태인 회사였다.

뿐만 아니라 직원 100여 명이 두 달 정도 봉급이 나오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래도 그는 거기서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 곳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은 TV와 신문에서 나온 얘기만 듣고 그와, 그와 함께 온 사람들을 거지 취급 했고, 기숙사 생활을 하는데 비누 하나 치약 하나 챙겨주는 사람이 없었다. 결국 그는 열흘만에 일을 그만두었다.

그 후로 그는 ‘쉼터’라는 곳에 머물며 취업 자리를 알아보러 다녔으며, 차비를 벌기 위해 고물을 주워 팔아 생활했다.

그리고 그는 우연히 “새날을 여는 실업자 연맹”을 알게 되어 그곳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농성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한 노숙자의 체험담이다. 우리는 그가 자신의 삶을 우리에게 내 보이기 위해 펜을 들면서 얼마나 많은 한숨을 내쉬었을지 상상해 볼 수 있다.

글의 마지막 줄 그의 메시지는 지금 펜을 들고 있는 나에게도 자꾸만 한숨을 쉬게 만든다. “저희를 그냥 사람으로 똑같이 대접해주었으면 해요.”

“아빠 소리 하지마! 사람들이 듣잖아”

한 선배가 나에게 문제를 냈다. 무슨 사연이 있길래 “아빠소리 하지마! 사람들이 듣잖아”라고 했을지 알아맞춰 보라는 것이었다.

아직 이 책을 읽어보지 않았을 때였기 때문에 내가 내용을 알 리 없었다. 물론 여러 가지 추측을 해 보았지만 번번이 정답이 아니었다.

뭐, 내가 상상력이 부족해서 못 맞춘 것 일 수도 있지만, 사실 그 제목에는 다음과 같이 착찹학고, 복잡한 상황이 얽혀져 있었다.

글쓴이의 남편은 1998년 현대차 정리해고 반대 점거 파업 뒤 수배자가 되어 도망다니는 사람이었다. 그는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상주인데도 병원 영안실 근처에 나타날 수가 없었다. (그곳에 경찰이 있었으므로)

그런 그에게는 세 살 된 큰 아이 정현이와 19개월된 둘째 정은이가 있었다. 어느 날 그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시댁 현관에 나타난다.

정현이는 아빠를 보더니 “아빠!” 하고 엉겨붙지만 정은이는 오빠가 왜 이렇게 낯선 손님을 보며 좋아하는지 모른다.

정은이가 태어나면서부터 그는 현장일로 바빴기에 둘째는 아빠를 잘 모르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아빠인지도 모르는 둘째에게 아빠 존재 알리기 집중교육을 시킨다.

“정은아, 내가 아빠야, 아빠. 따라해봐. 아-빠-!”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은이는 퉁명스럽게 “엄마”라고 해 버린다.

그녀는 (글쓴이) 이런 모습에 불안해진다. ‘밖에 다 들릴텐데…’ 그녀의 시어머니도 표정이 굳어지더니 창문을 닫기 시작한다. 참다 못한 시어머니가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아빠 소리좀 그만해라. 밖에서 다 들린단 말이야. 아이들 보는 앞에서 잡혀가면 어떡하려구 그래?”

그녀는 생각한다. ‘수배자 아버지를 둔 아이들은 큰소리로 “아빠” 하고 부를 자유도 없나보다’라고.

하지만 그녀는 절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렇게 말한다.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나서 열심히 살아보련다. 남편이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니고 당당하게 노동자의 양심을 지키며 살다가 수배의 몸이 되었으니 많은 남편 동료들과 가족들이 함께 해 줄 것이리라.”

애잔한 감동

위와 같은 세 가지 이야기 말고도 여러 가지 소중한 이야기가 이 책에는 담겨져 있다. 특히 단편소설 「세발 자전거」는 나에게 쓰라림과 함께 애잔한 감동을 준 작품이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더 말하지 않겠다. 직접 읽어보고 내가 느꼈던 것들을 당신도 느껴보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사회의 모순을 헤쳐나가기 위해 역사·철학·경제를 담고 있는 책을 읽는 것은 분명히 중요하다. 하지만 이와 함께 현재 이 땅에서 살고 있는 노동자·민중의 생생한 삶을 아는 것 또한 중요하다. 그래야 그들과 함께 ‘참 좋은 세상’을 위하여 투쟁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조금이나마 노동자·민중의 삶을 알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