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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역사 논쟁(총괄):
허위와 위선으로 가득찬 민족주의 선동

지난 달 23일 중국 외교부 아시아 담당 부부장 우다웨이는 한국 정부에 “교과서를 개정할 때 고구려사를 포함시키지 않겠다”는 구두약속을 했다. 이에 따라 중국과 한국의 ‘고구려 역사 전쟁’은 당분간 중단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거의 모든 주류언론들은 이 ‘휴전’을 틈타 전열을 재정비할 것을 주장한다. 〈한겨레〉조차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비타협적이고 끈기 있게 중국을 압박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역사 전쟁’은 중단된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봉합된 것뿐이다. 이런 종류의 역사 전쟁은 그 형태를 바꾸면서 얼마든지 반복될 것이다. 중국에 의해서든 일본에 의해서든, 심지어는 한국에 의해서든 말이다.

신화를 역사로 날조하려는 시도들은 단지 질 나쁜 농담으로 그치지 않는다. 중국과 한국의 민족주의 역사관 사이의 충돌도 그렇다. 이런 종류의 ‘역사 전쟁’은 퇴행적인 민족주의 선동을 통해 내부의 갈등을 봉합하고 통제하려는, 허위의식으로서 지배 이데올로기 구실을 하고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1990년대부터 강화된 ‘현대적 중화민족의 재창출’이라는 거대한 프로젝트의 일부다. 이것은 고대 신화 속 황제들을 역사로 끌어들이는 ‘탐원공정’에서 절정에 이른다.

중국이 민족주의적 역사관을 강화하는 배경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1989년 천안문 항쟁에서 드러났듯이 시장 개방에 따라 계급 모순이 급속히 심화하고, 그 결과 계급투쟁이 본격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1991년 옛 소련의 해체와 그에 따른 (소수)‘민족 국가’ 분리운동의 충격이 중국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본의 ‘새 역사교과서’를 지지하는 우익들이 모범으로 삼고 있는 것이 한국의 국사 교과서인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역사 전쟁’에 임하는 한국의 민족주의적 역사관도 중국 역사관의 거울 이미지를 만들고 있을 뿐이다. 특히 한국의 우파 민족주의자들과 우파 언론들은 중국의 동북공정에서 ‘간도 영토’ 분쟁이라는 포석을 끌어내 반동적 민족주의를 확대·재생산했다.

지배자들의 민족주의 선동은 허위와 위선으로 가득하다.

한국 정부는 민족주의의 열풍 속에서도 “역사 문제가 한·중 경제협력의 위축이나 북핵 협상의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며, 평범한 사람들의 민족주의 감정이 자본가 계급 일반의 이익을 침해하는 데까지 나가는 것은 원치 않았다.

그리고 우파는 간도 문제라는 현실 가능성 없는 영토 분쟁 문제를 부각시키기 위해 민족주의 선동으로 간도에 살고 있는 조선족을 같은 민족이라고 치켜세웠지만, 조선족 이주 노동자들의 노동권에 대해서는 눈꼽만큼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특히 〈조선일보〉는 “민족공조라면 북한핵처럼 생존권이 걸린 문제도 그냥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은 환상도 떠돌고 있다”며 ‘좌파 민족주의’를 비난했다.

상상 속의 공동체

그러나 이런 현상적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민족주의 선동이 진정으로 누구에게 이득을 가져다 주는가 하는 정치적 문제 말이다. 베네딕트 앤더슨은 민족을 단일하고 제한된 범위의 ‘상상 속의 정치적 공동체’라고 정의한다. 이 정의의 두 가지 결과들은 특히 중요하다.

첫째, 어떠한 민족도 스스로를 인류 전체와 동일시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민족적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노동자들은 자기 민족 이외의 노동자들을 외부인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서 점점 더 통합돼 가는 초민족적 계급으로서 국제 노동자 계급 공통의 이해는 설 땅을 잃게 된다.

노무현과 후진타오는 두 나라가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임을 선언하고 “2천 년 전의 역사 문제로 한·중 관계가 훼손되는 것을 원치 않는” 데 “상호간 깊은 인식”을 나눴지만, 이들에게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한·중국간 노동자 연대의 점증하는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용납될 수 없다.

둘째로 민족은 “단일한 공동체”라고 상상된다. 민족 내부의 불평등과 착취가 얼마든 간에, 민족은 언제든지 깊고 수평적인 관계라고 인식된다. 노동자들이 이런 관계를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스스로 자신들의 착취자와 같은 편에 서는 것이 된다.

물론 노동자들의 민족 의식이 반드시 계급적 갈등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람시가 말했듯이 이중적 의식의 형태로 나타나기가 더 쉽다. 노동과 자본 사이의 적대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민족국가들간의 적대에 비해서 부차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고구려 역사 전쟁”의 이데올로기적 본질은 〈조선일보〉 사설이 분명히 정리해 주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 바탕은 국력이다. … 자강과 부국의 결의 없이는 제대로 대접받을 수 없는 것이 비정한 국제사회의 법칙이다.”

즉, 민족주의 본질은 국민국가 간의 경쟁 체제에 근거하고 있다. 이런 경쟁에서 “자강”과 “부국”의 논리를 넘어서는 ‘노동자들의 계급적 이익’(또는 ‘국익’을 거스르는 반전운동)은 기껏해야 반민족적 ‘집단 이기주의’가 될 수 있을 뿐이다.

한편 오늘날에도 많은 좌파가 사회주의를 포함한 대안 사회가 민족주의와 양립 가능하다고 믿는다는 점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민주노동당은 고구려 문제에서는 한나라당, 열린우리당과 ‘공조’를 하고 있다.

이것은 위험한 태도다. 이런 태도는 노동자들의 이데올로기적 독립성을 추구하지는 않고 오히려, 노동자들로 하여금 ‘민족적 대의’ 앞에서는 노동자도 무조건 함께해야 한다는 지배자들의 포퓰리즘을 강화시킬 것이다. 이 점은 무엇보다 이라크전 반대 운동처럼 국제주의적 대안이 필요한 지금 더욱 강조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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