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모델’에 대한 관심이 높다. 그 이유 하나는 독일이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노동과 자본이 ‘사회적 합의’를 통해 대타협을 이룬 덕분이라고들 한다.(박근혜 정부는 ‘사회적 합의’보다는 ‘사회적 대타협’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 듯하다.)

그러나 지난 20년간 독일 노동자들의 처지는 점점 악화됐다. 노사 간 사회적 합의 제도 전통이 노동자들로 하여금 저항에 나서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 구실을 했기 때문이다.

제2차세계대전 종전 후 수십 년 동안 독일에는 노사가 협력하는 ‘라인 모델의 합의 제도’가 있었다. 1970년대 초까지 전후 장기 호황기에 노동조합은 오늘날의 복지국가를 이룩하는 데 중요한 요소였다. 사회 부의 많은 부분이 기업주들에게 갔지만, 경제 성장 덕분에 대중의 생활수준도 현저하게 개선됐다.

그러나 전후 호황은 1970년대 중반에 끝났다. 그 후 평균 성장률은 떨어졌다. OECD 국가들의 평균 경제성장률은 1969~73년에 4.9퍼센트였다. 그 후 1973~79년에는 2.8퍼센트로, 1978~90년에는 2.6퍼센트로, 1990~97년에는 2.4퍼센트로 떨어졌다.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이 거의 다 이런 불황을 겪었다. 국제 경쟁이 심해졌다. 이런 경쟁 속에서 독일 정부와 기업들은 사회적 합의 제도를 내던지고 노동조합 운동을 공격하며 이윤을 증대시키려 했다. 특히, 2000년대 초 입안돼 이후 대연정(기독민주당·사회민주당 연정, 2005~09년) 기간에도 지속된 슈뢰더(사회민주당·녹색당 연정, 1998~2005년)의 ‘어젠다 2010’이 노동조합 공격의 일환이었다. 

슈뢰더의 ‘어젠다 2010’의 핵심은 하르츠법 Ⅰ~Ⅳ였다. 하르츠법의 목표는 “경직된” 독일 노동시장을 대폭 “유연화”하고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었다. 실업급여를 대폭 삭감하는 내용도 포함됐다.(하르츠법의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본지 115호 ‘독일 노동운동가가 말하는 시간제 일자리의 진실’을 보시오.)

‘어젠다 2010’과 하르츠법은 사용자의 노동자 공격을 뒷받침했다. 이런 공격은 노동자들에게는 참담한 결과를 안겨 줬다. 2000년대 다수 노동자의 실질임금이 하락했다. 1996~2006년 독일의 평균임금은 11.4퍼센트 증가했다. 그러나 같은 기간에 생활(유지)비가 15퍼센트 올랐으므로, 결과적으로 실질임금은 하락한 것이다.

오늘날 독일에서 거의 7백만 명이 ‘미니잡’으로 일한다. 미니잡으로는 많이 받아야 월급 4백 유로(약 53만 원)밖에 안 된다. 그래서 미니잡에 고용된 사람 중 2백만 명 이상은 다른 일자리도 병행한다.

독일 정부는 하르츠법이 시행된 2000년대 중반 이후 (공식) 실업률이 감소했다고 선전한다. 그러나 실상은 그리 좋지 않다. 저임금·저질 일자리가 늘어난 덕분에 실업률이 감소한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 생긴 일자리는 대부분 파견직과 시간제였다. 시간제로 고용된 노동자의 수는 1994년 6백50만 명에서 2005년 1천1백20만 명으로 늘었다. 오늘날 독일 노동자 4명 중 1명은 시간제 일자리에서 일한다. 독일 금속노조에 따르면, 파견 노동자는 1백만 명이 넘는다. 총 고용 인구 중 파견 노동자의 비중은 1990년대에는 0.4퍼센트였지만 2010년에는 2.3퍼센트로 증가했다. 파견 노동자 10명 중 9명은 시급이 7유로도 안 된다.(독일 노동조합이 요구하는 최저임금은 시급 8.5유로이다.)

전일제라고 해서 사정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독일 서비스노동조합에 따르면, 베를린 시와 브란덴부르크 주에서 일하는 미용사들은 시급이 2.75유로이고 일주일에 39시간 일한다. 전일제 일자리인데도 월급이 5백 유로(약 66만 원)도 안 되는 것이다. 오죽하면 1백30만 명이 일을 하면서도 실업급여Ⅱ를 받아 임금을 벌충할까.

이게 전부가 아니다. 2008년 세계경제 위기 이후 사용자들은 공공서비스와 일자리를 더욱 공격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노동조합의 중요한 임무 하나는 사용자의 공격에 맞서 조합원의 처지를 방어하는 것이다. 그러나 독일 노동조합은 대체로 사회적 합의 제도에 얽매여 제구실을 하지 못했다. 그리스 등지에서 노동조합들이 파업 등 대중 투쟁을 벌이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독일 노동조합은 잘 조직돼 있지만 투쟁 준비 상태는 매우 취약하다. 2008년 노동자 1천 명당 파업 일수는 5.2일이었다. 국제적으로 매우 낮은 수준이다. 이것이 독일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이 삭감돼 온 주요 원인이다.

기업 경쟁력 논리

독일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투쟁을 준비하지 않고 저임금 저질 일자리 확대와 외주화를 받아들였다. 기업 경쟁력과 국가 경쟁력의 강화라는 명분이었다.

2008년 임금협상에서 금속노조 지도자들은 “일자리 안정”을 위해서라며 임금인상 요구를 포기했다. 정부와 기업은 이미 오래전에 사회적 합의를 내던졌고, 앞으로도 임금·일자리를 계속 공격하리라는 것이 명백한데도,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여전히 사회적 합의를 지향하는 정치에 매달렸다.

그러나 노동조합이 ‘기업 경쟁력 살리기’를 위해 임금인상 요구를 자제하면, 노동자들 사이에 임금·복지 인하 경쟁이 붙게 된다. 한 기업이 임금을 삭감하면 경쟁사의 노동자들도 삭감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압박을 받기 때문이다. 국가 간에도 마찬가지이다. 독일 노동자들의 실질임금 삭감은 경쟁국 노동자들에게도 임금과 복지 삭감 압박을 가한다. 결국 두 나라 노동자들 모두가 더 많이 착취받게 된다. 기업 경쟁력이나 국가 경쟁력을 강화할 필요성을 인정하고 들어가면 노동자들은 항상 질 수밖에 없다.

한편, 이런 (계급 협력) 정치는 노동조합의 투쟁 기능을 약화시켜 왔다. 독일 노동운동이 약한 것은 노동시장 ‘개혁’과 그로 말미암은 고용 구조 변화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단념 정치’에도 큰 책임이 있다. 그래서 “임금 삭감은 일자리를 보호하지 못한다”는 구호도 등장했다. 많은 조합원들이 조합원의 이익도 지키지 못하는 노동조합에 조합비를 왜 내야 하는지를 종종 묻는다.

노동조합마다 편차는 있지만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여전히 정치적 개인적으로 사회민주당(SPD)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2000년대 두 번의 연정(사민·녹색당 연정과 기민·사민당 연정) 동안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공공연한 목표는 공공서비스와 실질임금 삭감을 감수하고서라도 독일 자본주의의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정부는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지지와 지원을 얻었다.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정부가 시위나 파업으로 압박을 받지 않게 하려고 뭐든 했다.

이런 정치에 반대하는 저항도 있었다. 2007년 사회민주당 왼쪽에서 좌파 개혁주의 정당인 좌파당(디링케)이 결성된 것도 이런 배경에서였다. 독일 노동자들의 저항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다루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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