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달간 제국주의의 위기를 드러내는 사건들이 잇따라 벌어졌다. 연초 우크라이나에서 서방과 러시아가 충돌했다. 7~8월에는 이스라엘이 50일 동안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를 공격하며 2천 명이 넘는 팔레스타인인을 학살했다. 미국은 8월 초 이라크에서 ‘이라크·시리아 이슬람 국가’(이하 아이시스)를 공습하기 시작해 지금은 시리아로까지 확대했다. 한편, 동아시아에서도 국가 간 경쟁이 꾸준히 격화되고 있다.

하나같이 끔찍한 일들이다. 그러나 세계 자본주의 질서를 주도하는 미국 지배자들 처지에서는 이 사건들의 우선순위가 다르다.

미국 지배자들에게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폭격은 그중 가장 부차적이었고, 위기라기보다는 일상적 조정 과정이었다. 비록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고, 전례 없이 큰 규모로 항의 행동에 나섰지만 말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미국 지배자들에게 좀 더 중요하고, 아이시스의 등장과 성장에 대응하는 문제는 우크라이나 사태보다 더 중요하다.

동아시아에서 중국과의 대결은 미국 지배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이지만, 오히려 중동 전쟁에 빨려 들어가고 있다. ⓒ사진 출처 국방부

그러나 동아시아에서의 갈등이 비록 아직 완연한 위기로 발전한 것은 아니지만 중국의 부상을 배경으로 벌어지고 있으므로 미국 지배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아이시스의 성장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인데, 이는 오늘날 세계 질서가 매우 가변적임을 보여 준다. 이는 주요 자본주의 열강 사이의 힘 관계가 바뀌고 있어서다. 이런 상황에서는 강대국들 자신도 전혀 예상치 못한 전쟁으로 빨려 들어갈 수 있다. 1백 년 전 제1차세계대전이 정확히 그런 사건이었다. 지금 오바마가 중동에서 공습을 벌이면서도 별로 내켜 하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부 좌파들은 미국이 시리아와 우크라이나의 비우호적인 정권들을 무너뜨리려고 이 일들을 모두 주도면밀하게 기획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들은 미국이 우크라이나나 중동에 군대를 보내기를 꺼리는 것도 단지 그런 척하는 것일 뿐이라고 본다.

이런 관점으로 사태 전개를 보면, 지정학적으로 미국에 맞서는 국가들을 진보적이라고 여기고, 따라서 지지해야 한다는 진영 논리로 쉽게 빠질 수 있다. 그래서 우크라이나의 친러 세력 일부를 “혁명적 세력”이라고 치켜세우거나, 중동에서 이란·시리아 정권을 지지하거나, 더 일반적으로는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며 러시아와 중국에 기대는 오류를 범하는 좌파가 많다.

물론 그동안 미국이 경제적·정치적으로 세계를 지배하려고 공세적으로 개입해 왔던 것은 사실이다. 냉전 이후 자신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모델을 퍼뜨린 것, 유럽의 동쪽으로 나토의 세력을 확장한 것 등이 모두 그런 개입의 일환이었다. 또한 미국은 2003년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이라크뿐 아니라 시리아·이란 정권을 바꾸려 했다.

그러나 오늘날 중동의 위기는 오히려 그런 개입이 실패해서 빚어진 것이다. 여기에 아랍 혁명과 이에 맞선 반혁명도 중첩돼 있다. 오바마는 이를 잘 알고 있고, 그래서 현재 미국의 중동 개입은 본질적으로 방어적인 것이다. 물론 방어적이라고 해서 결코 덜 해악적인 것은 아니다.

오늘날 제국주의 이해하기

좌파들이 진영 논리에 빠지는 데에는 이론적 약점도 관련이 있다. 단순하게 제국주의를 미국의 세계 지배로 환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제국주의는 다수의 세계 열강이 참여하는 지정학적  경쟁이다. 이미 20세기 초 레닌을 비롯한 고전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당시의 제국주의가 여러 제국 간의 경쟁을 수반한다는 점에서 이전 시대의 제국주의와 다르다고 봤다.

이런 경쟁은 자본주의 발전의 논리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에서 자본은 이윤을 재투자하면서 규모가 더 커지고(집적), 파산한 다른 자본을 인수·합병하면서 소수만 남는(집중) 경향이 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자본은 일국적 규모를 뛰어넘어 세계적 규모로 경쟁하게 된다. 이때 자본은 해외에서 자신의 이익을 지키려고 자국 국가에 의존한다.

마찬가지로, 국가도 다른 국가와의 지정학적 경쟁에서 이기려면 경쟁국보다 우월한 무기와 군수물자를 생산해야 한다. 그래서 자국 자본에 의존한다.

이처럼 국가와 자본은 각자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서로 의존한다. 그 결과 자본주의에서 지정학적 경쟁은 이전 시기보다 더 치열하게 벌어진다.

이처럼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보면, 제국주의는 자본주의의 시장 경쟁이 국가 간 지정학적 경쟁과 결합되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레닌은 자본주의가 불균등하게 발전한다고 지적했다. 발전 과정에서 어떤 나라는 앞서고 어떤 나라는 뒤쳐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본주의 국가들은 모두 대등하게 경쟁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 사이에 모종의 위계적 체계가 있다.

자본주의가 불균등하게 발전한다는 바로 이 이유 때문에, 국가들 사이의 서열은 때때로 바뀐다. 새로 부상하는 후발 주자들이 때때로 기존의 선진국을 제치고 우위에 선다. 자본주의에서 새로운 갈등과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배경이다.

이처럼 자본과 국가들의 세력관계는 끊임없이 바뀐다. 그러나 이 과정을 통합적으로 조율할 수단은 없다. 그래서 ‘초국적 자본들의 항구적이고 평화로운 통합’이 불가능하다.

20세기 전반부에 벌어진 양차 세계대전은 그전까지 가장 앞선 자본주의 국가였던 영국을 후발 주자인 미국과 독일이 밀어내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오늘날에도 미국과 중국 사이의 상대적 세력균형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오늘날 많은 좌파는 이런 고전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제국주의 분석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여기에는 두 가지 중요한 착각이 작용했다. 첫째, 냉전 시대 사고의 유산이다. 많은 좌파들이 소련을 “사회주의” 국가나 “변질된 노동자 국가”나 모종의 “탈자본주의” 국가로 봤다. 그래서 냉전이 자본주의적 제국주의 양대 세력 사이의 경쟁임을 보지 못했다. 러시아가 체첸의 독립 운동을 잔혹하게 탄압하는 지금도 일부 좌파는 러시아를 반(反)제국주의 국가로 여긴다.

둘째, 많은 좌파들이 냉전 종식 이후 이른바 ‘단극 체제’가 자리잡았다고 봤다. 물론 냉전 종식 직후 미국의 군사력은 압도적이었고, 다른 모든 국가의 군사력을 합친 것보다 더 컸다. 그리고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중엽에 미국은 경제 호황도 누렸다.

하지만 미국은 그때조차 군사력은 우월하지만 경제력은 상대적 쇠퇴를 겪는 모순에 처해 있었다. 이런 모순은 부분적으로 경제 거품 덕분에 가려져 있었다. 그러나 2000년대 중엽 주택 시장 위기와 함께 거품이 터지고, 비슷한 시기에 이라크에서 미국의 패색이 짙어지면서 미국의 약점이 드러났다.

세계 경제 위기에 직면한 뒤에도 미국 등 선진국보다 신흥국의 경제가 더 빠르게 회복됐다. 2007~12년 선진국 경제는 평균 3퍼센트 성장했지만, “신흥 시장”이라 불리는 신흥 개발도상국 경제는 31퍼센트 성장했다. 특히, 중국 경제는 56퍼센트 성장하면서 세계 2위로 성장했다. 오늘날 중국은 세계 제조업 생산, 대외 수출, 에너지 소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처럼 경제 성장에서 차이가 발생하자 미국과 다른 국가 사이의 군사력 격차도 좁혀지게 됐다. 비록 미국의 군비 지출 총액은 여전히 다른 국가를 압도하지만(2013년 기준으로 미국은 6천4억 달러, 2위 중국은 1천1백22억 달러), 2008~13년 미국의 순 국방비 지출이 0.1퍼센트 늘 때 중국은 43.5퍼센트 늘었다.

하지만 중국 국방비가 2020년대 중반 이후 미국과 맞먹을 것이라는 일각의 예측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현실이 너무 복잡하다. 중국의 경제 성장이 지금 같은 속도로 유지될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 경제도 위기의 결과로 그 성장이 점차 둔화하고 있다. 성장 전망과 별도로 미국 경제가 중국 경제보다 여전히 훨씬 더 크다는 것도 봐야 한다. 미국과 중국의 인구 차이(미국 3억 명, 중국 14억 명)를 감안하면 그 격차는 더 벌어진다.

물론 경제력의 상대적 분포가 바뀌면서 지정학적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있다. 최근 우크라이나를 둘러싸고 벌어진 미국·유럽연합과 러시아 사이의 갈등도 이를 생생하게 보여 줬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 때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동아시아다. 각각 세계 2, 3위의 경제 대국인 중국과 일본이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열도)를 놓고 갈등을 빚고 있다. 대만·베트남·말레이시아·필리핀은 난사군도에서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다.

아시아 각국이 벌이는 영유권 분쟁의 근저에는 남중국해가 물류 수송의 요충지라는 요인이 있다. 미국은 제2차세계대전에서 일본에 승리한 이래 이 해역을 지배해 왔다. 그러나 중국은 자신의 근해이기도 한 이 남중국해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밀어내려 한다. 그래서 중국은 특히 해군력을 빠르게 증강시키고 있다.

그러나 군사력을 키우는 것은 중국만이 아니다. 일본·남한·인도네시아·베트남 등 아시아의 사실상 모든 국가가 군사력, 특히 해군력을 키우고 있다. 특히 일본은 2012년 아베가 정권을 잡은 이후 아시아에서 반(反)중국 연합의 선도자를 자임하고 있다. 다른 지역과 달리 남중국해 일대에서는 세계적 다극화가 외교적·경제적 측면을 넘어 군사적으로도 진행중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전 지구적 제국이라는 부담

이처럼 아시아에서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해지는 것 자체는 미국에게 꼭 나쁜 것이 아닐 수 있다. 오히려 중국의 부상을 우려하는 인근 국가들의 불안감을 이용해 더 많은 국가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길 수도 있다.

오늘날 미국 제국주의가 처한 진정한 어려움은 자신만이 세계 주요 지역(북미, 서유럽, 동아시아, 중동)을 모두 포괄하는 패권국이라는 것이다. 여러 곳에서 동시에 위기가 터져나오면 미국 지배자들은 정신력과 자원을 어느 한 곳에 집중하기 어려워지고, 그래서 무엇 하나 제대로 해결하지 못할 위험이 있다. 지금 미국은 중국의 부상, 러시아가 옛 소련 지역에서 영향력을 되찾으려는 것, 그리고 계속되는 중동 혼란에 대처해야 한다.

이런 동시다발적 과제에 직면한 오바마의 전략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조지 W 부시와 신보수주의자 네오콘이 벌인 전쟁을 끝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2011년 이라크에서 철군했고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철군이 진행 중이다. 오바마의 또 다른 전략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외교력과 군사력을 집중하는 것이다(“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 오바마는 네오콘들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군사력을 사용하는 데 더 신중하다.

그러나 오바마가 이런 전략을 견지하는 것을 방해하는 일들이 있다. 첫째, 아이시스가 이라크·시리아에서 세력을 크게 키우고 있는 것이다. 둘째, 우크라이나를 놓고 러시아와 충돌한 것이다.

그래서 미국은 한사코 우크라이나 사태가 더 큰 양상으로 비화하지 않도록 하는 입장을 취했다. 왜냐하면 미국의 경쟁 상대라는 면에서 러시아는 중국보다 부차적이기 때문이다. 비록 푸틴 집권 이후 러시아가 성장했지만, 여전히 그 영향력은 옛 소련 시절에 비할 바가 못 된다. 또한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미국의 이익은 러시아의 처지보다 훨씬 작다. 이것도 미국이 우크라이나 사태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도록 작용한 요인이었다.

그래서 미국은 유럽연합이 러시아에 경제 제재를 가하도록 압박하는 동시에 러시아와의 대결이 격화하는 것은 막으려 했다. 애초부터 미국은 나토 병력을 일부 보강하는 것을 제외하면 러시아 본토 근처에서 군사적 대결에 나설 생각이 없었다.

힘이 분산된 미국은 러시아를 완전히 굴복시킬 수 없는 처지다. ⓒ사진 출처 백악관

러시아의 푸틴은 이를 간파하고 이용했다. 먼저, 크림반도를 병합했다. 우크라이나 나머지 지역에 대해서는 전면적으로 군대를 보내기보다는 친러 반군에게 정보와 무기를 제공하는 수준으로 개입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정부가 친러 반군을 몰아내려 하자 푸틴은 러시아 정규군을 보내 이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는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면 가만 있지 않겠다는 메시지이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별수 없이 푸틴이 제안한 휴전 협상에 임해야 했다. 이처럼, 비교적 약한 상대인 러시아도 옛 소련 지역에서는 미국과 나토를 조롱할 수 있었다.

중국은 러시아보다 경제가 훨씬 더 크고 역동적일 뿐 아니라 군사력도 더 빠르게 증강시키고 있어서 미국에게는 더 만만치 않은 상대이다. 물론 중국도 러시아처럼 세계적 수준에서 미국과 겨루려 하지는 않는다. 기본적으로 자국 주변 지역에 집중하고 있다. 예컨대, 적어도 지금의 중국은 카리브해 지역의 패권을 노린다거나 유럽 본토에 지상군을 주둔시킬 생각이 없다. 중국은 오직 태평양 서쪽에서 미 해군을 밀어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미국에게는 부담이다.

중동이라는 미국의 수렁

미국이 이런 중국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앞에서 살펴봤듯이, 미국은 군사력이 상당할 뿐 아니라, 외교적으로도 중국의 부상을 우려하는 아시아 국가들을 움직일 잠재력이 있다. 그러나 그러려면 자신의 자원과 정신력을 동아시아에 집중해야 한다.

아이시스의 등장과 성장은 바로 이것을 하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는다. 아이시스는 중동의 두 가지 상황이 맞물리면서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첫째, 미국의 이라크 점령이 처참하게 실패하면서 아주 종파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시아파 정부가 이라크에 들어선 것이다. 이라크 정부는 전체 인구의 30~40 퍼센트를 차지하는 수니파 주민들을 소외시켰다. 이에 대한 수니파 주민의 불만 덕분에 아이시스는 이라크의 주요 도시를 비교적 쉽게 점령할 수 있었다.

둘째, 시리아 정권이 2011년 시작된 시리아 혁명을 종파 간 내전으로 비튼 것이다. 그 덕에 종파주의적 세력인 아이시스가 시리아 동부 지역에서 크게 성장할 수 있었고, 이를 발판으로 이라크에 개입할 수 있었다.

아이시스는 처음에는 ‘알카에다 메소포타미아 지부’로 출범했지만 이내 알카에다와는 매우 다른 형태로 성장했다. 알카에다는 통일된 위계 체계와 조직을 갖추거나 단일한 지도부에 의해 운영되기보다는 세계의 여러 지하드 단체들을 지원하는 느슨한 기구에 더 가깝다. 그러나 아이시스는 스스로 ‘이슬람 국가’라고 부르는 것에서 드러나듯이 중앙집권적인 국가를 지향한다.

아이시스의 사상은 매우 반동적이지만, 초국적인 이슬람 정치 공동체라는 낭만적 전망 덕분에 여러 나라에서 많은 지지자들을 끌어들였다. 아이시스는 자신이 장악한 지역에서 아주 현대적인 회계 제도와 관료 제도를 수립하고 있다. 또한 수입원을 인질 보상금에서 지역 상인에게서 징수하는 세금과 석유 판매 수익 등 더 전통적인 수단으로 점차 확대하고 있다.

오바마는 이런 아이시스가 국가로 성장하지 못하게 하고 “궁극적으로는 뿌리 뽑겠다”고 한다. 그러나 오바마는 두 가지 모순에 부딪혀 있다. 첫째, 미국의 전쟁을 끝내겠다고 했던 약속을 모양새만이라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바마는 한사코 미군은 아이시스와의 전투에서 공습만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미 이라크에 파병된 군인들은 군사 자문단일 뿐이라고 말한다.(그러나 베트남전도 미국의 ‘군사 자문단’ 파견으로 시작됐다.)

오바마의 이런 모순은 다시 둘째 모순으로 이어진다. 바로 미 지상군을 대신할 대안이 마땅히 없다는 것이다. 이미 국방비를 줄이고 있는 영국이나 나토 소속 국가들에게 지상군 파병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오바마는 중동 지역의 군대를 동원해야 한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의 걸프해 연안 왕정들은 이 지역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런데 이 국가들을 동원하는 데에는 정치적 난관이 있다. 바로 이 나라들이 시리아 혁명을 종파 간 내전으로 비틀어 아이시스가 성장하도록 만든 장본인들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걸프해 연안 왕정들은 시리아에서 영향력을 키우려고 자신과 같은 종파인 수니파를 지원했다(아사드 정권은 시아파에 속한다). 그러나 이들이 제공한 무기와 돈의 상당 부분은 결국 아이시스 등 수니파 이슬람주의자들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게다가 아이시스는 이데올로기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와하비즘(수니파 중에서 특히 반동적인 종파)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런 난관들 때문에 미국은 걸프해 연안 왕정들의 지상군에 의지해서 아이시스를 제대로 물리칠 수 있을지 확신하기가 힘들다.

미국이 기댈 수 있는 또 다른 선택지는 터키이다. 하지만 터키는 아이시스와의 관계가 모호하다. 최근 터키는 시리아에 개입하라고 요구하는 쿠르드노동자당(PKK)의 거점을 전투기로 폭격했다.

부패한 이라크 정부군에 기댈 수도 없다. 이라크 정부군이 이라크 주요 도시를 버리고 달아났고, 그 덕에 아이시스는 미국이 이라크에 제공한 현대식 무기와 차량을 입수할 수 있었다.

오바마가 언급한 ‘시리아의 온건 반군’인 자유시리아군은 군사적으로 이슬람주의자들에게 밀려난 상태이다. 또한, 시리아 혁명 과정에서 진정한 대중운동 기구들이 등장했지만 자유시리아군 상층 지도부는 걸프해 연안 왕정들과 서방 세력의 꼭두각시라는 주장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남은 선택지는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이다. 원래 아사드 정권은 반정부군을 분열시키려고 아이시스와의 전투를 피하고 세속적인 반군에 공격을 집중해 왔다. 그런데 미국이 아이시스 공습에 나서자 아사드 정권은 미국의 개입을 지지하며, 아이시스를 무너뜨리려면 자신과 손잡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미국의 정책 결정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부 인사들은 아이시스에 맞서려면 아사드 정권과 전술적 동맹을 맺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국이 아사드와 손잡으면 현재 공습에 참여하고 있는 걸프해 연안 왕정들의 반발을 살 뿐 아니라, 아이시스가 자신을 ‘시아파와 서방의 공격에 맞서 수니파를 지킬 유일한 세력’이라고 내세우는 명분을 더 강화해 줄 뿐이다.

이처럼, 미국은 썩 내키는 대안 없이 중동에서의 군사 개입으로 끌려 들어가고 있다.

오늘날 중동 전역의 상황은 매우 가변적이다. 미국의 이라크 점령 실패와 아랍 혁명이 이 지역의 모든 지배자들을 약화시켰기 때문이다.

오바마는 이런 흐름을 되돌리려고 하지만 성공할 확률은 높지 않다. 오바마의 개입은 수많은 인명 피해를 양산할 뿐 아니라, 아이시스를 약화시키기보다는 오히려 강화시킬 공산도 크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인 학살, 이라크·시리아에서 벌어지는 종파 간 분쟁, 이집트에서 반혁명 세력의 권력 수복, 미국이 주도하는 공습 등의 일들은 이 지역에서 아랍 혁명이 반혁명에 부딪히면서 비집고 나온 것이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사회혁명이 일어나지 않으면 야만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고 했다. 그 뜻을 알려면 오늘날 중동을 보면 된다. 아랍 혁명이 다시금 전진해야 할 필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혁명가들은 오바마의 전쟁에 반대할 뿐 아니라, 최근 미국이 중동에 개입한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 바로 냉전 이래 최대 규모로 진행되는 제국주의 열강 간 경쟁이 되살아나고 있는 맥락 말이다. 혁명가들은 미국과 그 동맹에 반대해야 할 뿐 아니라, 미국의 경쟁자들을 미화하는 것에도 반대해야 한다. 여전히 세계 수준에서는 미국이 유일한 패권국이지만 지역 수준에서는 중국과 러시아의 도전을 받고 있고, 서방 진영 안에서도 독일과 일본이 다시금 자기 목소리를 강하게 내고 있다.

이런 복잡한 경쟁 구도를 이해하는 것은 실천적으로 중요한 함의가 있다. 단지 미국과 경쟁한다는 이유로 그 국가들을 진보적이라고 여기면, 계급 갈등이 아니라 국가 간 갈등을 더 주된 것으로 여기는 오류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은 서로 다투지만, 노동계급에 대한 착취를 기반으로 한다는 공통의 이해관계도 있다. 제국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은 제1차세계대전 속에서 레닌과 로자 룩셈부르크가 그랬듯이 자본에 맞서 노동계급을 단결시키는 데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이 글은 다음 글을 원용했다. Alex Callinicos, “the multiple crises of imperialism”, International Socialism 144(2014년 가을). www.isj.org.uk 김종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