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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로드 비정규직 파업 평가:
사측의 공격을 잘 막아냈다, 다만 곱씹어 볼 교훈도 있다

티브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4개월간의 파업 끝에 사측의 공격을 막아내고 일부 양보를 얻어냈다.

노사는 9~10만 원 임금 인상, 근속수당 신설 등에 합의했다. 또 위험한 작업을 거부할 수 있게 하는 등 그간 공문구에 불과했던 산업안전 조항들을 보강했다. 사측은 ‘지난해에 노조에 너무 많이 양보했다’며 노조 가입 범위 축소, 근로시간면제 단축, 노조 사무실 축소 등을 요구했는데 노조가 근로시간면제 한도를 3천 시간 줄이는 것에 합의하긴 했지만, 나머지는 대체로 지난해 합의했던 노동조합 활동을 보장받게 됐다. 이로써 지난해 3월 노조를 설립한 티브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처음으로 단협을 갖게 됐다.

4개월간 굳건히 파업·농성을 이어간 티브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 7월 4일 티브로드 원청 앞에서 노동자들이 "고맙다"며 서로를 안아주고 있다. ⓒ이미진
파업 농성이 길어지면서 생활고, 육체적 피로 등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노동자들은 투쟁을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8월 19일 티브로드 원청 앞. ⓒ이미진

노동자들은 원청인 태광티브로드 앞에서 노숙농성을 하며 “일단 파업을 접고 논의하자”는 사측에 맞서 4개월간의 파업을 이어갔다.

노동자들은 투쟁 속에서 맺은 첫 단협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한다. “사측은 지난해 성과를 다시 빼앗으려 했어요. 사측의 개악안을 물리치고 노조를 지켜낸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을 토로하는 노동자들도 있다. “4개월 파업의 성과라고 하기에는 아쉽고 부족합니다. 특히 임금 측면에서는 아쉬워요. 대출 받아가며 싸웠는데”, “우리가 요구한 산업안전을 위한 인력 충원, 고객센터·기술센터 통합, 복지 기금 등에서 사측을 물러서게 하지는 못했어요. 생계비만 있었어도 파업을 더 하자고 했을 겁니다.”

지난해와 달리 사측은 매우 강경한 태도를 취했다. 6월 10일 노동자들이 경고 파업을 하자 사측은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또 지난해 자신들이 너무 많이 물러섰다며 노조의 양보를 종용하고 대규모 대체인력을 투입해 파업을 무력화시켰다. 케이블방송과 IPTV 업체들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공격적 영업을 하고 있는 티브로드 사측은 더는 노조에 밀려서는 안 된다고 마음먹은 듯했다.

그러나 지난해 파업 승리를 경험했던 노동자들은 결코 사측의 탄압에 굴복해 지난해의 성과를 되돌릴 수 없다는 투지로 단호하게 맞섰다. 함께 파업에 들어갔던 씨앤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복귀한 후에도 한 달을 더 버티며 투쟁하자 사측은 일부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다.

아스팔트에서 뜨거운 햇볕과 비를 맞으며 생활하면서도 티브로드 노동자들은 굳건히 농성을 이어갔다. 9월 2일 농성 투쟁 66일 차. ⓒ이미진

지지를 모으기

티브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간접고용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런 점에서 민주노총은 이 투쟁에 대한 연대를 건설하면서 간접고용 문제로 전선을 넓히고 투쟁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민주노총이 계획보다 앞당겨 간접고용 투쟁을 위한 연대체를 건설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긴 했지만, 뒤늦고 부족한 점이 없지 않다.

또, 사측이 직장폐쇄를 하며 조합원들을 고립시키려 한 만큼 티브로드 비정규직 노조는 전체 티브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지지를 얻고 투쟁에 참여시키기 위해 더 노력해야 했다. 지난해 파업 중에 노조는 전체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 열망을 대변했고, 미조직 센터들을 돌아다니며 지지를 호소했다. 이런 노력으로 파업 기간에 조합원이 늘고 지방의 새로운 센터들이 노조에 가입했다. 이것은 조합원들의 자신감을 높이고 사측을 압박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했다.

그런데 올해는 이런 노력보다는 조합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복지기금 확대가 더 중요하게 여겨진 면이 있다. ‘조합원이 더 나은 대우를 받아야 비조합원이 노조에 가입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이것은 사측이 조합원과 비조합원을 이간질하기 쉽게 만든다는 점에서 효과적이지 않다.

노동조합이 전체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위해 싸울 때 노동자들은 노조에 가입할 의의를 느끼고 조합원들도 자부심을 갖고 투쟁할 수 있다. 여전히 조직률이 낮은 상황에서 조합원 확대는 이후 투쟁에도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진정으로 무엇이 조직 확대에 효과적인지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노조 집행부가 더 민주적으로 조합원들의 의사를 수렴해야 했다고 지적하는 노동자들도 있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문자로 농성을 해제한다고 통보를 받았어요. 아르바이트를 구해서라도 장기 투쟁에 대비하라는 취지였지만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며칠 뒤 잠정 합의했다는 소리를 듣게 됐죠. 합의안에 대한 설명도 나중에서야 들을 수 있었어요.”

노동조합이 활력을 유지하려면 민주주의가 매우 중요하다. 투쟁을 포함한 노동조합의 활동에 조합원들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될 수 없다면 조합원들은 노동조합에 무관심하거나 냉담해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노동조합 민주주의는 매우 중요하다.

지난 4개월의 파업 동안 티브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보여 준 투지는 간접고용 비정규직 투쟁의 가능성을 다시금 보여 줬다. 현대·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불법파견 재판에서 승소하고, SK브로드밴드·LG유플러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서면서 간접고용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다. 노동운동은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투쟁을 전진시켜야 한다.

간접고용 비정규직 투쟁의 가능성을 다시 한번 보여준 티브로드 노동자들. ⓒ이미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