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이라크 주재 미국 대사는 당시 이라크 점령이 수렁에 빠지고 있다는 것을 자인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는지 모른다. 수니파와 시아파 사이의 갈등은 단지 이라크에 국한되지 않을 수 있다. 이란이 시아파를 지원하고, 수니파 아랍 국가들이 같은 수니파를 지원하게 될 지 모른다. [단지 이라크가 아니라] 이 지역 전체가 아주 오랫동안 전쟁에 휘말릴 … 수 있다.”

8년이 지난 지금, 현실은 정확히 그렇게 됐다. 미국이 조장하고 주변 국가들이 거든 종파 갈등 속에서 ‘이라크·시리아 이슬람국가’(이하 아이시스)가 국경을 뛰어넘어 성장했고, 미국은 중동 전쟁으로 또다시 빨려 들어가고 있다.

아이시스는 다른 종교는 물론 이슬람교 시아파의 사원까지 폭파할 정도로 지독하게 종파적이다. 또한, 자신들을 지배자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종파를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살해할 정도로 잔혹하고 억압적이다.

어떻게 이런 세력이 오늘날 중동에서 국가 수립을 표방할 정도로 성장했는지를 이해하려면, 중동 위기의 심각성과 아이시스에 필적할 혁명적 대안이 충분치 않았다는 것을 봐야 한다.

누적된 중동 위기

아랍 지배자들은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지지하고 도왔다. 또한 그들은 자국에서 장기 독재를 실시하며 신자유주의 정책을 시행했다. 이 모든 것은 대중의 불만을 키웠다.

2000년대 후반 세계경제 위기의 충격이 가해지자, 아랍 곳곳에서 혁명이 터져 나왔다. 특히 2011년 아랍 세계의 중심지인 이집트에서 30년을 통치한 친미 독재자 무바라크가 타도되자 아랍 전역이 혁명의 열기에 휩싸였다.

아랍 혁명은 아이시스가 뿌리를 둔 알카에다 세력의 정치적 입지를 좁히는 듯 보였다. 알카에다가 주장하는 소수의 테러가 아니라, 대중 행동이 권력자들을 끌어내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알카에다 지도자들은 변화된 중동 정세에 발붙이려고 기존의 엘리트주의적 어조를 바꿔야 했다. 그러나 동시에 알카에다 지도자들은 이슬람 율법을 따르지 않는 서구식 민주주의만으로는 “대중 혁명으로 얻은 모든 것이 도둑질당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 자본주의 내 개혁을 추구하는 이슬람주의 단체인 무슬림형제단(알카에다와 노선이 전혀 다르다) 경향은 아랍 혁명의 수혜를 입어 이집트·튀니지·리비아에서 정권을 잡거나 국가 기구에 참여했다.

시리아와 이라크

이들은 혁명을 더 전진시키는 것이 아니라, 기존 지배계급 및 서방 제국주의와의 거래를 통해 체제를 안정시키려 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재앙이었다. 특히 이집트에서 선출된 무슬림형제단 정권이 군부 쿠데타로 쫓겨 나고 미국·이스라엘·사우디아라비아 등이 군부를 후원한 것은 알카에다의 주장을 입증시켜 주는 듯 보였다.

그러나 노동자 운동이 정치적 혼란을 겪을지언정 건재한 이집트에서 아이시스는 지금도 유의미한 정치 세력이 되지 못한다.

한편, 이집트·튀니지와 달리 시리아에서는 노동계급의 힘이 충분히 발휘되기 전에 정권이 정국을 군사적 대결로 몰아갔다. 내전이 길어지면서 알카에다 등 지하드 세력은 군사력과 조직력을 바탕으로 시리아인들 사이에서 성장했다. 이들 중에서도 가장 종파적인 세력이 ‘알카에다 이라크 지부’와 통합해서 지금의 아이시스가 생겨났다.

이라크에서는 미국의 점령 직후부터 점령과 친미 정권에 반대하는 운동이 분출했다. 그러나 이 운동은 노동자 운동이 아니라 종교 지도자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미국은 이런 약점을 파고 들어 종파 갈등을 부추겨서 운동을 분열시켰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아이시스의 전신 격인 ‘알카에다 이라크 지부’는 종파적 행태 때문에 같은 수니파에 의해 이라크에서 쫓겨날 위기로까지 내몰렸었다.

2012년 말, 이라크 수니파를 중심으로 종파적인 시아파 정부에 반대하는 운동이 벌어진다. 그러나 1년에 걸친 투쟁이 미국을 등에 업은 정권의 탄압 때문에 패배하자 시아파에 대한 종파적 분노를 내세운 아이시스는 이라크에서도 빠르게 성장한다. 이윽고 지난 6월, 이라크 제2의 도시 모술을 장악하고 ‘이슬람 국가’ 수립을 선포한다.

이처럼 아이시스는 이라크와 시리아를 넘나들며, 아랍 혁명이 충분히 전진하지 못하고 노동운동이 허약해서 생긴 공백을 비집고 들어와서 오늘날의 형태로 성장했다.

오늘날 더 중요해진 중동의 연속혁명 대안

따라서 오늘날 중동의 불안정과 아이시스의 반동적 행태에 대한 진정한 해결책은 아랍 혁명을 다시금 전진시키는 것이다. 특히 한사코 혁명을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으로 제한하려 한 개혁주의자들(대표적으로 무슬림형제단)을 뛰어넘을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이집트 등지에서 개혁주의자들이 실패한 이유는 그들이 표방한 이슬람 율법이 문제여서가 아니라 그들이 한사코 자본주의에 도전하기를 꺼리며 노동자·민중의 기대를 배신했기 때문이다. 경제 위기가 심각한 지금 혁명의 요구였던 “빵, 자유, 사회 정의”를 실현하려면 소수가 장악한 생산수단을 빼앗아 이윤이 아니라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운영해야 한다. 즉, 독재자를 타도하기 위한 혁명이 자본주의 체제를 타도하기 위한 혁명으로까지 나아가야 한다.

아랍의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혁명 초기부터 이런 연속혁명론의 관점에서 고군분투해 왔다. 그들은 여러 독재 정권들과 아이시스 같은 반동적 세력이 우위를 점하는 지금도 혁명의 정신과 조직을 지키려고 싸우고 있다.

아랍 혁명의 중심지 이집트에서는 정치적 권리를 위한 저항이 계속되고 있고, 시리아에서는 정부군과 아이시스에 모두 맞서 싸우고 있다.

미국은 중동에서 손 떼라

전 세계 사회주의자들은 이런 노력에 연대해야 하고 현 단계에서는 미국이 주도하는 이라크·시리아 공격에 반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이 아이시스를 물리치겠다고 중동에 개입하는 것은 피에 굶주린 사자가 쥐를 잡아주겠다고 안방으로 들어오는 격이다. 미국은 아이시스보다 수천 배 더 큰 아랍 혁명의 적이다.

게다가 미국의 개입은 시리아·이라크에서 아이시스가 ‘미국에 맞서 수니파를 지킬 세력은 우리뿐이다’ 하고 주장할 명분을 주고 혁명가들을 정치적으로 더 어려운 처지로 내몬다. 자유시리아군 망명 지도부가 (현지 정서와 무관하게) 미국을 지지하자, 아이시스와 알카에다 세력은 다른 저항세력들에 대한 자신의 공격을 반제국주의로 치장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2003년 이라크 침공과 2011년 리비아 공습에서 드러났듯이 미국의 개입은 오히려 인도주의적 상황마저 악화시킨다. 아랍 혁명이 전진하고 아이시스가 아닌 대안이 성장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미국 등이 중동에서 손을 떼고 중동 민중이 스스로 운명을 결정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편, 박근혜는 진작부터 미국의 중동 개입을 재정적으로 지원해 왔고 군사적 지원 가능성도 열어 놓고 있다. 최근 한미 외교·국방(2+2) 장관회의 공동성명에도 “ISIL[아이시스의 다른 이름]의 잔혹성을 규탄하고 ISIL 위협에 맞서 싸우는 국제 사회에 대한 지지”가 포함됐다. 우리는 한국 지배자들이 미국의 전쟁을 지원하려는 것에도 반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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