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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연금:
양보론은 연금 개악 반대 운동 전선을 교란시킬 뿐이다

연세대학교 김진수 교수의 공무원연금 '개혁'안이 관심을 끌고 있다. 김진수 교수는 경실련 사회복지위원장을 지낸 바 있다. 특히 그 안에 담긴 소득재분배 효과를 강조해 진보적 대중의 눈길을 끌었다. 〈한겨레〉는 김진수 교수의 안을 “노조가 끄덕인” 안이라고 크게 부각했다.

김진수 교수는 공무원연금에 상한선(3백50만 원)과 하한선(1백50만 원)을 둘 것을 제안했다. 기여금 상한제를 폐지해 고위 공무원들이 더 많은 기여금을 내도록 했다. 퇴직 후 소득이 생기면 연금을 전액 삭감하자고 한다. 김진수 교수의 안이 고위 공무원들에게 더 불리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김진수 교수는 소득재분배뿐 아니라 재정 안정화도 강조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연금 삭감을 받아들이는 것은 물론이고 ‘하후상박’도 일관성이 없다.

ⓒ이미진

첫째, 그는 모든 공무원 노동자의 연금을 15퍼센트씩 삭감하자고 한다. 심지어 이미 퇴직한 공무원의 연금까지 똑같이 깎자고 한다. 이는 평생 박봉에 시달린 노동자들과 가족까지 쥐어짜는 일이다.

둘째, 연금수급 개시 연령도 65세로 늦춘다. 더 나아가 60세 이전에 연금을 받을 수 있는 노동자들도 당장 60세로 개시 연령을 늦추자고 한다.(2001년 50세였던 연금수급 개시 연령은 2021년까지 2년마다 한 살씩 늦춰지도록 돼 있다.)

셋째, “미래 공무원은 장기적으로 국민연금과 동일한 형태로 가기 위해” 연금을 40퍼센트 삭감하자고 한다.

넷째, 1백50만 원 하한선의 혜택을 보는 노동자는 거의 없다. 가장 연금이 적은 기능직도 평균 월 수령액이 1백59만 원이다. 가입 기간이 짧아 1백50만 원 이하의 연금을 받는 사람은 전체의 5분의 1이 안 된다. 앞으로 몇년 뒤면 임금이 인상돼 그조차 대폭 줄 것이다.

김진수 교수는 정부 안이 “실제 재정 안정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한다. 그리고 자신의 안대로 하면 재정 지출을 훨씬 줄일 수 있다고(2080년까지 5백12조 원) 주장한다. 공무원 노동자들의 연금은 그만큼 더 삭감되는데 말이다.

기여금을 인상하지 않는 것은 ‘재직 공무원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정부도 똑같이 부담금이 올라 “국가의 재정 부담을 불필요하게 증가”시키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김진수 교수의 ‘상박’도 다소 과장된 면이 있다. 직종별로 따지면, 가장 연금이 많은 정무직도 평균 3백15만 원으로 대부분 상한선에 미치지 못한다. 〈한겨레〉는 7백만 원 이상을 받는 고위 공무원은 연금이 절반으로 깎인다고 보도했지만 해당자는 고작 10명이다. 고위 공무원들이 퇴직 후 민간기업에서 거액의 연봉을 받는 것을 고려하면 이는 생색내기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퇴직 후 소득자는 연금을 삭감한다지만 이것도 수급개시 연령(60~65세) 전까지만 적용한다.

따라서 김진수 교수의 ‘하후상박’도 연금 삭감을 전제로 한 하향평준화다. 이는 결코 공무원 노동자들에게 유리한 안이 아니다. 이충재 공무원노조 위원장 등이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은 우려스러운 일이다.

하향평준화

사실 개혁주의 지식인들과 활동가들 사이에서 이런 주장은 낯선 것이 아니다. 상대적으로 안정된 처지에 있는 노동자들이 일부 양보해서 저소득층을 지원하자는 것이다. 노동계급 내 격차는 줄여야 하는데 상향평준화는 불가능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정부의 재정 안정화 논리에 정면으로 맞서지 못한다. 동시에 이에 저항하는 조직 노동자들을 ‘철밥통’ 취급하기도 한다.

예컨대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적자 때문이라도 공무원연금 개혁은 필요하다고 본다” 하고 주장한다. “공무원연금 수령자들의 사회적 지위는 중상위층이다. 그들의 연금 권리를 보존하기 위해서 재정이 많이 들어가고 있다.”

정의당 박원석 의원도 비슷한 입장이다. “적자가 계속 누적돼도 정부가 감당해야 하는가? 지금도 공무원 임금이 박봉인가? 정의당은 공무원연금 개혁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첫째, 재정 지출이 적자를 낳는 근본 이유는 정부의 감세 때문이다. 한국의 복지 재정 지출 규모는 여전히 턱없이 작다. 그렇게 지출을 줄여 누가 이익을 얻었는지도 명백하다. “2008년 GDP 대비 2.8퍼센트 수준의 과격한 감세는 부자들이 내는 세금을 왕창 깎아주고 중산층과 서민들 세금을 대폭 늘린 것이다.”(선대인)

박근혜 정부가 공무원연금 삭감으로 다른 저소득층에게 이익을 줄 리도 없다. 자기 공약이었던 보육과 고교 무상교육 예산조차 전액 미편성하고 담뱃세 등 간접세를 대폭 인상해 전체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둘째, 공무원연금이 지나치게 많은 것도 아니다. 물론 최저생계비도 안 되는 국민연금에 비하면 월등히 나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연금은 최저 생계 유지용이 아니다. 노후의 인간다운 삶을 생각하면 다른 연금들이 공무원연금 수준으로 상향되는 것이 옳다.

물론 국민연금을 공무원연금 수준으로 상향 평준화하자는 주장이 다소 이상적인 얘기로 들릴 수도 있다. 그렇게 하려면 사회의 부를 독점하고 있는 자들에게서 상당한 재원을 거둬야 한다. 오늘날처럼 불황이 장기화하는 시기에 이는 엄청난 수준의 대중 투쟁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한국의 경제 수준에서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 이런 전망을 공유하는 것은 전체 노동자들이 단결해 싸울 수 있도록 돕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반면 하향평준화는 노동계급 전체에게 손해일 뿐 아니라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는 효과를 낸다. 좀 나은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이 정부와 기업주에게 양보하라고 요구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민간기업 수준으로 임금을 인상하고, 퇴직금을 지급하고 노동 3권을 보장하면 연금 삭감을 일부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입장이 있다. 재정 삭감에 혈안이 된 정부가 먼저 노동조건과 임금을 개선해 주리라 기대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맞바꾸기 자체가 문제다. 둘을 서로 맞바꾼다면, 공무원노조가 국민연금을 공무원연금 수준으로 상향평준화하라고 했던 주장은 공문구가 될 것이다.

공무원 노동자들에겐 노동조건 개선과 안정적 노후 보장 모두 필요하다. 다른 부문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다른 부문의 노동자들에게 연금을 더 주면 임금과 노동 3권을 뺏어도 된다고 하겠는가?

공적 연금 전체를 강화하려면 박근혜 정부의 공무원연금 삭감 논리에 단호히 반대해야 한다. 전체 노동자들의 이익을 방어할 때에만 그 안에서 진정한 하후상박도 가능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