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을 청구한 지 1년이 넘었다. 헌법재판소는 11월 말경에 변론을 종결한다는 소식이다. 그동안 수십 차례에 걸쳐 공개변론이 진행됐는데, 정부는 ‘위헌의 근거’로 이렇다 할 증거를 전혀 내놓지 못했다.

위헌정당인지를 판단하는 일차적인 자료는 정당의 강령과 정책이다. 통합진보당은 강령에서 “일하는 사람이 주인되는 자주적 민주정부를 세우고, 민중이 정치경제 사회 문화 등 사회생활 전반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진보적인 민주주의 사회를 실현”함을 선언하고 있다. 정부는 ‘진보적 민주주의’라든가 ‘민중이 주인되는 사회’라는 표현을 문제삼았다. 통합진보당은 종국에는 북한의 대남혁명노선에 따라 사회주의 혁명을 추구하고 있다고 하면서, 그 강령은 “국민주권원리를 부정하는 북한의 인민주권론과 동일”하다고 주장한다. 법무부는 김일성이 1945년 강연에서 말했다는 진보적 민주주의의 내용은 “자주·평등·평화·혁명”이고 통합진보당의 진보적 민주주의 내용은 “자주·평등·평화·민주적 변혁”으로 양자가 동일하다고 말한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자주·평등·평화·민주적 변혁이 헌법의 가장 핵심적인 가치이자 이념이라는 것은 누가 봐도 자명하다.

그러니까 정부는 “은폐된 목적”을 주장한다. 통합진보당의 강령은 가식에 불과하고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궁극에는 북한식 사회주의 혁명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입증한답시고 증거로 낸 것이 내란음모사건의 ‘RO’와 몇몇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자료들이었다. 검찰은 2013년 8월 이석기 의원 등을 내란음모 혐의로 기소하면서 소위 ‘RO’라는 지하혁명조직이 존재한다고 했다. 이를 토대로 법무부는 ‘RO’가 통합진보당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을 위헌의 주요 논거로 삼았다. 그러나 지난 8월 11일 선고된 내란음모사건의 항소심 판결에 의하면, RO는 존재하지 않는다. 법원은 RO의 조직이나 실체가 전혀 입증되지 않는다고 했다. 또한 2013년 5월 12일 모임에서 내란에 관한 구체적인 합의가 없었기 때문에 내란음모죄에 대해서 무죄가 선고됐다(다만, 내란선동죄는 유죄가 선고됐는데, 이것도 법리상 문제가 많다).

‘RO’를 들먹거리기 머쓱하게 되자, 정부는 통합진보당 인사들의 국가보안법 위반 전력이나 북한과의 연계를 주요 논거로 내세웠다. 정부는 통합진보당을 과거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계속해서 북한의 지령에 따라 움직인 것으로 ‘조작’하려 한다. 일심회 사건 등 과거 통합진보당 사람들이 연루된 간첩사건 자료를 증거라고 들이댄다. 그러나 일심회 사건 등 판결문을 보면 북한의 지령에 따라 소위 ‘종북’세력이 통합진보당을 장악했다는 근거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니 모든 증거가 함량미달이다. 통합진보당이 위헌정당임을 뒷받침할 증거가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런데 왜 이렇게 집요한 것일까?

종북 매카시즘

종북 매카시즘의 공포정치이다. 한국 사회에서 반공주의 이데올로기와 그것을 법적으로 지탱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은 지난 6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정치적 지배세력에 도전하는 비판적인 시민과 정치세력을 ‘좌익’, ‘빨갱이’로 낙인찍고 배척하는 정치적 실천의 중심을 형성해 왔다. 국가보안법은 반국가단체구성죄나 이적단체구성죄 등을 통하여 시민사회 영역에서 진보적 정치세력의 조직화를 억압하는 역할을 담당해 왔다. 2012년 경부터 확산된 ‘종북’ 이데올로기는 그 연장선에서 신자유주의적 시대 상황에 착종된 모습으로 거대한 매카시즘의 광기를 내뿜고 있다. 진보좌파의 정치세력화를 근원적으로 차단하려는 지배권력의 정치적 실천은 급기야 일정하게 대중적 지지기반을 갖고 있는 통합진보당, 즉 ‘정당’에까지 ‘폭력적 법’의 칼날을 겨누고 있는 것이다.

수많은 국가보안법 사건에서 법적용의 실제 모습은 북한의 사회주의 혁명노선을 추종하는가 여부, 즉 당사자의 사상적 정체성이 무엇인가가 유죄판결의 결정적인 기준이 된다. 주한미군 철수, 연방제 통일방안, 민중주권론 등의 ‘주장’은 그 자체로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험을 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검찰과 법원은 그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궁극에는 북한의 대남혁명노선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식의 논리로 단죄해 왔다. 통합진보당에 대해 정부가 ‘은폐된 목적’ 운운하고 북한과의 연계를 어떻게든 증명해 보겠다고 안간힘을 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부는 그들의 주장과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됨을 입증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내면적 사상 정체성이 위헌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종북’ 매카시즘은 이렇게 시민성을 분할하고 ‘배제의 정치’를 일상화함으로써 정치지형의 다양성과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다. 조악한 반공주의는 북한과 연계된 것, 더 나아가서 사회주의 정치이념과 연계된 것은 모조리 죄악시하는 논리로 점철돼 있다. 이러한 논리는 시민들의 자유로운 사상의 자유와 민주주의적 실천의 다양성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유럽평의회 산하의 ‘법을 통한 민주주의를 위한 유럽위원회’(통상 ‘베니스위원회’로 불린다)는 1999년 채택한 “정당의 금지와 해산에 관한 지침”에서 “정당의 금지 또는 강제해산은 민주적 헌법질서를 전복하기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 폭력의 사용을 주장하거나 폭력을 사용하고 이를 통해 헌법에 의해 보장되는 권리와 자유를 손상시키는 정당의 경우에만 정당화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정당해산제도는 정당의 활동이 헌법의 기본질서를 파괴할 급박하고도 명백한 위험을 야기하는 경우에 한해서만 작동할 수 있는 예외적인 장치여야 한다는 말이다. 당연한 말이다.

베니스위원회 지침에 비춰 보면, 정당이 추구하는 정치이념은, 예를 들어 프롤레타리아 독재나 사회주의 혁명과 같은 것도 그 자체로 금지돼서는 안 된다. 정치이념의 다양성은 민주주의 정치의 필수적인 것으로 승인돼야 한다. 이는 일반적인 사회단체이건 정당이건 마찬가지이다. 정당이 정강정책에서 대안적 질서를 표방하는 것을 주창하는 경우에도 그 자체만으로는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고 해서는 안 된다.

‘더 많은 민주주의’를 향한 외침과 저항이 필요하다. 그리고 통합진보당 사건에 대해 박근혜 정부가 내놓아야 할 답은 분명하다. 위헌정당해산심판 청구를 철회하고 매카시즘의 광기를 스스로 거두는 것이다.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는 아무런 근거도 없는데도, 정당해산제도를 남용한 해산청구 자체가 헌법과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파시즘 폭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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