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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의 난맥상

박근혜 정부가 그 내부에서 삐걱대고 있다. 최근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손발이 맞지 않는 모습을 자주 보이고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은 공무원연금 개악 시기를 두고 청와대에 불만을 토로했다. 개헌을 둘러싼 신경전은 이런 엇박자가 낳은 하나의 소극(笑劇)이었다.

대외정책에서도 오락가락 행보를 보이고 있다. 동아시아에서 제국주의 간 갈등이 커지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모순도 커지고 있다. 10월 초 남북은 2차 고위급 접촉을 하기로 합의했다가 ‘삐라’ 문제와 군사적 긴장이 빚어지면서 고위급 접촉이 사실상 무산됐다.

이런 모순된 상황이 박근혜 정부의 대북 정책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5·24 조치 같은 대북 정책을 놓고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 내에서 엇갈리는 얘기가 나오곤 했다. 대북 선전 시설물인 김포 애기봉 철탑을 제거했다가 우익들에게서 비난이 터지자 박근혜는 부랴부랴 새 전망대 설치를 지시했다. 얼마 전 독도 입도 시설 설치 보류 계획에 비난이 일자 정홍원이 사과하는 일도 벌어졌다.

남북 관계를 비롯한 대외 문제에서 박근혜 정부의 어려움이 계속 커지면, 정부와 여권 내 갈등 증폭의 요인이 될 수 있다. 새누리당 유승민이 ‘청와대 얼라[어린이]들이 [외교] 합니까’ 하며 청와대 인사들을 비난한 일은 시사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절대 권력처럼 여겨지던 김기춘 경질설도 계속 흘러나오고 있다. 최근 〈동아일보〉는 김기춘이 “낙하산 인사는 없다”고 말한 것을 두고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김 실장의 생각이 명확히 드러난 이상, 인사 문제만큼은 이 정부에선 앞으로도 기대할 게 없어 보인다”며 김기춘을 두들겼다.

‘문고리 권력’ 3인방(비서관 이재만, 정호성, 안봉근)이 인사는 물론이고, 외교·안보 정책 과정에도 개입하는 실세라는 얘기도 파다하다.

집권 초기 강성 우익으로 친위대를 세우며 단결한 모습을 보였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공방전

박근혜는 경제 위기 상황에서 집권했다. 세계경제 위기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위기의 고통을 노동계급에게 전가할 강력한 우익 정부를 필요로 한 지배자들이 일치단결해 박근혜를 밀어 줬다.

복지 공약들은 당선용일 뿐, 전방위적으로 노동계급을 공격하는 것이 박근혜에게 주어진 임무였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경제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없는 상황에서 재정 지출을 줄이기 위해 공공서비스 공격과 민영화를 신속하게 밀어붙여야 했다.

그러나 집권 초기 인사 참사가 터지고, 국정원 대선 개입까지 불거지며 박근혜의 정통성에 흠집이 났다. 이런 상황은 노동자들에게 분노와 함께 싸울 자신감을 줬다.

무엇보다 박근혜는 집권 1년 만에 철도 파업에 부딪히며 정치 위기에 직면했다. 박근혜는 철도 민영화를 공공부문 공격의 “시금석”으로 삼고자 했다. 경제 위기가 개선되지 않는 상황에서 공공부문 부채를 줄이려는 방안이었다. 그러나 철도 파업이 23일 동안 지속되며 “계급 대리전”의 형태로 발전했다. 박근혜 정부의 악행에 분노하던 다른 부문의 노동자들과 청년들도 이 투쟁을 자신의 투쟁처럼 여기고 응원했다. 박근혜의 지지율은 급격히 떨어졌다. 파업이 수서발KTX 자회사 설립을 막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박근혜 정부 등장 초기에 존재하던 무기력과 패배주의적인 분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줬다.

의료 민영화도 보건 의료 노동자들의 저항과 더불어 광범한 반대 여론이 형성되면서 쉽사리 속도를 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민주노총의 예봉을 꺾고자 공격한 전교조가 ‘규약시정명령’을 거부한 것도 박근혜로서는 원치 않는 시나리오였다. 박근혜는 체면을 구긴 반면, 다른 부문 노동자들은 통쾌함을 맛봤다.

세월호 참사도 예상치 못한 변수였다. 우익 정부가 노동계급과 서민의 자녀들을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노동자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지배자들은 추모 정도로 끝나길 바랐지만 분노는 정치적 항의 운동으로 발전했다.

사악하기 짝이 없는 박근혜 정부는 오히려 세월호 참사를 규제 완화의 명분으로 삼으려 했다. 그러나 세월호법 합의가 좀처럼 성사되지 않으면서 규제 완화 법안 통과가 쉽지 않은 상황이 벌어졌다. 우파들이 가족대책위 일부 리더들의 폭행 시비에 득달같이 달려들어 마녀사냥을 벌인 것도 이 때문이다. 〈조선일보〉 양상훈은 칼럼에서 “세월호법을 둘러싼 진퇴양난을 해결한 것은 대통령이나 여야가 아니라 대리기사였다”고 썼다.

이처럼 박근혜의 줄기찬 선제 공격에 노동운동이 방어전을 치르고 있지만 박근혜도 그 과정에서 앞에서 언급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그런데 새정치연합은 번번이 실용주의적이고 배신적인 행보를 취하며 박근혜 정부의 구원투수 구실을 했다. 새정치연합은 유가족과 수백만 명의 바람을 등지고 진실 규명의 알맹이가 빠진 ‘세월호법’에 합의했다. 공무원연금 개악에 대해서도 반대하지 않고 ‘합리적 개혁’ 운운하며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국회 소위에서는 철도 민영화 내용을 담은 보고서에 합의해 노동자들의 분노를 샀다.

그러나 우리 운동의 약점도 있다. 세월호 참사나 통상임금 등 중요 쟁점들에서 민주노총 지도자들은 파업 같은 노동계급 고유의 힘을 사용하기를 자제했다.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기회를 부여잡지 않고 놓치면서 계급 세력 관계가 교착 상태에 놓여 있다.

파상공세의 이면

박근혜 정부가 노동계급을 상대로 파상공세를 펴고 있지만 여전히 심각한 경제 위기가 박근혜를 괴롭히고 있다.

올해 3분기 수출은 지난 분기보다 2.6퍼센트 줄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대 감소 폭이다. 유럽 경기 침체와 중국 경기 둔화로 세계경제 위기 재점화설이 제기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양적완화를 연장하면서 ‘초엔저’ 상황이 길어지는 것도 악재다.

한국 경제의 핵심 동력이라는 삼성전자와 현대차의 상황도 좋지 않다. 삼성전자의 3분기 영업이익은 4조6백억 원으로, 2011년 4분기 이후 처음으로 영업이익이 5조 원 아래로 떨어졌다. 현대차 영업이익은 2010년 4분기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주요 산업들을 중국, 인도 등이 따라잡고 있다는 불안감도 여전하다. 최경환 경제팀은 “사면초가에 빠졌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가 꺼내든 카드가 공무원연금 개악이다. 철도와 의료 민영화도 계속 추진해 나갈 태세다. 박근혜는 국회 시정 연설에서 시종일관 경제와 공무원연금 개악을 강조했다. 국무총리 정홍원은 공무원 집단 행동을 자제하라며 나섰다.

공무원연금 개악은 비교적 잘 조직돼 있는 노동계급 부분에 대한 정면 공격이다. 판돈이 큰 공격인 셈이다. 실제로 11월 1일에 공무원·교사 노동자 12만 명이 운집해 정부에 항의했다.

세월호 참사로 박근혜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박근혜 정권이 내부적으로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을 투쟁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