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동안 독일 정부와 사용자들은 신자유주의적 공격을 강화했다. 그러나 독일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사회적 합의’에 매달리며 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생활수준을 방어하는 데서 무기력했다. 그 탓에 노동조합의 투쟁력과 조직력도 약해졌다.(이와 관련해 본지 135호 ‘‘독일 모델’의 실상 - ‘사회적 합의 제도’는 노동조합의 투쟁력을 약화시킨다’를 보시오.)

그러나 독일 노동자들이 모두 손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세간의 오해와는 다르게, 독일의 다수 노동자들은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인정해 준 적이 없다.

2003년 초 슈뢰더 정부(사회민주당·녹색당 연정)는 신자유주의 정책 꾸러미인 ‘어젠다 2010’을 발표했다.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제대로 저항하지 않았다. 사회민주당(사민당)과 오랫동안 밀접한 동맹을 맺고 있었던 것이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기층 조합원들과 사민당 평당원들 사이에서 분노가 상당했다. ‘어젠다 2010’ 발표 직후 사민당 당원 수만 명이 당원증을 버렸다.

일부 좌파는 노조 지도자들이 다수 노동자들을 대변하지 못하는 것에 불만을 느끼고, 저항을 건설해야 한다고 봤다. 노동조합 내 좌파 활동가들과 실업자 조직들이 주도력을 발휘해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거리 행동이 벌어졌다.

2003년 11월 1일 베를린에서 정부에 맞서 10만 명이 행진을 벌였다. 여기에는 통합서비스노조와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대거 참가했다. 노조 지도자들이 거의 동원하지 않고, 심지어 방해까지 했는데 말이다. 2004년 3월에는 베를린 등지에서 50만 명이 시위를 벌였다. 이 시위는 제2차세계대전 종전 후 일어난 최대 규모의 시위였다.

항의 시위는 2004년 여름에도 계속됐다. 주로 옛 동독 지역에서 일어났다. 시위대는 “하르츠Ⅳ법 폐기하라. 우리는 민중이다” 하는 구호를 외쳤다. 이 구호는 15년 전 동독 정권을 몰아냈던 시위에서 사용된 구호였다.

‘어젠다 2010’ 반대 운동은 사민당을 깊은 위기로 몰아넣었다. 2004년 9월 작센 주의회 선거에서 사민당의 득표율은 9.8퍼센트밖에 안 됐다. 사민당이 이 지역에서 10퍼센트 이하의 지지를 얻은 것은 역사상 처음이었다.

또한 운동의 성격도 바뀌었다. 2003~04년에는 거리 항의 시위가 주된 형태였다면, 2006~07년에는 노동자 쟁의행위가 주된 형태였다. 2006년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임금과 노동조건 악화에 맞서 12주 동안 파업을 벌였다. 2007년 독일 텔레콤 노동자들은 외주화와 임금 삭감에 맞서 5주 동안 파업을 벌였다.

2006~07년 파업 손실 일수는 다른 해들에 견줘 이례적으로 높아졌다. 노동자들의 처지에 대한 공격이 들어오는 상황에서 노조 지도자들도 뭔가를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노조 지도자들은 철저히 싸우지 않았다. 그래서 이 투쟁들은 별 성과 없이 끝나거나 패배했다.

하지만 사민당에 대한 환멸이 깊어지고 계급투쟁이 활발해지면서, 2007년 좌파당이 결성됐다.

착취율 증대

오늘날 독일 노동자들의 처지는 매우 나빠졌다. 실질임금은 하락했고, 복지는 삭감됐고, 노동강도는 강화됐다. 많은 노동자들이 시간제·파견직 같은 불안정한 일자리로 내몰렸다.

2008년 세계 경제 위기에도 독일 경제가 비교적 건강한 것은 이 덕분이었다. 착취율 증대가 수출 지향적 독일 경제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일조했다.

노동자들의 실제 삶은 크게 손상됐지만, 경제 상태가 비교적 괜찮고, 실업률이 높지 않고, 대다수 노조 지도자들이 정부의 수출 지향적 경제 전략을 지지하고 있어서, 위기 이후 독일의 계급투쟁은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물론 그럼에도 2009년에 놀랄 만큼 높은 파업 참가율을 보인 청소 노동자들과 교사들의 파업이 벌어졌다. 2013년 공항 노동자들이 파업으로 공항을 마비시켰고, 인터넷 서점 아마존 노동자들도 파업을 벌였다.

한편, 정부와 사용자들에 대한 여러 불만들은 대규모 거리 시위로 표출됐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30만 명 규모의 반핵운동이 벌어졌고, 신자유주의적 교육 ‘개혁’에 반대해 대학생들이 학교를 점거하는 일도 있었다.

이런 운동들은 신자유주의 정책과 긴축에 대한 불만이 광범하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노조 지도자들이 이것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는 게 문제이지, 독일의 노동자·대중이 지금의 처지와 상황을 용인해 온 것은 결코 아니다.

한편, 노조 내 소수는 노조 지도자들의 ‘사회적 합의’ 집착을 비판하며 노동조합 혁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마르크스21 같은 독일의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이렇게 좀 더 전투적인 조합원들과 관계 맺고 네트워크를 건설하는 것, 이를 통해 ‘사회적 합의’ 집착에 대한 대안적 지도력을 제공하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삼고 있다.

독일 좌파당의 성장과 위기

2007년 결성된 좌파당은 사민당에 대한 환멸과 사민당 정부에 맞선 투쟁의 정치적 표현체이다.

좌파당 내에는 크게 두 세력이 있다. 하나는 당내 우파로서, 전前 민주사회당(옛 동독의 집권당) 출신자들이다. 이들은 옛 동독의 지배계급 출신은 아니지만, 상당히 온건한 개혁주의자들이다.

다른 하나는 더 좌파적인 개혁주의 흐름으로서, 사민당 출신의 노조 지도자들과 당원들이다. 사민당 좌파 지도자였던 오스카 라퐁텐이 대표적 인물이다.

당원 수로는 전자가 더 많지만,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후자 그룹이 더 중요하다. 후자 그룹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균열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마르크스21 같은 혁명적 사회주의자들과 2000년대 초 반전·반세계화 운동으로 급진화한 청년·학생들도 있다.

좌파당이라는 새로운 세력의 등장은 독일에서 정치적 격변을 낳았다. 좌파당은 사민당의 강력한 경쟁자로 떠올랐다. 사민당 당원 10명 중 한 명(4만 명)이 좌파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2009년 총선에서, 좌파당은 11.9퍼센트를 득표해 총 76개 의석을 얻었다. 좌파당은 옛 동독 지역의 주들 대부분에서 1위를 기록했다. 이때 사민당은 1953년 이래 최악의 결과를 맛봤다.

좌파당의 선전은 신자유주의 정책, 특히 경제 위기의 대가를 노동자에게 떠넘기는 시도에 대한 반감이 얼마나 광범한지 보여 줬다.

그런데 보수연합 정부(기독민주-기독사회당과 자유민주당의 연정, 2009~2013) 하에서 좌파당은 다소간 침체를 겪었다. 당이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둘러싸고 당내 논쟁이 심했다.

논쟁

좌파당은 2009년 선거 때까지 신자유주의 반대 세력으로서 독점적 지위를 누렸다. 그런데 보수연합 정부가 집권하면서 좌파당뿐 아니라 사민당·녹색당·해적당도 비슷한 구실을 하게 됐다. 사민당은 최저임금제 도입과 부자 증세를 요구하는 등 좌파적 주장을 하며 보수연합의 왼쪽 지분을 차지하려 했다. 낮은 계급투쟁 수준도 좌파당에 불리하게 작용했다.

그러나 객관적 요인뿐 아니라, 좌파당 자체의 주관적 약점도 있다.

좌파당 내에서도 사회 변화는 의회를 통해 성취된다는 생각이 광범하다. 당내 우파는 사민당과 연정을 하는 것에 관심이 크고 일부 주에서는 이미 그래 왔다. 오스카 라퐁텐을 포함한 당내 좌파의 상당수도 사민당과의 연정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좌파당이 정부에 참여해야 한다는 압력은 선거 결과가 좋을수록 커졌다.

그러나 주 정부들이 재정 적자에 허덕이는 상황에서, 정부를 운영하는 일부가 되는 것은 위험하다. 연정 파트너들한테서 ‘주 정부의 재정 적자를 고려해 좌파당의 원칙을 철회해야 한다’는 압력을 크게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국가 기구의 일부를 운영하는 처지가 되면 이런 압력을 거스르기는 쉽지 않다.

실제로 이미 일부 주(베를린, 브란덴부르크, 작센 등)에서 좌파당은 자기 당의 지지자들을 공격하는 일을 감행했다. 그곳에서 좌파당의 득표가 하락해 온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한편, 좌파당은 이미 벌어진 투쟁에 연대를 선언하는 것은 항상 발빠르지만, (당내 좌파건 우파건) 실제로 투쟁을 조직하는 데는 아주 취약하다. 사회민주주의의 특징인 경제와 정치의 분리 공식은 좌파당 내에도 살아 있다. 오로지 소수만이 노동자 투쟁에 관여하려 한다. 또한 좌파당 당원인 많은 노동조합원들과 간부들도 노동조합 투쟁을 이끌 태세가 돼 있지 못하다.

좌파당 내 혁명적 사회주의 그룹인 마르크스21은 좌파당이 의회 지향적 한계를 극복하고 계급투쟁 지향적 정당이 돼야 한다고 주장하며 당내 논쟁에 개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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