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 2백만 명과 국민 10명 중 9명이 반대하는 여론조사 결과, 병원 노동자들의 연이은 파업과 집회. 이런 상태에서 박근혜 정부는 병원의 부대사업 대폭 확대와 영리 자회사 일부 허용을 9월 19일 기어이 통과시켰다. 여기에 그친 것만도 아니다. 8월 12일에는 ‘6차 투자활성화 대책’을 발표해 보건의료 분야의 규제완화를 집중적으로 강조했다. 이 정도이면 거의 광란의 질주라고 할 만하다. 무슨 내용이고 왜 이렇게 의료 민영화에 집중하는가?

우선 정부는 9월 19일 의료법 시행규칙과 가이드라인을 개정 고시해 병원의 부대사업을 대폭 확대했다. 이제 병원의 부대사업에는 의류·식품·생활용품 판매업, 수영장·헬스클럽·온천장, 의약품·의료기기 연구개발업, 호텔, 부동산 임대사업까지 포함됐다. 병원을 쇼핑몰, 호텔, 의료복합기업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 부대사업을 영리 자회사로 운영할 수 있는 길까지 열어 놓았다는 것이다. 우회적인 영리병원 허용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만 해도 큰 문제다. 그런데 6차 투자활성화 대책에는 더 광범하고 더 노골적인 의료 민영화, 의료 영리화 조치가 포함돼 있다.

첫째, 영리병원 규제완화다. 영리 자회사로도 부족하니 아예 영리병원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에는 영리병원이 없다. 그런데 정부는 경제자유구역의 ‘외국인 영리병원’의 규제를 제주도 수준으로 풀자는 것이다. 현재 경제자유구역의 ‘외국인 영리병원’ 설립 규제는 외국인 의사를 10퍼센트 이상 고용하고, 외국인 의사인 병원장과 외국인 경영진이 50퍼센트 이상돼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 있다. 정부는 이런 최소한의 규제마저 없애버리려고 한다. 그러면 말이 외국인 영리병원이지 국내 자본에 국내 의료진으로 국내 환자들을 보겠다는 것이다. 물론 국회를 통과해야 하는 법 개정이 아니라 행정규칙 개정으로 추진하겠다고 한다. 경제자유구역이 인천, 부산, 대구를 포함해 전국 8곳이니 이것만으로도 영리병원을 전국적으로 허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다 보면 병원협회가 이미 주장하듯이, 왜 국내병원은 안 되느냐 하는 역차별 논리가 커질 수 있다. 제한 없는 영리병원 허용 직전 단계의 조치인 것이다.

재벌 영리병원 체인

둘째, 대학병원의 의료 기술지주회사 허용, 즉 의과대학-대학병원 주식회사 허용이다. 병원 영리 자회사를 허용하면서 정부가 주장한 논리는 ‘중소병원의 경영난 타개’였다. 대학병원은 해당사항이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대형 병원인 대학병원-의과대학에 의료특허를 중심으로 주식회사를 만들어 주겠다고 한다. 아예 최소한의 논리로도 국민을 설득할 생각조차 없다.

의료특허는 현재 의약품과 의료기기에 걸 수 있게 돼 있다. 여기에 특허가 걸리고 이 특허에 투자가 되면, 그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의료 상업화는 더욱 더 과잉으로 행해질 것이다.

이런 의료특허를 중심으로 의과대학-대학병원이 회사를 만들겠다는 거다. 또 의료특허당 한 회사를 차리게 되니, 영리 자회사를 여러 개 설립할 수 있고 외부 투자와 이윤 배당도 가능해진다. 게다가 미국은 진단·치료·수술방법에도 특허를 걸 수 있다. 그리고 미국이 추진하는 아시아 태평양 12개 국가와의 FTA, 즉 환태평양경제협정(TPP)에는 이 의료기술 특허가 포함돼 있다. 이 TPP에 한국도 참가를 추진하고 있다.

더욱이 삼성경제연구소가 2011년에 정부 발주를 받아 낸 ‘HT(헬스테크놀로지)보고서’에는 의료기술에 의료정보 기술과 병원경영 ‘기술’이 포함돼 있다. 병원 경영지원을 매개로 병원 네트워크까지 가능하다. 여기에 이번 국회에는 병원의 인수합병을 가능하게 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우리나라의 가장 큰 병원인 삼성병원과 아산병원이 대학병원을 통해 사실상의 재벌 영리병원 체인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셋째, 임상시험 규제완화가 포함된다. 한국은 서울이 2년 연속 임상시험 건수 1위 도시로 등극했다고 정부가 자랑할 만큼 이미 임상시험이 ‘산업’이 된 나라다. 전 세계 1위 제약회사인 파이저가 이미 ‘한국이 미국 내의 임상시험보다 2배나 속도가 빠르고 비용은 반밖에 안 든다’고 보고서를 냈고 한국에 임상시험교육센터를 설립했으며 대형병원들과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그런데 이 임상시험 산업을 더 키워 가겠다고 한다. 즉 줄기세포 임상시험 1단계(안전성 검증조치)와 유전자 연구치료 규제를 대폭 간소화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세계 최초다.

현재 미국 식약청에서 허가한 줄기세포 치료제는 하나도 없다. 한국에서는 이미 줄기세포 치료제가 4개나 허가됐다. 여기서 더 규제를 푸는 것은 한국을 전 세계 줄기세포의 임상시험장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바이오벤처 기업들과 이들 뒤에 있는 재벌 제약회사(삼성, LG, SK, CJ)들을 위해서는 국민 건강과 생명은 어떻게 돼도 좋다는 이야기다. 이것이 정부와 조중동 등이 말하는 ‘맞춤형 치료’다. 인간의 몸도 자본의 수탈대상이 되는 자본주의의 막장이다.

넷째, 여기에 원격의료 시범사업이 포함된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원격의료가 시행되고 있는 곳은 정말이지 어쩔수 없이 시행하는 곳뿐이다. 북극 지방(알래스카, 핀란드)이나 인구 희박지역(오스트레일리아 중부지방) 등이나 의료자원이 충분치 못한 섬 국가(필리핀) 등이다. 유럽에서는 10여 년째 시범사업만 되풀이하고 있다.

원격의료로 이득을 보는 자들은 SK, LG, KT 등 IT 재벌과 원격의료 기기를 생산하는 삼성(전자) 밖에 없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바로 한국의 4대 재벌이라는 것이다.

개인 질병정보 유출

‘건강정보 보호 및 활용’ 법률을 밀어붙이려 하는 이유도 개인 질병정보를 통신회사가 가지는 것을 허용해야만 원격의료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법률이 통과되면 당신 가족의 유전적 질환이나 정신병력, 여성의 유산 경험 등을 재벌들이 낱낱이 알게 된다. 게다가 통신회사들은 해킹의 위험까지 있다. 이미 한국의 주민등록번호는 1억 번 해킹을 당했다. 우리들의 개인 질병정보가 전 세계의 공공재가 될 수도 있다. 또 개인 질병정보는 재벌들이 모두 하나씩 가지고 있는 민영의료보험회사들(삼성생명, LIG, 현대해상 등등)이 질병이 있는 가입자를 거절하거나 나중에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6차 투자활성화 방안에는 국내 보험사들이 외국 환자들을 유치하는 것을 허용하자는 법 제정(국제의료법)도 포함된다. 정부는 의료관광을 내세운다. 그러나 의료관광은 태국이나 인도처럼 임금이 적은 나라에서만 가능한 후진국형 산업이다. 태국은 우리나라 임금 수준의 10퍼센트이고 인도는 더 낮다. 더욱이 세계보건기구는 2011년 태국의 의료비는 매년 10~15퍼센트가 올랐고, 국내 환자들이 의사 얼굴을 보기 힘들게 됐다고 경고할 만큼 문제가 크다.

전망이 밝지도 않고 국내 보험사 1년 매출액의 0.1퍼센트에 불과한 해외 환자 유치를 왜 보험회사들이 맡겠다고 나서는 걸까. 해외 환자 유치가 보험회사들이 국내환자들을 병원에 유치·알선할 수 있는 전 단계가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보험회사와 병원이 직접 계약을 하게 되고, 보험회사가 병원에게 보험금을 준다 만다 하면서 진료 내용을 좌우하는 계약을 맺을 수 있게 된다. 바로 이러한 보험-병원의 직계약관계가 미국이 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지금의 의료 민영화로 나아간 의료복합기업, 즉 병원-보험 복합기업(HMO, PPO)의 첫 단계이다.

박근혜 정부가 해치워버린 4차 투자활성화 방안의 병원 부대사업 확대와 병원 영리 자회사 설립은 주로 병원자본의 규제완화를 노린 것이었다. 이에 비해 6차 투자활성화 방안은 대형병원의 영리회사화와 재벌병원 체인화를 포함하는 것은 물론 아예 한국의 보건의료를 제약, IT, 보험자본 즉 한국 재벌들의 투자처로 만들기 위한 포괄적이고 노골적인 조치들이다.

한국의 재벌들은 경제 위기로 사내유보금은 수십조 원씩 늘어나는데 투자할 곳이 없어 수익성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 위기에서 그들은 한편으로는 연금개악 등으로 노동자와 서민에게 돌아가는 쥐꼬리만한 복지혜택조차 줄이려 한다. 또 다른 한편으로 노동자들이 없는 돈으로도 살기 위해서는 사용할 수밖에 없는 철도, 의료, 가스, 전기 등을 자신들이 돈을 벌 수 있는 투자처로 만들려 한다. 바로 공공부문 민영화다. 의료는 병원 노동자가, 연금개악은 공무원과 교사가, 철도 민영화는 철도 노동자가 나서는 것만이 아니라 모든 노동자와 서민들이 단결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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