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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핵무기 개발 의혹 -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한반도발 핵무기 개발 의혹의 새 주인공은 북한이 아니라 남한이었다.

그 동안 북한의 핵 개발 의혹을 입에 거품 물고 비난해 온 남한 당국이 이미 20년 전에 플루토늄을 추출했고, 최근엔 우라늄 농축 비밀 실험을 했음이 드러났다. 남한은 핵무기 제조의 핵심 기술인 농축 우라늄 추출에 성공했다.

북한이 플루토늄 추출은 인정했지만 우라늄 농축은 부인하고 있는 점(농축의 증거도 없음)에 비춰보면, 남한이 핵무기 개발에 한 걸음 앞서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외교통상부 국제기구정책관 오준은 "이번에 문제된 것은 다른 나라의 핵확산금지 위반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강조한다. 특히 "북한과는 굉장히 큰 차이"가 있는 문제라고 한다. 이것은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식의 이중 잣대다.

비밀 핵 실험

노무현 정부의 변명이 무엇이든, 남한 당국이 그 동안 북한에 들이밀어 온 잣대인 핵확산금지조약(NPT)과 남북 비핵화 협정을 둘 다 어겼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NPT는 우라늄 농축을 금지하고 있지는 않지만 우라늄 보유를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보고하도록 하고 있는데, 남한은 이를 지키지 않았다. 남북 비핵화 협정은 명백히 우라늄 농축 시설 보유를 금지하고 있다.

과학기술부는 우리가 다른 국가들과는 달리 IAEA에 자발적으로 보고하지 않았느냐며 이것이 핵 실험의 투명성을 방증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보고는 결코 자발적이지 않았다.

〈인터내셔널 해럴드 트리뷴〉에 따르면, IAEA는 이미 지난해 한국의 비밀 핵실험을 적발했다. 당시에 IAEA 사찰을 거부했던 한국 정부는 올해 사찰을 통해 진실이 드러날 것이 뻔해지자 그제서야 보고를 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조선일보〉는 분리한 우라늄 양이 "핵무기 개발 의혹을 받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며 억울해 한다.

1994년 북핵 위기 때 〈조선일보〉는 핵무기 개발 의혹을 받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북한의 플루토늄 90g을 "핵무기를 한 개 또는 두 개"를 생산하기에 충분한 양으로, 열 배 스무 배 부풀리는 데 앞장섰다. 그랬던 〈조선일보〉가 이제 억울함을 호소하다니 역겹기 짝이 없다.

〈한겨레〉를 포함해 대부분의 신문과 방송사들의 보도 논조도 핵 개발 의혹 자체보다 미국이 의혹을 부풀리고 있다는 데 주목한다. 별것 아닌데 과도하게 문제삼는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다 보니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일부 과학자들의 순수한 과학 실험"이라는 정부의 변명을 기정사실화해 주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정부가 잘못한 게 있다면 의혹이 불거지지 않도록 잘 대처하지 못한 것뿐이라는 얘기다.

심지어 평화운동가 정욱식 씨(평화네트워크)도 남한의 핵실험이 "핵무기 개발"과는 한참 거리가 먼"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들만 놓고 보더라도 의혹들은 결코 가볍지 않으며, 핵무기 개발과 관계 없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

우라늄 농축에서 시작된 의혹은 플루토늄 추출로 번지더니, 이제는 천연우라늄 금속화 등 6가지로 확대됐다. 정부는 이런 사실들을 미리 밝히지 않거나 심지어 부인하다가 진상이 폭로되면 번번이 사후 인정하는 식이었다.

게다가 이 의혹들은 서로서로 연결돼 남한이 체계적으로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고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처음에 우라늄 농축에서 플루토늄 추출로 의혹이 확대됐을 때 "왜 20여 년 전 얘기를 끄집어내느냐"는 분위기가 유력했다.

하지만 같은 해(1982년) 금속우라늄 150kg도 생산됐고 그 가운데 3.5kg이 2000년에 실시된 우라늄 농축 실험에 쓰였다는 사실은 두 사건이 연관 없는 별개의 일이 아님을 보여 준다.

핵정책 전문가 김정민 씨는 "(천연 우라늄 금속화는) 레이저를 활용해 우라늄을 농축하기 위한 사전 준비로 비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우라늄 농축 실험 자체도 의혹 투성이다. 비록 적은 양(0.2g)의 우라늄을 분리했을지라도 순도가 중요하다. 우라늄235를 80~90퍼센트 농축하면 핵무기 제조에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 농축 실험의 경우 순도 추정이 10퍼센트에서 80퍼센트까지 천차만별이다.

〈뉴욕 타임스〉와 〈아사히신문〉은 "순도가 80퍼센트 가까이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발전용의 저농축 우라늄과 달리 80퍼센트의 고농축은 핵무기 개발의 혐의를 받아도 도리가 없다."

정부는 처음에 순도가 10퍼센트라고 발표했다가 나중에는 "얼마나 농축됐는지는 주요 보고 사항이 아니다"며 말을 바꾸고 얼버무려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한국이 사용한 레이저 농축법은 우라늄235를 80~90퍼센트까지 농축할 수 있다는 게 핵 과학자들의 설명이다. 미국에서는 레이저 농축 장비로 핵무기용 농축 우라늄을 생산하고 있다.

의혹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실험에 사용된 핵물질들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없다. 또, IAEA에 신고하지 않은 시설들과 신고하지 않은 설비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리고 지난 4년 동안 우라늄 농축 실험의 비밀이 지켜졌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피할 수 없는 물음 하나를 제기한다. 지금도 어디선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비밀 실험이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평화적 핵 주권?

남한의 핵 야욕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미국의 베트남전 패배와 미국과 중국의 관계 개선을 염려한 박정희는 1970년에 비밀 핵무기 개발 계획에 착수했다. 미국은 이 사실을 4년 동안 알아차리지 못했다.

1975년에 미국의 압력이 거세지자, 박정희는 핵무기 개발 계획을 포기하는 척했다. 그러나 그는 미국 몰래 핵 연구 조직을 유지했고, 재처리 기술 확보 노력도 포기하지 않았다.

전 보안사령관 강창성에 따르면, 박정희는 1978년 9월에 핵무기 개발의 95퍼센트가 이미 완료됐으며 1981년 상반기부터는 핵무기를 생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군부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은 미국의 지원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이 지목한 핵 관련 프로그램을 모두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도 1982년에 플루토늄 추출이 있었던 것을 보면 핵 프로그램이 완전 중단되지는 않았던 듯하고, 그 뒤에도 "20여 년에 걸쳐 주도면밀하게 계획을 진행시켜 왔다는 의혹"이 제기(〈요미우리〉)되고 있다.

남한의 비밀 핵실험이 최근에 폭로됨에 따라 동아시아 지역의 긴장이 더해질 것이다.

남한의 핵 야욕이 드러난 마당에 지난 50여 년 동안 군사적 대결을 유지해 온 북한도 핵을 쉽게 포기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이런 상황에서 절대로 핵 계획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라고 주장했다.

또, 일본의 핵무장을 자극하고 이 지역의 핵무기 개발 경쟁을 부추길 수 있다.

일본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고, 적어도 1만여 개의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양의 플루토늄과 사용 후 핵연료를 축적하고 있다.

일본은 남한의 핵실험에 대해 매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는데, 일본의 핵 기술 수준에 비춰보면 남한의 우라늄 농축 실험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일본은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재처리의 독자적 능력을 개발할 권리를 인정받고 있고, 이미 오래 전에 레이저 분리법을 성공시켰다.

동아시아의 불안정은 미국에 좋은 시나리오가 아니다. 그래서 미국은 남한의 핵 무장을 허용하려 하지 않을 것이고 이 과정에서 미국과 한국의 갈등이 증폭될 수 있다. 박정희 정권 이래 핵과 미사일 개발을 둘러싸고 종종 그랬듯이 말이다.

미국이 너무한다며 한국도 "평화적 핵 주권" 정도는 가져야 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고개를 들 수 있다. "원자력 발전과 핵연료 개발 등 핵의 평화적 사용에서도 결정적 제약을 받고 있는 것은 억울하기 짝이 없다."(〈문화일보〉 시론)

"평화적 핵 주권"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일본처럼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재처리 시설들을 보유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이런 시설들이 있는 한 민수용 핵은 평화적 핵일 수 없다.

남한은 2001년 현재 27톤의 사용 후 핵연료를 축적하고 있는데, 재처리 시설을 보유한다면 이것으로 3천3백75개의 핵탄두를 만들 수 있다.

민주노동당은 "우라늄 농축 실험 관련 의혹을 해소하고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다시 확인하라"는 올바른 논평을 발표했다.

진보 진영은 남한 정부의 핵무기 개발 기도에 대한 반대를 분명히 해야 한다. 물론 제1 핵 보유국인 미국이 다른 국가의 핵 개발에 간섭하는 위선을 비난해야 한다. 하지만 핵 보유국의 일원이 되고자 하는 남한 지배자들에 맞서 투쟁하는 게 반드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