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7일 현대중공업노조가 4시간 부분파업을 벌였다. 민주노조의 주역이었던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이 실로 18년 만에 다시 일어선 것이다.

1987년 투쟁의 주역들과 새로운 30~40대 청년 노동자들이 함께 파업을 벌였다.

“저는 파업이 처음이에요. 가슴이 벌렁벌렁해요. 그간 억눌려 왔던 걸 생각하면 말로 표현 못 할 정도예요.”(30대 노동자)

“오랜만에 이렇게 단결된 모습을 보니 감회가 새로워요. 오늘 젊은 노동자들이 많이 배울 겁니다.”(1985년 입사 노동자)

파업 집회에 6천여 명이 모였다. 사측의 온갖 방해와 압박이 있었지만, 지금까지 한 집회 중 가장 많이 모였다. 노동자들도 고무됐다. “정말 많이 모였어요. 회사도 우리가 이렇게 나올 줄 몰랐을 겁니다.”

‘생활임금 쟁취하자!’, ‘연봉제를 철회하라!’ 노동자들의 구호가 공장 안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노동자들은 사측에 대한 울분을 터뜨렸다. 최근 사측은 경영 위기라며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전가하려고 했다. 성과연봉제를 도입하고 현장통제를 강화하려 한다.

“그간 실질임금이 삭감돼 왔어요. 박봉에 전셋집도 구하기 힘들고 결혼은 꿈도 못 꿔요. 그런데도 회사는 연봉제로 임금을 더 깎겠다고 합니다!”

“회사와 언론은 20년 무분규 기록을 무슨 자랑처럼 말해요. 하지만 그 안에는 노동자들의 고통이 있었어요.”

사측이 파업을 불법으로 매도하는 것에 대해서도 한마디씩 했다.

“회사의 협박에 굴복할 수 없어요. 그러면 우리의 권리를 행사할 수 없습니다.”

“언제 우리가 파업하면 합법이었던 적이 있나요? 법은 늘 가진 자의 편이었습니다. 우리가 투쟁해서 뚫고 나가야죠.”

집회를 마친 노동자들은 공장 안을 행진했다. 끝이 안 보이는 대열을 보며 노동자들은 환호했다.

대열이 거리로 나가자 시민들이 박수로 호응했다. 한 고참 노동자는 감격스러워했다. “1987년 가두 행진이 생각나요.”

산재를 당해 환자복을 입은 노동자들도 거리로 나와 행진 대열을 맞이 했다. 파업 노동자들은 부상 당한 동료들에게 따뜻한 함성과 박수를 보냈다.

투쟁의 과제

이날 집회와 행진을 마친 노동자들은 자신감을 표현했다. “현장에서는 파업이 대세입니다. 계속 싸워야 합니다.”

그러나 사측은 양보는커녕 노동조건을 공격하려고 한다. 현대중공업 사장 권오갑은 ‘양보는 없다’고 못을 박았다.

이런 사측의 공격을 막아 내고 노동자들의 요구를 쟁취하려면 더 강력한 투쟁이 필요하다. 이번 부분파업은 좋은 출발이면서 또한 이후 과제를 보여 줬다.

많은 노동자들이 파업에 참가했지만, 그것은 조합원 1만 8천 명의 일부였다. 그래서 한 노동자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 나오지 않은 사람들까지 나오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또 하청노동자들의 파업 참가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날 파업에 참가한 많은 노동자들도 그 점을 강조했다.

안타깝게도 이날 공장 곳곳에서는 하청노동자들이 일하고 있었다. 사측이 하청노동자들의 파업 동참을 막으려고 억지로 일을 시킨 곳도 있었다. 생산에 차질이 있기는 했지만 파업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공장이 가동됐다.

그러나 원하청 연대의 가능성도 볼 수 있었다. 행진 대열이 지나가자 하청노동자들은 일손을 놓고 관심 있게 지켜 보았다. 어떤 공장에서는 하청노동자들이 행진 대열에 박수를 보냈다. 그러자 행진하던 노동자들이 환호와 박수로 화답했다.

하청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조건에 시달려 왔다. 또 최근 사측은 위기의 대가를 떠넘기려고 하청노동자들을 해고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많은 하청노동자들이 이번 파업에 관심을 보인 것이다.

이런 하청노동자들의 불만을 정규직노조가 대변하고 지금 벌어지는 공격에 맞서면 하청노동자들의 파업 동참을 이끌어 낼 가능성이 있다.

이날 파업과 집회·행진은 노동자들을 고무했고 동시에 더 강력한 투쟁을 벌일 수 있는 노동자들의 잠재력을 보여 줬다. 그 가능성을 현실화하려면 노조 지도부가 투쟁 수위를 높이고 하청노동자들의 파업 동참을 이끌어 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