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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 분파주의, 징계, 마르크스주의적 도덕

1. 개인주의의 유혹: 우리는 단체다. 우리는 각자 혼자서는 자신일 수 없다. 우리는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자족적인 존재가 아니다. 우리가 단체 생활의 필요성과 특성을 깨닫게 될 때 그 어려움과 복잡성도 알게 된다. 그러나 우리 주위 세계의 개인주의적 압력과 유혹 속에서 우리는 늘 더 쉬운 길, 완화된 조직, 자신의 취향에 맞게 축소된 조직, 출입 통제가 완화되고 경계가 불분명한 조직을 추구하고 싶은 유혹이 들곤 한다. 이때 개인주의는 조직이 가하는 위협에서 자신을 보호하려는 시도이다. 조직을 통제해 조직이 그의 이익을 위해 작용하도록 만들 수 없다면 개인주의자는 뒤로 물러나 그가 통제할 수 있는 그의 삶과 관심사에 헌신한다. 때때로 그는 자신과 취향과 관심사가 비슷한 몇몇 사람들과 함께 특별한 관심사를 추구한다.

2. 개인주의는 자기 중심주의이다: 개인주의는 자기를 세계의 중심에 갖다 놓은 세계관, 즉 자기 중심주의이다. 자기 중심주의는 나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모순되게도 그들은 나에게 뭔가를 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기 중심주의자는 삶을 자신의 욕망과 필요와 선호의 차원으로 환원한다. 그러나 이는 자기 기만이다. 그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는 살 수 없음을 깨닫게 되고, 그래서 불가피한 필요성에 의해 다른 몇몇 사람들과 협력해 살게 된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의 독립성을 기세등등하게 주장하며,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인물이나 사상, 자기를 화나게 만드는 인물이나 사상은 다 배척한다.

3. 개인주의의 도덕: 자기가 세상의 중심에 있다고 생각하므로 개인주의자는 자기의 목적이 다른 사람이나 집단의 목적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의 목적은 그의 수단을 정당화하게 된다. 그는 더 일반적으로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전지윤과 상당수 분파 성원들이 비도덕적인 — 아래 제15항에서 언급할 마르크스주의적 도덕에 비추어 — 수단들을 거리낌없이 사용하는 까닭이다.) 비도덕적인 수단일지라도 그런 수단을 통해 그가 성공을 거두고, 그의 성공이 그의 매우 중요한 목적이라면, 그것은 올바른 선택이 된다. 진실을 말해 패배하기보다는 차라리 거짓을 말해 승리하는 게 낫다.

나의 목적이 그걸 달성하는 수단을 결정한다면, 나의 목적은 또한 내가 가치 있다고 보는 것을 결정한다. 나의 목적이 남이 추구하는 목적과 다르고, 내가 남의 목적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의 목적을 추구한다면, 나의 목적 달성에 이르는 가치를 이해하기에 가장 알맞은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게다가 나의 목적은 나에게 고유한 것이므로 내가 추구하는 가치도 나에게 고유한 것이다. 그러므로 남들은 내 라이프스타일을 비판할 권리가 없다. “참견하지 말고 각자 주관대로 살자.” “무슨 권리로 나를 판단하느냐?” (1월 26일 토론에서 최용찬은 지도부가 전술 구사를 위해 적절한 인적 자원을 물색할 때 그 사람의 성격이나 성향을 따져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는데, 개인의 고유한 가치관을 남이 판단할 수 없다는 취지에서 한 말인 듯했다.)

개인주의자는 그의 도덕적 행위에 대해 남이 의문을 제기할 권리가 없다고 생각해, 흔히 개인적인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 내(개인주의자)가 나에 대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권위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한 마르크스주의자에게는 도덕적 판단의 권위, 따라서 도덕적 책임의 권위도 자아가 아니라 노동계급의 자체 해방과 자체 활동에 있다. 전지윤이 11~12월에 자신의 “양심” 운운하며 자신의 사임 문제 공론화가 노동자 파업에 대한 단체의 일치 단결된 동참보다 더 중요한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그에게 이런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두 일이 병행·양립 가능했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협의회 시즌이 시작되면서 범凡중앙뿐 아니라 단체 전체가 내향화를 겪고 있는 지금의 현실이 또 하나의 무책임한 이 주장을 반증한다.

개인주의자는 자유와 자아실현을 그의 권리로 본다. 남들의 감정이나 단체의 규칙과 전통이 나의 자아실현에 장애물 구실을 한다면 나는 그런 제한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그러나 개인의 자유가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면 사회성과 집단성을 전제로 하는 정의나 절제, 분별 같은 가치들은 부차화될 뿐 아니라, 자유를 제한하므로 아예 바람직한 가치조차 못 되게 된다. 개인주의는 자기를 세상의 중심에 갖다 놓으므로 남을 똑같은 존재로 고려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 19세기 중반 프랑스의 정치철학자이자 역사가 알렉시스 드 토크빌이 한 다음의 말을 곱씹어 보는 것도 유익할 듯하다:

“이기심은 모든 덕목의 싹을 꺾는다. 반면 개인주의는 처음에는 공적 삶의 덕목만을 좀먹는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다른 모든 것들을 공격하고 파괴하고, 마침내는 적나라한 이기심으로 전락한다.”(알렉스 캘리니코스, 《사회 이론의 역사》, 제2판, 126쪽에서 재인용)

4. 규율을 개인주의적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 개인의 자유가 매우 중요한 가치가 되면 그의 개성의 내적 결함보다 그의 외부의 것, 예컨대 단체의 규율과 규칙(규율의 최소한으로 이해하면 된다), 전통 등을 개인 자유와 자아실현의 장애물로 여기게 된다. 때때로 어떤 개인주의자들은 자기 규율에 철저할 수 있다. 그래서 매우 절제하는 개인 라이프스타일을 영위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요구하는 규율은 단체 활동에 필요한 절제 훈련으로, 당연히 단체의 규칙을 지키는 것을 포함한다. 그래서 전통적인 지사志士처럼 아무리 개인적으로는 규율 있게 행동한다 해도 단체 활동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단체의 규칙을 지키지 않고, 또 지키지 않는 것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얘기하는 규율은 사회주의적 규율이 아니다. 부르주아도 부지런하고 개인적으로 절도 있는 생활 습관을 가진 사람은 많다.

5. 개인주의자는 쉽사리 분파주의자가 될 수 있다: 낯 두꺼운 자기 중심주의자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개인주의자들이 이용하는 특별한 방법이 바로 분파이다. 분파주의적 분파는 이렇게 형성된다. 그런 분파는 비슷한 종류의 개인주의를 추구하는 사람들, 같은 선입견을 공유하고, 같은 상처를 안고 있고, 같은 외부인을 멸시하는 사람들이 함께 뭉쳐 자신들의 개인주의를 더욱 강화시킨다. 분파주의적 분파는 그 성원들에게 그들이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동지애를 보여야 한다거나, 자신이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과도 관계를 맺어야 한다거나 하는 어려움을 주지 않으면서도, 분파를 분파주의적으로 보이게 하지 않고 대의명분 있는 조직처럼 보이게 해 주는 편리한 외양을 제공한다.

6. 전지윤의 분파주의: 전지윤은 스스로 선별한 일부 회원들에게만 은밀히 문서를 전달하며 포섭하려 했다. 《공산당 선언》에서 마르크스는 비밀스러운 음모적 조직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게다가 전지윤의 선별 기준은 운영위원회와 심리적·정서적으로 소원함이나 반감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처음부터 그는 지도부를 반대하는 분파를 결성하려 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그의 분파는 최용찬의 주장과 달리 분파주의적이다.(최용찬은 1월 5일 회원 토론회에서 “분파와 분파주의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물론 이것이 분파 성원 개개인이 다 분파주의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종류의 분파는 분파주의적 개인들이 주도하기가 쉬울 것이다.

결과가 입증하듯이, 전지윤의 시도는 조직을 분열시키고 있다. 단체 내의 토론은 특정 사안을 놓고 형성된 논쟁 구도가 다른 사안을 놓고는 다르게 형성되고, 또 다른 사안을 놓고는 또 다르게 형성되는 식으로 전개돼야 한다. 그렇게 되지 않고 모든 사안을 놓고 계속 똑같은 논쟁 구도가 형성된다면 회원들이 모든 문제를 분파주의의 프리즘으로 보게 된다는 것이 분파주의와 불필요한 분열을 반대해 온 건강한 사회주의 전통의 우려였다. 아니나 다를까 전지윤은 처음에 제기했던 진보당 문제를 넘어 갖가지 문제들(대부분 당면 과제들과 별로 상관없는 문제들)을 건설적이지 못한 방식으로 제기하며 점점 더 단체와의 차이점들을 개발하고 있다.

분파주의는 종파주의자들이 대중 운동의 지도부들에 대해 취하는 태도 — 불필요하게 논쟁적이고 경쟁적인 태도 — 를 소속 단체의 중앙 지도부에 대해 취한다. 정도가 심하면 사사건건 트집잡는 식이 된다. 분파주의가 단체를 꼭 부정한다는 건 아니다. 분파주의는 할 수 있는 한 지도부를 배척하면서 단체를 자신에게 맞도록 재정의하려 한다.

7. 음주운전의 비유: 전지윤은 애초에 자신이 분파를 만들 생각이 없었는데, 사무국장의 경고를 받고부터는 분파를 만드는 것 말고 달리 선택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이는 마치 음주를 한 당신이 운전하려는 것을 본 교통순경이 “음주운전 하시면 안 됩니다” 하고 경고하고부터 당신이 본격적으로 음주운전 하기로 했다고 주장하는 것과 비슷하다. 당신의 음주운전이 교통순경 탓이라고 볼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게다가 전지윤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전지윤은 사무국장의 경고를 받기 며칠 전부터 일부(특히, 운영위원회에 대해 그다지 호감을 갖고 있지 않음직한) 회원들을 선별해, 자기가 쓴 문서를 몰래 배포했다.

8. 처음엔 분파 형성 의도가 없었다?: 분파 형성 의도가 실제로 있었는지 여부는 나중에 나타난 결과(분파의 형성)로도 입증된다. 당신이 누군가에게 “너 얻어맞을 줄 알어!” 했는데, 며칠 뒤 당신이 그를 실제로 폭행했다면, 당신이 아무리 그 말을 했을 당시엔 폭행 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해도 도대체 누가 당신의 말을 믿을 것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이 그 말을 했을 때 실제로 폭행 의도가 있었는지 여부가 도대체 쟁점이 될 수 있을까? 어쨌거나 당신은 그를 때렸다! 마찬가지로, 전지윤이 분파 형성 의도가 없었다고 항변해 봤자 그것은 무관한 문제일 뿐이다. 어쨌거나 전지윤은 분파를 만들었고, 만들기 시작할 때부터 일부 회원들을 선별해 포섭하고자 그들에게 문서를 전달했다.

9. 누군가를 포섭할 때부터 조직은 시작된다: 전지윤은 이 행위들이 단순한 문서 전달이었을 뿐, 분파를 조직하기 시작한 건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는 문서를 읽은 사람이 더한층 관심을 보이면 그를 만나서 토론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분파의) 조직이 아니고 무엇인가? ‘선전’과 ‘조직’을 분리시키는 것은 선전주의자의 대표적인 착각이다. 하지만 우리가 누군가를 설득해서 내 대의명분 쪽으로 끌어들이려 할 때 우리는 그를 조직하려 하는 것이다. ‘조직’ 또는 ‘단체’는 두 명 이상의 특정 다수인이 특정한 공동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조직한 계속적 또는 일시적 결합체를 뜻한다.

10. 30명의 의미: 이 조직은 30명이 되기 전에는 아직 분파가 아닌 걸까? 전지윤의 궤변이 또다시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29명짜리 조직은 분파가 아니고 30명짜리 조직은 분파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 단체의 규약(규칙)이 의미하는 바는 30명 이상이 되는 조직만 분파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만약 전지윤에 따른다면, 해마다 협의회 기간 전에는 애써 29명의 회원만 유지하고 있다가 협의회 기간이 시작되면 그동안의 후보자(대기자)들을 분파 명단에 올려 분파 출범식을 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이건 바로 상시 분파 아닌가.

11. 분파 형성 말고 다른 선택이 있었다: 한 달만 참으면 협의회 기간이 시작되는 때였다. 이는 공정성 문제와도 관계가 있다. 운영위원들은 규칙을 지켜 12월 말에야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전지윤은 그 한 달 전부터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페어 플레이가 아니었다. 운영위원들은 철도 파업 때문에 2~3일마다 밤을 새기 일쑤였는데, 그는 빈번한 대규모 집회를 분파의 조직을 위한 기회로 잘도 이용했다.

12. 전지윤 분파는 실패했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그동안(무려 두 달 반!) 겨우 42명의 분파 성원만을 조직했다면 실로 실패라고 규정해야 하는 것이다. 왜 실패한 걸까? 전지윤이 아무리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자 곁가지(지엽)로 흐르기 책략을 써도 훨씬 많은 회원들이 문제의 핵심을 꿰뚫어보고 있다. 즉, 그가 엉뚱한 문제(진보당 경선 부정 여부와 우리 단체의 탈당 시점 문제)를 제기하고 엉뚱한 답변을 강변하다가 문자 그대로 한줌밖에 안 되는 사람들만을 설득하자 단체가 자신을 박해하며 비민주적이라고 먹칠을 해 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피해자 코스프레’(victim playing)일 뿐이다.

13. 책임 전가에 이골이 난 사람들을 위한 노래: 애너 러셀이라는 영국계 캐나다 가수가 있었는데(2006년 작고), 그녀가 부른 노래 중에 ‘정신과 포크송’(Psychiatric Folk Song)이라는 재미있는 노래가 있다. 그 노래의 가사는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며 남 탓을 해 온 전지윤과 상당수 분파 성원들에게 딱 들어맞는다:

“왜 내가 고양이를 죽이고 남편의 눈을 멍들게 했는지 알아보려고 정신분석 의사에게 갔지.
의사는 무언가 알아낼 수 있을지 보려고 나를 푹신푹신한 소파에 눕게 했어.
그리고 그가 내 무의식 속에서 되살린 것들이 있지.
내가 한 살이었을 때 엄마는 내 인형을 여행용 가방 속에 넣었어.
그래서 난 항상 술에 취해 살았던 거야.
내가 두 살 때이던 어느 날 아빠가 파출부와 키스하는 것을 보게 됐어.
그게 내게 병적 도벽이 생긴 이유야.
내가 세 살 때는 오빠들을 향한 양면적인 애증의 감정을 느꼈어.
그래서 자연히 나는 내 연인들을 모두 타락시킨 거야.
하지만 지금 난 행복해.
내가 얻은 이 교훈 때문이지.
내가 하는 그릇된 일은 모두 다른 사람의 잘못 때문이라는 교훈 말이지.”

14. 책임 전가자들의 수동성과 방어주의: 동정심을 얻으려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자의 마음속에 피해 의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심지어 피해망상 증세를 보일 수 있다. 그가 ‘셀프’ 피해자가 되고자 개발한 주장들은 꽤 그럴듯해서 남들은 물론 심지어 자기 자신도 깜박 속일 수 있다.

그러나 피해 의식이 있다는 것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자가 실제로 피해자임을 뜻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스스로 조성했거나 조성하는 데 일조한 상황을 남 탓으로 돌리며 자신은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그래서 상황을 개선하려는 의지도 없다. 흔히 자신의 이런 태도를 정당화하고자 그는 상황의 긍정적 측면보다는 부정적 측면을 더 많이 보아, 전망이 덜 낙관적이거나 심지어 비관적이다. 그래서 모험심이 없고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무력감을 느낀다. 전지윤과 그의 대다수 분파 성원들이 조직 노동계급 운동의 당면 전망에 대해 그다지 의욕적이지 못한 이유다.

그리고 피해 의식이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에게만 몰두한다. 그래서 남의 입장이 되어 볼 줄 모른다. 이렇게 역지사지 할 줄 모르므로 다른 사람들의 건설적 비판에도 귀를 닫고 방어적인 태도를 취한다. 그래서 상대방이 별 뜻 없이 한 질문에서 실제로 있지도 않은 부정적인 의도를 읽고 고슴도치처럼 반응해 불필요한 갈등을 빚는다.

15. 분파주의와 마르크스주의적 도덕: 분파주의는 비도덕적인 것인가 아니면 도덕과 무관한 것인가? 마르크스주의 도덕이 있는가? 있다면 무엇인가? 필자를 비롯한 중앙 활동가들은 전지윤의 행위들을 도덕주의적으로 보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트로츠키에 따르면, 노동계급을, 또 사회주의 노동자들 단체의 회원들을 분열시키는 일은 마르크스주의적 의미에서 비도덕적이다:

“어떤 수단들이 허용되고 의무적이냐 하면, 혁명적 프롤레타리아를 결속시키고, 그들의 마음을 차별에 대한 화해 불가능한 적대로 채우고, ……그들의 역사적 사명에 대한 의식으로 채우고, 그들의 용기와 자기희생 정신을 북돋는 수단들, 오직 그런 수단들만이 허용되며 의무적이다.

“바로 이로부터 모든 수단이 허용되는 건 아니라는 점이 도출된다.……혁명의 위대한 목적은 노동계급의 한 부분과 다른 부분을 서로 반목케 하거나……대중이 자신과 자신의 조직에 대해 갖는 믿음을 떨어뜨리는 비열한 수단과 방법은 거부한다.” (《그들의 도덕과 우리의 도덕》, 1938)

16. 사회주의자가 된다고 함은 무슨 뜻인가?: 우리가 진정으로 노동자 운동의 일부라면 우리는 노동운동의 이름을 짊어지게 된다. 그래서 우리가 잘못하면 노동자 운동의 이름이 더럽혀지는 것이다. 규율이 필요한 이유는 진보진영과 사회운동 안에서 노동자 운동의, 또 노동계급의 이름을 온전히 고양하고 단체의 평판을 보호하는 데 있다. 왜 어떤 사람들은 소영웅이 되기를 열망하거나, 남의 주목을 받고 싶어하는가? 왜 어떤 사람들은 자만심이 강하고 자기 파벌을 형성하고 파쟁과 분열을 조장하는가? 이는 모두 계급간 투쟁과 노동계급 투쟁의 결정적 중요성을 절실하고 정말로 중대하고 실천적인 문제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고, 또 무엇보다 사회주의자의 실존, 즉 사회주의자가 된다고 함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관해 자각적으로 묻지 않고 타성적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왜 사회주의자인가?’ 하는 물음은 ‘왜 사회주의인가?’ 하는 물음과 같지 않다. 다시 말해, ‘왜 사회주의인가?’ 하는 물음에 좋은 답변을 내놓았다고 해서 진정한 사회주의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 답변이 현실화되도록 자신의 삶 전체를 걸고 실천해야 진정한 사회주의자인 것이다. 사회주의의 가능성과 필요성을 옹호하는 주장에 고개를 끄덕끄덕 끄덕이고, 일상으로 돌아가면 혁명적 실천은 실종되고 그저 추상적 토론과 개혁 운동을 조합하는 것이 사회주의자의 삶이 아니다. 생계를 위한 최소한의 필요노동시간을 제외하면, 우리 단체 안이든 밖이든 노동자 운동 안에서 혁명적 사회주의 조직 건설을 위해 자신의 전全 존재를 던져 투신을 해야 그것이 사회주의자의 실존인 것이다. 마르크스의 포이어바흐 비판에 따르면, 이데올로기 투쟁에 특권적 지위를 부여하는 선전주의자는 혁명적 활동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한다(포이어바흐에 관한 제1테제). 상황의 변화와 인간 활동의 일치를 오직 혁명적 실천으로 여길 때만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제3테제).

17. 징계의 목적: 징계는 회원 됨이 뜻하는 바를 분명하게 만들어 주어 사회주의자 됨의 의미도 분명하게 해 준다. 징계는 마르크스주의적 윤리에 어긋나는 잘못을 교정하고 억제하며, 단체 내의 불일치와 분열의 원인을 제거하는 시도이다. 징계는 그런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을 뉘우침과 원상 회복으로 이끌어 그들을 정치적으로 성장케 하려는 시도이다.

그래서 징계의 첫째 목적은 규칙 위반자의 뉘우침이다. 징계의 목적은 규칙을 어긴 자에게 복수하는 것이 돼서는 안 된다. 휴머니즘을 받아들이는 우리 사회주의자들은 악의에 찬 마음이거나 분노하고 옹졸한 마음으로 벌을 주려 해서는 안 된다. 사회주의자가 타락한 동지에 대해 비통해 하거나 안타까워하지 않는다면 그는 회원들 사이에서 규칙 위반을 다룰 수 있는 적절한 정신적 입장에 있다고 볼 수 없다. 징계는 동지애와 자비로운 마음에서 비롯해야 한다. 규칙 위반자로부터 우리 자신을 벗어나도록 하는 것이 돼서도 안 되고, 난감한 상황을 정리해 버리고 잘해 보겠다는 것도 아니어야 한다. 규칙 위반자가 스스로 제 잘못을 깨닫고 마음속으로 가책을 느끼며, 진정한 규율의 무거움을 명심하게 하는 것이다.

징계의 둘째 목적은 화해다.(그래서 ‘규율과 분쟁조정 위원회’라는 기구 명칭이 생겼다. 이하 분쟁위로 줄임) 규칙 위반은 동료들과의 즐거운 교제를 깨뜨리고 그들과의 관계를 소원케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징계 대상자가 자신의 규칙 위반 사실을 인정하고 뉘우치면(물론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뉘우침이어야 한다) 우리는 동지 하나를 얻는 셈이다.

징계의 셋째 목적은 위에서 언급된 뉘우침과 화해라는 두 가지 목적이 실패했을 때 불가피하게 실행돼야 하는 것으로, 문제의 위반자를 축출해서 무규율의 전염으로부터 단체를 정화하고 보호하는 것이다. 사회주의적 규율은 무엇보다 훈련이다. 사회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훈련받는(노동계급 투쟁이 훈련소이다) 삶을 살고 필요하다면 겸손히 징계를 받는다는 뜻이다. 사회주의 단체의 징계는 바르게 시행되고 겸손히 받아들이면 규칙 위반자와 피해자와 단체와 회원 주위의 조력자들에 대한 회원들의 개입에 득이 된다. 징계는 즐거운 일은 아니지만 결국에는 단순한 운동과 혁명적 사회주의 단체를 구별함으로써 규율과 원칙이 모두 있는 활동가들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만약 규칙 위반자가 자신이 규칙 위반 사실을 시인하지 않고 뉘우치지 않는다면? 그런데도 사회주의 단체가 그의 존재를 묵인한다면 그것은 그의 무규율로 단체를 오염시키는 셈이다. 지도부는 관대하다는 칭찬은 받겠지만, 규칙 위반과 규율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회원들에게 전하는 셈이다. 이 메시지는 맥빠진 것이고, 단체는 결국 무규율하고 분파주의에 찌든 조직이 되는 것이다. 무규율한 행태들과 분파주의가 난무하면 곧 정치적 무원칙함도 뒤따른다.(사회주의 운동에서 도덕과 정치가 서로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단체는 노동운동 투사들의 존경을 못 받고, 지도부는 회원들의 신뢰를 못 받는다. 그러므로 조직 전체를 강화하고 조직의 일치 단결을 위해서 징계가 불가피하다고 판단되면 칼을 빼들어야 한다.

18. 뉘우치지 않는 규칙 위반자를 어찌할 것인가?: 징계를 통해 달성할 우선적인 목적이 뉘우침과 화해인데도 전지윤의 뉘우침은 전혀 없었다. 되레 그는 처음부터 분쟁위를 마치 자본주의 국가의 수사기관처럼 간주해 ‘수사투쟁’을 해 왔다. 그는 특히 운영위원회에 너무도 적대적이었던 나머지 운영위원을 겸하고 있는 분쟁위원인 김태*이 “제척”(除斥: 법관 및 법원 사무관 등이 특정 사건에 대해 법률에서 정한 특수한 관계가 있을 때 법률상 그 사건에 관한 직무 집행을 행할 수 없게 하는 것 또는 그런 제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협의회 자료집 기고문이나 회원 토론회 연단이나 분쟁위 인터뷰 등의 자리에서 마치 NL계 조직사건 피고들이 혐의 사실들을 일절 부인하며 수사 및 법정 투쟁을 하듯이 그도 자신의 규칙 위반 사실들을 일절 부인해 왔다.

이렇게 중앙 지도부를 처음부터 전면 부정해 온 바람에 전지윤과 분파 성원들은 지도부에 대한 태도 문제에 관한 한 일종의 아나키스트 비슷한 태도를 보이게 됐다. 물론 분파 성원들 가운데 다수가 부분적으로(semi-) 아나키즘적·자율주의적인 사회운동 분위기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이것은 거의 국제적인 현상이고,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한국 좌파 진영의 대부분에도 적용된다. 국제적으로, 부분적 아나키즘·자율주의는 좌파적 개혁주의(특히 그리스의 시리자)와 친화성을 보이고 있다. 영국의 사회주의노동자당 SWP에서 분리해 나간 분파들도 이런 경향을 보였다. 민주집중과 단결 분파 성원들 다수의 경우는 민주노동당 엔트리 시기에 습득한 연방주의적 조직관(다양한 정치적 경향이 함께 공존하자는 조직관)을 가진 듯하다.

중앙 지도부와 분쟁위의 권위를 마치 부르주아 국가의 권위와 같은 것처럼 취급해 전면 부정하고 그에 맞서 비타협주의적으로 투쟁해 온 것과, 명백한 규칙 위반 사실들도 전면 부정해 온 것 때문에 전지윤에게 뉘우침은커녕 화해도 불가능한 상태다. 그렇다면, 위에서 언급됐듯이, 뉘우치지도 않고 화해하기도 불가능하므로 우리 단체가 전지윤을 내쫓아야 할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는 대의원 선거를 치르면서 바뀐 생각이다. 분파는 전체 47명의 대의원 가운데 단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다! 전지윤 자신이 중부지회 대의원 선거에서 후보로 나와 겨우 세 표만을 얻었다! 조직 전체적으로 2백2명이 투표에 참가했고, 그 가운데 분파 성원은 11명이었다. 분파 소속 후보는 4명이었고, 이들은 12명으로부터만 표를 얻었다. 분파는 5.9퍼센트의 지지밖에 못 얻고 있는 것이다. 투표에 참가하지 않은 분파 성원이 31명이 더 있다고 항변해도 투표에 참가하지 않은, 권리 있는 비非분파 성원이 2백65명이나 되므로 이러한 항변의 효력은 없다.

전지윤과 분파가 이렇게 처참할 정도로 지지가 적은 것은 그들이 모든 면에서 부적절한 방식으로 행동했기 때문이다. 전지윤의 음모적·분파주의적 조직 방식, 분파의 요구 자체, 중앙 지도부를 대하는 방식과 태도, 반쪽 진실들 조합하기와 둘러대기와 잡아떼기, 분파 성원들 대다수의 미숙함·유치함·조급성 등등의 약점들이 결합돼, 이 집단이 대의명분 자체를 결여하고 있는 것으로 절대 다수 회원들에게 비쳐진 듯하다. 1월 26일 토론회 마지막 정리 연설에서 전지윤은 그 날의 토론 주제인 민주집중제 문제와는 관련 없는 단체의 과거 실천과 관련된 몇몇 쟁점들을 느닷없이 제기해 자기 딴에 중앙의 허를 찌르고 마치 자기와 분파에게 그 나름의 정치적 관점이 있음을 암시하려 했지만, 그것 역시 결과적으로 회원들의 빈축을 샀을 뿐이다: “그런 문제가 그 날의 토론 석상에서 제기하기에 적절했나? 그렇게 이 쟁점, 저 쟁점 다 긁어 모아 이견을 드러낼 요량이라면 왜 분파는 전지윤 징계 반대라는 단일 쟁점 중심으로, 그것도 ‘민주집중과 단결 분파’라는 명칭 하에 형성했나? 그렇게 다양한 쟁점에서 차이점을 드러낸다면 그건 사실상 상시 분파 아닌가? 그리고 과거의 여러 차례 협의회 때 전지윤은 왜 침묵하고 있었나? 그때 분파를 형성하지 않고도 각각의 쟁점 별로 자기 나름의 의견을 개진해 토론할 수는 없었던 걸까?” 등등.

이처럼, 전지윤과 분파 성원들 다수의 분파주의와 지각 없음과 철없음 때문에 스스로 정치적으로 만신창이가 돼, 그에게 징계를 내리지 않을 경우에 발생할 나쁜 영향력은 최소화돼 버렸다. 반면 이번에 분파를 겪으면서 분파주의와 무규율에 대한 회원들의 이해와 면역력은 크게 늘어났다. 많은 회원들의 심정과 달리, 이런 상황에서는 전지윤에 대한 실제적인 징계가 꼭 필요한 게 아니다.

물론 분쟁위 1심 평결도 실제적인 징계는 아니었다. 그것은 상징적인 징계였다. 전지윤은 협의회 시즌 시작 전에 하던 일을 고스란히 그대로 할 수 있었다. 그는 토론회에 초청돼 동등한 패널 대우를 받았고, 그의 글은 중앙 지지자들의 글과 나란히 자료집에 실려 발표됐다. 그는 지회모임이나 포럼에도 올 수 있었고, 대의원 후보로도 출마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와 그의 분파 성원들이 미칠 좋지 않은 영향(분파주의·무규율·개인주의 등)이 바닥난 상황에서는 상징적인 징계 이상의 것이 필요하지는 않은 듯하다. 그럼에도 “전지윤이 계속해서 조직을 파괴하거나 혼란에 빠뜨리면 어떡하냐, 관용이 이런 일을 부추기지 않을까?” 하는 이의 제기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가 더는 그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만에 하나 그런다면 회원들 사이에서 역풍이 불어 그에 대한 지지는 더욱 협소해질 것이다.

아무튼 우리는 그가 이번 일을 계기로 분별력이 생겨 조직에 혼란과 파괴를 일으키지 않고 운동에 기여하기를 바라야 한다.

19. 3월 2일 이후 정상화될까?: 그렇다고 해서 분파가 3월 1일 밤 이후 자진 해산할까? 애초에 분파가 내놓은 요구(전지윤 징계 반대)는 일종의 표지標識 또는 표상表象이었을 뿐이다. 실제로는, 전지윤과 분파 성원들은 두 가지 근본적 문제를 놓고 중앙과 심각한 견해 차이를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첫째, 혁명가와 개혁주의자, 그 밖의 다양한 경향들이 병존하는 느슨한 연방주의형 조직이냐 아니면 잘 훈련되고 기강이 잘 잡힌 개입주의형 조직이냐 하는 ‘조직 문제’이다. 둘째, 위에서 언급된 “(혁명적)사회주의자의 실존” 문제, 즉 “사회주의자란 어떤 사람인가?” 하는 문제이다. 사회주의자란 사회주의 사상에 찬동하고 그 사상을 전파하는 데 일조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그 사상을 구체적인 노동자 투쟁 속에서 전술들로 구현하려 애쓰는 사람인가?

이 두 문제에 엄격하고 단호한 답변을 내놓은 사람들이 대부분 중앙을 지지하고 있고, 관대하고 물렁한 답변을 내놓은 사람들이 분파 성원의 거의 전부를 이루고 있다고 대강 말할 수 있다. 물론 중앙측 지지자들의 소수는 다양한 이유로 그다지 엄격하거나 단호하지 못할 수 있다. 또한 이 논쟁 자체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분파 성원의 절대 다수가 NL이 지도하는 통진당은 싫어도 모종의 범좌파 정당에 향수를 느끼거나 그런 정당의 재건을 대망하는 것을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들은 대부분 2009년 초 이후 조직이 단단해지고 강경해지기 시작하는 것에 부담감과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특히, 2012년 4월부터 일꾼회의를 창설하고 지구를 지회 단위로 분할해 좀더 민주집중제 방향으로 응집력을 강화하고 노동운동에 대한 개입을 강화하기 시작하자 부담감과 두려움은 더 커졌을 것이다. 그러던 터에 전지윤이 깃발을 들자 거기서 저항을 위한 리더십을 발견하고 순식간에 결집했을 것이다. 특히, 운영위가 엄격함과 단호함을 넘어 가혹하고 냉정하게도 힘을 행사하기까지 하자 거의 필사적으로 저항해 온 듯하다. 운영위가 전지윤 징계(비록 상징적이지만)를 노동자 투쟁 개입 강화라는 자체 어젠다를 위한 시금석으로 보는 만큼이나 분파 성원들도 그 일을 보수적 견지에서 그들 나름의 시금석으로 보고 있다. 그들의 자세가 보수적이라고 하는 이유는 2000년대 대부분 동안의 우리 활동을 특징지었던 민중주의적 가두 항의 정치, 범좌파 정당의 우산을 받고서 하는 정치, 느슨한 회원 자격과 느슨한 조직 구조 등을 고수하려 하기 때문이다. 특히, 분파 성원의 거의 절반은 지난 2년간 지회 모임에 단 한 차례도 참석하지 않았는데, 이런 사람들일수록 자본주의 사회의 압력에 더 많이 노출됐을 것이고, 그래서 십중팔구 우리 단체의 최신 노선이 시류를 거슬러 다소 ‘꼴통스런’ 방향을 지향하고 있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지회 모임에 비교적 잘 나오던 분파 성원들도 이들과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외부 세계의 압력에 타협하려 한다는 점에서는 본질적으로 유사하다. 그래서 분파 성원들 절대 다수의 경향은 국제적으로도 그렇듯이 어느 정도의 아나코자율주의와 어느 정도의 좌파개혁주의를 혼합한 모습이다.

국제적으로, 이들은 분파주의에 대해 엄하고 혹독한 지도부와 충돌했을 때 크게 네 부류로 나뉘었다. 또한 지난 80년에 걸친 분열투성이 트로츠키주의 운동의 역사를 보아도 분파의 거취를 대충 알 수 있다. 첫째, 탈퇴해서 새 조직을 건설하는 험난한 길을 밟기 시작하는 사람들. 둘째, 탈퇴해서 새 조직에 가세하지 않고 별로 활동하지도 않는 사람들. 셋째, 탈퇴하지 않고 남아서 마음을 고쳐먹고 중앙과 협력하려 해 보는 사람들. 넷째, 탈퇴하지 않고 남아서 은밀하게 상시 분파를 유지하고 건설하는 사람들.

3월 2일 밤 이후 분파 성원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남을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다만, 국제적·역사적 경험에 따르면, 우리는 탈퇴하지 않고 남기로 한 분파 출신자들과 정치적으로 타협하지 않고 참을성 있게 토론을 해가며 그들의 정치 생활이 분파 가입 전으로 원상 회복되기를 바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