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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의 전투성과 계급성을 방어하며

노동운동의 전투성과 계급성을 방어하며


z노무현 정부가 󰡐노동귀족론󰡑을 무기로 노동운동을 공격해 온 상황에서 노동운동을 비판한 박승옥의 글은 곧 주류 언론의 노동운동 공격에 이용됐다.

〈매일경제신문〉은 󰡒현재의 노동운동이 이미 배가 불러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투쟁으로 변모했[다]󰡓(9월 5일치 사설 󰡐선배 노동운동가 충고 경청해야󰡑)며 노동운동을 비난했다.

박승옥은 한국 노동운동이 󰡒정당성의 위기와 존폐의 위기에 놓여 있다󰡓고 말한다. 노동운동이 󰡒대기업 정규직 남성 노동자 중심󰡓의 󰡒또 다른 가진 소수의 운동󰡓이 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박승옥이 󰡒또 다른 가진 소수󰡓, 󰡒연봉 4~5천만 원, 심지어는 6천만 원󰡓, 󰡒고용안정과 높은 수준의 보상󰡓 등을 인용․언급할 때 노무현과 조․중․동의 󰡐노동귀족론󰡑이 떠오르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런 주장은 평범한 노동자들과 수십․수백 배나 차이가 나는 진정한 󰡐가진 소수󰡑들을 먼저 비난하지 않는다는 점뿐 아니라,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수준과 근로조건을 과장한다는 데도 문제가 있다.

소위 대표적 󰡐노동귀족󰡑(?)인 현대자동차 노동자들도 기본급은 1백30여만 원에 불과하다. 휴일도 없이 잔업․철야․특근까지 하루 14시간씩 일해야 연봉 5천만 원이 가능하다.

더구나 박승옥도 인정하듯이 이런 대기업 조직 노동자들의 상대적 󰡐고임금󰡑마저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투쟁의 과실󰡓이다. 즉, 민주노조를 건설해 단결하고 투쟁해 온 노동자들이 지배자들의 양보를 받아 낸 것이다.

물론 박승옥의 지적처럼 중소기업 비정규직 노동자들 󰡒대다수는 조직되어 있지 않을 뿐 아니라 노동운동의 어떠한 결실이나 혜택에서도 배제돼 있다.󰡓

그러나 이로부터 나올 결론은 중소기업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민주노조 건설을 통한 단결과 투쟁으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87년 이후 투쟁으로 쟁취해 온 󰡐과실󰡑을 따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사회의 진정한 불평등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들 사이에,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 사이에 있지 않다. 진정한 불평등은 노동자 전체와 소수 특권 지배자들 사이에 있다.

이 불평등 구조에 맞서는 투쟁에서 가장 선봉에 선 노동자들을 매도해서 나머지 노동자들과 이간질시키고, 투쟁을 약화시키려는 것이 󰡐노동귀족론󰡑의 본질이다.

비정규직의 열악한 처지를 핑계로 대기업 노동자 투쟁을 비난하던 노무현 정부가 최근 비정규직 확대 강화 방안을 발표한 것에서도 󰡐노동귀족론󰡑의 본질과 위선은 드러난다.


전투성에 대한 공격


박승옥은 노동자들의 단결을 해치는 논리를 받아들일 뿐 아니라 나아가 대기업 노동자들의 전투적 투쟁을 공격하고 있다.

그가 󰡒총파업 선언의 빈번한 반복󰡓, 󰡒대중투쟁 일변도의 전략󰡓, 󰡒전투적 노동조합주의󰡓를 인용․지적할 때 그의 칼 끝은 분명히 󰡐전투성󰡑을 겨냥하고 있다.

그가 󰡐정권과 자본에 맞선 전투적 투쟁󰡑을 거부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그런 투쟁은, 그 성과가 물가인상 등을 통해 도로 사라지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것이다. 또, 󰡒전투적 조합주의󰡓는 󰡒한국판 생디칼리즘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자본주의 내에서 임금인상과 근로조건 개선의 한계 때문에 독일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도 이것을 󰡒시시포스의 노동󰡓이라 말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파업에 대해 󰡒그 경제적 결과들이 겉보기에 하찮다고 해서 그것들에 눈감아서는 안 되며, 무엇보다도 그 도덕적 정치적 결과들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즉, 노동조합을 통한 일상적인 투쟁과 파업을 통해서만 노동자 계급의 의식과 조직이 성장하고, 궁극적으로 자본주의 체제를 근본적으로 변혁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 박승옥이 제시한 󰡒시장경제에 대한 민주적 통제 강화를 위한 제도적 참여의 대장정󰡓은 노동자 대중을 상층지도부와 정부의 협상만 바라보는 수동적 구경꾼으로 만들 것이다.

박승옥이 󰡒전투적 조합주의󰡓는 󰡒한국판 생디칼리즘󰡓이라고 비판할 때도 그의 비판의 초점은 󰡐전투성󰡑에 있다.

생디칼리즘(노동조합주의)은 정치와 정치운동을 배척하고 노동조합을 통한 경제적 투쟁만을 강조하는 사상 및 운동이다. 총파업 등을 통해 자본주의 국가를 타도하고 사회주의를 건설한다는 혁명적 생디칼리즘까지 포괄하는 모든 생디칼리즘의 문제점은 정치 배제에 있다.

이런 정치 배제와 기피는 노동자들의 의식을 공장 담벼락 안에 가두어 경제적 투쟁마저 마비시키며, 결국 정치에 대한 주도권을 자유주의 또는 개량주의 정치인들에게 맡겨 버리게 된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투쟁은 경제 투쟁에 머물지 않고 정치 투쟁으로 나아갈 수 있다. 정치 투쟁과 경제 투쟁은 상호 작용해, 노동자들의 의식과 힘을 강화시킨다. 따라서 󰡐전투성󰡑이 문제가 아니라 경제 투쟁에서 발휘되는 󰡐전투성󰡑이 정치 투쟁에도 이어져야 하는 것이다.


생태적 위기와 마르크스주의


노동자들의 투쟁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아니라 독 자체를 바꾸는 투쟁으로, 즉 근본적 변혁을 위한 투쟁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박승옥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에 대해 혁명적 대안이 아니라 󰡒생태적 대안󰡓을 제시한다.

󰡒사회주의는 성장과 발전의 이념이라는 점에서 자본주의의 쌍둥이에 지나지 않󰡒고 󰡒생산수단을 사회화하고 개인소유를 제한한다고 해서 생태적 위기가 해결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는 󰡒자연을 고려하지 않기는 … 마찬가지󰡓라며 마르크스주의를 매도한다. 그러나 인간과 자연의 상호관계에 대한 깊은 이해는 마르크스주의의 기초이다.

마르크스는 자연이 인간의 󰡒비유기적 몸󰡓이라고 말했다. 엥겔스는 󰡒우리는 … 자연의 외부에서 자연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살과 피와 뇌를 가진 우리가 자연에 속하고 그 한복판에서 살아가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며 󰡒자연과 인간의 대립이라는 어리석고 부자연스러운 관념󰡓을 비판했다.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에서 환경 파괴가 이윤을 위한 경쟁적 축적에서 비롯한다고 지적한다. 이윤만 추구하는 󰡒개별 자본가들은 가장 단기적이고 직접적인 결과들만을 우선적으로 고려󰡓(엥겔스, 《자연변증법》)하기 때문에 이윤을 위한 환경 파괴가 이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생산수단을 사회화󰡓해 경쟁적 축적의 노예인 개별 자본가들의 통제권을 뺏는 것은 󰡒생태적 위기가 해결될 수󰡓 있는 중요한 전제이다.

노동 대중이 사회 전체의 필요와 안전을 위해 생산을 집단적으로 통제하는 사회주의도 󰡒성장과 발전의 이념󰡓이라는 박승옥의 주장은 옳지 않다. 󰡐축적을 위한 축적󰡑은 자본주의의 특징일 뿐이다.

따라서 󰡒󰡐더 적게󰡑 소비󰡓하는 것이 핵심이 아니다. 이 체제의 진정한 문제는 부와 권력을 독점한 소수 지배자들이 인간과 자연을 착취한다는 데 있다.

소수에게 집중된 부와 권력을 다수 대중의 수중에 돌려서 인간과 환경을 파괴하지 않는 방식으로 운영하는 게 핵심이다. 그런 사회가 반드시 저소비 사회일 이유는 없을 것이다.

계급투쟁, 폭력, 전태일


자본주의의 근본적 변혁을 대안으로 보지 않기에 박승옥은 마르크스주의의 계급과 계급투쟁 사상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에는 … 부정의 배타성이 곳곳에 기저에 깔려 있다󰡓고 비판한다. 󰡒계급의식과 적대감을 지나치게 고취시키는 계급 개념은 노동운동의 능동적 전환에 하등의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는 사물이나 사회 내부의 모순과 대립․갈등에서 변화와 발전을 설명하는 󰡐부정의 변증법󰡑이다. 따라서 적대적인 계급 간의 󰡐계급투쟁󰡑을 역사 발전의 원동력으로 본다.

마르크스는 낡은 체제를 유지하려는 지배계급에 맞서서 피지배 계급이 승리할 때 역사가 발전한다고 봤다. 이 투쟁의 승리를 위해 계급의식을 고취하는 것은 박승옥이 생각하는 󰡒노동운동의 능동적 전환󰡓에는 맞지 않겠지만 필요한 일이다.

박승옥은 󰡒노동운동은 … 이제 폭력 행동도 그만두어야 한다. … 아직도 시위 때 등장하는 쇠파이프는 이제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수많은 사람을 죽음과 고통으로 몰아넣는 이라크 파병과 신자유주의 정책이라는 노무현 정부의 진정한 폭력을 모른 척하며, 그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 불과한 노동자들의 방어적 폭력만을 매도하는 것은 보수 언론이 즐겨 쓰는 수법이다.

그러나 용역깡패나 경찰력에 맞서 자신들의 투쟁을 방어하기 위한 노동자들의 방어적 폭력은 대개 불가피하고 정당하다.

박승옥은 이번 글에서 전태일 정신의 계승을 말했다.

전태일 열사는 󰡒인간이 … 인간적 본능의 충족을 무시당하고 희망의 가지를 짤린 채, 존재하기 위한 대가로 물질적 가치로 전락한 인간상을 증오한다󰡓고 썼다.

그리고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동등하게 보장되며 인간이 서로 사랑하면서 인간적인 정을 느끼고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어떤 불의도 묵과하지 않고 주목하고 시정하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전태일 열사의 이같은 비타협적․급진적 사상은 박승옥이 말하는 전투성과 계급성이 거세된 노동운동 노선과 전혀 다르다.

진정한 전태일 정신의 계승은 노동운동이 전투성과 계급성을 더욱 고양시키며 자본주의의 근본적 변혁을 위한 투쟁으로 나아가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