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노조 지도부는 시간을 끌면 박근혜의 계획을 좌절시킬 수 있다고 여기는 듯하다. 내년 하반기에는 총선을 신경 쓰느라 공무원연금 개악을 밀어붙이기 어려울 것이라는 계산이다. 사회적 합의기구를 구성해 논의에 들어가면 그때까지 시간을 끌 수 있다는 생각을 할 법하다.

그러나 선거를 앞두고 있다고 해서 개악안 처리가 아예 불가능해지는 것은 아니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보수 표를 결집시키기 위해 공무원연금 개악을 밀어붙일 수도 있다.

게다가 사회적 합의기구 요구가 시간 끌기용인 것은 저들도 뻔히 알고 있다. 그래서 그토록 ‘연내 처리’를 강조하고 심지어 노동조합을 논의에서 배제하는 훈령까지 통과시킨 것이다.

물론 국회선진화법이나 청와대 문건 폭로 등으로 인한 곤혹스러움 때문에 새누리당이 술책을 부리려고 합의기구 구성까지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사회적 합의기구는 시간을 조금 끄는 대신 노동자들에게 양보를 강요하는 구실을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사회적 합의기구

 

반면 사회적 합의기구 구성에 무게가 실리면 양보하거나 하다못해 양보 제스처라도 보여 줘야 한다는 압력이 커진다. 공무원노조 이충재 위원장은 최근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해 2010년 개악을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개혁’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당시 사회적 합의는 ‘더 내고 덜 받는’ 개악이었다. 특히 신규 공무원들에게 더 큰 불이익을 주는 개악이었다. 당시 전공노(공무원 노조 통합 이전의 좌파 노조)는 합의에 반발해 협의체에서 탈퇴했다.(탈퇴 이후 효과적으로 투쟁을 건설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한편, 박근혜 정부의 공무원연금 개악을 막기 어려우니 사회적 합의기구를 통해 그나마 개악의 폭을 줄이는 것 말고 다른 방도가 없다고 여기는 노동자들도 있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는 대충 하고 물러설 생각이 없다는 점을 거듭 강조한 바 있다. 경제 전망이 갈수록 암울하기 때문이다. 박근혜는 공무원연금 개악을 신호탄 삼아 세월호 참사 때문에 지연된 공격을 본격적으로 밀어붙이려 한다.

그런데 바로 이처럼 집요한 공격에 맞서려면 노동자들도 최대한 힘을 집중해야 한다. 시간을 끌고 양보 제스처를 취하는 것은 노동자들의 사기를 떨어뜨려 우리 편을 불리하게 할 뿐이다.

물론 공무원노조가 법외노조인 데다 이미 2004년 파업으로 해고된 1백30명의 해고자가 있는 상황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최대한의 힘을 발휘한다면 승리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11월 1일 대규모 집회 뒤에 정부가 전국 곳곳에서 개최한 포럼을 모조리 무산시킨 것에서 보듯 상당한 노동자들은 강력히 싸울 태세가 돼 있다.

또 이보다 훨씬 많은 조합원들이 집회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미 올해 초 60퍼센트가 넘는 조합원들이 파업을 할 경우 참가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에서 드러난 청와대의 분열을 노동자들이 싸울 기회로 이용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노동자들의 투쟁이 강력해질수록 지배자들이 분열할 가능성도 커진다.

박근혜가 기를 쓴 “연내 처리”가 안 된다면 기분 좋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시간이 많이 남은 것도 아니다.

지금까지 보여 준 투쟁 잠재력을 공중분해시키지 않으려면 조합원들이 참가하는 개악 저지 캠페인을 구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