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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이 나라 자유민주주의 수준의 저열함을 드러내다

12월 19일 헌법재판소가 진보당 해산 결정을 내렸다. 공안검사 출신 헌재소장 박한철을 비롯한 8명이 해산에 찬성했다(해산 요청 기각 의견 1명). 헌재는 진보당 소속 의원 5인 전원의 의원직 박탈도 주문했다.(그러나 헌재는 국회의원 의원직 박탈에 대해서 법률적 근거를 내놓지 못했다.)

ⓒ사진 출처 사진공동취재단

헌재의 해산 결정문은 “공안검사의 공소장이나 다름없었다”(이재화 진보당측 변호인). 박근혜 정부가 해산 청구를 한 지 1년 만에 헌재는 철저히 박근혜 정권의 필요와 요구에 맞춘 결정을 내렸다. 이 날 결정으로 헌재가 수호하고자 하는 헌법은 진정한 민주주의와는 털끝만큼도 관련이 없고 자본가 계급 독재를 정당화하는 수단임이 다시 한 번 드러났다.

헌재는 진보당이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종”했기 때문에 해산이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이를 두고 내놓은 증거라고는 이석기 의원 등이 모인 ‘RO’ 회의 석상의 발언, 진보적 민주주의 강령 정도다.

그러나 헌재가 문제 삼은 발언은 어디까지나 진보당의 일부 활동가들이 참석한 모임에서 나온 것일 뿐이고, 설사 거기에서 일부 과격한 주장이 오갔다 한들 구체성도 없고 그나마 실현 가능성도 없어 계획이라고 볼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이런 모임과 주장들은 진보당의 공식 입장이나 결정도 아니었다.

따라서 이 토론 모임이 ‘진보당 활동으로 귀속된다’는 헌재의 주장은 말도 안 된다. 게다가 검찰이 내란음모를 꾸몄다고 기소한 ‘RO’는 고등법원에서 무혐의 판결이 내려졌다.

선거주의

그런데도 헌재는 이석기 의원 등이 참석한 토론에 대해서도 “내란을 논의하는 회합”이라고 여러 차례 규정하며 ‘이석기=내란음모세력=진보당’이라는 논리를 들이댔다. ‘RO’ 사건 최종 선고를 앞두고 대법원에 압력을 주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또한 헌재는 ‘진보적 민주주의’ 강령을 만든 진보당 내 자주파가 북한 추종 세력이며, 따라서 이 강령도 북한식 사회주의를 따르고 있으며, 진보당 활동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진보당 방어를 위해 헌재 공개 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한 김인식 노동자연대 운영위원은 자주파가 혁명주의자가 아닌 선거주의자라며 이렇게 증언했다. “[진보적 민주주의로의] 강령 개정이 가리켰던 것은 민주당과 연합해서 대선을 치르고 그래서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쪽으로 가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민주노동당이 강령을 바꿔서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한다는 얘기는 사실은 민주노동당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아는 진보진영에서는 다들 믿지 않는 얘기다. … 강령을 바꾼 이유는 바로 선거에서 더 많은 표를 얻기 위해서였다.”

즉, 진보적 민주주의는 모종의 혁명 전략이 아니라 오히려 선거주의 전략에 맞춘 것이었다. 따라서 진보당 내 자주파를 모종의 혁명 세력이라 보는 것은 “1980년대의 희미한 그림자일 뿐이다.”

헌재는 실체적 증거는 깡그리 무시한 채, 오직 심증만을 근거로 판결을 내렸다. 아마도 애초부터 헌재에게 실체적 증거들은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무려 17만 5천여 쪽에 달하는 증거가 제출된 재판을 1년여 만에 매듭지을 수 있었을 것이다.

사상·토론·결사의 자유 가로막고 싶은 박근혜 정부 권영국 변호사가 헌재 결정에 항의하다 끌려나가고 있다. ⓒ사진 출처 사진공동취재단

결국, 헌재가 판결 근거라고 내세우는 “목적과 활동”은 사상과 주장을 가리킨다. 머릿속 생각을 검열하고 처벌하고 심지어 정당까지도 해산해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침해다. 이 나라의 자유민주주의 수준이 매우 저열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런데도 헌재가 이따위 결정을 내리며 “민주주의”를 수차례 언급한 것은 정말이지 역겨운 노릇이다.

“당선 2년 선물”

이번 결정은 박근혜 당선 2년이 되는 날, “코너에 몰린 대통령에게 주는 선물”이나 다름없다. 청와대 문건 폭로와 실세 논쟁에서 촉발된 청와대 이전투구로 박근혜는 정치적 타격을 입고 있었다. 여러 여론조사에서 40퍼센트 지지율이 무너졌다. 특히, 대선에서 박근혜에게 투표한 층에서도 이탈이 감지됐다. 이런 상황에서 우파들을 결속시킬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박근혜 자신이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신은미, 황선 씨를 비난한 것이 반격의 신호탄이었을 것이다.

헌재 결정이 내려지자마자 대검찰청은 ‘통합진보당 위헌정당해산 관련 공안대책협의회’를 열고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해산된 정당의 목적을 위한 집회·시위’를 금지되는 집회·시위의 유형으로 규정했다. 헌재의 결과에 무조건 따르라며 어떤 비판의 목소리도 허용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는 것이다.

국정원 대선 개입이 불거지자 정당 해산 카드를 꺼내 들었던 박근혜 정부는 이번에도 해산 결정을 최대한 활용하려 들 것이 뻔하다. 박근혜는 진보당 해산을 우파 재결속의 발판으로 삼아 공무원연금 개악, 해고 요건 완화 등 노동자들을 향한 공세를 강화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도 경제 위기와 세월호 참사 진실규명 운동 등 정치적 항의 운동과 노동자 투쟁으로 정치적 내상을 입고 있는 처지다.

따라서 노동운동 진영은 이번 결정으로 위축되지 말고 박근혜의 대(對)노동자 계급 공세에 맞서 효과적으로 싸울 준비를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