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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경영 참여는 노동자들을 분열시킨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2016년 말까지 서울 메트로(1호선~4호선)와 서울 도시철도공사(5호선~8호선)를 통합하겠다고 발표하자, 서울지하철노조 지도부는 환영 입장을 냈다. 서울시가 ‘인위적 구조조정은 하지 않겠다’며 적극 설득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서울시의 통합 계획에는 인력 재배치 방안과 대중교통 요금 인상이 포함돼 있다. 그런데도 서울지하철노조 지도부는 서울시의 통합 계획에 찬성했다. 아마 박원순 시장이 ‘노동이사제’와 ‘경영협의회’를 도입해 노조의 ‘경영 참여’를 보장하겠다고 한 것이 큰 영향을 미친 듯하다.

노동이사제는 노동자 대표를 기업 이사회에 파견하는 제도이며, 경영협의회는 경영과 관련한 사안을 노조와 협의하는 기구이다.

노동이사제와 경영협의회는 노조 경영 참여의 한 방법으로 진보진영의 일부가 오랫동안 요구해 온 제도 중 하나다. 노조의 경영 참여를 통한 “투명 경영이 이 사회의 부정부패 척결과 노동자들의 고용 안정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노조의 경영 참여는 실패한 사외이사제를 대신해 재벌 개혁과 경제민주화를 위한 대안으로도 제시되고 있다. 최근 대한항공 조현아 사건이 벌어지자 정의당 심상정 원내대표는 재벌의 족벌경영에 대한 대안으로 “독일의 노동조합 경영 참여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특히 이번 경제 위기를 겪으며 ‘독일 모델’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독일식 경영 참여 방안에 대한 논의도 활발해졌다. 〈한겨레〉는 독일 폭스바겐이 “1990년대 초반 국외 공장의 부진 등으로 구조조정의 위기에 몰렸지만, 노사가 고용 안정과 유연한 근무시간제 등을 교환해 위기를 탈출한 바 있다”며 독일식 경영 참여를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실제로 노동자 대표를 이사회에 참여하도록 하는 법 개정안을 여야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상태다.

박원순 시장이 제안한 노동이사제와 경영협의회도 독일식 경영 참여의 주요 제도들이다. 물론 실제로 도입될 노동이사제와 경영협의회가 독일 수준의 참여를 보장할지는 두고 봐야 하지만 말이다.

독일식 경영 참여

일본이나 미국 기업들이 ‘노동자 경영 참여’라는 명목으로 제품 품질 관리, 노동자 제안, 작업장 개선, 적시 생산방식 등 생산성 향상을 위한 제도를 운영하는 것과 달리,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노조의 경영 참여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특히 독일은 유럽 나라 중에서도 노조의 경영 참여 수준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독일에서는 노동자가 5명 이상인 기업은 각 사업장 별로 노동자가 모두 참가하는 ‘사업장평의회’(서울시에서 논의되는 ‘경영협의회’와 비슷한 기구)를 구성할 수 있다. 노동자가 2천 명 이상인 기업은 노사가 참여하는 ‘감독이사회’를 구성해 ‘경영이사회’의 주요한 결정을 감독하도록 하는 ‘공동결정제’를 법으로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가장 수준 높은 경영 참여를 보장한다는 독일에서조차 노동자들은 기업 경영에 실질적인 결정권을 전혀 갖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먼저, 사측은 사업장평의회와 경영 정보를 공유해야 하고, 신기술 도입 등 노동조건의 변화 사항에 대해 노조의 의견을 청취해야 한다. 그러나 사측은 노조와 협의를 할 뿐 합의를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노조가 반대하더라도 결정을 번복할 필요가 없다.

다른 한편, 대기업의 감독이사회는 경영이사회의 결정을 승인하는 막강한 권한을 가졌고, 노사 양측이 각각 절반씩 차지한다. 그래서 노동자들이 경영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감독이사회 의장은 사측 인물이 차지하도록 돼 있고, 노사 간에 동수로 맞설 때는 의장이 2표를 행사한다. 결국 감독이사회도 사측의 주요 결정을 거부할 수 없는 것이다.

독일의 미니잡 노조의 경영 참가는 이런 저질 일자리 확대를 막지 못했다. ⓒ사진 출처 Sascha Kohlmann (플리커)

실제로 독일의 ‘공동결정제’는 2000년대에 ‘하르츠 개혁’으로 노동조건이 대폭 악화되는 것을 전혀 막지 못했다. 오늘날 독일 일자리의 거의 4분의 1이 저임금·시간제 일자리인 ‘미니잡(Mini job)’이다. 저임금 노동자의 비중이 전체 노동자의 22퍼센트로 급격히 늘었다.(더 자세한 내용은 본지 115호 기사 “정규직 일자리가 시간제 일자리로 바뀌었다”를 참고하시오.)

물론 독일 기업주의 상당수는 공동결정제조차 거추장스러워 한다. 노조와의 협의 과정이 ‘기업 의사결정을 늦춰 기업 구조조정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꽤 많은 독일 기업주들은 공동결정제가 노조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점도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공동결정제가 “합의를 통한 구조조정, 고양된 기업 내 평화, 노사 간 협력 및 신뢰관계” 등을 통해 노동자들의 계급투쟁 정신을 해체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실제로 독일에서 2008년 노동자 1천 명당 파업 일수는 5.2일이었다. 국제적으로 매우 낮은 수준이다.(2006~2008년 OECD 평균 34.7일)

이런 점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 경영 참여가 가진 약점을 고스란히 보여 준다. 노동자들이 설사 기업 경영에 일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더라도 경영 참여는 계급 협력 정치를 강화해 노동자를 분열시킨다.

기업이 아무리 ‘투명 경영’을 하더라도 시장 경쟁의 압력은 임금 삭감이나 노동강도 강화, 정리해고를 하도록 만든다. 이때 노동자 경영 참여는 일부 노동자에 대한 구조조정을 다른 노동자들이 승인하도록 하는 구실을 하게 된다.

이런 약점이 있는데도 진보진영의 일부가 경영 참여에 관심이 높은 것은 노조 지도자들의 개혁주의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독일에서도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자본가나 정부 같은 권력자들과의 협력에 매달렸다. 투쟁을 준비하지 않고 저임금 저질 일자리 확대와 외주화를 받아들였다. 기업 경쟁력 강화라는 명분이었다.

이런 계급 협력 정치는 독일에서 노동조합 자체를 약화시켜 왔다. 독일의 노조 조직은 절대적으로나 상대적으로 약화됐다. 1991년에 노조원 수는 1천2백만 명에 육박했으나, 지속적으로 감소해 2012년 말 현재 약 6백15만 명밖에 되지 않는다.

독일식 노동이사제는 고용을 보장하고 임금과 노동조건을 향상시키는 대안이 될 수 없다. 특히나 노조 지도부가 기업주(정부)와의 협상에 매달리게 만들어 노동자들의 투쟁력을 약화시킬 위험이 크다.

따라서 ‘노동이사제’와 ‘경영협의회’에 환상을 품지 말아야 한다. 현장의 조직력과 투쟁력을 끌어올리는 게 일자리와 노동조건을 지키는 최선의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