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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자 집권 후 그리스 앞에 놓인 전망

1월 25일 실시되는 그리스 총선에서 시리자 집권이 유력하다. 그동안 그리스 지배계급은 시리자가 집권하면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쫓겨나고 경제 상황이 더 나빠질 것이라며 유권자들을 협박했다. 그러나 이는 먹히지 않았고, 오히려 시리자는 지지율 격차를 벌리며 선두를 지키고 있다.

그리스 사회주의노동자당(SEK)의 지도적 활동가이자 기관지 〈노동자 연대〉 편집자인 파노스 가르가나스는 “시리자의 승리는 긴축에 맞서 투쟁한 그리스 노동자들의 승리”라고 말한다.

그리스의 긴축 반대 투쟁은 지난 5년(2009~14년) 동안 네 번이나 정부를 무너뜨렸다. 지난 연말에 무너진 정부는 옛 집권당들로 이룰 수 있었던 마지막 정권이었는데, 그것을 무너뜨리고 시리자가 집권하는 것은 반긴축 투쟁이 거둔 괄목할 만한 성과다.

방송국 점거 파업을 벌이며 긴축 반대 최선두에 섰던 그리스 공영방송 ERT 노동자들. ⓒ그리스 〈노동자 연대〉

최근 파노스와 대화한 내용을 바탕으로 시리자 집권 후 그리스 앞에 놓인 전망과 현 상황에서 혁명적 사회주의자의 과제는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시리자가 받을 상반된 압력

시리자 정부가 오른쪽에서 받게 될 압력은 그리스 자본주의를 구제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려면 자본가들과 타협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본 유출을 막고 신규 투자를 유치하려면 말이다.

그래서 시리자 지도부는 그동안 유럽 지배계급에게 자신이 그들과 ‘말이 통하는’ 상대임을 납득시키려고 노력해 왔다. 유럽연합의 핵심국가인 독일의 정치인들을 만나고 영국 금융가의 큰손들을 만났다. 시리자 지도자 치프라스는 경제 강령을 온건하게 다듬고 기층 당원들이 반기지 않는 보수적 인사들도 영입해 후보로 내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시리자는 선거 기간에 왼쪽에서 오는 압력, 즉 긴축에 반대하고 일자리를 되찾길 원하는 노동자들의 열망에도 반응해야 한다.

그래서 치프라스는 유럽 자본가들과 그리스 노동자들 사이에서 줄타기해 왔다.

지금 시리자가 지지율 1위로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강력한 반긴축 투쟁과 반파시스트 투쟁 덕분이다.

이 노동자·청년 중 적잖은 이들은 정부가 모든 것을 알아서 해 주길 앉아서 기다리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노동자·청년층이 시리자에 거는 ‘기대’가 시리자 집권 후 좌파적 ‘압력’ 구실을 할 것이다. 파노스는 “전술적으로 시리자에 투표하지만 시리자보다 왼쪽에 있는 노동자들이 약 10만 명가량 된다”고 추산했다. 그리스 인구가 약 1천1백만 명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큰 규모이다.

이처럼 시리자는 집권과 함께 막대한, 상반된 압력을 받게 될 것이다.

뜨거운 쟁점1 - 부채 상환

시리자는 그리스 자본주의를 구하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려고 부채를 놓고 유럽연합과 재협상하기를 원한다. 부채 상환 기간을 50년 또는 60년으로 연장하면 부채 부담이 낮아져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이 그렇게 녹록하지는 않다. 경제 위기 때문에 지금 유럽연합은 그리스뿐 아니라 스페인·프랑스·이탈리아에도 가혹하기 이를 데 없는 긴축을 강요하고 있다. 그런데 그리스에 한발 양보하면 다른 국가를 상대로 긴축 기조를 유지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래서 그리스 노동자 계급이 유럽연합에게서 실질적 양보를 얻어내려면 만만찮은 투쟁을 벌여야 한다.

물론 유럽연합 지배자들에게는 또 다른 고민도 있다. 그리스가 금기를 깨고 아예 유로존을 탈퇴하면 자신들의 위기가 더 심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되도록 그리스가 유로존에 남아 계속 긴축을 촉진하도록 시리자 정부를 길들이길 원한다.

이 점에서 유럽연합은 시리자 정부에 어느 정도 유연성을 발휘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원래 그리스는 유럽연합에게서 새로 융자받는 조건으로 2월 말까지 긴축 정책을 제출해야 하는데, 유럽연합이 이 기한을 미루고 시리자에게 석 달 정도의 시간 여유를 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면 시리자는 그동안 꿈쩍도 않던 유럽연합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 냈다고 내세울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 시나리오에는 대가가 따른다. 부채 상환을 조달할 방법을 마련해 유럽연합에 제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경제가 황폐할 대로 황폐해진 그리스에서 자본과 노동자 양쪽을 모두 만족시킬 묘안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SEK와 그 당이 속한 혁명적 반자본주의 좌파연합 안타르시아는 부채 탕감과 유로 화(貨)와의 단절을 요구한다. 그럼으로써 더는 은행가들의 협박에 시달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부채 탕감 요구는 ‘더는 은행에 돈을 줄 수 없다’는 노동자들의 정서에 부합할 뿐 아니라 유럽 자본과의 정면 충돌을 가져와 그리스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도전으로 나아갈 전환적 강령* 성격의 요구라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뜨거운 쟁점2 – 고용 증대

그동안의 긴축 정책 때문에 실업에 처한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는 것도 중요한 쟁점이다. 물론 일자리를 잃은 1백만 명이 당장 복직될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공영방송국 ERT 노동자들처럼 가장 전투적으로 싸운 부분이 복직될 수 있는지에 그리스 노동자들은 촉각을 세우고 있다. ERT에서는 2천5백 명이 해고당했는데 이들은 긴축에 맞선 투쟁의 최선두에 섰었다.(해고 직후 ERT 노조는 방송국을 점거해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방송을 송출한 바 있다.)

그래서 이들의 일자리를 놓고 시리자 정부가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는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이다. 지금 ERT 노조는 ‘방송국 통제권을 되찾을 것’이라고 결의에 찬 말을 하고 있다.

ERT 노동자들은 선거에서 압도적으로 시리자 후보를 지지한다. 그들은 자신들을 해고한 이전 정권을 선거에서 심판하길 바란다. 그러나 그들은 시리자가 자신들에게 일자리를 돌려 주지 않으면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비록 시리자가 노조 지도자들과 비교적 좋은 관계를 맺고 있지만 기층의 노동자들이 투쟁하려는 것을 억누르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한다.

뜨거운 쟁점3 – 파시즘과 인종차별의 위협

파시즘과 인종차별에 맞선 투쟁도 시리자 집권 후 다시 중요하게 부각될 전선이다.

최근까지도 그리스에는 자신이 나치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황금새벽당이 빠르게 성장했었다. 지난해 5월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3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SEK 등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핵심적 구실을 한 ‘인종차별·파시즘 반대 운동’(KEERFA) 덕분에 지금 황금새벽당 지도부는 전원 재판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곧 퇴임할 현 정권은 한사코 황금새벽당 재판을 미뤄 왔다. 반파시즘 운동은 시리자에게 집권 후 재판을 조속히 진행해서 황금새벽당 지도부를 감옥에 보내라고 요구하고 있다.

또한, 현재 그리스는 ‘불법’ 이주민들을 18개월 동안 구금하는 수용소들을 운영하고 있다. 인종차별 반대운동은 수용소 폐쇄를 요구하고 있다. 우익은 프랑스 〈샤를리 에브도〉 사건 이후 “좌파들은 그런 지하드 세력의 그리스 입국을 오히려 환영하자고 한다”면서 왜곡한다. 시리자는 이 수용소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선거에서 많이 강조하지는 않는다.

시리자가 집권하면 시리자 정부는 이 쟁점을 피해가길 원할 테지만, 오른쪽에서 오는 압력 때문에라도 이 쟁점은 다시 부상할 것이다. 반파시스트 운동가들은 이에 대비해 싸울 준비를 하고 있다. 3월 21일 ‘인종차별 반대 국제공동행동’을 위한 준비에도 이미 착수했다.

혁명적 좌파의 개입과 노동자들의 호응

이번 선거에서 SEK는 안타르시아를 통해 시리자와는 구별되는 독자적인 대안과 후보를 내세웠다.

시리자는 집권하더라도 국가 기구와 경제를 진정으로 통제하지는 못할 것이고, 노동자들은 실질적 개혁을 얻으려면 여전히 싸워야 할 것이다. 시리자 정부에 일자리와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노동자 투쟁을 지원하려면 시리자한테서 독립을 유지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당초 시리자를 혁명을 위한 발판으로 여겨 그 안에서 활동하기로 한 다른 좌파들은 지금 아주 조용하다. 그들은 시리자가 선거에서 승리할 전망이 커지자 시리자 표를 갉아먹을 일을 하지 않으려 한다.

반면에 SEK 등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선거운동 기간에 집회를 열고, 작업장을 방문하며 ‘시리자가 집권하면 낡은 정당들의 지배는 끝나겠지만 투쟁은 끝나지 않을 것이고, 시리자 정부가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SEK가 만난 많은 사람들은 시리자에 투표하려 하고, 또 SEK가 시리자 대신에 안타르시아를 지지한다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노동자 연대〉의 신문을 사고 SEK의 유인물을 읽고, 시리자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일자리를 찾고 민영화를 막으려면 함께 싸워야 한다는 SEK와 안타르시아의 주장을 지지한다.

SEK는 선거 이후를 염두에 두고 있고, 앞으로 SEK의 입지는 아주 탄탄해질 듯하다. 〈노동자 연대〉가 지금처럼 많이 팔린 적이 없다고 한다. SEK와 안타르시아는 시리자보다 더 좌파적인 세력으로서 시리자 지지자들과 함께 활동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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