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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굴의 시대》 서평:
위기의 자본주의를 향한 날선 비판, 그러나 몇 가지 쟁점들

《비굴의 시대》는 투쟁 정신으로 가득 찬 신랄한 자본주의 고발서이면서 좌파의 묵직한 과제를 진지하게 다룬다.

《비굴의 시대》 박노자 지음, 한겨레출판, 376쪽, 1만 7천 원

저자는 “이윤 추구의 시스템이 다수에게 안정적이고 여유 있는 삶을 가져다 준다는 인류 최악의 거짓말의 실체”를 통렬하게 고발한다.

비민주적인 자본 독재 사회인 미국, 서방 세력에 비해 약체이지만 본질은 제국주의 세력인 러시아와 중국, 직장 여성의 30~40퍼센트가 성희롱을 평생 한 번은 당하는 노르웨이, 서로 다투지만 일란성 쌍둥이처럼 닮아 있는 남·북한 등 세계 자본주의 전체가 날선 공격의 대상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평화나 민주주의, 언론의 자유와 학문의 자유라는 게 얼마나 기만적인지 들춰낸 것도 통쾌하다.

좌파가 스탈린주의의 한계를 뛰어넘고 유럽의 전통적 사회민주주의보다 왼쪽에 있어야 한다는 관점도 옳다. 동시에 사민주의에 종파적 태도를 취하는 편향으로 빠지지도 않는다.

제국주의 문제를 반자본주의적 관점에서 비중 있게 다룬 것도 인상적이다. 박노자는 국가에 대한 애국을 비판하며, 국제법을 통한 세계 공동체 실현이라는 평화주의적 환상에서도 벗어나 자본주의와 국민국가 지배 체제를 끝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열강 간 무력 충돌의 가능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지배자의 총알받이 노릇을 하지 말고 제국주의적 본질을 설명하고 행동으로 저항할 것을 촉구해야 한다고도 호소한다.

저자는 사회주의가 과거에 멸망한 공룡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유일한 희망이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는 게 위기에 빠진 이 시대에 좌파가 해야 할 급선무라고 강조한다.

혁명이 필요한 이유

저자는 신자유주의 몰락에 대한 유일한 대응책은 주요 대기업, 은행, 교육, 의료 같은 주요 부문을 사회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투표만으로 자본주의를 넘어설 수 없다는 주장은 혁명에 대한 옹호로 이어진다.

“아무리 선거를 통해 집권했다 할지라도 탈자본주의를 지향하는 대중 운동을 강력하게 이끌지 않는 이상 좌파 정당은 어떤 급진적 조치도 취하지 못한다. 급진적으로 나가면 관료들은 조직적으로 방해할 것이고, 자본가들은 대규모 자본을 해외로 유출함으로써 맞설 테니 말이다. 그런 관료와 자본가의 저항을 분쇄하자면 자본주의와 의회주의의 틀을 넘어서는 조치까지 취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그리스에서 급진좌파 정당 시리자가 집권한 상황에서 얼마나 시의적절한가.

대수술에는 피를 흘릴 수밖에 없듯이, 혁명도 낭만적이고 평화로울 수만은 없다. 그래서 저자는 폭력적인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확대 재생산하기 위한 폭력과, 반대로 이 체제를 전복하고 평화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폭력을 구별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지적한다.

이처럼, 이 책은 국가와 자본이 주도하는 전례 없이 더러운 시대, 비굴함을 강요당하는 시대에 저항과 연대가 절실하고, 나아가 혁명이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 선뜻 수긍이 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박노자는 옛 동구권 사회가 이윤 추구와 자본가의 사적 소유에서 해방됐기 때문에 개인의 소외가 훨씬 적었고 노동자의 지위가 상대적으로 높았다고 주장한다. 이런 식의 스탈린주의 체제에 대한 모호한 태도는 읽을 때 감안해야 한다.

저자는 스탈린과 레닌을 구분하고, 레닌에게서 배울 점이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레닌이 테일러주의를 사회주의의 기초로 생각할 만큼 기술 만능주의적 환상에 빠졌다고 비판한 것은 과도하다. 당시 후진국인 러시아에서 내전의 가혹한 압력으로 경제가 황폐해진 상황에서 레닌은 불가피한 조처로서 테일러주의 도입을 강조했다. 그러나 혁명의 생존을 위해 불가피하게 강요된 타협과 후퇴를 사회주의의 원칙으로까지 격상시킨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과도하다.

저자는 급진 좌파가 고숙련, 백인, 남성, 중년 이상의 조직 노동자들에게 호소하는 것이 쉽지 않으므로 좌파 정당은 대체로 ‘주변부’ 노동을 급진화함으로써 ‘중심부’ 조직 노동의 급진화를 견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상 초유의 긴축에 맞서 “중심부 조직 노동”도 투쟁에 나서는 상황에서 이렇게 단계를 나누는 것은 불필요하다.

좌파들은 이윤에 효과적으로 타격을 줄 수 있는 ‘중심부’ 조직 노동 안에서도 인내심을 갖고 개혁주의 영향력에 도전하면서 계급 투쟁을 전진시키려고 노력하는 게 필요하다. 투쟁 과정에서 선진 노동자들의 일부는 더 급진적인 대안으로 이끌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