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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의 정책 공조 - 무게중심을 의회에서 거리로 옮겨야 한다

지난 9월 21일, 민주노동당은 열린우리당·민주당과 함께 ‘개혁입법 정책조정회의’ 구성을 합의했다. 국가보안법, 과거사 진상 규명, 언론개혁 등 6대 개혁 과제를 세 당이 공동으로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민주노동당이 ‘개혁적’인 다른 당 소속 의원들로부터 개인적 협조를 얻어내려 했던 초기 공조를 넘어 ‘당 대 당’ 수준에서 맺은 공조다.
물론 특정 법안 통과를 위한 제한적 공조이기는 하지만, 민주노동당이 이런 ‘개혁 공조’를 맺은 것은 부적절하다.
세 당은 개혁 과제들에 대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 왔다. 한 예로, 세 당이 ‘개혁입법 정책조정회의’ 구성을 합의한 바로 그 날, 민주당 대표 한화갑은 “국보법 폐지 논의 이전에 대체입법 마련이 우선”이라고 밝혔다.
그래서 열린우리당 원내부대표 이종걸은 “개혁입법에는 여러 입장이 있고 이를 정리해서 공통 분모를 추출”(〈프레시안〉 9월 21일치)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국가보안법 폐지 문제에서 세 당이 모두 인정할 수 있는 “공통 분모”는 분명 우리 민주노동당이 요구하는 것과는 한참 멀 것이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이 옳게 주장했듯이, “열린우리당이 국보법상 찬양고무 조항 존속으로 가거나, 선대체입법-후폐지로 간다면 민주노동당과 공조할 것은 없다.”(〈프레시안〉 9월 21일치)
몇몇 정치적 쟁점들과 관련해 한나라당의 극렬한 반발에 부딪혀 궁지에 내몰린 열린우리당은 “정치적 외연[을] 확대[하는] 전략”(〈문화일보〉 9월 24일치)의 일환으로 민주노동당을 끌어들인 듯하다.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그 동안 멈출 줄 모르고 지그재그 동요해 왔다. 그래서 최근에 강화되고 있는 우익의 공세에 직면해 정부와 집권당은 ‘왼쪽’ 신호등을 켤 수는 있다. 그러나 일시적으로 그리고 부분적으로 ‘왼쪽’으로 선회한다고 할지라도 사태의 일반적 진로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공조

지난 정치적 경험이 보여 주듯이,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에게 우파에 맞서 민주적 개혁을 추진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그들이 몸을 지탱하기 위해 붙잡고 있는 나무를 자르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다.
그럼에도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으로의 정치 양극화, 이로 말미암은 민주노동당의 상대적 주변화(그러나 민주노동당 지지율은 지난 4월 총선 이래 꾸준히 14∼18퍼센트를 유지하고 있다), 의회주의적 초조감과 압력 때문에 민주노동당 일각에서는 다른 당과의 ‘공조’ 필요성이 강력하게 제기된다.
요컨대, ‘10석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사안별 공조’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조는 당의 힘이 미약한 현재 상황에서는 연대만큼 중요하다.”(〈진보정치〉 191호)
그러나, 우리 민주노동당의 이념과 정책을 공유하는 다른 당 의원들이 극히 적은 데다, 그나마 이들은 당 지도부의 심한 견제 때문에 개별 의원들의 지지를 끌어내는 것조차 쉽지 않다.
한 예로, 민주노동당이 발의한 ‘비정규직 노동자 보호와 권리 보장을 위한 입법안’은 겨우 5명의 열린우리당 의원만이 서명했다. 단병호 의원이 60명 이상의 의원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공동 발의를 부탁했지만, “당론과 차이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뿐이다.(〈진보정치〉 185호.)
이것은 주류 정당들의 정치 기반이 부르주아 계급이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은 우리에게 아주 보잘것없는 개혁 조처들과 민주적 미사여구들을 간간이 선사했지만, 중요한 문제들(가령, 전쟁과 시장 문제 등)에서는 언제나 부르주아 계급을 위한 정책을 시행했다.
이런 조건에서 ‘공조’는 기껏해야 “공통 분모를 추출”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의회주의적 계산의 결과로 얻을 수 있는 것보다는 잃을 수 있는 것이 더 많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공교롭게도, 민주노동당이 열린우리당·민주당과 정책 공조를 합의한 바로 그 날, 민주노총은 정부의 비정규직 법안 개악에 항의해 11월 하순 총파업을 공식 선포했다.
정부가 내놓은 비정규직 관련 법안은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이 입법 발의한 비정규직권리보장입법안을 깡그리 무시한 것이었다.
이렇게 한쪽 전선에서는 격렬한 전투가 임박해 있는데, 다른 전선에서 적과 악수를 나눈다면 투쟁을 교란하는 효과를 낳을 것이다.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9월 중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열린우리당 점거농성에 대해 어정쩡한 태도를 취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열린우리당 점거 농성에 참가한 한 노동자는 이렇게 호소했다. “비정규노조 대표자들은 구속을 각오하고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이 입법 발의한 권리보장입법 실현하라’고 저렇게 열심히 싸우고 있는데 … 열우당사 앞에서 연일 열리는 ‘불법 집회’장에서 민노당 깃발을 볼 수 없습니다.”(민주노동당 당원게시판)

무게 중심의 이동

대중이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에 대해 느끼는 좌절감은 서서히 임계점에 도달하고 있다.
친여당 신문인 〈경향신문〉의 최근 여론 조사에 따르면, 노무현의 지지율은 25.6퍼센트, 열린우리당 지지율은 21.9퍼센트였다.
그 신문의 사설은 이렇게 지적했다.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이런 낮은 인기는 이제 놀라운 일도, 뉴스도 되지 못한다. 정작 놀랄 것은 이런 ‘인기 없는 노무현 정부’가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이다.”(〈경향신문〉 2004년 10월 6일치.)
우리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이런 인기 없는 정당과의 ‘정책 공조’보다는 의회 밖 투쟁을 대변하는 목소리가 돼야 한다. 그것은 결코 “[의원]자신의 ‘무능’을 덮으려는 변명”(정영태, 〈진보정당의 원내 진출과 노사관계의 전망〉, 한국노동연구원, 59쪽)이 아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파편화된 방식으로나마 전통적인 권력 구조들에 도전하고 있다. 청년들은 제국주의와 전쟁에 반대해, 노동조합은 시장주의 정책에 저항해, 농민들은 망가진 삶을 복구하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더 급진적인 정치적 시도들에 개방적인 분위기가 나타났다. 그 결과, 한국 정치를 지배하던 협소하고 엘리트적인 ‘민주주의’에 파열구가 생겼다. 2004년에 대중은 민주노동당을 통해 역사상 처음으로 부르주아 기성 정당들 밖에서 자신들의 열망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그 동안 부르주아 ‘개혁’ 정당들은 대중이 충성심을 돌릴 다른 대상이 없다는 사실을 항상 이용해 먹었다. 이제 그들은 공식 정치 구조 안에서 왼쪽으로부터의 경쟁에 노출돼 있고, 개혁 정치 공간의 독점적 지위도 흔들리고 있다.
우리 민주노동당은 현 체제에 대한 불만과, 창조적 대안을 만드는 데 기꺼이 뛰어들고 싶어하는 대중적 열망 사이에서 자석 구실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