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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인권법 - 인권에는 관심 없는 대북 압박용

‘2004 북한인권법안’이 미국의 상원과 하원을 모두 통과했다. 이 법안은 지난해 제출된 ‘북한자유법안’과 지난 7월 하원을 통과한 ‘북한인권법안’보다 완화된 것이긴 하다.
예컨대 지난 7월에 하원을 통과했던 ‘북한인권법안’은 북한 인권 상황의 개선을 위해 ‘미국 대통령이 [인도적, 비인도적 지원의] 시행을 유보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었으나 이것이 삭제됐다. 또,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정보 제공자에게는 특별한 S비자를 주도록 한다’는 ‘북한자유법안’의 내용도 포함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북한인권법은 여전히 반북 활동 단체 지원 계획과 흡수통일을 암시하는 언급을 담고 있다. 물론 이 법이 북한을 당장 붕괴시킬 수 있는 것처럼 얘기하는 것은 과장이다. 그러나 이 법의 제정 목적 자체가 인권을 빌미로 북한을 압박하고 흔들기 위한 것임은 명백하다.
북한인권법은 실질적인 북한 인권 개선 조치에 관심이 없다. 국제앰네스티는 2004년 연례보고서에서 북한 인권 실태를 다루면서 “굶주림과 영양실조”를 첫 항목에 넣었다. 북한 주민 2천2백만 명 중 6백50만 명이 식량난을 겪고 있다. 이 보고서는 구호단체들이 2003년에 2백25만 달러의 원조를 촉구했지만 그 액수의 57퍼센트만을 약속받았다고 지적했다.

위선

그러나 북한인권법안은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의 확대는 언급하지 않은 채 모든 지원이 “감시되고 투명한 통로”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는 점만 강조하고 있다. 북한에 상주하고 있는 유엔 기구들은 분배의 투명성이 향상됐다며 국제사회의 원조를 호소해 왔지만, 미국은 거꾸로 원조를 줄여 왔다.
미국은 2000년에 50만 톤의 식량을 북한에 지원했지만 올해는 10만 톤 수준으로 대폭 줄였다. 반면, 미국은 반공 반북 단체 지원과 대북 라디오 방송 등에 앞으로 4년 동안 해마다 2천4백만 달러를 쏟아부을 계획이다. 이 돈이면 북한 식량난을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다.
미국은 탈북 난민의 수용에도 진정한 관심이 없다. 북한인권법이 탈북자의 미국 망명과 난민 신청 허용을 명시하고 있긴 하지만, 신청자들은 미국 이민국적법상의 까다로운 심사절차를 거쳐야 하고 미국은 이 과정에서 고급 정보를 가진 북한 고위층 출신 탈북자만을 골라낼 것이 뻔하다.
상하이에 있는 미국 국제학교가 이 학교에 진입한 탈북자 9명을 중국 공안(경찰)에 넘긴 사건은 탈북 난민에 대한 미국의 위선을 잘 보여 준다. 이 사건은 북한인권법이 하원을 통과하고 상원 통과를 눈앞에 둔 시점에서 벌어졌다. 미국은 미국 영사관에 진입한 탈북자가 미국행 의사를 밝히자 중국 공안에 인계하겠다고 위협해 행선지를 바꾸게 만들기도 했다.
미국은 이라크해방법, 쿠바자유민주연대법 등을 만든 뒤에도 이 나라들에서 들어오는 난민을 결코 환영하지 않았다. 미국은 쿠바 보트 피플들을 본국 송환해 왔다. 또, 국제앰네스티가 고발했듯이, “미국은 이라크와 기타 33개국에서 온 난민(신청자)들에 대해 구금을 명하고 있다.”(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소식지 2003년 5/6월).

“인도주의적 개입”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협한다

미국은 냉전 붕괴 이후 인권을 명분 삼아 내정간섭과 전쟁을 자행해 왔다. 1999년 세르비아 폭격, 1991년과 2003년의 이라크 폭격은 “인도주의적 개입“의 대표적 사례다.
미국의 “인도주의적 개입“의 실체는 아부 그라이브 감옥의 고문에서 완전히 폭로됐다. 독재자로부터 이라크를 해방시키겠다던 미국은 후세인이 만든 억압 장치의 새 주인이 됐다. 미군 점령으로 학대받고 있는 사람들은 후세인 치하에서 고통받았던 바로 그 사람들이다.
“인도주의적 개입“의 효과는 세르비아에서도 드러났다. 미국은 세르비아의 독재자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를 20세기 말의 “새로운 히틀러”라고 불렀다. 그리고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폭격이 밀로셰비치가 코소보 알바니아계를 대량학살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토의 폭탄이 강타한 것은 밀로셰비치에 맞서 오랫동안 투쟁해 온 사람들이었다. 1991년과 1996년에 세르비아 민중은 밀로셰비치를 거의 타도할 뻔했다. 밀로셰비치는 그 뒤에도 저항을 완전히 잠재울 수 없었다. 이 일을 이룬 것은 나토의 폭격이었다.
공습은 밀로셰비치를 좋아하지 않는 보통의 세르비아인들을 분노하게 만들었고 밀로셰비치는 분노의 화살을 피할 수 있었다. 나토의 폭격이 강화시킨 것은 민주주의와 인권이 아니라 밀로셰비치였다.
핵무기에 이어 인권을 빌미로 한 미국의 압박은 북한에서도 똑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
독재자를 제거하고 인권을 개선할 수 있는 것은 미국 폭격기가 아니라 그 나라 민중이다.

미국은 인권을 말할 자격이 없다

국제앰네스티는 “미국이 벌인 테러와의 전쟁이 세계를 더 위험하고 억압적으로 만들어 인권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테러와의 전쟁’은 재빨리 미국 내 이민자와의 전쟁으로 변했다. 9·11 테러 이후 한달 보름 만에 통과된 애국자법은 적법한 절차 없이 ‘테러리스트로 의심되는 자’를 무기한 체포·구금할 수 있도록 했는데, 수천 명의 중동계 이민자들이 이 법의 희생자가 됐다.
미국 CIA에 따르면, 9·11 이후 1백여 개 나라에서 3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알카에다 조직원이나 협조자라는 혐의로 체포됐고, 이 체포 과정에 미국이 관련됐다(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소식지 2003년 5/6월).
관타나모 기지에 수감된 6백여 명의 포로들은 변호인 접견이나 재판받을 권리를 박탈당한 채 기약 없는 수감 생활을 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미군 공군기지에 수감됐던 왈리드 알 카다시는 수감자들이 “검은 밤“이라고 부르는 첫 신문에 대해 이렇게 폭로했다.
“미군은 우리 옷을 가위로 자르고, 알몸으로 세운 채 사진을 찍고 … 손을 등 뒤로 한 채 수갑을 채우고 눈을 가린 상태에서 신문을 시작했고 … 내가 알카에다 조직원이라며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유색인종 차별

미국 내 보통 감옥의 상황도 열악하고 끔찍하다. 중국 국무원이 폭로한 〈미국 인권 기록〉에 따르면 “미국 감옥에 갇혀 있는 범죄자의 6분의 1 이상이 정신 분열을 비롯한 정신병에 시달리고 있다.” 또, 미국은 세계에서 미성년자 사형선고율이 가장 높은 나라이며, 2002년 1월 현재 3천7백 명 이상이 사형집행 대기중이다.
미국은 선진국 가운데서 아동빈곤율(16.7퍼센트)이 가장 높은 나라이고, ‘아동권리공약’을 비준하지 않고 있다.
유색인종 차별은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다. 동일한 범죄를 저질러도 흑인 등 유색 인종은 백인의 2∼3배에 이르는 중형을 선고받는다. 백인의 실업률은 5.2퍼센트인 데 반해 흑인의 실업률은 10.2퍼센트이고(미국 노동부 통계), 흑인의 빈곤율은 24.1퍼센트이다(미국 인구조사국). 흑인 중간계급 가정의 수입은 백인 중간계급 가정 수입보다 40퍼센트 가량 적다.
미국의 빈부 격차는 1970년대 이래 최대로 벌어져 있다. 전체 인구의 1퍼센트에 해당하는 부유층이 미국 전체 인구의 4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 빈곤층의 재산보다 더 많은 재산을 소유하고 있다.
이런 미국이 대북 지원이 골고루 분배되는지 문제 삼는 것은 위선이 아닐 수 없다.

북한 인권 문제 어떻게 봐야 하나? -
인권 없는 사회주의는 사회주의가 아니다

남한 진보진영 단체들은 대부분 북한인권법이 통과되자 인권을 빌미로 한 미국의 북한 압박을 비난하는 올바른 입장을 표명했다. 미국이 북한 민중의 인권 개선에 관심이 없다는 사실은 진보진영에는 상식이 돼 있다. 미국의 진정한 관심은 동아시아에서의 패권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북한의 인권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어야 할까? 주체주의자들은 북한의 인권 문제를 얘기하면 그게 누가 됐든 ‘제국주의의 공세’라는 식으로 몰아세운다. 북한 당국이 반체제 인사들을 “미제의 첩자”로 뒤집어씌웠던 것처럼 말이다.
미국이 북한을 적대시하는 상황에서 누군가 북한에 반대하면 그는 미국 편이라는 식이다. 그래서 미국의 북한 압박에 반대하려면 북한을 비판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적의 적은 친구’라는 논리는 미국과 북한 둘 중에서 하나의 선택을 강요하는 조야하고 단순하고 위험한 공식이다.
북한 당국은 “미국이 국회 하원에서 ‘북조선인권법안’이라는 것을 꾸며낸 것도 결국은 ‘탈북자문제’ 등 있지도 않는 우리의 ‘인권문제’를 극대화해나가기 위한 담보를 마련하려는 것”이라고 비난했다(7월 30일발 조선중앙통신).
“기획 탈북이 아닌 탈북자는 없다”는 논리가 곧 남한 진보진영 안에서 고개를 들었다. 중국에 있는 탈북자들은 “어떤 나라에나 있는 평범한 불법 체류자들”일 뿐이며 문제될 게 없다는 것이다.

노동수용소

그렇다면, 왜 북한과 중국 당국은 그 동안 탈북자 ‘사냥’을 위한 양동 작전을 펴 왔는가? 탈북자들은 국경을 넘다가 왜 죽어가야 했는가? “탈북자는 없다”는 논리의 진정한 문제는 북한과 중국 당국의 탈북자 강제 송환이 낳는 인권 침해를 덮어 주는 데 있다.
사실, 북한의 인권 문제들이 모두 북한의 공식 입장에 따라 없는 셈 처리돼 왔다. 강제노동수용소는 우익이 퍼뜨린 날조로 취급됐고, 이주의 자유 제한에 대한 국제앰네스티의 보고도 근거 없는 것으로 제껴졌다.
그런데, 북한 당국은 지난 9월 평양을 방문한 영국 외무차관 빌 라멜에게 북한에 노동수용소가 있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또, 서방보다 인권에 중요성을 덜 둔다는 점도 인정했다.
북한에 인권 문제는 없다는 북한 당국의 얘기를 곧이곧대로 믿어 온 주체주의자들 가운데 일부는 분명 당혹했을 것이다. 좀더 노련한 일부는 이 사실이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잊혀지기를 바라겠지만, 누군가 이 문제를 제기한다면 틀에 박힌 대답을 내놓을 것이다 ― ‘북한 사회를 우리의 잣대로 봐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인권과 민주주의와 평등이라는 가치를 높이 사는, 급진화되는 젊은 세대에게 이런 얘기가 설득력이 있을까?
〈2004년 국제앰네스티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내에서 “조선노동당의 입장과 다른 의견을 표현하는 사람은 누구든 중대한 처벌을 받으며”, 중국에서 “강제로 송환되는 사람들은 감금, 장기간의 신문, 열악한 조건의 감옥을 각오한다.”
미국에서 자행되는 사형은 잘못됐고, 북한에서 자행되는 공개 총살이나 교수형(2004년 국제앰네스티 연례보고서)은 괜찮은가? 한국 정부의 노동자 권리 억압은 나쁘고, 북한 정부가 노동자들의 독립적인 조직을 불허하는 것은 괜찮은가? 독재, 억압, 국가 폭력이 상존하고 인권과 민주주의와 자유가 없는 사회주의는 사회주의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북한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말할지 모른다. 북한 국가가 제국주의 세계 체제와 협상하며 공존하려 한다면 선택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 노동자들에게는 (다른 나라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선택이 있다 ― 저항, 투쟁, 그리고 제국주의에 맞서 싸우는 세계적 운동과 연결되는 노동자 운동의 건설 말이다.
우리는 부시와 노무현의 이라크 점령을 비난해야 한다. 우리는 제국주의에 맞서 싸워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더 광범한 운동을 건설하려면 ‘더 작은 악’의 치어리더가 아니라, 원칙적이고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민주주의의 한결같은 수호자가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