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연대

전체 기사
노동자연대 단체
노동자연대TV

독자편지
ISIS 사태의 원인과 그 해결책은 무엇인가?

국제뉴스에서 수시로 ‘이라크·시리아 이슬람국가’(ISIS)의 폭력 사태를 접한다. 도대체 알카에다에서조차 “지나친 극단주의”로 축출당했던, 그리고 2007년 이라크 내전 시기 전에는 명함도 못 내밀었던 단체가 이렇게 급부상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평범한 이라크인들은 이들을 용인하고 있는 것인가? 미국의 군사적 개입이 해결책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다른 뾰족한 대안도 없지 않은가? 외교적인 협상으로 뭔가 ISIS를 멈출 수 있지는 않을까? 여러 의문들이 꼬리를 물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ISIS는 이라크 내에서 기본적인 생활 기초시설의 붕괴의 틈을 파고 들어 일부 지역에서 민심을 얻으려 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들의 종파만을 고집하고 폭력적 방식에 따른 지배 방식을 추구하고 있다. 예를 들어 ISIS는 서방이 쿠르드족을 결국 탄압했던 역사를 똑같이 되풀이할 태세다(미국은 ISIS의 쿠르드족에 대한 만행을 저지하기 위해 폭격이 불가피하다고 말하지만 1988년 3월에 5천 명의 쿠르드인들을 죽음으로 내몬 할라브자 학살은 미군의 지원으로 행해졌다).

아랍에미리트에 있는 델마 연구소(Delma Institute)의 분석가이자 아부다비의 신문사 〈내셔널〉(National)의 칼럼니스트인 하산은 어떻게 ISIS가 시리아의 지역 공동체에서 뿌리를 내렸는지를 설명한다. 하산에 따르면 ISIS는 수니파 부족들 간의 불화 및 지하드 그룹들 간의 불화 등을 이용하고 민심을 얻기 위해 전기와 물을 제공하고 있다. 하산에 따르면 “ISIS는 일부 부족사회에 대한 지배권을 갖고 있고 모든 것에 대해 최종적인 명령을 내리면서도 일정한 자율권을 준다. ISIS에 저항하지 않는다면 통신·가스·전기·물 등을 공급하는 데서 협력적이다. 결혼을 통한 부족과의 동맹 방식도 조금씩 사용하고 있다.

”ISIS의 초국가적인 이슬람 정치공동체에 대한 유토피아적인 전망은 많은 나라에서 자신들의 지지자들을 불러 모으는 힘을 제공했다. 2011년 이래 1만 2천 명이 ISIS로 유입됐고 이 중 3천여 명은 영국·미국·프랑스·독일 등 북미와 유럽에서도 충원됐으며 이들 중에는 대학 졸업자들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는 보도도 있다.

어찌 보면 ISIS는 알 카에다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진화’한 측면도 있다. ISIS는 새로운 회계시스템 및 조직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버크는 ISIS를 권력의 중심부에 한 명의 리더·획일적 이데올로기·위계적인 테러리스트 조직이 아니라 세계 도처에 있는 다양한 지하드 그룹들의 제안을 지원하고 집행을 위임하는, 일종의 벤처 기업들에 비유하기도 한다.

ISIS는 특정인을 납치해서 몸값을 얻는 방식보다는 전통적인 세수 확보를 지향하고 있다. 다시 말해 안정적인 자금 확보에 의존하려 한다. 일부 자본가들은 ISIS를 자신의 재산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안보 제공자로 여긴다. ISIS의 방침을 요약하면 이렇다. 세금을 낸다면 당신들에게 우리는 안보를 제공하고 동시에 당신들의 재산은 건드리지 않겠다.’

무엇보다 이름이 암시하듯이 ISIS의 야망은 이슬람 국가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아랍의 세속적인 정권과 서방의 지배에서 벗어나 소위 ‘정통 이슬람’으로 회귀하려는 열망을 반영한다. 그러나 ISIS는 결코 이슬람주의 전체를 대변하지 않는다. 현대의 이슬람주의는 매우 다양하게 세력화돼 있고 변화무쌍하다. 더구나 ISIS가 아무리 현대적으로 변신했을지라도 이들의 목표는 종파 간 단결이 아니라 갈등을 강화시키는 분열적 성격을 지닐 뿐 아니라 강대국의 개입에 반대하는 풀뿌리 세력에 대해서 적대적일 정도로 보수적이다.

ISIS는 때때로 급진적인 반제국주의 언사도 쓰지만 강대국의 개입에 반대하는 풀뿌리 민주주의 세력에 대해서도 매우 적대적이다. ISIS의 잔혹한 행위에 관한 언론보도를 다 기정사실화할 수는 없지만 시리아 북부 지역에서 ISIS에 저항하는 쿠르드족에 대한 학살(Shaitat 학살) 이후 많은 사람들은 ISIS가 그 부족을 취급한 방식에 깊은 모욕감을 느끼고 있다. ISIS는 북부 시리아에서 온 쿠르드족 난민 50만 명이 밀집돼 있는 시리아 코바니(Kobani)와 얀 알 아랍(Ayn al-Arab)의 영토를 장악하기 위해 극단적인 폭력을 사용하고 있고 특히 어린이들을 포로로 ‘활용’하고 있다.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유니세프 담당자인 마리아 칼리비스(Maria Calivis)는 포로의 대다수가 어린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와 같이 잔혹한 ISIS가 어떻게 이렇게 급부상할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미국의 이라크] 점령 이후의 사영화 쇼크, 사악한 종파간 분열 조장, 알 말리키 정부의 부패와 반민주 억압 정책은 이라크 국가 기반을 무너뜨려 왔고 이 과정이 바로 아이시스 급부상의 배경이 됐다. 하나씩 살펴보자.

사담 후세인 치하에서 일자리를 얻기 위해서라면 거의 선택의 여지없이 집권 바트당에 가입해야 했던 수니파 주민들은 각종 공공기관과 군대·정유시설·발전소·병원·학교에서 일제히 해고됐다. 그 바람에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 동네에서 이웃으로 어울려 살던 시아파와 수니파 주민들은 이제 상대방 지역으로는 자유로운 왕래조차 하기 힘든 상황에 내몰렸다.

그러나 미국의 종파 간 분열 정책은 쉽게 성공하지 못했다. 시아파와 수니파 사이의 연대가 쉽게 사그라들지 않은 것이다. 2004년 수니파 도시 팔루자에서의 점령 반대 봉기를 다수의 시아파 주민들이 지지했고 저항이 남부 시아파 도시로도 확대된 것은 미국에게 매우 충격적 사건이었다. 이라크인 거의 1백만 명이 미군 점령의 종식을 요구하며 시아파 도시 나자프 시(市)의 거리를 가득 메우는 일도 벌어졌다.

대대적으로 미군을 증파하고 수니파 일부를 활용해서 수니파의 저항을 잠재우려 했던 미국의 악랄한 동족상잔 정책(소위 ‘수니파 각성 운동’)으로 미국은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꼭 짚어야만 하는 것은 2003년 미국이 이라크에 적용하려 했던 ‘대중동 구상’이 낳은 비극이다. 이것이 바로 ISIS 부상의 토양이 됐다는 점을 우리는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한다. 칠레에서 본격 추진했던 신자유주의의 첫 실험을 중동에서 재연했던 것이야말로 미국 지배자들의 대중동 구상의 핵심이었다. 미국의 대중동 구상은 ‘테러리즘과의 전쟁’, ‘개척지 자본주의 확산’, ‘선거 실시’라는 세 요소로 이뤄져 있었고 이는 1970년대 칠레에서 미국이 추구했던 전략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는 민영화·외국인 투자자들을 확대하기 위한 법률·기업세 45퍼센트에서 15퍼센트로의 인하·외국회사들이 이라크 자산을 100퍼센트 소유하도록 하는 법령 등의 친기업 패키지를 뜻했다.

갑자기 공공부문 50만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법령과 2백 개 민영화 계획이 발표된다고 생각해 보자. 이는 신자유주의의 대부인 미국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칠레의 피노체트에게 정부 지출을 25퍼센트 줄이라고 조언했던 쇼크요법 프로그램의 일환이라 분류될 만했다. 효과를 강렬했다. IMF의 석유에 대한 보조금 삭감으로 1갤런의 4센트였던 석유가격은 67센트로 치솟았다! 현재 이라크 인구 중 50퍼센트에게만 전기가 공급되고 물 공급도 매우 제한적이다. 유엔 조사에 따르면, 그 가구의 25퍼센트가 하루에 오로지 2시간 동안만 수도를 공급받는다. 건설 주택에 1.6퍼센트, 상하수도 및 위생에 4.2퍼센트만의 예산을 사용한다. 이 모든 게 미국의 점령이 낳은 결과다.

주목할 점은 치솟는 실업률·기반시설의 파괴와 공공서비스의 공백이 이라크 국가 기능의 마비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중앙정부의 기능 마비와 급격한 생활수준 하락은 정치적 불안정성과 유동성을 자극할 수밖에 없었다. 중동에서 가장 세속적이고 종파간 통합 분위기가 컸던 이라크에서 왜 ISIS가 점령의 폐허 위에서 부상할 수 있는지 알려면 미국이 점령 기간 동안 이라크를 어떻게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았는지를 반드시 짚어야 한다. 2003년 미국의 점령 직후부터 시작된 종파를 뛰어넘는 점령 반대 운동은 이 불안정성과 유동성을 ‘민주적인 통일 이라크’를 향한 열망으로 전환시킬 만했다. 그러나 점령 당국의 종파 간 분열조장 정책과 내전 상황은 이 열망의 정치적 표현체를 찾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더욱이 알 말리키 정부의 부패와 민중운동에 대한 혹독한 탄압은 사실상 해체된 것이나 다름없는 이라크 국가기구를 아예 개인의 권력기구로 전락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중동 전문 기자로 세계적 권위를 확보한 인디펜던트 기자 패트릭 콕번은 이라크 정부의 별명이 “제도화된 착복”이었다고 말한다. 일례로 이라크 과도정부 총리였던 이야드 알라위는 사담 후세인의 옛 공화국 궁전을 요새화하고 개보수하는 데에 2억 달러를 사용했다. 중앙정부의 부패는 이라크 국민들 가슴 속에 뿌리 깊은 반감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석유 수출은 지난 30년 중 최고치에 다다라 2013년 이라크 중앙정부는 석유 수익으로 순익을 7백70억 달러 올렸다. 이것은 2003년 45억 달러의 17배에 이른다. 당장 이라크 국민들의 기본적인 생활개선에 상당한 재정을 투입해야 함에도 이라크 정부는 20퍼센트에 육박하는 예산을 무기 구입에 사용하고도 있다. 국내 반대를 무릅쓰고 F-16 전투기 36대를 미국에서 구입하기도 했다.이런 “체계적인 착복”으로 이라크 정부의 부패 정도는 매우 심각하다. 말리키 정부의 부패 정도가 군대에서 가장 심각했다는 사실은 ISIS가 이라크 대도시를 급속하게 점령했던 것과도 직결된다. 군대 부패가 심각해서 고정 운영비용까지 고급 장교들이 착복해 모술에 있는 병사들이 지역 시장에서 자신들의 보급품을 직접 구매하거나 식사도 직접 준비해야 할 정도였다.

미군과 이라크 정부가 조장해 온 종파·민족 간 분열은 아랍 세계에서 가장 세속적이고 통합적이었던 이라크를 바꾸어 놓았다. 말리키 정부의 반민주 억압 정책은 종파 간 단결의 기초를 완전히 파괴시키는 것을 목표로 했다는 점에서 각별히 중요하다. 반테러법을 이용해서 2012년 이라크 정부는 1백29명의 사형을 집행했다! 알 말리키 정부는 다양하고 역동적인 단결의 기초들을 철저하게 파괴하는 효과를 노렸다. 이라크 국민적 통합을 이루는 데서 종파 간 분열조장 정책이 미친 해악적인 효과는 알리키 정부의 철저한 반민주 억압 정책으로 더욱 증폭됐다. 2013년 4월에 이라크 군대가 이라크 북부 하이자(Hawija)시에서 평화로운 연좌시위를 하던 시위대를 공격해서 50명을 사살한 사건은 알 말리키 정부가 얼마나 야만적이고 폭력적인지 보여 주는 사례다.

그렇다고 이라크 국민들 대다수가 ISIS를 지지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대다수 이라크 국민들은 미국의 군사적 개입에도 반대하지만 동시에 극단주의적인 종파주의 세력에 희망이 있다고도 보지 않는다. 수니파의 무장 저항을 지지한 무슬림 학자들의 연합과 시아파의 알리 알시스타니가 종파 간 갈등을 자제하자는 성명서를 발표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라크 민중은 종파를 뛰어넘는 단결과 연대를 조직한 역사와 경험을 갖고 있다고 지적한다.

ISIS의 약점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ISIS와 수니파 저항세력의 일시적인 연합이 오래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만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 긴장은 출발부터 있었다. ISIS가 현재 동맹자들에게 중세적 신정 억압을 시도하려 함에 따라, 이런 긴장은 확산될 수밖에 없다. 이라크 북부 지역에서는 ISIS와 바트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대규모 충돌도 이미 벌어진 바 있다. 수니파가 전반적으로 ISIS의 세력 확장을 지지한다고 말할 수도 없다. 토착 수니 세력이 자신들의 힘으로 ISIS의 도움 없이 말리키 정부의 점령에서 스스로 해방시킨 지역도 있다. ISIS 세력의 성패는 아랍의 민주주의 운동의 미래와 엇갈린다. ISIS의 확장은 중동의 풀뿌리 민주주의 세력이 확장하는 것을 저해한다. 억압적인 시아파 정부에 대한 이라크 국민들의 뿌리깊은 반감이 확산됐지만, “아랍의 봄”도 좌절돼 이집트의 민주적 변화가 다시 퇴행되는 상황 속에서 ISIS는 확대됐다.

반대로 “아랍의 봄”이 다시 재연되고 걸프의 왕정 국가들의 운신의 폭이 적어지며, 무엇보다 이라크 내에서 종파를 뛰어넘는 연대 분위기가 확산된다면, 보수적인 국가 개조 프로젝트가 제어될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아랍의 봄”도 이라크를 비켜가지는 못했다. 2011년에는 쿠르드 지역 정부에 대한 커다란 불만으로 쿠르드족 자체의 “아랍의 봄” 운동이 촉발했고 이라크 점령 10년을 맞이한 2013년부터는 누리 알 말리키 정부에 맞선 대중 시위가 확대됐다. 이른바 ‘이라크의 봄’에 많은 이들의 평화로운 대중집회가 폭발했다. 월러스타인이 지적한 대로 “깊은 구렁에 빠져 있다면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구렁을 그만 파는 것이라는 예로부터의 명언”이나 “구렁파기를 멈추기 위해서는 우선 구렁 속에 들어가는 것이 잘못임을 스스로 인정해야 한다”. 미국은 지금 더 깊은 수렁에 빠져 들어가고 있는 듯하다. 대안은 바로 “아랍의 봄”을 일으킨 중동 민중의 힘에 있다. 그 힘이 다시 결집되기를 바란다. 그것만이 중동에 평화를 가져올 현재로선 가장 현실적이고도 유일해 보이는 대안이기 때문이다.

필자 김어진은 반전평화연대(준) 간사로 활동하고 있고, 이 글은 개인 자격으로 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