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억압은 단지 개인의 행동이나 태도에 관한 것만은 아니다. 이러한 여성 억압은 체제 내부에 구조화돼 있다. 여성 억압을 없애기 위해서 우리는 체제를 무너뜨려야 한다고 세이디 로빈슨은 주장한다.


오늘날에도 여성차별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이 때문에 어떤 사람은 여성차별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고 일부 남성들은 항상 여성을 학대하기 마련이라는 비관적인 결론을 내놓는다.

또 다른 사람은 소수의 남성들이 성차별적인 생각을 버리게 하는 것만이 우리가 달성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여길 것이다.

물론 우리는 성차별적 태도와 행동에 맞서야 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문제를 뿌리 뽑지 못한다. 성차별적인 태도는 우리가 차별에 기반한 체제에 살고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 태도와 차별은 우리가 이 체제를 없애지 않는 이상 계속될 것이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반영한다. 이것은 여성차별의 가장 흉측한 단면이다.

하지만 차별은 단지 개인의 행동이나 태도의 문제만은 아니다. 억압은 사회 내부에 구조화돼 있고 삶의 모든 부분에 영향을 미친다. 2009년도에는 국가 지도자를 선출하는 1백50개국 중 고작 7곳만이, 1백92개국의 정부 지도자 중에는 고작 11명이 여성이었다. 각국의 입법부에서 여성은 평균적으로 17퍼센트를 차지했다.

여성은 남성보다 더 낮은 지위, 더 낮은 임금의 노동을 하게 될 확률이 높다. 남성보다 더 많은 육아와 가사노동도 한다.

전 세계적으로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가난에 처하고 교육받기 어려울 가능성이 더 높다. 하지만 이런 구조적 차별이 개인의 생각과 행동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칼 마르크스는 한 사회의 지배적인 사상은 지배계급의 사상, 즉 부를 소유한 사람들의 사상이라고 주장했다.

계급

지배계급은 현 체제를 유지하는 데 물질적인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현 체제에서 자행되는 여성차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이것이 당연한 현상이라고 보통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투여한다.

예를 들어 정치인들은 이성애자들 사이의 결혼과 같은, 특정한 삶의 방식을 장려하려고 세금우대 정책을 이용한다. 정치인들은 미혼모와 같이 자신들의 “규범”에서 벗어난 사람들에게 이 사회의 모든 병폐의 책임을 덮어씌우기 위한 발언들을 한다.

부유층은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말을 쏟아 붓는 언론을 소유한다. 냉장고, 맥주, 자동차 그리고 샴푸 광고는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 다르고 그 역할을 받아들일 때 행복해진다는 내용을 내보낸다.

심지어 오늘날의 여성 잡지는 마치 외모와 연애가 여성들의 최대 관심사가 돼야 하는 것 마냥 얘기한다.

지배계급이 제시하는 이상적인 가족관, 남성과 여성의 “정상적인” 역할관은 종종 현실과 맞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그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거나 적어도 특정 대목은 무시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것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거대한 압력이 존재한다.

또한 남성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여성차별로 이익을 얻고 있으며 자신들의 지위가 여성보다 “우월하다”고 여기도록 부추긴다.

노동자 계급 남성이 이 체제에 일정한 지분을 갖고 있다고 여기길 지배계급은 바란다. 그와 동시에 계급사회는 사람들이 서로, 그리고 자신에게서도 소외당하도록 관계를 왜곡한다.

평범한 사람들이 세계를 만들지만 보통 그들은 이 세계에 영향을 끼칠 수 없다고 믿는다. 한편 성과 여성의 신체는 상품처럼 취급된다.

압도 다수의 남성은 여성을 강간하지 않고 여성에게 폭력적이지 않다. 그러나 이 사회의 구조와 지배적인 사상은 남성들이 여성들을 열등한 존재로 여기게끔 한다.

마르크스와 그의 협력자인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이 사회가 구성돼 있는 방식이 의식을 결정하고, 사회가 변하면서 그에 따라 의식도 변한다고 주장했다.

오늘날 세계는 부를 소유한 지배계급과 그 부를 생산하는 노동자 계급으로 주되게 나뉘어 있다. 이 사회는 위계서열과 경쟁에 바탕을 두고 있다.

계급이 등장하기 이전의 사회는 상당히 다르게 구성됐다. 남성과 여성은 다른 역할을 지니고 있었으나 여성이 남성보다 더 낮게 평가받지는 않았다. 엥겔스는 이런 사회들에서 "모두 자유롭고 평등했고 여성도 예외가 아니었다”고 서술했다.

사례들

가장 최근의 연구 사례들은 엥겔스의 말을 뒷받침해 준다. 엥겔스는 여성의 지위가 바뀌는 데 있어 계급 사회가 등장한 것이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지 관찰했다.

계급사회는 사람들이 당장 필요로 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생산했을 때 등장했다. 장차 지배계급이 되는 집단이 잉여생산물을 관리하게 됐다. 그들은 잉여생산물을 상속할 “적법한” 후계자를 원했다. 그래서 여성과 성적 관계에 대한 통제를 키워야 했다.

잉여생산물을 가능케 한 생산 기술은 남성의 노동을 여성의 노동보다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잉여생산물 덕분에 사람들은 한 장소에 더 오래 머물고, 더 많은 아이를 기를 수 있었다. [이런 환경 속에] 이와 같은 가족 구조는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로 보는 이데올로기와 함께 생겨났다. 이러한 생각은 오늘날에도 남아있다.

물론 최초의 계급사회가 등장한 이래로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오늘날 여성의 삶은 봉건시대 여성의 삶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자본주의하에서 투쟁으로 여성의 참정권, 결혼과 낙태에 대한 권리 등을 얻어 냈다. 세상이 변하면서 태도도 변한 것이다.

그러나 지배계급이 차별을 통해 사상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이익을 얻기 때문에 여전히 차별은 남아 있다. 성차별적 사고방식은 여성이 각종 일을 무급으로 하도록 강요한다.

여성은 그 자신이 밖에서 노동하면서도 당연히 미래의 노동력을 제공하기 위해 아이들을 기르고 현재의 노동력을 보살펴야 하는 것처럼 요구받는다. 그리고 가정을 유지하는 것도 당연히 여성 책임인 것처럼 얘기된다.

정치인들은 복지를 삭감하고 아프거나 나이든 친척들을 돌보는 일을 여성에게 떠넘기며 무임승차한다.

지배계급은 또한 성차별적 사고방식을 권장하는 것이 노동자 계급을 분열시키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싸우지 못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을 알고 있다. 판사부터 정치인에 이르는 지배계급 사람들이 강간 피해 여성을 비난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들은 또한 사회가 진보적으로 변하는 것을 일체 막으려고 힘쓰며 일부 쟁점, 예를 들어 낙태 같은 경우, 지배계급 중 일부는 양보했던 것도 되돌리고 싶어한다.

지배계급은 여성들이 체제가 아닌 남성들에게 차별의 책임을 묻기를 바란다. 그래서 우리가 [구조적인] 여성차별은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기를 원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혁명적 변화나, 지금과 다른 사회는 가능하지 않다고 우리가 믿길 바란다. 그러나 진실은 노동자 계급 남성과 여성은 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혁명만이 여성차별을 끝장낼 유일한 희망이다.

노동자 계급은 지배계급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세계를 건설할 만한 경제적인 힘과 규모를 가지고 있다.

단결은 노동자 계급을 강하게 만든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여성차별에 맞서는 동시에 노동자 계급의 일부분을 다른 부분의 적으로 돌리는 것에 저항해야 하는 것이다.

파업

우리는 노동자들의 파업과 그리고 대규모의 집회에서 하나된 노동자 계급의 잠재력을 본다.

지배계급의 여성들도 여성차별의 영향을 받지만 억압에 맞서서 싸우는 데에 있어서 그들에게 의지할 수 없다. 그들은 차별이 뒷받침해 주는 체제에서 이익을 얻기 때문이다.

반면에 어떠한 노동자들도 자본주의에서 이익을 얻지 않는다. 이 체제는 그들을 억압할 따름이다. 노동계급의 사람들은 자본주의를 철폐하는 데 공통의 관심사가 있다.

혁명은 여성의 지위를 변화시킨다. 1917년 러시아혁명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여성은 온전히 자신의 요구만으로 낙태를 할 권리를 얻었다. 거의 1세기가 지난 지금, 그런 권리를 보장하는 곳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 [낙태를 허용한다고 알려진 유럽의 많은 나라들도 임신 12주 이후에는 이런저런 제약(엄격히 적용하는 정도는 나라마다 다르다)을 두고 있다.]

마르크스는 계급 사회에 존재하는 미신과 분열을 초래하는 사상을 “낡은 사회의 오물”이라고 표현했다.

물론 혁명으로 이런 것이 하룻밤 사이에 사라지지는 않는다. 혁명은 성공적으로 새 사회를 만들기 위한 과정으로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리고 이집트에서 보듯이 지배계급은 구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쓰라린 반혁명을 시도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혁명이 차별의 물질적 토대를 없애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혁명의 과정에서 사람들 자신이 바뀐다.

성 “역할”에 대한 사고방식은 그런 생각이 생겨난 체제가 무너질 때 설득력이 떨어진다. 모든 혁명 운동에서 여성은 선두에 나서 투쟁을 이끈다.

마르크스는 오직 혁명을 통해서만이 노동자 계급이 “낡은 사회의 오물을 떨쳐 버리고 새 사회를 건설하는데 적합하도록 자신을 바꿀 수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단순히 몇 명을 성차별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보다 더 높은 목표를 잡아야 한다. 바로, 쟁취해야 할 세계가 있는 것이다.

출처: 영국의 혁명적 좌파 신문 <소셜리스트 워커> 24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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