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영국의 혁명적 사회주의자 존 몰리뉴가 1985년에 쓴 글을 번안한 것이다.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스스로 불만족스러워하는 상황 하나는 다른 사회적 소수집단처럼 자신들만의 언어를 발달시키는 경향이다. 일상의 대화에서 사용되지 않거나 아니면 그와 다르게 사용되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다.

대체로 우리는 이를 경계해야 한다. 우리의 주된 활동이 노동계급과 소통하는 일이고, 특수용어로 말하면 그 소통을 종종 가로막고, 우리 단체 회원이 아닌 사람들을 멀어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특수용어도 일부 있다. 그 용어들은 일반 대중이나 자본가들이 자본주의 폐지라는 우리의 목적을 공유하지 않아 관심 갖지 않는 문제들과 현상들을 이해하고 마르크스주의적으로 분석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한 발(만) 앞서기

그 적절한 사례로는 마르크스 자신의 개념인 잉여가치가 있고, 또 하나는 초좌파주의다. 이 용어들은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으므로 그 정확한 의미를 설명하는 수밖에 없다.

초좌파주의에 관해서는 우선 이 말이 결코 흔한 용어가 아니긴 해도 좌파 안에서는 비교적 널리, 그러나 종종 느슨하고 부정확한 의미로 사용된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주류 개혁주의자들에게 초좌파는 사회주의 운동에 헌신하는 사람을 다 포함하는 일종의 욕설이다. 스탈린주의자들과 유러코뮤니스트들에게 초좌파는 의회를 통하기보다 혁명을 통해 사회가 근본적으로 변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러나 초좌파주의는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였던 레닌이 주로 발전시키고 분석했던 개념이다. (레닌 자신은 ‘좌익주의’라는 말을 사용했다.) 방금 말한 집단들은 다 레닌을 초좌파로 여길 것이다.

그렇다면 초좌파주의의 마르크스주의적 정의는 무엇일까? 아마 이것은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근본 전략 - 자본주의 내의 기초적 노동계급 투쟁을 국가 권력에 도전하고 자본주의를 타도하는 정치 투쟁으로 바꿔내기 - 과 연관지어 보면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

이 과제를 달성하려면 혁명가들이 마르크스주의의 원칙 – 노동계급 전체의 역사적 이익 - 을 굳게 고수하면서도, 대중적 노동자 운동과 최대한 가깝게 접촉하고 관여하려 해야 한다.

마르크스주의적 리더십은 노동자 대중의 착각과 편견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앞서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너무 앞서는 바람에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도록 딱 한 발만 앞서야 한다. 레닌은 이것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생생하게 묘사했다.

“혁명가가 돼 사회주의를 일반적으로 옹호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매 순간 사슬 전체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다음 고리로 결연히 전진하게 해 줄 사슬의 특정 고리를 찾아내고 이를 전력으로 움켜쥘 방법을 익혀야 한다.”

이렇듯 초좌파주의란 추상적인 ‘좌파적’ 원칙이라는 미명 아래 대중 운동에 초연하기, 즉 대중 운동과 필요한 연계를 맺고 그것을 유지하려 하지 않거나 심지어는 아예 그런 시도를 거부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레닌의 용어를 빌리면, 사슬의 다음 고리를 찾지 않고 그 결과 사슬 전체를 놓치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초좌파주의는 자칭 혁명가들이 계급 세력 균형에 대한 객관적 판단을 자기들의 주관적 희망으로 대체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의식적 혁명가들과 나머지 노동계급 부분 사이의 격차를 불필요하게 키운다.

이런 큰 틀 안에서 초좌파주의는 다양한 형태와 크기로 나타난다. 극단적 사례로는 이행기 없이 곧바로 무계급·무국가 사회로 도약하겠다는 아나키즘이 있다.

테러리즘도 초좌파주의인데, 그것은 노동계급 대중의 혁명적 폭력을 개인들의 폭력 행위로 대체하려 한다.

추상적 토론과 선전 위주의 활동을 하는 일부 마르크스주의 학생 서클들은 임금 체제에 반대한다면 임금 인상 파업에도 반대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한다.

정치적 판단

오늘날 우리가 더 큰 관심을 기울이고 우려해야 할 것은 이른바 ‘사회주의적’ 또는 ‘코뮤니스트적’ 초좌파주의다. 그것은 아나키즘처럼 완전히 독자적인 정치 경향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마르크스주의 운동의 주류 내에서 종종 일어나는 좌익적 일탈이다.

이것도 형태가 다양하고 역사적 사례가 많다. 예컨대, 마르크스의 공산주의동맹 동료였고 1848년 혁명 패배 후 망명자 군대를 조직해 독일로 진격하길 원했던 아우구스트 빌리히와 카를 샤퍼, 또 러시아 전역에 혁명적 상황이 무르익기 전인 1917년 7월 무장 봉기를 일으켜 권력을 잡길 바랐던 페트로그라드의 일부 노동자와 병사 등이 있다.

그러나 초좌파주의가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했던 때는 의문의 여지 없이 1917~21년 코민테른 초창기였다.

당시에 진정한 국제적 초좌파 세력이 코민테른 내부와 주변에 존재했다. 그 주도적 인물로는 이탈리아의 아마데오 보르디가, 네덜란드의 헤르만 호르터와 안톤 판네쿡, 영국의 실비아 팽크허스트가 있다. 이 ‘좌파 공산주의’ 경향은 극도로 교조적이며 추상적으로만 사고하는 일부 지식인들과 새롭게 급진화했지만 아직 전략·전술적 사고를 배우지 못해 본능적으로만 행동하려는 젊고 경험이 부족한 혁명적 노동자들 사이의 융합이었다.

이 경향 특유의 견해는 수구적 지도자들이 이끄는 노동조합에서 분리해 ‘순수한’ 혁명적 노동조합을 설립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도 의회 선거에 참여하기를 거부했고, 노골적으로 자본주의적인 정당과 대중적 개혁주의 정당이 충돌할 때 후자를 지지하는 것도 거부했다. 이 모든 것은 ‘책략 거부, 타협 거부’라는 명목으로 견지됐다.

레닌은 그의 가장 중요한 소책자 중 하나인 《좌파 공산주의 — 유치증》을 써서 초좌파적 주장들을 예리하게 비판했다.

레닌은 혁명가들에게 마땅히 노동조합에 남을 것과 “모든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노동조합 속에서 공산주의 활동을 수행할 것”을 주문했고, “부르주아 의회와 그 밖의 다른 모든 형태의 수구적 기관을 무시할 만큼 힘이 막강하지 않은 이상 그 안에서 분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아주 중요한 비판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의식의 발전이 더딘 노동자들을 기만적인 개혁주의 지도자들의 처분에 맡겨두는 꼴이 될 것이라며 레닌은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공산주의자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의식 발전이 더딘 인자들을 설득하고 그들과 함께 활동하는 것이지, 부자연스럽고 유치한 ‘좌파적’ 구호로 그들과 자신들 사이에 장벽을 세우는 것이 아니다.”

결국 레닌의 주장이 승리했고, ‘좌파 공산주의자들’의 견해는 코민테른에서 거부됐다. 만만찮은 경향으로서 좌파 공산주의는 오래가지 못했다. 그들에게 기반을 제공했던 혁명의 물결이 퇴조하자 살아남지 못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초좌파주의의 경향은 코민테른 내부, 심지어 그 지도부 안에 가까스로 존속했고, 특히 독일에서는 강력했다.

공세

초좌파주의는 1921년 독일에서 공산당 지도부가 인위적으로 혁명적 상황을 유발하려 했던 재앙적인 3월 행동(봉기)으로 나타났다. 그것은 노동계급 대중의 정서를 완전히 거스르는 일이었다. 그 결과 공산당원 노동자와 비(非)공산당원 노동자 사이에 충돌이 벌어졌고, 공산당의 당원 수는 처참하게 감소했으며, 지배계급은 손쉽게 승리를 거뒀다.

자기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려고 이 초좌파주의자들은 ‘공세 이론’을 개발해, 혁명가들의 임무는 때를 가리지 말고 공세에 나서고, 언제나 전진하는 것이고, 노동계급의 전위는 여봐란듯한 행동으로 계급의 나머지 부분에게 ‘충격’을 주고 ‘자극’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레닌은 트로츠키와 함께 다시 총대를 메고서, 혁명적 당은 공격뿐 아니라 질서 정연한 퇴각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력으로 직행하는 투쟁은 오직 공산당이 노동계급 다수의 지지를 얻을 때만 시도할 수 있다. 혁명가들은 노동계급의 기본적 생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적이고 구체적인 요구들을 둘러싼 많은 투쟁(공세적 투쟁뿐 아니라 방어적 투쟁도 포함한다) 속에서 각고의 노력으로 그런 지지를 받아야 한다.

이런 주장은 몇 달 뒤에 채택된 개혁주의 정당과의 공동전선 전술들의 기초가 됐다. 공동전선 전술은 지배계급의 공세에 맞선 방어적 투쟁을 위해 노동계급을 단결시키는 동시에, 가장 기초적인 요구를 위한 투쟁조차 개혁주의자들이 한결같이 이끌지는 못한다는 것을 드러내려고 고안됐다.

초좌파주의에는 또 다른 형태가 있었다. 바로 관료적 초좌파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었다. 평당원이나 평조합원의 통제에서 벗어나 있고 이들에 대한 책임을 포기한 관료 지도부가 이들이 직면한 실제 현실과 이들에게 닥칠 위험을 도외시한 채, 좌파적 이미지를 얻으려고 겉보기에 급진적인 구호와 명령을 발하는 것이 그런 경우다.

러시아 혁명의 관료적 타락에서 비롯한 관료적 초좌파주의는 1923년 독일 혁명 패배 후 지노비에프 지도 하의 코민테른에서 득세했다. 이 초좌파주의는 나중에 스탈린이 선언한 ‘제3기’, 즉 1928~34년에 기괴한 형태로 널리 확산됐다. 그 기괴함인즉, 사회민주당에 ‘사회 파시스트’라는 딱지를 붙이고는 히틀러의 부상에 맞서 그들과 공동 행동하기를 거부했고, 따로 적색 노조를 만들라는 지령을 내려 기존 노동조합을 분열시켰다.

이것은 바로 레닌이 《좌파 공산주의》에서 비난했던 정책들이었다. 비록 그 기조가 미숙함에서 냉소주의로 바뀌었지만 말이다. 이제 초좌파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비판은 망명 중인 트로츠키의 몫이 됐다.

소종파들

초좌파주의의 고전적 사례를 제공하는 것이 코민테른 시기라면, 이는 오늘날의 경험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우선, 초좌파주의가 지금 좌파들이 직면한 주요한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1980년대 후반의 급진화는 다양한 초좌파 소그룹들을 탄생시켰다. 그들은 당시의 좌파 정치에 영향력을 일부 행사했지만 그들의 압도 다수는 보안법으로 국가 탄압을 받아 조직이 깨졌거나, 소련 붕괴의 여파 속에서 운동을 포기했거나, NGO나 개혁주의 정당 속으로 용해됐다.

지금 남아 있는 것은 독자 대부분이 거의 들어 보지도 못했을 소종파들이다.

독자들 가운데 호기심 삼아 극도로 순수한 초좌파주의 사례를 조사하고 싶다면 사회주의노동자신문(사노신)-국제코뮤니스트전망을 검색해 보라. 이 소종파는 초창기 코민테른 초좌파들(보르디가나 판네쿡, 호르터 등)의 후계자를 자임한다. 이들은 하도 ‘좌파’적이신 나머지, 자민통계와 노동자연대를 “자본주의 기구”에 포섭된 반혁명적 세력으로 규정하고 있다! 아마도 그런 이유에서 노동자연대를 ‘성폭력 가해 단체’라고 중상 비방해 신뢰도를 떨어뜨리려 (헛되이) 애쓰는 듯하다. 

현재 이런 경향의 영향력은 대단치 않고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위험은 초좌파주의가 아니라 운동 내 우경화 압력이다.

그럼에도 초좌파주의 문제를 우리가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초좌파 경향은 좌파노동자회와 알바노조 안에도 일부 있고, 노동당 내 사회당계 안에도 일부 있고,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 안에도 일부 있고, 노사과연 안에도 일부 있다. 뿐만 아니라 자민통계에 거의 적대적이었던 지난 사반세기 동안의 역사 속에서 PD 경향의 단체들과 개인들에게는 많거나 적게 초좌파적 경향을 부분적으로 발전시킨 적이 있어서 이따금 종파적 태도를 드러낼 때가 있다.

노동자연대도 위에서 사노신-국제코뮤니스트전망 같은 서클보다는 크지만, 여전히 조직 노동계급 내에 대규모 기반을 갖지 못한 작은 조직이다. 따라서 우리도 대중 운동에 대한 무지나 경험 부족 때문에 초좌파주의로 빠질 수 있다.

더욱이, 지금 우리가 우경화에 맞서기로 한 상황에서 왼쪽으로 막대기를 구부릴 수밖에 없다 해도 현실의 투쟁에서 완전히 단절될 만큼 도가 지나쳐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개혁주의자들과, 한때 혁명가였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은 자들이 노동자 투쟁을 배신하고도 그 책임을 모면할 기회만 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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