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박근혜는 공무원연금과 노동부문 개악안을 시한 내에 합의하라고 압박하며 다시금 “미래 세대의 앞날”을 들먹였다. 청년 실업과 비정규직 차별을 노동부문 개악을 밀어붙이는 채찍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눈높이를 낮추라고 윽박질러 청년들을 저질 일자리로 몰아넣는 게 박근혜의 청년 일자리 정책이다.

경총 부회장 김영배가 “연봉 6천만원 이상 정규직 근로자의 임금을 향후 5년간 동결하고, 그 재원을 협력업체 근로자 처우개선과 청년고용에 활용하는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부아가 치밀게 만드는 이간질이다.

대기업들이 간접고용 노동자들을 정규직화하고 장시간 노동만 줄여도 ‘협력업체 근로자 처우개선과 청년고용’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한 통계를 보면, 10대 대기업 사내유보금 522조 원의 0.8퍼센트만 사용해도 이 기업들에 고용된 비정규직 43만 명을 정규직화하고 연봉도 대폭 올릴 수 있다. 또, 노동시간을 OECD 평균 수준으로만 줄여도 고용률을 76퍼센트로 올릴 수 있다.

박근혜 정부와 사용자들은 이와 같은 이간질을 통해 노동자들이 서로 단결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노동자 계급의 절대적 몫을 줄이고 전체 노동자들의 조건을 끌어내리려 한다. 바로 이것이 박근혜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 개악이 노리는 것이다.

유(有)노조·대기업·정규직과 무노조·중소영세기업·비정규직 사이를 이간질하기

박근혜 정부는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을 내놓으면서, 그 부제를 “비정규직 처우 개선과 노동시장 활력 제고 방안”이라고 붙였다. 부제에서 드러나듯이, 정규직의 “과보호”를 풀어 노동시장 활력을 높임으로써 비정규직 처우를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문제라며 마치 비정규직의 열악한 조건이 정규직 탓인 양 호도한다. 정규직이 좋은 일자리를 견고하게 독점하고 있어서 비정규직이 노동시장에서 상향 이동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1997년 금융 공황 이후 경제 위기의 대가를 노동자들에게 치르게 하려고 정리해고제와 파견제를 도입한 것은 바로 정부와 기업주들이었다. 그 결과 비정규직이 대거 양산됐고 워킹 푸어(노동빈곤층)가 늘었다.

게다가 서비스산업 비중 증대 같은 산업구조 변화, 독과점화에 따른 기업 규모와 지불 능력의 격차 문제가 더 근본적인 문제라는 점도 지적해야 한다. 1997년 위기 이후 자본의 집적과 집중은 훨씬 더 심화됐다. 2000년대 들어 삼성·LG·SK 계열사들의 순이익은 전체 사기업 순이익의 75퍼센트를 넘어섰을 정도다.

지난 20년 가까이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비정규직과 저임금 노동자들을 양산해 놓고 또다시 신자유주의 처방을 내놓으려다 보니, 이런 문제의 책임을 전가할 대상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는 유(有)노조·대기업·정규직 노동자들을 좋은 일자리를 독점하고 청년·여성·비정규직의 기회를 빼앗는 악으로 묘사한다. 그러면서 그들의 좋은 일자리를 빼앗아 쪼깨서 나누고 임금도 낮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노조·대기업·정규직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7.4퍼센트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과보호’를 깨겠다고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단지 이들만을 겨냥하는 게 결코 아니다. 노동시장 구조 개악은 전체 노동자들의 처지를 악화시킬 것이다.

가령 정부는 정규직 ‘과보호’를 없애겠다며 근로기준법의 해고제한 법리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제한을 손보려 하는데, 이렇게 되면 무노조·중소영세기업·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노동법이 포함하고 있는 보호장치를 잃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사용자와의 세력관계에서 더 취약한 이들야말로 노동조건 악화에 속수무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노골적인 비정규직 제한 완화 정책을 내놓고 있다는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런 조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1차 노동시장”(좋은 일자리)으로 들어갈 기회를 주기는커녕 비정규직에서 벗어나기 더 어렵게 만들 것이다.

박근혜의 공격은 모든 노동자들을 겨냥하고 있다

물론 정부와 사용자들이 유노조·대기업·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그저 말로만 으름장을 놓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일각에서는 잘 조직된 노동자들은 어차피 개별 노조의 단협을 통해 방어할 수 있으므로 정규직에 대한 공격이 실질적인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공공부문 1차 ‘정상화’ 공격으로 지난해 이미 많은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악화됐다. 지금도 정부는 업무 저성과자 퇴출제, 성과연봉제, 임금피크제 등의 도입을 공공부문에서부터 밀어붙이겠다고 밝히고 있다.

또, 유노조·대기업·정규직 노동자들은 임금체계 개편이나 해고 요건 완화 공격에서 결코 비켜나 있지 않다.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대기업들도 임금체계 개편을 시도하고 있고, 저성과자 해고는 KT에서 보듯이 대기업들이 추진하려는 상시 구조조정에 이용될 것이다.

요컨대 현재 박근혜 정부의 노동자 공격은 특정 부문의 노동자들에게만 가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노동자들을 향하고 있다.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노동계급이 가져가는 몫을 줄이는 게 저들의 목적이다.

박근혜 정부가 가장 많이 언급하는 독일의 “하르츠 개혁”도 정규직에 유리한 노동시장 경직성을 완화하는 것을 목표로 내세웠다. 그러나 그 결과는 미니잡과 파견 일자리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저임금 노동자의 비중(22퍼센트)이 늘어난 것이었다. 하르츠 개혁은 노동자들의 임금 수준을 전반적으로 떨어뜨렸고, 노동조합의 조직력을 압박했다.

한국 지배계급이 독일 모델을 특별히 주목한 것은 그것이 노동조건을 공격함으로써 경기 침체를 딛고 수출경제를 재건한 케이스이기 때문일 것이다. 2000년 이후 중국 수출의 급속한 증가로 덕을 봐 온 한국 경제는 최근 중국의 성장 둔화로 수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는 독일이 거둔 위기 전가 효과를 노리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대립시키며 노동운동을 바라봐선 안 된다

지금까지 박근혜의 노동부문 개악의 칼날이 특정 부문에 한정되지 않고 노동자 계급 전체를 향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점을 분명히 하는 것은 누가, 무엇을 요구하며, 어떻게 싸울 것인가 하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노동운동 안에서는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이 진정으로 겨냥하는 게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 미조직이냐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특히, 그것이 정규직 노동자들을 겨냥하는 건 아니라는 주장이 꽤 있다.

이 주장은 이렇게 이어진다. 어차피 정규직 노동자들은 단위노조 투쟁으로 노동조건을 지킬 수 있다. 그러면 노동계급 내부 격차는 더 벌어지게 된다. 정부가 노리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정부와 기업은 분노의 화살을 계속 정규직으로 돌리면서 책임을 회피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본다면, 정규직에 대한 공격은 단지 ‘이데올로기적 공격’일 뿐이라고 보는 셈이다. 그리고 정규직의 노동조건 방어 투쟁을 중시하거나 연대해야 한다고 생각하기가 어렵게 된다. 정규직 노동조건 방어는 결국 노동계급 내부 격차를 벌릴 것이고, 정부와 기업의 책임 회피용으로 이용될 뿐인 것으로 여겨질 테니 말이다.

그러나 앞서 지적했듯이 정규직·공공부문 노동자들은 진정한 노동조건 공격을 당하고 있다. 그리고 정부는 철밥통 논리로 공공부문 노동자들을 고립시켜 노동조건을 공격한 뒤 이를 민간부문으로 확대하려고 한다.

한편, 정규직의 조건이 쟁점이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시장 구조 개악으로 더 나빠질 것도 없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기간 제한 연장이나 사내하청 합법화의 길을 여는 문제점만 봐도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파견 허용 제한이 정부안대로 완화되면 전체 노동자 10명 중 3명이 그 대상이 되는데, 그렇게 되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 일자리를 구하기는 더 어려워질 게 뻔하다.

중소기업 미조직 노동자들도 노동시장 구조 개악으로 타격을 받을 당사자이지만, 지금과 같은 시기에 투쟁의 주축으로 나서리라고 기대하긴 어렵다. 그러나 먼저 조직 노동자들이 효과적인 투쟁을 전개한다면, 미조직 노동자들도 노동조합 운동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효과적인 노동조합 조직화 방안이다.

요컨대 박근혜의 노동시장 구조 개악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모두 겨누고 있다. 다만, 이간질을 통해 서로 반목시켜 각개격파하려는 것이므로, 노동운동은 이에 맞서 서로 다른 부문의 노동자들이 단결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만약 서로 이해관계가 다르다고 여겨, 한 부문이 공격당하는 것을 다른 부문의 노동자들이 방관한다면, 심지어 한 부문의 ‘특혜’가 사라져야 자기 형편이 나아진다고 여긴다면, 각개격파당하기 십상이다.

노동계급 내부 격차 완화나 해소는 오직 계급투쟁을 통해서

한편, 박근혜 정부의 정규직-비정규직 이간질에 맞서 우리 쪽도 노동계급 내부의 격차 해소 방안을 내놓지 않으면 소위 ‘프레임 전쟁’에서 밀린다는 주장도 있다.

노동계급 내부의 격차 해소는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노동계급의 절대적 몫을 늘리는 것을 지향하면서 노동계급 내부의 격차 줄이기를 모색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양보론’으로 귀결되기 쉽다.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을 동결하자든지, 일자리를 쪼개자든지 하는 식으로 노동계급 내부에서의 나눔만 생각하는 것은 자본과 노동의 격차 증대를 감추려는 정부와 기업주들의 프레임에 속아 넘어가는 것일 뿐이다.

1997년 이후 국민총생산에서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은 이미 크게 떨어졌다. 부자 증세를 통한 복지 강화, 사내유보금 사용을 통한 정규직화, 정부 책임 강화를 통한 공적 연금 강화처럼 노동계급의 절대적 몫을 늘리는 것이 노동운동의 요구가 돼야 한다.

누구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단결을 말하는 듯하지만, 이것을 진지하고 일관되게 추구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신자유주의로 노동계급이 변해(내부 격차 증대) 하나의 계급으로서 단결하기 어렵다는 생각도 많이 퍼져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노동계급 내 상이한 부문간 단결은 자동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그것은 투사들과 활동가들이 진지하고 일관되게 추진해야 할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