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지 꼬박 1년이 지났다. 3백4명이 목숨을 잃었다. 세월호는 여전히 진도 앞바다에 묻혀 있고, 참사의 진실도 온전히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세월호의 침몰 원인도, 국정원 실소유주 의혹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제까지 재판에서 밝혀진 것만 봐도, “침몰은 선장이 시켰지만 참사는 정부가 만들었다.” 참사 직후 해경 123정만이 도착했고, 스스로 배에서 탈출한 승객들만 건져 올렸을 뿐이었다.

바다에서 직무를 유기한 경찰은 육지에서 바삐 움직였다. 경찰은 유가족들을 감시하고 미행했다.

결국 5월, 희생자 가족들은 ‘세월호 참사는 교통사고나 다름없다’는 KBS 보도국장에게 항의 방문을 하고, 청와대로 향하기 시작했다. 가족들은 영정 사진을 끌어 안고 밤을 꼬박 새웠다.

그 시각 박근혜는 청와대에 앉아 세월호 참사로 경제가 위축돼선 안 된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의 본질이 다시금 드러난 순간이었다.

진실 규명을 위한 특별법 요구

희생자 가족들은 대통령까지 포함한 성역 없는 진상조사를 요구하고 나섰다. 희생자 가족들의 국회 농성으로 국정조사가 겨우 시작됐지만, 새누리당의 방해가 이어졌다.

7월 말 희생자 가족들은 ‘4·16 참사 진실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에 관한 특별법(안)’을 마련하고 국회 통과를 촉구하는 전국 서명 운동에 나섰다.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된 독립적 수사기구를 마련하고, 진상 규명을 바탕으로 안전 사회의 기초를 마련하자는 것이 특별법의 골자였다. 참사의 책임자들을 소환·수사·기소할 수 있는 강제력이 없다면 진실 규명은 요원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특별법은 박근혜 정부와 맞서는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참사에 책임이 있는 박근혜 정부가 특별법 요구를 수용할 리 만무했다.

희생자 가족들은 거리로 나가 특별법 통과 서명을 호소했고, 5백만 명이 서명에 동참했다. 가족들은 대학과 공장 등 곳곳을 찾아다니며 진실 규명의 힘을 모으고자 했다. “도로 위의 세월호를 막자”고 나선 화물 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악한 박근혜 정부는 “민생법안”으로 포장한 온갖 규제 완화 법안을 쏟아냈다. 9월 박근혜는 사실상의 여야 협상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며 새누리당을 단속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진상규명 방해 공범이었다. 새정치연합은 등원에 몸이 달아 희생자 가족들에게 수사권·기소권을 포함한 특별법 요구를 내리라고 압박했다. 운동 내 일부 온건파 리더들이 이런 새정치연합의 눈치를 보거나 의존하려 한 태도는 운동의 성장에 장애가 됐다.

진실을 인양하라

11월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은 수사기구의 독립성과 수사권·기소권이 빠진 누더기 특별법을 기어코 통과시켰다.

이 누더기 세월호 특별법에 따른 특별조사위(특조위)는 박근혜 정부의 방해로 출범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희생자 유가족들은 4·16 가족협의회를 꾸리고 세월호 인양·실종자 수색·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핵심적 증거 보전과 실종자 수색을 위해 세월호는 조속하고 온전히 인양돼야 한다. 세월호 참사 피해자에 대한 지원과 배상·보상도 이뤄져야 한다.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는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대규모 집회를 준비하고 있다. 대학생들도 도심 행진을 비롯해 곳곳에서 1주기 행동을 준비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1주기 집회가 큰 규모로 열려 박근혜 정부에게 세월호 참사 항의의 뜻을 분명히 보여 주자.

출범조차 못하고 있는 특별조사위원회

3월 27일 해수부가 입법 예고한 시행령은 특조위 설립준비단의 애초 요구보다 인력과 예산 규모를 대폭 줄이고 정부 파견 공무원의 통제를 강화했다. 가족협의회는 “간섭령”이라며 전면 폐기를 요구하고 있다.

3월 23일에는 세월호 특조위 설립준비단에 파견된 해양수산부 사무관이 특조위 내부 자료를 청와대와 새누리당, 해양수산부 등에 유출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특조위가 처한 지금의 상황은 왜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된 독립적 진상조사기구 마련 요구를 포기하지 말았어야 했는지를 잘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