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공사는 근속승진제 폐지를 3월 안에 마무리 지어야 한다며 강하게 노조를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근속승진제는 철도 노동자들에게 무엇보다 소중하다. 철도노조를 민주화하면서 가장 먼저 쟁취하고자 했던 것도 바로 강제전보 폐지와 근속승진제였다. 사측의 전횡과 통제라는 굴레를 벗고 현장에서 제대로 숨쉬며 살기 위해서였다.

지금 정부와 철도공사가 근속승진제를 폐지하려는 목적도 바로 개인별 성과 평가를 부활시켜 현장 통제권을 되찾기 위해서다. 저들은 근속승진제가 “경영진의 관리·통제력을 무력화”한다고 노골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조합원들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근속승진제가 폐지되면 노동자 간 경쟁이 격화돼 노조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그래서 파업을 해서라도 근속승진제만큼은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그런데 최근 김영훈 집행부는 ‘근속승진제 변경안’을 내놓았다. 각 직급별 정원보다 현원이 부족할 때만 근속에 따라 승진하고, 일부는 개인별로 포인트(근속, 책임사고, 출결, 사회봉사 등)를 쌓아 승진하는 방식이다.

집행부의 ‘근속승진제 변경안’은 3월 26일 열린 전국지부장회의에서 강한 반발에 부딪혔다. 지부장들은 집행부 안이 근속승진제 폐지와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평가의 요소가 포함되면 사측은 이를 이용해 얼마든지 전횡을 부리고 현장 노동자들을 쥐락펴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3시간 동안 김영훈 위원장과 현장 지부장들 사이에 날카롭고 뜨거운 공방이 이어졌다. 적지 않은 지부장들은 집행부의 양보안 제시가 합의 타결을 위한 수순 아니냐고 우려하기도 했다.

지부장들은 거듭 현장 분위기를 전하며 올해는 지난해처럼 제대로 싸워 보지도 않고 정부와 사측이 내달라는 것을 내주는 양보교섭을 해서는 결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런 목소리는 서울, 부산, 호남 지역의 전 직종에서 골고루 제기됐다. 이것은 철도 현장이 어렵고 조합원들이 싸울 의지가 없다는 주장이 잘못됐음을 보여 줬다.

핵심 관문

또 지부장들은 사측이 근속승진제 폐지를 발판으로 성과연봉제 도입 등을 밀어붙이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근속승진제 폐지는 철도에서 2단계 정상화 추진의 핵심 관문이다. 2단계 정상화 방안의 핵심은 개인별 성과를 승진, 임금, 심지어 퇴출에까지 연계하는 것이다. 근속승진제 폐지, 성과연봉제, 2진 아웃제가 바로 그것이다.

지부장들의 항의에 부딪힌 김영훈 위원장은 당일 본교섭에서 ‘근속승진제 변경안’을 내려던 계획을 일단 포기해야 했다. 지부장들이 중요한 제동을 건 것이다. 이것은 2단계 정상화 공격을 앞두고 정부가 철도노조에 근속승진제 같은 중요한 공격을 관철해 기선을 잡으려던 것을 좌절시켰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적잖다.

그러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김영훈 위원장은 지부장들이 압도적으로 ‘근속승진제 변경안’ 폐기를 촉구했는데도, 최종 결정권을 중앙집행위에 위임해 달라고 하고 이 안을 분명히 폐기하지는 않았다.

이번 전국지부장 회의에서도 확인됐듯이, 조합원들은 싸울 의지가 없는 게 결코 아니다. 조합원들은 지난해 여러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복지 삭감 단협 합의를 부결함으로써 후퇴를 멈추고 사측의 공격에 대응해 가자는 의지를 보여 줬다.

올 초 오봉역 조합원들의 현장 투쟁부터 최근 서울기관차지부와 안산승무지부 등의 투쟁까지, 현장 조합원들은 사측의 여러 공격에 맞서 소중한 승리를 거두면서 사기를 회복하고 있다.

철도 활동가들은 사측의 추가 징계, 강제전출 등의 협박이 본격화되기 전에 단협 개악과 2단계 정상화 저지를 위한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철도노조가 민주노총 4월 총파업에 함께해 다른 노동자들의 요구도 지지하며 자신들의 요구도 내걸고 싸운다면, 올해 철도 투쟁의 좋은 출발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