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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개혁을 거부하는 조··

언론사 세무 조사에서 비롯한 언론 개혁 논란이 신문 고시 제정으로 새 국면을 맞고 있다.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와 같은 우파 신문들과 우파 야당인 한나라당은 신문 고시가 “정부의 비판적 언론 길들이기”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그들은 “신문 고시는 독자들의 선택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며 날마다 “언론 자유”를 외쳐 대고 있다.

조·중·동 같은 우파 신문들은 “언론 개혁은 자율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언론 개혁이 자율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가능할까? 과연 개혁의 대상이 개혁의 주체가 될 수 있을까?

한나라당 총재 이회창은 “신문 배달망까지 손 대겠다니 … 사회주의 국가냐”고 흥분했지만, 신문 고시에 딱히 좌파적이랄 것은 없다.

신문 고시의 정식 명칭은 “신문업에 있어서의 불공정거래행위의 유형 및 기준”이다. 신문사들이 어떤 행위를 할 때 불공정 거래가 되는지 명시해 둔 일종의 가이드 라인이라 할 수 있다.

신문 고시의 핵심은 무가지 비율, 과다한 경품 규제, 강제 투입 규제, 지국의 타사 신문 취급 금지에 대한 규제다.

신문 고시의 제정은, 부족하나마 그 동안 국민의 다수가 요구한 언론 개혁의 첫 제도적 성과라 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신문사들의 “시장질서 왜곡”을 바로잡는 것뿐 아니라, 기성 언론의 여론 지배 구조를 약화시킬 수 있는 주춧돌이 될 수 있다.

신문 고시는 1997년 1월에 한 차례 제정됐다가 신문사들이 자율 규약을 통해 신문 시장을 정상화하겠다고 약속함에 따라 2년 만에 폐지됐다. 당시는 〈조선일보〉·〈동아일보〉·〈한국일보〉가 소위 ‘3대 일간지’로 행세하고 있었고, 여기에 〈중앙일보〉가 가세해 공격적으로 부수 확장 경쟁을 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조선일보〉〈중앙일보〉 지국 간에 살인 사건이 벌어졌고, 독점적 신문 시장을 비판하는 여론이 일자 신문 고시와 자율 규약이 제정됐던 것이다. 〈조선일보〉는 당시 자율 규약 제정에 대해 “이것은 다름 아닌 독자들에 대한 우리의 진정한 서비스 정신이다.”고 사설에서 말했다.

그러나 자율 규약은 애초부터 실현될 수 없었다. 아무 구속력이 없는 시정 권고가 90퍼센트에 이르는가 하면, 강제 투입 때의 위약금도 건당 40만 원일 뿐이어서 쉽게 무시할 수 있었다. 경품 제공은 1999년 1백96건에서 지난해 2백16건으로 늘었고, 무가지 살포도 1999년 98건에서 2백89건으로 증가했다.

2000년 한 해만도 자율 규약을 위반한 사례가 1천9백32건에 달했고, 이 가운데 70퍼센트 이상을 3대 메이저 신문인 조선·중앙·동아가 위반했다. 그러니 조·중·동의 “자율 개혁” 주장은 얼마나 위선적인가.

치졸한 조·중·동

조·중·동은 치졸하다 싶을 정도로 신문 고시를 집요하게 공격하고 있다. 조·중·동은 “질이 좋은 신문을 독자들이 많이 보는 것은 당연하다.”며, 신문 고시가 “독자들의 선택권”을 침해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들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결정적 배경은 독자들의 선택이 아니라 다름 아닌 독재 정권과의 유착이었다. 1980년의 언론 통폐합이 대표적 사례다. 신군부의 언론 정책은 철저하게 “당근과 채찍”을 병행하는 것이었다. 군부는 중앙지 ‘정비’와 ‘1도 1사’ 원칙에 따라 중앙지 1개, 지방지 8개, 경제지 2개 등 모두 11개의 신문을 폐간했다. 그 대신 남은 신문사들에게는 세무 조사 면제 등의 특혜를 주었다.

이들 신문의 또 다른 배경은 부패한 자본과의 유착이었다. 〈중앙일보〉는 삼성, 〈문화일보〉는 현대의 소유였다. 이들 신문의 역할은 모기업의 부패를 감춰 주고 그에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는 것이었다. 조·중·동은 다른 언론사들을 통·폐합하고, 대자본의 부패를 감추어 주고, 자본력을 이용해 지국을 확대하고, 경품을 주고, 무가지를 돌리며 독과점 구조를 형성했다.(지국들의 평균 무가지 비율은 30퍼센트가 넘는다.)

지국에 대한 신문사들의 횡포도 심각하다. 지국은 본사로부터 끊임없이 부수 확장 압력을 받는다. 또, 신문 대금이나 판매 지역 등도 본사의 결정에 철저하게 따라야 한다. 수지가 맞지 않아 다른 신문을 취급하려 하면 일방적인 계약 해지나 공급 중단 등의 불이익을 받기도 한다.

불교인권위원회 진관 스님은 “동료 승려에게 〈조선일보〉를 구독하지 말 것을 권유했으나 산 속의 사찰까지 배달되는 신문이 그것밖에 없기에 그는 아직도 〈조선일보〉를 구독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새로운 신문이 등장할지라도 자본 부족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신문고시가 제대로 제정돼야 독자들이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가 아니라 진정으로 신문의 논조에 따라 신문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공동배달제도를 도입한 지국에서는 운영 비용이 훨씬 절감되는 효과를 얻기도 했다.

언론사 신문고시 지지율

3대 우파 메이저 언론들은 입에 거품을 물고 신문 고시가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반발한다. 그러나 그들은 “언론 자유”를 입에 올릴 자격이 없다. 그들은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의 충실한 옹호자들이다.

언론의 자유는 언론사주를 위한 것도 아니고, 언론인들만을 위한 것도 아니다. 언론의 자유라는 것은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누구나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권리다. 그러나 언론의 영향력은 증가하고 있지만 언론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표명할 수 있는 사람의 수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우파 신문들의 ‘언론 자유’에 따른다면 언론 개혁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70퍼센트 정도가 돼야 할 것이다.(3대 메이저 신문의 신문 시장 장악률은 70퍼센트다.) 그러나 지난 2월 언론노조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세무 조사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64퍼센트, 신문공동판매제 도입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71퍼센트, 정간법 개정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86퍼센트나 된다.

그러나 조·중·동의 저항은 필사적이다. 처음에는 공정거래위원회를, 다음에는 공정거래위원장의 임기를, 언론 개혁을 적극 요구하는 시민단체를, 신문 개혁 토론회 방송 진행자를, 〈한겨레〉를, 그 신문에 기고하고 있는 송두율 교수를, 나중에는 공정거래위의 고시안에 보충 지시를 내렸던 규제개혁위원회까지 비판했다. 심지어 끝나지도 않은 규제개혁위원회 회의에 대해 기사화했다. 〈조선일보〉는 국민을 분노케 했던 대우차 노동자들에 대한 경찰 폭력은 사진 한 장 싣지 않으면서도, 신문 고시를 공격하는 데에는 추측 기사까지 동원해 글을 써 댔다.

“세무조사 결과 공개는 위법”

언론 개혁을 요구하는 시민단체들의 주장은 완전히 정당하다. 신문 고시를 통해 언론 개혁의 제도적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 정부의 “언론 길들이기”와 동일시될 수는 없다.

신문 고시 전에 제기됐던 세무 조사 결과 공개 문제만 해도 그렇다. 김대중은 “세무 조사 결과 공개는 위법”이라고 말했다. 김대중 정부는 신문 고시의 제정 문제에서도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 애초의 무가지·경품 등의 비율이나, 강제 투입 기간, 시행 시기 등을 계속 양보하다가 마침내 그것마저 “자율 규약이 지켜지는 것을 봐서 시행”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언론 문제의 주무부서인 문화관광부 장관 김한길은 “신문 판매를 위한 업계의 자율적인 공정 경쟁 활동이 정착되어 가고 있다”고 말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언론 개혁의 또 다른 핵심 쟁점인 “정기간행물법 개정”에 대해서도 정부와 민주당은 4년째 침묵으로 일관했다. 편집권의 독립과 신문사의 소유 구조 개선은 전혀 진척되고 있지 않다.

이들은 진정한 언론 개혁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역대 정부와 꼭 마찬가지로 언론을 밀고 당기며 눈치를 살피고 있다.

언론개혁시민연대의 주도로 신문개혁국민행동이 출범했다. 신문개혁국민행동은 부평역에서 있었던 경찰 폭력 항의 집회에서 언론 개혁 서명을 받았다. 집회에 참가한 대우차·레미콘·한통 계약직 노동자들은 언론이 자신들의 문제를 말하지 않는 것에 분노하며 직접 서명판을 받아서 돌릴 정도로 커다란 관심을 보였다. 진정한 언론 개혁이란 바로 이런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며 진정한 언론 개혁을 이루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조직적이고 단결된 힘이 결합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