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연합과 실무기구에 참여한 공무원 단체들은 ‘더 내고 덜 받는’ 양보안을 제시하는 한편, 정부·여당에 ‘공적 연금 강화 방안’에 합의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공무원연금을 일부 양보할 테니 공적 연금을 일부 개선하라는 것이다. 공무원노조 지도부는 직접 양보안을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양보안을 공개적으로 반대하지도 않았다.

물론 소득대체율 인상과 사각지대 축소 같은 공적 연금 강화 방안은 꼭 필요한 조처들이다. 이는 정부의 책임과 기업주들의 부담을 OECD 국가들의 평균 수준으로만 늘려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공무원연금 삭감안을 수용하고 그 돈으로 공적 연금을 강화하자는 의견에는 문제가 많다.

첫째, 비현실적이다. 정부·여당은 그럴 생각이 없다. 새누리당은 지난 반년 가까이 공적 연금 강화는 협상 대상이 아님을 거듭 밝혀 왔다. 그도 그럴 것이, ‘재정 절감’을 위해 공무원연금을 삭감하겠다고 한 마당에 기초연금이나 국민연금을 정말로 강화하려 한다면 오히려 더 많은 재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원내대표 유승민은 공적 연금 강화 제안을 단칼에 잘랐다. “야당 일각에서 이렇게 절감되는 돈의 몇 퍼센트 내지는 몇 조 원을 공적 연금 강화에 쓰자고 약속해 달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번에 개혁하는 이유가 미래의 부채를 줄이자는 것인데, 야당이 부채를 줄이는 돈으로 국민연금 등 공적 연금 강화에 쓰자는 것은 개혁을 하지 말자는 것이다. 이러한 제안에 대해서는 결코 응하지 않겠다.”

오히려 정부·여당은 사적 연금 시장을 활성화할 조처를 준비하고, 국민연금 보험료를 인상하는 등 공적 연금을 약화시킬 준비를 해 왔다. 공무원연금 개악은 그 디딤돌이다.

물론 새누리당은 ‘공적 연금 강화’를 논의할 수 있는 양 흘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공적 연금 강화’는 전혀 진정성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새정치연합과 공무원 단체 지도자들에게 아래로부터의 반발을 달래고 타협할 명분을 주는 꼼수였을 뿐이다.

꼼수

이런 맥락에서 ‘공적 연금 강화’는 공무원 노동자들에게 양보 압박을 가하는 구호가 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여당은 공무원연금 개악을 4월 임시국회에서 통과시키고 공적 연금 강화를 연내 합의하자고 한다. 현찰을 받고 어음을 내주겠다는 식이다.

심지어 새누리당 조원진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이라는 표현도 ‘조정’으로 고치자며 벌써 ‘먹튀’ 준비를 하고 있다.

둘째, 새정치연합도 공적 연금 강화에 전혀 진지하지 않다. 새정치연합은 노무현 정부 시절 국민연금을 3분의 1이나 삭감한 주범이고, 박근혜의 기초연금 먹튀에 합의해 준 공범이다.

새정치연합은 ‘공적 연금 강화’를 명분으로 공무원노조 등을 대타협기구에 끌어들이고는 결국 정부·여당과 별 차이 없는 공무원연금 개악안을 내놓았다. 새누리에 비해 이중대이지만 새정치연합도 노골적인 자본주의적 정당으로서 재정 절감이 필요하다고 확신한다.

지금 국회 특위 야당 간사를 맡고 있는 강기정은 2008년 유시민 등과 함께 공무원연금 개악안을 입법 발의한 당사자다. 공무원 노동자들의 저항 때문에 좌절됐지만 개악의 수준과 명분은 지금 새누리당 안과 대동소이했다.

이런 새정치연합이 공적 연금 강화를 위해 새누리당과 정말로 싸우리라 기대하는 것은 나무 위에서 물고기를 잡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정부와 기업인들은 양보할 생각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공무원 노동자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다른 노동자들의 조건을 개선하려는 시도는 그저 노동자들 사이에 분열만 낳을 것이다. 그래서 이는 공적 연금 강화를 위한 진정한 동력, 즉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투쟁을 약화시킬 것이다.

그리 되면 전체 공적 연금의 하향평준화로 이어질 위험이 다분하다. 앞서 지적한 대로, 정부의 재정 부담이 지금보다 대폭 늘어나지 않는 한 공무원연금 개악만으로는 공적 연금을 강화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따라서 공무원연금 개악과 공적 연금 강화는 맞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공적 연금 강화는 공무원연금 개악을 막아 내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