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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정규직 양보론이 놓치고 있는 것

박근혜 정부와 자본가들은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와 중소기업 영세 노동자의 처지를 의도적으로 대립시키면서 교활하게 공격하고 있다.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인상하라는 요구는 외면하면서 노동계급을 분열시키려고 열악한 처지에 있는 노동자들을 끌어들이는 것은 정말이지 야비하다.

부자에게 깎아 주는 법인세가 하루에 2백12억 원이다. 그런데도 국가재정을 아낀다며 공무원과 가족들 수백만 명의 연금을 도둑질하겠다고 한다. 이런 날강도 짓에 분명히 반대해야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노동운동 내에서도 계급 내의 격차를 해소하려면 정규직 노동자들이 양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정부의 공격에 더해 일부 좌파들의 혼란과 잘못된 정치 때문에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특권층인 양 여기는 분위기가 적지 않다.

그동안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전체 노동자 중에 소수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전체 노동자 중 88퍼센트가 중소 영세 업체에서 일한다는 식의 통계가 이런 견해를 뒷받침해 왔다.

상향 평준화인가 하향 평준화인가?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이 최근 발표한 ‘한국의 노동시장 진단과 과제’에 따르면, 정부와 민간 대기업이 노동자 7백만 명을 고용하고 있다. 이는 통계청 ‘임금근로일자리 행정통계’를 근거로 작성한 것이다.

사업체 기준이 아니라 기업체 기준으로 작성한 이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12년 정부부문 노동자는 2백10만 명이고, 민간부문 3백 인 이상 대기업 노동자는 4백86만 명으로, 합치면 전체 노동력의 44퍼센트 정도가 된다. 민간 대기업의 비정규직 비율이 37.3퍼센트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공공부문과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계급 내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

이런 사실은 공공부문과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결코 소수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 준다. 잘 조직된 대기업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개선되면 노조가 없는 대기업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고 이는 중소기업 노동자들을 포함해 전반적으로 노동조건이 상승하는 효과가 생긴다.

고용노동부가 작성한 2003~2014년 대기업·중소기업 임금 격차 추이를 보면, 대기업 임금이 상승하면 중소기업(5인 이상 3백 인 미만 사업장) 임금도 동반 상승했다. 이 기간에 대기업 노동자들의 임금은 60퍼센트 인상됐고,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임금은 64퍼센트 인상됐다. 2011년에는 대기업 임금이 삭감됐는데, 이 때 중소기업 임금도 삭감됐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임금의 격차가 해마다 늘고 있다는 통계가 언급되지만, 비율로 보면 중소기업 임금은 대기업 임금의 62~64퍼센트 수준으로 고정돼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임금 격차 추이도 마찬가지이다. 지난 10년간 비정규직 임금은 정규직 임금의 50퍼센트 안팎으로 고정돼 있어서 정규직 임금 인상이 비정규직 임금을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어 왔다.

물론 격차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들 내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대안은 필요하다. 이를 위해 공무원연금을 지키는 것과 함께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는 것도 필요하다.

최저임금이 1만 원으로 인상되면 빈곤선에 허덕이는 저임금 노동자들이 곧장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또, 최저임금 대폭 인상은 형편없이 낮은 기본급을 인상시키려는 투쟁에도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기본급이 인상되면 특근, 잔업 수당도 높아질 뿐 아니라 장시간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데도 도움이 된다.

한편,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임금 삭감을 받아들이면 격차가 줄기는커녕 오히려 중소기업 노동자들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임금을 삭감해야 한다는 압력으로 작용해 전체 노동계급의 생활 수준이 낮아지는 효과를 낼 것이다.

상대적 고임금이 문제인가?

정규직 양보론자들은 마치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고임금을 받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받는 상대적 고임금이 아니라 많은 노동자들이 저임금을 받고 있는 것이 문제다. 한국은 전체 노동자의 4분의 1이 저임금 노동자(임금을 나열했을 때 중간값의 3분의 2 이하를 받는 노동자)일 정도로 저임금 노동자들의 비중이 높아 계급 내 소득불평등이 커졌다.

민주노총이 자체적인 조합원 조사에 기초해 작성한 가구규모별 2015년 표준생계비에 따르면, 초등학생 자녀 1명과 유치원생 자녀 1명을 둔 4인 가구의 표준생계비는 5백98만 7천5백71원이다. 연봉 7천2백만 원은 돼야 적절한 생활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고등학생과 중학생 자녀를 둔 4인 가족의 경우에는 연봉 8천만 원은 넘어야 한다. 연봉 7~8천만 원 받는 게 특권적인 고임금이라고 비난받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살인적인 집값과 높은 사교육비, 막막한 노후 대비 등을 감안하면 표준생계비보다 더 많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

사실, 대부분의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은 표준생계비 이하의 임금을 받는다.

3백 인 이상을 고용한 대기업의 월 평균 임금은 4백77만 원이다. 〈한겨레〉를 보면, 2014년도 10대 재벌그룹 76개 사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평균 연봉은 6천7백만 원이다. 민주노총 조합원 생활실태조사 분석에 따르면, 조합원들의 월 평균 임금 총액은 4백만 원이 안 된다.

기본급 비중이 낮아 잔업과 특근을 밥 먹듯 해서 표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돈을 받는 노동자들에게 ‘귀족’이니 ‘특권’이니 하는 딱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진짜 특권층은 재벌그룹 노동자들보다 35배나 더 많은 평균 23억 5천만 원을 받는 재벌그룹 최고위 경영진들이다. 이들은 최저임금보다 무려 1백80배 많은 돈을 받고 있다.

2014년에 이건희는 배당금으로 1천7백58억 원을, 정몽구는 연봉과 배당금으로 각각 2백15억 원과 7백42억 원을 챙겼다. 이 어마어마한 돈은 대기업 노동자들을 착취해서 얻은 것이다

지배자들의 ‘고임금’ 타령에도 불구하고, 최근 제조업에서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은 8.6퍼센트까지 하락했는데, 이는 1970년대 초반 이래 40여 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정규직 노동자이 양보하는 게 아니라 자본가들의 양보를 강제하도록 전체 노동계급이 단결하는 게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