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상향 논의를 차단하려고 ‘세금(보험료) 폭탄론’을 꺼내 들었다. 집권 이후 근로소득세, 담뱃세 등 노동자들의 세금은 잘도 올리더니 이제 와서 고양이가 쥐 생각해 주는 격이다.

새정치연합은 “보험료 두 배 인상”은 협박일 뿐이라면서도 더 받으려면 보험료 인상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진보진영 내 개혁주의자들도 대부분 이런 관점에 동의한다.

그러나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50퍼센트로 상향하려면 보험료를 얼마나 올려야 하느냐는 논의는 정작 가장 중요한 논점들을 회피하는 것이다.

첫째, 누가 보험료를 더 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연금은 기업주들이 노동자들에게 지급하는 임금 일부를 적립해 퇴직 후에 지급하는 ‘이연임금’이다. 사측이 국민연금을 비롯해 4대보험에 가입했는지, 즉 사측이 보험료를 일부 부담하는지 여부는 노동자들이 취업할 때 따져 보는 중요한 노동조건 중 하나다. 최근에는 퇴직연금 가입 여부도 그 조건 중 하나가 됐다.

그런데 현재 국민연금 체계에서는 노동자들이 보험료 절반 이상을 부담하고 있다. 그나마 지역가입자들은 아무 지원도 받지 못한다. 반면, OECD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기업주들이 절반 이상을 내는데 이조차 1980년대 이후 연금 제도가 개악된 결과다. 1990년대 연금이 개악되기 전 스웨덴에서는 기업주들이 보험료를 전액 부담했다.

노동자들의 연금을 책임져야 할 기업주들이 보험료를 부담하도록 하면 노동자들이 보험료를 얼마나 올릴지는 논의할 필요가 없다. 즉, 소득대체율과 노동자 보험료 사이에 필연적인 비례 관계는 없다. 이 점에서 일부 진보적 학자들이 현행 보험료 체계를 기정사실화하고서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치게 수세적이다.

기업주의 책임을 면해 주는 ‘미래 세대 부담론’ 공적연금이 약화되면 개개인이 자신의 부모를 부양해야 한다. ⓒ이미진

미래 세대 부담론

둘째, 박근혜 정부가 보험료를 두 배로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한 근거는 2013년에 계산한 재정 추계를 토대로 한 것인데 그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것이다. 이 계산법은 2083년에 향후 17년치(2100년까지) 연금 지급액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추정’한 것이다.

그러나 70~80년 뒤에 기금이 얼마가 될지 계산하는 것은 황당한 일이다. 차라리 앞으로 6개월 뒤 비가 올지를 예측하는 게 확률이 높을 것이다. 출산율, 사망률, 인구이동 같은 인구학적 변수뿐 아니라 경제성장률, 주가, 금리, 실업률 등 매우 많은 요소들이 영향을 미친다. 지금으로부터 70년 전인 1945년에 지금의 출산율이나 경제 규모 등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이처럼 황당한 계산을 하는 까닭은 현행 국민연금 제도가 적립식, 즉 내가 받을 연금을 내가 보험료로 저축하는 적립 방식이기 때문이다. 제도를 이렇게 만든 까닭은 연금이 애초 취지(‘이연임금’)와 달리 노동자 책임인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것이다. 세계은행은 이런 취지로 1990년대 중반 세계 각국에 기존의 부과식 연금을 적립식으로 바꿀 것을 권했다. 부과식은 건강보험처럼 필요한 비용을 그해에 거두는 방식이다.

정부와 보수 언론들은 이런 방식을 강요하려고 ‘미래 세대 부담론’을 만들어 냈다. 다시 말해 지금 노동자들이 충분한 기금을 쌓아 두지 않으면 그 부담을 미래 세대들이 지게 된다는 것이다. 자식들에게 부담을 지우는 것을 좋다고 할 부모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러나 이는 선택사항이 아니다.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노동하는 세대가 은퇴 세대를 부양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아이들을 부양하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일인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아무도 미래 세대가 현 세대를 착취한다고 하지는 않는다. 자본가들 입장에서야 미래의 노동자를 키우는 것과 달리 이미 노동력을 소진한 노동자들은 내다 버리고 싶겠지만 말이다.

문제는 부양 비용을 사회적으로 부담할 것인가, 아니면 개인에게 떠넘길 것인가 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충분한 노후 대책이 없으면 결국 그 자식들이 개인적으로 부모를 부양해야 한다. 이는 빈부 양극화를 더욱 고착화시킬 것이다.

따라서 무상보육, 무상급식, 무상교육처럼 연금도 무상으로 보편적으로 지급해야 한다. 그 비용은 기업주들이 부담해야 한다.

한국의 경제 규모가 이를 시행하기에 부족한 것도 아니다. 산업연구원은 한국의 고령화 속도가 무척 빠르다며 노인 인구 비율이 1970년의 4배로 늘었다고 밝혔다. 그런데 같은 기간 GDP 규모는 5백14.7배 늘었다! 정부의 계산대로라면 기금이 고갈되는 2060년에 현재 수준의 연금을 받으려면 보험료 수입 외에 GDP의 4.1퍼센트가 추가로 필요하다. 그러나 이는 고용주가 부담하는 보험료를 OECD 평균(GDP의 3퍼센트) 수준으로 인상하고 정부가 추가로 재정을 투자하면 불가능한 수치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