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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여야 합의안을 사실상 지지하는:
연금행동 리더들의 우측통행 유감

지난 5월 6일 공무원연금 대폭 개악과 구두선에 그칠 공산이 큰 국민연금 ‘개선’을 맞바꾸려던 여야 합의는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되지 못했다. 재벌들이 국민연금 상향 조정에 따른 부담을 강경하게 거부하고, 박근혜도 공무원연금 개악만 원했지 국민연금 개선에는 전혀 관심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뒤 공무원연금 개악은 당연시되는 분위기다. 정부·여당은 물론이고 새정치연합과 심지어 진보 진영에서조차 대체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만 쟁점이 되고 있다. 공무원연금 개혁은 그만하면 ‘선방’했다는 투다. 그러나 인사혁신처조차 ‘사실상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수준으로 낮춘 것’이라고 평가할 정도로 5월 2일 여야 합의안(이하 5·2 합의안)은 사상 최악의 개악이다. 처음엔 개악 수준이 미흡하다며 불만을 터뜨리던 보수 언론들도 말을 아끼고 있다.

사실, 이번 연금 전투의 핵심 전장은 공무원연금 개악이지 국민연금 개선이 아니다. 당연히 정부·여당은 공무원연금 개악에 승부수를 던졌다. 따라서 지금은 공무원연금 개악을 막아야 국민연금 상향 조정을 위한 추진력을 마련할 수 있다. 계급투쟁의 동역학을 이해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와 ‘국민연금 상향’을 떼어 놓고 사고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공적연금 강화 국민행동’(이하 연금행동)은 공무원연금 개악에 대해서는 침묵한 채 국민연금 개선만 요구하고 있다. 연금행동은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와 공적 연금 강화’를 주요 과제로 내걸고 출범한 연대체다. 그런 연대체가 지금 사실상 5·2 합의안 이행을 촉구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정용건 연금행동 집행위원장은 “공무원들이 자기들의 연금을 희생해 만든 공적 연금 강화 논의가 성과 없이 끝날 상황에 처해 있다” 하고 걱정했다.

연금행동의 주요 소속 단체인 참여연대, 복지국가소사이어티, 한국여성단체연합 등은 5·2 합의안을 “중대한 사회적 합의”였다고 추켜세웠다. 연금행동의 정책위원장이었던 김연명 교수는 이번 5·2 합의안을 이끌어내는 데 주도적인 구실을 했다. 연금행동이 실무기구 참가를 결정한 바 없고 공무원연금을 양보해 공적 연금을 강화하자는 입장을 채택한 바 없으므로, 김연명 교수가 연금행동을 대표해 실무기구에 참가한 건 아니다. 그런데 최근에 그는 연금행동이 5·2 합의안의 조속한 이행 촉구에 제대로 나서지 않는다며 정책위원장 직책을 사임해 버렸다.

연금행동의 이런 태도는 직권조인 때문에 공무원노조 내에서 커다란 사퇴 압력을 받고 있는 이충재 위원장을 사실상 두둔하는 것이다. 반면, 5월 28일 개악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를 저지하려는 교사·공무원 노동자들의 노력에 훼방을 놓는 것이다.

민주노총의 모순과 동요

민주노총의 혼란스러운 태도가 상황 악화에 일조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5·2 합의안이 발표되자 5월 4일에 “공무원연금 개악 끝까지 저지할 것”이라는 성명서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퍼센트 상향 즉각 이행하라”는 성명서를 나란히 냈다. 개악안 저지와 개악안 통과를 동시에 주문한 것이다.

전교조와 공무원노조 활동가들이 거세게 항의하자 민주노총은 “국민연금 상향 이행” 주문 성명서를 웹사이트에서 삭제했다.

하지만 민주노총 지도부의 모순과 동요는 멈추지 않았다. 5월 18일 연금행동이 공무원연금 개악은 침묵한 채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퍼센트’만 요구하는 기자회견 개최를 지지함으로써 또다시 모순을 드러냈다.

전교조와 노동자연대 등은 5·2 합의안 폐기와 공무원연금 개악 반대를 기자회견 기조에 넣을 것을 제안했지만, 연금행동은 이를 거부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민주노총 실무담당자는 연금행동의 결정을 지지했고, 민주노총은 이 기자회견에 참가했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퍼센트 합의를 이행하라고 촉구하는 것은 당연히 공무원연금 개악 합의를 전제로 하는 것이므로, 공무원연금 개악 반대와 소득대체율 50퍼센트 합의 이행 요구는 양립 불가능하다.

민주노총 지도부의 동요와 모순은 공무원연금 개악을 원천적으로 저지할 수 없고, 따라서 삭감은 불가피하다고 인정하는 데서 비롯하는 것 같다. 공무원연금 삭감을 막을 수 없다면 공적 연금 강화라는 ‘어음’이라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국민연금 개선과 공무원연금 개악을 맞바꾸는 것은 노동계급 내 단결을 가로막고 분열을 조장할 뿐이다.

국민연금은 당연히 강화돼야 한다. 하지만 공무원 노동자들의 희생을 요구하는 방식이 아니라, 국민연금의 소득 보장 기능과 재분배 기능을 훨씬 강화하는 방식으로 돼야 한다. 공무원·교사 노동자들이 공무원연금 개악을 저지해야 국민연금의 진보적 강화를 위한 동력이 생겨날 수 있다.

민주노총 신임 지도부는 후보 시절 사회연대전략이 정규직 양보론으로 귀결될 것을 우려하며,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를 통한 공적연금 강화 입장을 분명히 밝혔었다. 노동운동 안팎의 개혁주의자들이 5·2 합의안을 사실상 지지하는 지금, 이런 원칙 있는 입장을 다시금 확고히 다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