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중반 이후 진보진영 내에서 고소득·정규직 노동자들이 임금이나 세금, 복지를 일부 양보해 청년 일자리 늘리기, 비정규직 처우 개선, 복지 확대 등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는 제안이 있어 왔다. 형편이 더 나은 일부 노동자들이 양보하더라도 형편이 더 나쁜 훨씬 더 많은 노동자들이 이익을 얻는다면 결국 전체 노동자들에게 이익이라는 것이다. 이 제안의 실행 메커니즘은 정규직 노동자들의 양보 대상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아니라 정부와 기업주들이라는 점이다.

이런 주장이 ‘사회연대전략’이라는 이름으로 정식화된 것은 2006년이다. 당시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정규직 노동자들이 국민연금 보험료를 더 내어 비정규직의 국민연금 보험료를 지원하자는 ‘사회연대전략’을 제시했다. 2007년에는 국민연금을 삭감하고 기초연금을 도입하는 안을 내놓기도 했다.

사회연대전략의 가장 최신판은 ‘공무원연금 개악을 일부 받아들이되,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50퍼센트로 올리자’는 주장이다. ‘공무원연금 개혁 국회 특위’가 이런 합의안을 채택하자 그동안 사회연대전략을 지지해 온 노동조합·NGO 지도자들이 이 합의안을 통과시키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공적연금 강화 국민행동’ 정용건 집행위원장은 지난해 12월 민주노총 위원장 후보로 출마해 ‘사회연대전략’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당시에 그는 이를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을 상향 평준화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의 최근 행동을 보면 기존 사회연대전략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당시 정용건 후보의 선대본부장이기도 했던 임성규 전 민주노총 위원장도 임기 중에 사회연대전략을 제시한 바 있다. 그가 제시한 방안은 조직된 정규직 “노동자들이 직접임금 요구를 줄이거나 적게 요구”하고 그 대신 사회적 간접임금(복지)을 올리자는 것이었다.

이 밖에도 ‘임금피크제를 받아들이는 대신 청년 일자리를 늘리자’, ‘보험료를 더 내어 건강보험 보장성을 높이자’, ‘성과급을 일부 양보해 비정규직 처우 개선에 사용하자’ 등 사회연대전략의 전술적 응용들은 다양하다.

물론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지에 공감하며 연대해야 한다는 정신 자체는 좋은 것이다.

그러나 고소득·정규직 노동자들이 양보하면 더 많은 노동자들에게 그 혜택이 돌아갈 수 있다는 사회연대전략은 비현실적이다. 우선, 국가기구들이 나서서 이를 시행해야 하는데 박근혜 정부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박근혜는 공무원연금 삭감분 중 20퍼센트를 국민연금 상향 개선에 사용하자는 5·2 여야 합의에 강경하게 반대했다.

오히려 박근혜와 역대 정권은 ‘재정 절감’을 내세우며 복지를 축소하거나 그 부담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겨 왔다. 그렇게 줄인 만큼 기업주 등 부자들의 세금 부담을 감해 줬다. 이른바 부자 감세다. 비정규직을 확대하고 임금 등 노동조건을 악화시켜 기업주들의 이윤을 보장해 줬다. 신규투자를 유도한다는 것이 명분이었지만, 기업주들은 경제 위기 때문에 신규투자를 꺼리면서도 이를 핑계로 더한층의 규제 완화를 요구했다.

그러니 정부가 추진하는 개악을 저지하고 정책 방향을 돌려놓지 않는 한 그 정부가 더 많은 노동자들에게 이익이 되는 정책을 추진하리라 기대할 수 없다. 훨씬 많은 재정 지출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의 공격을 저지하고 마지못해서라도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정책을 시행하도록 하려면 기업주·부자들이 정부에 가하는 압력보다 훨씬 강력한 힘이 노동계급에 필요하다. 정부가 단지 자본가들의 압력에 반응해 정책을 추진할 뿐 아니라 스스로 목적의식적으로 친기업 정책을 추진하기 때문이다. (국가의 자본주의적 성격이 본질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는 아래의 ’국가와 복지’ 절에서 다룰 것이다.)

계급투쟁

사회연대전략 제안자들은 ‘정규직 노동자들의 선(先) 양보’와 ‘국민적 이익’이라는 (포퓰리즘적) 명분을 통해 정부에 압박을 가하려 하지만, 이는 거의 아무런 효과도 내지 못한다. 국민 혈세 부담을 내세워 공무원연금 개악의 이데올로기적 명분을 선취한 데서도 보듯이 오히려 지배자들이 ‘국민적 이익’을 앞세워 노동자들에게 양보를 강요한다.

진정한 힘은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저항에서 나온다. 공무원 노동자들의 반발에 꿈쩍도 하지 않던 새누리당은 지난해 11월 1일 공무원 노동자 12만 명이 집회에 나온 것을 보고 나서야 ‘사회적 합의기구’를 구성하기로 했다. 물론 노조 지도자들에게 양보를 받아들이도록 해 투쟁의 김을 빼는 것이 진정한 속셈이었지만 말이다.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사회 개혁이 이뤄진 시기는 거의 예외 없이 계급투쟁 수준이 높은 시기였다. 지배자들은 양보하지 않았다가는 체제를 위협할 더한층의 저항에 부딪힐까 봐 개혁을 제공해야 했다.

예컨대 1987년 노동자 대투쟁과 이후 급성장한 투쟁적 노동운동 덕분에 전체 노동자들의 임금이 빠르게 인상되고 노동조건이 개선됐다. 오늘날 민주노총의 토대가 될 민주노조들이 설립됐다. 1973년부터 약속만 하고 이행하지 않던 국민연금 제도가 이때 실시됐다. 일부 노동자들에게만 적용되던 건강보험제도가 모든 노동자들에게 확대 시행된 것도 1987년이었다.

유럽에서도 사회복지 제도들이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발전한 것은 제2차세계대전 직후였다. 전후 사회 개혁을 요구하는 거대한 노동자 투쟁이 분출했다. “1944년의 [영국의] 노동쟁의는 1천2백53건이었고, 이것은 20세기가 시작된 이래 노동쟁의가 가장 많았던 그 전 해보다 50퍼센트 증가한 수치였다.”(토니 클리프 외, 《마르크스주의에서 본 영국 노동당의 역사》) 그래서 영국 지배자들은 “우리가 개혁을 양보하지 않으면 혁명을 보게 될 것”(퀸틴 호그 당시 보수당 의원)이라는 두려움에 떨었다. 스웨덴·독일·프랑스 등 유럽 전역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벌어졌다.(필립 암스트롱 외, 《1945년 이후의 자본주의》)

따라서 오늘날에도 노동자들의 보편적 이익에 기여할 사회 개혁을 쟁취하려면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투쟁을 강화해야 한다.

특히, 지금 같은 경제 위기 시기에는 지배자들의 고통 전가에 맞선 투쟁이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노동자들 전체로 보면 그렇지 않지만, 조직된 노동자들의 경우 자신들에 대한 공격에 맞설 조직은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저항에서 성공을 거둔다면 다른 노동자들도 싸워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공무원연금 개악에 맞선 노동자들의 투쟁이 승리해야 그 동력으로 국민연금도 개선할 수 있는 것이다.

사회연대전략과 노동자 연대

물론 계급투쟁 수준이 충분히 높지 않을 때도 정부가 이러저러한 이유로 복지 확대나 노동조건 개선을 ‘약속’을 하거나 심지어 일시적 양보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계급투쟁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제도 개혁만으로는 개혁의 지속을 강제할 수 없다.

박정희는 1973년 중화학공업 육성을 위한 투자 자금을 마련하려고 국민연금 제도를 입안했다. 연금을 실제로 지급하기 전까지는 막대한 기금을 모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유가 폭등으로 경제가 위기를 맞자 시행 며칠 전에 갑자기 폐기해 버렸다.

또, 정부와 행정기관들은 국회 합의나 제도들, 법률들을 무시하기 일쑤다. 2007년 노무현 정부가 국민연금 삭감을 추진할 때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국민연금 삭감을 받아들이는 대신 기초연금(소득대체율 10퍼센트) 도입을 요구했다. 그렇게 하면 두 연금을 합쳐 실제 소득대체율은 높아진다는 것이었다. 기초연금 도입 약속만 믿고 국민연금 삭감을 수용해서는 안 된다는 비판이 당 안팎에서 실제로 있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과 손잡고(!) 국회에서 이 안을 통과시켰다. 그 결과 2008년부터 국민연금은 크게 삭감됐지만 기초연금 약속은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행되지 않고 있다. 새누리당은 집권 뒤 이를 철저히 무시해 오다가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그나마 이를 완전히 누더기로 만들어 버렸다.

의료 민영화는 또 다른 사례다. 박근혜 정부는 법률로 금지하고 있는 영리병원 등 의료 민영화 정책을 시행규칙 개정, 가이드라인 제정 등으로 추진하고 있다. 기업주들은 불법파견을 금지한 법과 법원 판결을 무시하고 정부는 그 사이에 오히려 법을 개악하려 한다.

한편, 사회연대전략이 어떻게 노동자 투쟁을 마비시키는지는 이번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 투쟁이 적나라하게 보여 줬다. 5월 6일 국회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공무원노조 이충재 위원장 등 일부 노동조합 지도자들과 NGO 지도자들이 합의안을 통과시키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동안, 공무원·교사 노동자들은 같은 시간에 합의안 반대를 외치며 국회 정문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었다. 공무원노조 조합원 대부분은 지도부가 투쟁을 조직하지도 않고 양보안에 서명한 것을 보며 사기가 떨어졌다.

국회 본회의 통과가 무산되자 일부 개혁주의 지도자들은 이런 ‘전술’이 정부·여당을 분열시켜 우리에게 유리한 상황이 된 것처럼 포장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여권은 열흘 만에 의견 조율을 마치고 다시 공세를 펴고 있지만, 우리 측은 주요 노조 지도자들이 노동자들에게 개악을 받아들이라고 압력을 가하면서 심각한 내홍을 겪고 있다.

요컨대 고소득 정규직 노동자들이 양보하면 더 많은 노동자들에게 이익이 돌아갈 것이라는 기대는 완전히 비현실적이다. 무엇보다 노동조합 지도자들이나 개혁주의 지도자들의 양보적 합의는 노동자들의 투쟁 의지를 꺾어 개혁의 진정한 동력을 약화시킨다.

국가와 복지

자본주의 체제에서 국가가 노동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고용 복지 정책을 실행하는 것은 국가가 중립적이어서가 아니다.

계급투쟁의 압력에 떠밀려 복지와 고용 제도를 일부 개선할 때도 국가는 이를 자본가들에게 최대한 유리하도록 방향을 조정한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국가의 최우선 목표가 언제나 기업들의 이윤 극대화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복지제도나 고용 관련 규제 자체는 자본가들에게도 꼭 필요한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자본가들은 이윤을 위해 노동자들을 착취하지만, 자칫 과도한 이윤 경쟁이 착취의 원천(노동력)을 파괴하지 않도록 조절해야 한다. 또 노동생산성과 능률을 높이려면 단지 쥐어짜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따라서 국가는 고용과 복지 제도를 자본가들의 필요에 맞게 활용하려 하는 것이지 모조리 없애려 하는 것은 아니다. 개혁주의적 노동자 정당이 집권한 곳에서도 이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복지국가로 잘 알려진 스웨덴에서조차 노동자들이 받은 복지 혜택이 사실은 노동자들이 낸 세금으로 운영됐다. 노동자들의 투쟁에 힘입어 집권한 스웨덴 사민당은 제2차세계대전 이후 복지제도를 대폭 도입했지만 그 비용은 근로소득세와 간접세를 인상해 마련했다. 반면 투자 활성화를 위해 법인세 등 기업의 부담은 최소화했다.

스웨덴 ‘연대임금정책’은 노동자들의 임금을 어느 정도 평준화하는 효과를 냈지만 동시에 그 목적은 전체 임금 인상을 억제하는 것이었다. 노동조합(LO) 지도자들은 임금 협상에서 사용자 측의 지급 능력을 한참 밑도는 수준에서 서명하기 일쑤였다. 결국 1960년대 말 노동자들은 비공인 파업으로 이에 항의하며 기존의 임단협 체계(살쮀바덴 협약)를 무너뜨렸다.

1987년 투쟁의 여파 속에서 자리를 잡은 한국의 국민연금도 노동자들에게는 포기할 수 없는 노후 생계수단이지만 자본가들에게 더 유리하도록 설계됐다. 노동자들이 보험료의 절반이나 부담해야 하고 정부 지원은 거의 없다. 그래서 지역 가입자들에게는 더욱 불리하다.

게다가 노인들이 빈곤에 지쳐 자살하고 있는데도, 쌓아 둔 기금으로 정부는 기업들에 자금을 공급하고 있다. 엄청난 기금을 주식 투자에 쏟아부은 결과 한국의 어지간한 대기업은 국민연금이 최대 주주거나 대주주다. 기금 관리는 밀실에서 이뤄진다.

건강보험 도입은 노동자들에게 좋은 일이지만 병원과 제약회사에 안정적인 이윤을 보장해 주는 구실도 한다. 국내 대형 병원들이 우후죽순 생기기 시작한 것은 건강보험이 안정적인 재원을 공급해 주기 시작하면서다.

따라서 보편적 복지냐 무상복지냐 하는 형식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 더 중요한 것은 누구에게 부담을 지워 누구에게 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 문제에서 국가는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노동자들이 더 내도(양보해도) 제도 효과 덕택에 결국 노동자들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는 사회연대전략이 위험한 이유다.

사회연대전략에 깔려 있는 잘못된 가정들

일부 좌파는 사회연대전략을 절반쯤만 반대하는 듯하다. 개혁주의자들의 잘못된 주장을 일부 수용한 결과다. 이런 주장들은 대개 노동자들의 조건에 대한 잘못된 이론이나 인상론적 평가에 기반하고 있다. 이는 계급투쟁에 대한 비관으로 이어지기 쉽다.

첫째, 노동자들 내부의 격차가 너무 커져 이제 더는 같은 이해관계를 갖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더구나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투쟁은 전체 노동자들의 조건 개선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격차를 키우는 구실만 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전체 노동자의 임금 몫이 정해져 있다는 ‘임금기금설’(친자본주의 고전경제학파 리카도와 밀이 주창함)을 연상시킨다. 그 실천적 함의인즉슨, 투쟁으로 조건을 개선하려는 시도는 결국 힘 있는 정규직 조직 노동자들이 더 많은 몫을 가져가게 되는 결과만을 낳아 노동계급 내부 격차가 더 벌어질 뿐이라는 것이다.

정용건 ‘공적연금 강화 국민행동’ 집행위원장은 “대기업 정규직의 임금은 계속 올라가고 있지만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은 그렇지 않다. … 만약 정규직 임금만 따진다면 노동소득분배율이 과거보다 훨씬 상승했을 겁니다” 하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인상론적 평가일 뿐이다. 2013년에 〈경향신문〉이 국내 5백 대 기업을 전수조사한 결과 대기업일수록 노동소득분배율이 낮다는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또,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을 비롯한 많은 진보적 학자들이 지적하는 것은 비정규직의 몫을 가져간 것은 기업주들이지 정규직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비정규직 활용 비중이 높을수록 임금소득분배율이 낮다는 분석 결과는 … 노동소득 내부의 불평등을 완화하는 노력 이상으로 생산의 과실을 생산요소들 간에 공정하게 분배하는 정책적인 노력이 우선되어야 함[강조는 인용자]을 시사한다”(한국노동연구원 ‘노동소득분배율과 경제적 불평등’, 2014. 12.)

실제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 사이의 임금은 함께 오르내리는 경향이 있다. 그 간격은 때로는 더 좁아지거나 넓어지기도 하지만 결코 완전히 반대로 향하지는 않는다. 또, 완전히 같아지지도 않는다. 이는 자본주의 체제가 근본적으로 경쟁 체제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반면 노동소득분배율이 하락하면 자본가들은 그만큼 많은 이윤을 가져간다. 둘 사이의 관계는 정확히 반비례한다.

둘째, 일각에서는 노동자들의 조건이 비슷해져야 자신들이 같은 계급에 속한 사람들이라는 ‘계급의식’을 획득할 수 있고 그래야만 연대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사회연대전략을 제시하는 사람들은 사회학의 용어를 빌어 이를 ‘계급 형성 전략’이라고 부르는데, 이를 위해 일시적 후퇴를 감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삶의 동질성은 같은 계급이라고 느끼게 해 주는 한 요인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먼저 ‘계급의식’을 획득한 뒤에야 계급투쟁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큰 착각이다. 계급은 ‘느낌’의 문제가 아니라 객관적인 생산관계 속에서의 객관적인 위치에 따른 범주이다.

앞서 살펴봤듯이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싸우는 것은 다른 노동자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친다. 이처럼 ‘의식’ 이전에 생산관계에서 차지하는 그들의 물질적 조건이 노동자들을 하나의 계급으로 단결시키는 출발점이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자신의 조건을 지키거나 개선하기 위한 투쟁에서 사용자와 정부에 맞서게 되고 그럼으로써 계급의식을 획득하게 되는 경우가 보편적이다.

셋째, 그럼에도 최근 노동자 투쟁이 승리를 거두는 경우가 흔치 않다 보니 종종 엉뚱한 데서 패인을 찾곤 한다. 더도 말고 박근혜 정부 들어서 벌어진 노동자 투쟁만 보더라도, 핵심적인 걸림돌은 평조합원들의 ‘의식’에 있다기보다는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수세적이고 소극적인 대응에 있었다. 노동자들의 사기와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는 것은 아니어도 지도부가 전투적으로 투쟁을 이끌면 이에 호응한다. 9년 만에 연가 투쟁에 들어간 전교조가 보여 주는 바다.

좌파의 과제는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자신감을 고무하고 승리에 이를 수 있는 전술을 제시하며 기층의 투쟁을 조직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사회연대전략의 문제점을 잘 간파하고 불필요하게 타협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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