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인 2013년 7월 11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54세의 한국 노동자가 죽었다. 호흡곤란과 신부전증을 보여 메르스가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함께 일하던 동료들은 불안에 떨며 원청업체인 삼성엔지어니링과 한국 보건당국에 신속한 조처를 요구했다. 당시 플랜트건설노조가 밝힌 바에 따르면, 한국으로 귀국해 메르스 확진 검사를 받고자 하는 노동자들에게 동일산업은 “귀국해서 검사받았다가 만약 코로나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을 경우 근로계약서상의 임금은 못 준다”며 엄포를 놓았다고 한다. 결국 그 노동자는 메르스 음성판정을 받았지만 통역조차 제공되지 않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치료 한번 받지 못하고 사망했다. 문제가 커지자 원청인 삼성엔지니어링은 “이번 사태는 하도급사인 동일산업과 소속 노동자들 간의 문제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렇게, 메르스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삼성과 한국 정부에 이미 노크를 했었다. 그러나 이후 해외파견 노동자들에 대한 보호나 국내 메르스 유입을 막기 위한 검역이 강화되기는커녕 엉뚱한 중동 붐이 일기 시작했다. 국립 서울대병원은 2014년 2월 UAE에 왕립 쉐이크 칼리파 전문병원을 개원했으며, 2014년 6월에 한국과 사우디아라비아 보건복지부 장관은 '한국-사우디 보건의료협력 시행협약'을 체결했다. 이 협약의 첫 성과로 삼성서울병원은 2014년 9월 사우킹파드왕립병원에 '아바타시스템'(개인맞춤형치료를 위한 의료시스템) 수출계약을 체결했다.

정부는 2013년 의료관광객 중 무슬림들이 돈을 가장 많이 썼다며 중동 부자들을 국내로 끌어들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한국관광공사 주최로 2014년 10월 28일과 29일 양일간 UAE 아부다비 국립전시장에서 '한국 의료관광대전‘을 열었다. 이런 흐름에 맞춰 한국의 주요 대형병원들은 통역은 물론 살라트(메카를 향해 하루 다섯 번 예배를 드리는 무슬림 문화)를 위해 VIP병실에 메카 방향까지 표시했다.

중동의 의료관광객들을 끌어들이기 위함인지 방역마저 거꾸로 갔다. 지난해 5월 세계보건기구(WHO)가 메르스 감염의 급증을 경고하며 회원국들에게 검역 강화를 요구했는데, 한 달 뒤인 2014년 6월 11일 한국 질병관리본부는 메르스를 자진신고제로 바꿔 버렸다. 중동에서 입국하는 사람들에 대한 메르스 관련 홍보와 건강상태질문서 징구를 사실상 중단한 것이다.

실제로 2015년 1월부터 국내 메르스 발병자가 생기기 하루 전인 5월 19일까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항공편으로 입국한 9천39명 가운데 건강상태질문서 징구가 행해진 사례는 단 1건이었다(2013년에는 1만 4천3백19명 중 1만 1천7백40건이었다).

사실 한국에서 메르스 감염자가 2014년에 생겼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2015년 한국 그리고 2012년 영국

올해 3월에는 급기야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서울대병원장을 비롯 주요 병원 관계자들을 데리고 중동국가들을 돌며 한국의료 판촉에 나섰다. 이렇게 연초부터 대통령과 보건복지부장관 그리고 병원자본들은 중동에 몸과 마음을 던졌다. 그만큼 그들은 분명 메르스를 알고 있었고, 대비해야 했을 것이다. 중동을 방문하는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그러나 자신들은 메르스에 대비했는지 몰라도 국민들을 위한 조처는 없었다. 잘 알려졌듯이 중동에서 온 첫 번째 환자는 “검사를 안 해주면 정부기관에 있는 친인척에게 알리겠다”고 항의한 후에야 질병관리본부로부터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검사를 접수하면서도 질병관리본부는 의사에게 “만약 메르스가 아니면 해당 병원이 책임져라”며 엄포를 놓았다. 2013년 삼성엔지니어링의 하청인 동일산업이 불안에 떨며 귀국을 요청한 노동자들에게 한 겁박과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러나 검사결과는 2013년과 달랐다. 그리고 그 결과는 우리가 경험했듯이 참혹했다.

어떤 이들은 유행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종감염병이기에 정부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영국의 사례를 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 2012년 9월 카타르 도하에서 49세 영국 남성이 원인 모를 호흡기 감염증세를 보였다. 그는 에어앰뷸런스를 타고 영국으로 후송됐다. 무엇에 의한 감염인지도 몰랐지만 그는 처음부터 철저한 격리치료를 받았다. 심지어 당시는 메르스라는 이름은커녕 중동에서 공식 보고된 발병사례조차 없었다. 의사들은 바로 보건당국(Health Protection Agency)의 유입발열조사기관(Imported Fever Service)에 신고했고, 이 기관은 전문조사단을 급파했다. 마침 바로 그 시점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자키(Zaki) 교수가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의 압력을 무릅쓰고 자신이 발견한 신종코로나바이러스(메르스)에 대한 보고를 세계 최초로 proMED라는 사이트에 올렸다. 이를 본 조사단은 바로 유전자 분석에 들어갔고 자키 박사의 것과 99.5퍼센트 일치함을 확인했다. 영국보건당국은 환자가 확진되자 곧장 환자가 입원해 있던 런던 성토마스병원의 이름을 공개하고 국민들에게 상황을 구체적으로 보고했으며, 세계보건기구(WHO)에도 이 사실을 알려 전 세계에 공지하도록 했다. 이 모든 것이 환자가 영국에 도착한 지 거의 열흘 만에 이루어졌다. 물론 당시 2차 감염자는 단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다.

수퍼전파자? 수퍼전파구조가 문제

메르스는 기도 아랫부분(하기도)에 있는 바이러스가 기침을 통해 비말형태로 배출되어야 전파 가능한 감염병이다. 때문에 기침 증상이 심한 환자가 평택성모병원의 환기구조차 없는 병실이나 도떼기시장 같은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방치될 경우 대규모 확산이 일어난다. 즉, 기침 증상이 심한 환자가 밀폐된 공간에서 다수의 사람들을 접촉하지 않게 한다면 확산을 막을 수 있단 얘기다.

그러나 이 단순하고 명확한 대응을 가로막은 것은 누구인가? 바로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보다 이윤을 우선시하는 정부와 자본이다.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서 병실까지 환자를 이송한 1백37번째 메르스 확진 환자는 6월 2일부터 열과 근육통 증상을 느꼈음에도 9일 동안이나 계속 일을 했다. 그는 왜 가장 위험한 곳에서 증상까지 숨겨가며 일을 해야 했을까? 아니 왜 삼성서울병원과 정부는 그를 관리하지 않았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삼성서울병원 스스로 인정했듯이 간접고용(용역) 노동자였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 대다수 노동자들이 질병에 걸렸을 때 주어지는 조처는 상병수당이 아니라 퇴사 위협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직장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은 메르스보다 무서운 것이다. 메르스 감염 병원 중 하나인 대청병원에서 IT 업무를 보았던 143번 환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파견직이라는 이유로 적절한 보호 장구가 주어지지 않은 채 메르스 감염 위험이 높은 그곳에서 업무를 봐야 했다. 이처럼 메르스의 무차별적 공격에 자본은 차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항간에선 ‘저급한 시민의식’을 운운한다. 메르스 감염 위험이 있는 곳에서 보호장구를 착용해야 하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가능한 사람 많은 곳에 가지 말아야 하며, 가급적 밀접접촉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메르스 감염 위험 사실을 통보하지 않았고, 제대로 된 장비를 지급하지 않았으며, 아파도 말할 수 없게 만든 정부와 자본에 있다. 실제 메르스 감염 위험 사실을 통보받지 못하거나 관리받지 못한 많은 병원노동자들이 확진 판정을 받고 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한 병원내외의 전파가 다시 우려되는 상황이다. 한 예로 삼성서울병원의 관리에서 제외돼 메르스에 노출된 위의 137번 환자는 증세가 있는 9일 동안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했다. 그리고 아침저녁으로 밀폐된 지하철 안에서 그와 밀접접촉을 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은 대부분 비슷한 처지의 노동자들이었다.

진정으로 메르스가 더한층 확산되는 것을 막고 싶다면 의학적 방역조처만으로는 안된다. 알량한 이윤 추구를 위해 정부와 자본이 뚫어 놓은 안전망을 막기 위한 사회적 방역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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