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실업률이 10퍼센트대를 오르내리고 있다. IMF를 불러들인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통계청이 발표한 이 수치는 청년실업의 심각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이 수치는 지난 1주일 동안 1시간이라도 돈을 받고 일한 사람,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 취업이 너무 안 돼 구직을 단념한 사람은 아예 포함하지 않는다.

청춘을 압류하는 청년 실업 자본주의의 풍토병 같은 경제 위기는 청년들을 더 큰 고통으로 내몬다. ⓒ이미진

최근 서울노동권익센터는 공식 통계의 이런 문제점을 일부 보완해 청년층(15~29세)의 실질실업률을 계산했는데, 무려 30.9퍼센트나 됐다(《통계로 본 서울의 노동》).

그러나 이조차 청년실업의 실정을 충분히 반영한 것은 아니다. 서울노동권익센터는 “통계상 한계로 불완전취업자(주 18시간 미만 노동)를 제외”했다며 “이를 포함하면 청년층 실질실업자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청년실업 문제에 대해 박근혜 정부는 끊임없이 엉뚱한 원인과 대책을 내놓는다. 가장 흔한 것은 실업자 자신을 탓하는 것이다. 청년들이 ‘쓸데없이 눈만 높아’ 대기업 일자리만 원한다거나, 3D업종이라도 감지덕지하지 않는다고 타박한다.

최근에는 청년실업 문제를 다른 노동자들의 책임으로 돌리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중고령 정규직 노동자들이 좋은 일자리를 꿰차고 있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청년실업에 대해 이런 잘못된 설명을 유포하는 이유는 청년실업자와 정규직 노동자를 이간질하고 서로 반목케 함으로써 노동계급을 분열시키고 그 힘을 약화시켜, 결국 모든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악화시키기 위해서다.

자본의 유기적 구성과 “고용 없는 성장”

박근혜 정부의 설명과 달리, 높은 청년실업률은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서 비롯한 것이다.

경기 침체는 실업을 더욱 악화시킨다. 1990년대 5퍼센트대 안팎이던 청년실업률은 ‘IMF 위기’로 10퍼센트 이상으로 치솟았고, 2000년대 초중반에 7퍼센트대를 오르내리다가 2008년 세계경제 위기의 여파 속에서 최근에 10퍼센트대까지 오른 것이다.

경제 위기는 자본주의하에서 피할 수 없는 풍토병 같은 것이고, 실업과 빈곤을 대규모로 동반한다. 특히 청년들이 경기 침체로 더 큰 타격을 받는다.

기업들이 ‘해고 비용’이 적은 청년들을 맨 먼저 해고하고, 신규채용을 줄이기 때문이다. 30대 그룹은 올해 신규채용을 전년보다 6.3퍼센트 줄인다고 발표했다. 청년층 비정규직 비율이 높은 것도 청년들이 실업의 타격을 더 크게 받는 이유의 하나다. 기업들은 불황 때 정규직 전환이나 재계약을 기피한다.

그러나 청년실업은 경기 후퇴에 따른 일시적 현상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청년실업의 증가는 경제 성장에 따른 고용 효과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욱더 하락하는 근본적 문제와 맞닿아 있다. 현재 한국의 고용탄력성(경제 1퍼센트 성장에 따른 고용증가율)은 OECD 국가들에 비해 매우 낮다.

흔히 “고용 없는 성장”이라고 부르는 이 문제는 기업들이 생산적인 기술에 투자했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자본가들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생산적인 기술에 투자하는데, 이렇게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고도화되면 같은 양의 상품을 더 적은 노동자로도 생산할 수 있다.

그러면 자본가는 과잉 노동자를 해고할 것이다. 마르크스는 이를 “상대적 과잉인구”라고 불렀다. 마르크스는 자본가들이 새로운 노동절약적 기술을 도입해 잉여가치를 증대시키는 과정에서 “산업 예비군”, 즉 실업자가 필연적으로 생겨난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실업은 자본주의 체제에 붙박이로 내재된 특징이다. 자본주의는 노동을 공정히 분배하기보다 취업자를 혹사시키고 ‘과잉 노동자’를 내던진다. 그리고 실업을 이용해 취업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을 억제한다.

“고용 없는 성장”은 한국 경제가 수출·대기업·제조업 중심의 성장을 해온 탓에 더욱 두드러진 특징이다. 수출 산업이나 제조업은 내수 산업이나 서비스 산업보다 일자리 창출 효과가 훨씬 낮다. 2001년부터 2011년 사이 한국의 실질 국민총소득(GNI)은 49.7퍼센트나 증가했지만, 고용률은 거의 변함이 없었다. 같은 시기 청년고용률은 44퍼센트에서 41퍼센트로 오히려 하락했다.

강요된 게으름과 강요된 혹사

이처럼 청년실업이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이자 한국 자본주의가 성장해 온 방식의 문제인데도, 박근혜 정부는 그 책임을 노동계급의 일부에 돌리려 한다. 지난 6월 17일 정부가 발표한 〈제1차 노동시장 개혁 추진 방안〉은 임금피크제 등 임금체계 개편을 통해 청년 ‘고용절벽’을 해소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고령 노동자들의 임금을 삭감해 청년 고용의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질 좋은 일자리를 늘려라 청년들을 포함한 모든 노동자들의 요구. ⓒ장그래살리기운동본부

그러나 청년 고용과 장년 고용(정년연장)을 대립시키는 것은 근거가 없다. 여러 연구들을 보면, 중고령자 고용과 청년층 고용은 함께 증가하는 보완적 관계가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금재호 2011, 《일자리 문제의 원인과 대책》, 한국노동연구원). 일본 등 해외의 연구들도 대동소이했다.

정부는 “[임금피크제] 도입 사업장이 미도입 사업장보다 30세 미만 청년층을 16% 추가 고용”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신규 채용 증가가 임금피크제 효과인지 그와 무관한 다른 요인에 의한 것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

청년 신규고용은 어음이고 고령 노동자의 임금삭감은 현금인 셈이다. 기업주들은 청년실업을 이용해(명분으로) 오랜 숙원이던 임금피크제와 성과연봉제를 도입하고, 청년 고용은 하지 않은 채 얼마든지 ‘먹튀’ 할 수 있다.

인력 부족이 심각한 상황에서조차 신규 채용을 하지 않고 기존 노동자들을 혹사시켜 온 기업주들이 갑자기 생각을 고쳐먹을 것 같지는 않다. 가령 최근 현대차와 기아차는 밤샘노동 철폐를 위한 주간2교대(8+8) 협상에서 생산량을 유지해야 한다며 노동강도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런 일은 사기업에서만 벌어지는 게 결코 아니다. 정부는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들이 과로로 목숨을 잃는데도 인력을 충원하지 않고, 철도공사 같은 공기업도 인력이 부족해 철도 안전이 위험에 처하는 상황에서도 신규 충원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부는 이런 공공서비스를 민영화하고 외주화하는 데 혈안이 돼 있다.

노동시간 관련 근로기준법 개정 추진도 박근혜 정부가 청년 고용에 진지한 의지가 없음을 방증한다.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하고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을 확대해, 기업주들이 신규 채용 없이 기존 노동자들을 장시간 노동으로 혹사시키는 것을 보장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단결

정부와 기업주들은 노동자들이 체제를 비난하기보다 서로를 비난하기(희생자에게 책임 돌리기의 결과)를 바란다. ‘귀족 노동자들 때문에 청년 일자리가 사라진다’, ‘실업자들 때문에 재정 위기가 악화된다’며 말이다.

마르크스는 “혹사당하는 노동자들이 노동계급 일부의 강요된 게으름을 비난한다면 그것은 자본가들을 부유하게 할 뿐이다” 하고 지적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즉, 실업 또는 불안정고용을 겪고 있는 노동자들이 노동계급 일부의 강요된 혹사를 비난한다면 그것은 자본가들에게만 이로울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정부와 기업주, 주류 언론, 정치인들의 이간질에 맞서 청년 실업자와 정규직 조직 노동자들을 서로 단결시키고 공동의 적들에게 맞서도록 애써야 한다.

그런데 실업 청년이나 불안정고용 청년층을 하나의 새로운 계급인 ‘프레카리아트’라고 보는 견해는 단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 견해는 비정규 청년들이 ‘전통적’ 노동계급과 역사적·정치적으로 구분되고 심지어 둘이 상반된 이해관계를 가졌다고 본다.

그러나 청년들이 겪는 고통은 전체 노동계급에게 가해지는 공격의 일부이지, 그것과 동떨어진 게 아니다.

가령 중고령 노동자들은 일자리 부족은 덜하지만 고용불안과 저임금으로 고통받는다. 남성 노동자들은 45~47세를 정점으로 임금이 하락해, 50대 빈곤율은 14.4퍼센트, 60대 빈곤율은 31.4퍼센트에 이른다(가구주의 연령에 따른 빈곤율).

청년들이 원하는 좋은 일자리와 복지는 노동시장 구조 개악과 연금 개악 등에 반대하는 더 광범한 노동자들이 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청년들의 운동은 더 큰 노동계급 운동과 분리돼서는 안 된다.

정규직·조직 노동자들의 (자발적) 임금 억제가 더 취약한 노동자들을 돕는 길이라는 견해도 단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비록 좋은 취지일지라도 말이다.

무엇보다, 조직 노동자들의 임금 억제는 취약한 노동자들의 조건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기존 노동자의 임금을 동결하고 초임을 삭감했지만 신규 채용은 크게 늘지 않았다.”(유정엽 한국노총 정책본부실장)

정규직이 노동조건 방어 투쟁에 나서는 건 뭇매 맞을 짓이라며 양보를 제안하는 것은 노동계급을 반목시켜 위기의 책임을 떠넘기려는 지배계급의 전략에 말려드는 것일 뿐이다. 투쟁 정신을 녹슬게 하는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조직 노동자들과 청년들이 좋은 공공부문 일자리와 복지, 그리고 노동시장 구조 개악 철회를 요구하며 함께 단결해서 투쟁하는 것이 진정한 대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