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5월 21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보고서 ‘왜 불평등 완화가 모두에게 이로운가?’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를 보면, OECD 회원국의 불평등은 통계를 내기 시작한 이후 가장 커졌다.

2012년 OECD 회원국에서 부유한 상위 10퍼센트의 평균 소득은 하위 10퍼센트의 9.6배에 달했다. 1980년 7배, 2000년대 9배에서 꾸준히 커졌다.

한국은 10.1배로 OECD 평균보다 높았다. 특히 한국은 65세 이상 노인층의 상대적 빈곤율이 49.6퍼센트로 OECD 평균인 12.6퍼센트를 크게 상회하며 1위를 차지했다.

2007~11년 OECD 회원국에서 실질적인 평균 가계가처분소득은 정체돼 있거나 떨어졌는데, 그 피해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집중됐다. 스페인에서 가장 가난한 10퍼센트의 소득은 해마다 13퍼센트씩 줄었는데, 부자 10퍼센트의 소득은 1.5퍼센트씩만 줄었다. 평균 소득이 증가한 나라들도 상위층은 소득이 올랐지만 하위층은 떨어졌다. 경제 위기의 고통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집중된 것이다.

자산 격차는 소득보다 더 컸다. 2012년 최상위 부유층 1퍼센트는 전체 자산의 18퍼센트를 보유했지만 하위 40퍼센트는 3퍼센트만 가지고 있었다. 구호 단체인 옥스팜이 2014년에 발표한 것을 보더라도 단 85명이 세계의 절반에 이르는 사람들과 같은 부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빈부격차가 심해지는 상황은 지금까지 여러 보고서들에서 발표된 바 있다. 그런데 이번 OECD 보고서는 불평등 심화가 경제성장에도 해롭다고 강조한 점이 특징이다. OECD는 30년간의 자료를 조사해서 지니계수(대표적인 불평등 지수로 0과 1 사이의 값을 가지며 1에 가까울수록 소득 분배가 불공평하다)가 높을수록 경제성장률이 떨어진다고 밝혔다. 그래서 OECD는 1990~2010년 불평등 때문에 회원국의 경제성장률이 평균 4.7퍼센트 하락했다고 추산했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도 하위 20퍼센트의 소득이 늘어야 경제가 성장한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IMF는 소득 상위 20퍼센트의 부가 1퍼센트 증가하면 5년 뒤 국내총생산은 0.08퍼센트 줄어들고, 하위 20퍼센트의 소득이 1퍼센트 늘면 국내총생산은 0.38퍼센트 늘었다고 밝혔다.

개인의 문제?

이런 증거들은 불평등을 정당화해 온 우파들의 논리를 반박하는 데 유용하다. 우파들은 복지를 제공하면 모두가 게을러져서 경제가 성장하기 힘들고, 빈부격차가 있어야 사람들이 노력해서 경제가 성장한다고 말해 왔다. 또 경제가 성장하면 자연스럽게 부가 흘러 넘쳐 모두가 부유해질 수 있다고 말해 왔다.

그러나 실증적인 사실들만 봐도 이런 주장이 헛소리라는 것은 명백하다.

물론 OECD와 IMF 주장처럼 심화하는 불평등이 경제성장률을 낮추는 원인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그다지 설득력은 없다.

OECD와 IMF는 그 논거를 주로 교육 불평등에서 찾는다. 주류 경제학은 하위층이 빈곤하면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게 되고 이 때문에 경제 성장이 저해된다고 주장한다. 경제 위기의 원인을 개인의 능력 문제로 환원하는 것이다.

오히려 성장률 하락이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1970년대 이후 계속되고 있는 자본주의의 이윤율 저하 위기 속에서 자본가들이 이윤율을 회복하려고 노동자 착취를 강화했기 때문에 불평등도 심화했다. 각국 정부는 기업들의 세금은 깎아 주고, 노동자들의 복지는 축소하며 자본가들의 착취 강화를 뒷받침했다. 이런 공격에 노동계급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 불평등 심화의 주요 원인이다.

성장과 분배의 조화?

OECD와 IMF는 “성장친화적이고 동시에 불평등을 줄이는 정책 패키지”를 찾자는 대안을 제시했다. 전에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밀어붙이던 IMF, OECD와 같은 기구들에서도 이런 주장이 나오는 것을 보면 2008년 공황 이후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큰 타격을 입었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성장과 분배를 조화시키자는 식의 주장은 그다지 새롭지는 않다. 이미 오래전부터 일부 부르주아 자유주의자들이나 주류 사회민주주의자들도 성장과 분배를 조화시키기 위한 대안을 제시해 왔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 “성장”은 자본축적을 뜻한다. 자본축적은 노동자를 착취해야만 가능하기 때문에 노동자와 자본가의 이익을 조화시키겠다는 주장은 호황기에도 자연적인 과정이 못 되지만 특히 경제 위기 상황에서는 날카로운 모순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본가 계급에 기반을 둔 부르주아 자유주의 정당과 조직들은 말로는 ‘조화로운 발전’을 주창할지라도 실천에서는 자본가들을 편들어 왔다. 한국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 그래 왔다. IMF도 보고서에서는 불평등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리스 노동계급에게 흡혈귀처럼 붙어서 긴축을 강요하고 있다.

불평등에 맞서려면 자본가들에 맞선 노동자 투쟁을 일관되게 강화해야 한다. 피케티의 통계를 봐도 불평등 수준이 크게 감소했던 1940년대는 계급투쟁이 상당히 활발한 시기이기도 했다. 복지 국가는 노동계급에게 “개혁을 주지 않으면 저들이 우리에게 혁명을 선사할 것”이라는 자본가들의 두려움 속에서 쟁취됐다.

성장이라는 틀 속에서 분배를 요구해야 한다는 생각은 기업주들의 이윤에 큰 타격을 주지 않는 선에서 노동자 투쟁을 제한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에 투쟁을 성장시키는 데 별로 효과적이지 않다.

노동계급과 자본가 계급의 이해관계를 조화시킬 수 있다는 환상을 부추기기보다는 일관되게 노동자 투쟁을 강조하는 것이 진정으로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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