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 연금 강화와 노후 빈곤 해소를 위한 사회적 기구’(이하 ‘사회적 기구’) 참여 여부를 둘러싸고 운동 내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여야는 ‘사회적 기구’에 노동조합 등 ‘사업장 가입자 대표’나 ‘지역 가입자’ 대표를 포함시키기로 했다.

공적 연금을 강화하는 것은 노동계급 전체에 중요한 일이다. 용돈 수준에 불과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실제 노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현재 한국의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은 명목상 40퍼센트이지만 취업 기간이 짧아 실질적으로는 20퍼센트 안팎에 머무르고 있다. 이 수치는 2030년이 돼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듯하다.

사각지대가 넓어 전체 노동자의 절반만 혜택을 받는 문제도 해결돼야 한다. 기초연금도 수급액을 인상하고 수급 대상을 모든 노인으로 확대해야 한다.

그런데 ‘사회적 기구’를 통한 논의가 실질적인 공적 연금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공적 연금을 개선하려면 ‘사회적 기구’ 바깥의 투쟁 동력이 매우 중요한데, 연금 전투의 핵심 주력 부대들이 막 패배를 겪은 터라 현재로서는 장외 투쟁 동력을 기대하기 난망이다. 그래서 ‘사회적 기구’ 내 논의가 중심을 형성할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사회적 기구’의 내부 역학은 어떠한가?

먼저, ‘사회적 기구’의 합의는 아무런 법적 구속력이 없다. 논의 결과를 국회 특위에 “단수 또는 복수안으로 제출”하면 최종 결정은 국회에서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이 한다.

공무원연금 개악 과정에서 만들어진 ‘대타협기구’에도 공무원 단체 대표자들이 참여했다. 그런데 ‘대타협기구’나 그 후신인 ‘실무기구’에서 이들은 “들러리” 취급만 받았다. 실무기구에서 만들어진 합의 내용은 국회 특위를 거치는 동안 빠져 버리거나 의미 없는 문구가 돼 버렸다.

박근혜와 새누리당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퍼센트로 인상’ 등 자신들의 정책(공적 연금 삭감과 사적 연금 활성화)과 충돌하는 조항을 규칙의 첨부 자료로 포함시키는 것에도 반대했다. 공무원연금 개악안이 4월 임시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한 까닭이다.

새정치연합도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퍼센트로 인상’이라는 실무기구 합의 내용을 지킬 의지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사회적 기구’는 오히려 ‘소득대체율 50퍼센트로 인상’의 “적정성과 타당성을 검증”하는 것이 주요 설치 목적이다.

둘째, 사회적 기구의 구성도 노동자들에게 불리하다. 총 20명으로 구성되는데 여야가 각각 8명(국회의원 3명, 전문가 2명, 사업장 가입자 대표 2명, 지역 가입자 대표 1명)을 보내도록 했다. 이 외에 여야가 공동으로 추천하는 관계 공무원과 공공기관 임직원 2명이 포함된다. 따라서 그 구성으로 보건대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그나마 대변할 사람은 1명(민주노총이 참여한다면)이거나 많아도 5명을 넘기기 어렵다. 정부가 국민연금 재정에 관한 정보도 제대로 공개하지 않을 공산도 크다. 만약 노동자 대표가 참여한다면, 그는 한쪽으로 많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중과부적의 경기를 치르는 셈이 될 것이다.

셋째, 가입자 수와 연기금 재정 규모 모두 엄청난 국민연금의 개선을 논의하기에는 활동 기간을 턱없이 짧게 정했다. 국회 특위는 10월 31일에 자동으로 활동 기간이 종료되지만(합의를 전제로 25일 연장 가능), 그 전에 이뤄야 할 아무런 목표도 규정하고 있지 않아서, 시간만 때우다 끝나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

보험료

넷째, 설사 사회적 기구에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인상하는 논의를 진행한다 해도 공무원연금 개악으로 절감한 재정의 20퍼센트만으로는 국민연금을 전혀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없다. 국민연금의 재정 규모가 훨씬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험료 인상안이 (사회 세력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실현 가능성은 별개로 치고) 논의 쟁점으로 떠오를 개연성이 있다. 다만, 보험료 인상에 반대하는 기업주들의 반발을 고려해 이러저러한 꼼수를 쓸 가능성이 크다. 예컨대 지난 6월 16일 양당 원내대표가 포함된 여야 의원 28명이 ‘저축계정’을 도입하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공동발의했다.

저축계정은 쉽게 말해 ‘더 받고 싶은 사람만 더 내라’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소득이 많은 노동자들의 보험료를 ‘자발적으로’ 인상하되 기업주들의 부담은 면제해 주는 안이다. 국민연금은 기업주들로 하여금 자신이 고용한 노동자들의 보험료 절반을 내도록 하고 있는데 저축계정은 노동자 자신이 낸 보험료 만큼만 나중에 연금으로 지급한다.(기업주에게 추가 부담 의무가 없다.)

이는 사적 연금, 특히 그중에서도 개인연금처럼 운영하겠다는 것이므로 우선, 시장 침식을 걱정하는 민간 보험사들이 반발할 확률이 높다. 따라서 사적 연금 활성화 대책을 추진해 온 박근혜 정부가 선호할 안은 아닐 듯하다.

저축계정 도입은 공적 연금이 가진 소득재분배 효과를 상쇄한다는 점에서 노동계급의 처지에서도 지지할 게 못 된다. 추가로 보험료를 낼 여유가 있는 사람들만 가입할 수 있는데다 기업주들의 추가 부담 없이 국민연금 전체의 수익비를 적용하므로 오히려 저소득층에게 돌아가야 할 연금 일부가 고소득층에게 돌아가는 역재분배 효과가 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아예 보험료를 일괄 인상하는 것도 노동자에게 대안이 될 수 없다. 사회적 기구는 보험료의 기준이 되는 기준소득월액 산정 방식을 바꾸는 안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렇게 할 경우 보험료를 최대 30퍼센트 인상하는 효과가 난다. 그러나 경제 위기로 생활수준의 하락 압박을 받는 노동자들이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을 좋아할 리가 없다. 기업주들이 절반을 부담하더라도 말이다. 보험료 인상은 당장 임금 삭감 효과를 내지만 연금 수급은 미래의 일인데다 정부가 거듭 연금 삭감을 시도하니 이런 의심은 합리적인 것이다.

계급투쟁

노동자들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방식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국민연금을 개선하려면 기업주들과 부유층으로 하여금 세금과 보험료를 더 내게 해야 한다. 지금의 경제 위기와 국민연금 재정 규모를 고려했을 때 자본가 계급에 압력을 가하려면 강력한 계급투쟁이 필요하다.

요컨대 현재 지배계급의 경제 위기 극복 프로젝트가 노동계급에게 고통을 전가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사회적 기구 참여 같은 협상을 통한 개혁은 여지가 매우 제한돼 있다. 그래서 ’사회적 기구’를 통한 공적 연금 개선 논의는 말 그대로 논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물론 ‘사회적 기구’를 통해 국민연금을 사회적으로 여론화해 내년 총선에서 국민연금 개선을 주요 쟁점으로 부각시킬 수단으로 그 의의를 두고자 하는 사람들도 아마 적잖이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노동계급이 복지를 확대하는 방법은 선거보다는 계급투쟁이 결정적이다. 국민연금 개선을 실질적으로 이루려면 계급투쟁의 회생에 진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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